여름 속 탈출구, 정세운 A
난 여름을 끔찍히도 싫어한다. 마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할 정도이다.
누구 한 명 녹일 듯이 뜨거운 햇빛과 습하디 습한 여름은 안 그래도 더러운 내 성질을 박박 긁는 데에 뛰어난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내 주변의 나름대로 친하다 싶은 사람들은 내가 단순히 이런 이유 때문에 여름을 이토록 싫어하느냐 묻는다. 그럼 난 묵묵히 답한다. 사실 내가 여름을 증오하는 이유는 3년 전 우리 엄마와 아빠의 목숨을 앗아간 계절이기 때문이라고. 내가 답하고 나면 그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여름에서 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구역질 나는 모호한 감정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담배를 물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엄마와 아빠가 그렇게 떠나고 난 뒤, 고요한 새벽의 장례식장에서 발견한 게 바로 담배였다. 누군가가 놓고 간 것이였겠지, 부르르 떨리는 눈을 꾸욱 감고, 담배곽에 있는 흰 담배 하나와 향 주위에 널부러져 있던 라이터를 들고 장례식장 밖을 나왔다. 아직도 소름돋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새벽 그 거리를 잊지 못 한다. 여름의 새벽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하늘을 올려보자 세상에 정말 나 하나밖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 그 외로운 기분이 내 몸을 휘감았다. 피어왔던 사람인 것마냥 자연스럽게 라이터를 켜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입에 물고 숨을 들이켰다. 거친 기침을 내뱉다가 불현듯 생각난 익숙한 냄새에 뜨거운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빠에게 안길 때 품에서 났던 포근한 향과 섞여났던 냄새였다. 안기고 난 뒤에 매일 투정부리며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차라리 같이 가지, 벌써 그리운 엄마 아빠의 모습에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혼자 살아남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여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었을까.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 옆에서 기타 가방을 맨 한 남자아이가 내가 쳐다볼 줄은 몰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기 내가 훔쳐본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 아이는 당황한 듯 횡설수설 하다가 눈물로 잔뜩 젖은 내 얼굴을 보더니 아까와는 달리 조금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새벽에 기타 연습하는 걸 좋아해서 밖에 있었는데 누가 울길래 와보니까 내가 서럽게 우는 걸 보게 됐고 위로를 해줄까 말까 고민을 했다고, 울지 말라고. 뭐 이런 내용이였다. 사실 기억이 제대로 안 난다. 단정한 앞머리,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고개, 예쁜 목소리와 나른한 눈빛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순간부터 멍하니 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게 됐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정말이지 잠시나마 슬픔 속 허우적거리던 나는 여름에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아이는 내 손에 노란 꽃 한 송이가 프린팅된 하얀 손수건을 쥐어주고는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손수건은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처럼 따뜻했고, 그 따뜻함을 난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다.
"김여주, 우리 저번에 봉사 안 간 것 때문에 담임이 점심 먹고 교무실로 오래"
3년 전 여름 이후,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쉬는 시간에 나가 입에 물었던 담배 때문인지 어쩌다보니 흔히 말하는 좀 까진 애들과 다니게 됐다. 오히려, 나는 편했다. 선생님들께 열심히 불려가는 것을 제외하면 학교 생활이 무척이나 편했고,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삥을 뜯는다든지 애들을 괴롭힌다든지 수업시간에 방해를 준다든지 이런 더러운 행동은 하지 않았다. 친구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없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주욱 내리며 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담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뒤에는 키가 꽤 크신 담임 선생님보다 한 뼘 정도 키 큰 남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누구 오든 별 관심이 없었기에 얼굴만 대충 보고 엎드리려던 순간,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그 장례식장 앞에서 본 손수건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도 놀란 듯해 보였지만, 난 곧장 눈을 내리깔고 책상 위에 엎어졌다. 쿵쿵 뛰는 내 심장 소리가 책상을 울렸다.
"오늘 우리 반에 새로 온 친구의 이름은 정세운, 세운아 자기소개 해볼래?"
이름이 정세운. 정 세 운... 엎드린 채로 석 자를 계속 조용히 읊조렸다. 그토록 알고 싶었던 아이의 이름은 정세운이였다. 퍽이나 그 아이와 어울리는 이름임이 틀림없었다. 그 아이, 아니 세운이 자신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하자 내 머릿 속은 세운이의 목소리로 가득차버렸고, 그가 입에서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들이 머릿 속에서 뒤엉켰다. 아ㅡ 어지러웠다, 또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언뜻 본 세운은 정갈한 앞머리와 앳된 얼굴은 사라지고 제법 남자다움을 뽐내는, 하지만 여전히 순하고 착해보였다. 순간 나는 지금 내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졌고, 세운이가 기억하는 3년 전 내 모습이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내 뒤에 자리가 비었었나 생각할 때, 누군가가 등을 툭툭 쳤다. 책상을 울리던 심장 소리가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봤다. 3년 전의 그 아이, 정세운이었다.
"너 그때 새벽에 울고 있던 애, 맞지?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반가워"
세운이는 조곤조곤 예쁜 말을 건네며 손을 건네왔다. 목 밖으로 넘어오려는 심장 소리를 꾸욱 삼키고는 애써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을 맞잡았다.
이게 우리의 두 번째 만남, 그리고 내가 여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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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43968입니다!! 사실 전 발고 달달달닫랃랃ㄹ달ㄷ달한 글을 좋아하는지라 그런 글만 쓰다가 이렇게 살짝 어두운 글을 쓰려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ㅠㅠㅠㅠ 게다가 첫 편은 세운이 빙의글이라기보다는 여주의 사정을 다뤘기에 정말 노잼이였을 것 같아요 이렇게 어두운 글은 대부분의 독자분들... 다 안 좋아하시지요?(스아실 제가 이런 글을 못 쓰겠어서 어서 글의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어요 ㅎㅎ) 게다가 이번 글은 엄청난 급전개였어요!! 전 사실 급전개를 사랑하거든요 다음 편부터는 읭,,, 같은 글 맞나,,, 싶으실 정도로 글의 분위기가 틀어질 예정이니까요 너무 놀라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세운이를 만나면서 여주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리고 세운이와 여주의 러부러ㅂ부가 얼마나 예뻐질지 기대해 주세요 ^ㅅ^ 원래 프롤로그에는 포인트를 붙이지 않는데 정말 열심히 써서 조금... 붙여보았어요... 그래서 슬쩍 A로 바꿔보았지요. 우리 다 같이 댓글을 예쁘게 쓰고 돌려받아 보아요 사실 지금 일주일 쓰차가 걸려서 글을 써놓고도 못 올려서 넘 답답하네요 여러 번 검토를 하긴 했는데 어색한 문장이나 표현이 있다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