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짝사랑
열여덟, 벚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던 아름답던 봄날이었다.
평소라면 침대에 늘어져서 모니터로 벚꽃을 감상했을 테지만 그날 따라 유난히도 벚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벚꽃은 무슨 그럴 시간에 pc방에서 고급시계나 한판 더 하겠다는 김재환을 강제로 이끌고 벚꽃구경을 나왔다. 아무리 꽃이 보고싶어도 혼자서 눈을 돌리면 커플들밖에 없을 곳에 혼자서 갈 용기는 없었다.
"와 진짜 이쁘다, 누가 꽃인지 모르겠지?"
"그러게 뭐가 김여주인지 모르겠네"
"오~! 김재환 니가 웬일로 칭찬을 다하고 그러."
"이거 썩은 나뭇가지 너랑 진짜 똑 닮았다."
바닥에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 들고 김여주 오늘따라 왜 더 못생겼어.라는 개소리를 하는 김재환의 머리통을 한대 갈겨주었다. 어쩐지 그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온다 싶었는데, 그럼 그렇지.
"넌 날이 가면 갈수록 힘이 쎄지냐, 이참에 진로를 바꾸는게 어때? 역도라든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헛소리를 하는 김재환의 정강이를 한대 까주고는 예쁘게 만개한 벚꽃 나무아래에 가서 섰다. 다리를 부여잡고 징징거리고 있는 김재환에게 빨리 사진이나 찍으라고 소리치자, 궁시렁 거리면서도 포즈를 취하라며 카메라를 들어보였다.
사진 하나는 잘 찍는단 말이야. 예쁘게 잘 찍어준 사진을 한장씩 넘기며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으면, 김재환은 언제 갔다온건지 내 옆에 옥수수수염차를 내려놓았다. 맨날 할머니도 아니고 옥수수수염차가 뭐냐면서 놀리면서도 이렇게 꼭 잘 사다준다니까. 은근 츤데레 기질이 있는 김재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개도 아니고 왜 머리를 쓰다듬냐며 성질을 부렸다. 어휴, 이렇게 예뻐해줘도 난리라니까.
"여기도 커플 저기도 커플. 이렇게 예쁜날 너랑 여기서 뭐하는 건지..."
"누가 보면 내가 끌고온줄 알겠다. 니가 데리고 온거거든"
'누가 뭐랬나, 그냥 같이 벚꽃도 보러 올 남친하나없는게 서러워서 그런다"
"또 남친 타령이냐...내가 진짜 괜찮은 애 한명 아는데 소개해줄까?"
"니가 아는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도 있냐? 누군데?"
"나!"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혹시나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서 물어보면 아주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김재환만 보일 뿐이었다. 짜증이 치밀어 오는 느낌에 말을 아끼며 고개를 돌리자, 마상입었다는 표정을 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입을 내밀기는 왜 내밀고 그러냐 주먹이 안나간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자기야 그거 알아?"
"뭐 말이야?"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대"
눈살이 찌푸려질만한 애정행각을 하며 내 앞을 지나가는 커플의 모습에 욕을 내뱉을 뻔하다가 여자가 하는 말을 듣고는 그 말을 쏘옥 삼켰다. 벚꽃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지. 그런 미신이 어디있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벚꽃나무 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저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해보는 거야 호기심에.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합리화를 하며 떨어질 벚꽃잎을 기다렸다.
"어?"
바람에 맞춰 떨어지는 벚꽃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누군가 나보다 먼저 그 벚꽃을 잡아챘다.
"어...이거 그쪽이 가지세요"
어정쩡하게 손을 뻗고 있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있는 나를 본 남자는 제 손에 있는 벚꽃과 번갈아 보더니, 내 손 위에 벚꽃을 올려주고는 갔다.
손에는 하트모양의 벚꽃잎이 놓여있었다.
흐드러지게 내리는 벚꽃을 맞으며 혹여나 다른 잎들과 섞일까 남자가 준 벚꽃잎을 보물처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열여덟, 벚꽃이 흐드러지게 떨어지던 아름답던 봄날이었다. 그 날 난 사랑에 빠졌다.
그 후로 체리남은 볼수가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냥 길에서 마주친 사람일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많은 벚꽃잎 중에 그 잎을 동시에 잡으려고 한 체리남과 나는 운명이었다고 생각하며 분명 다시 만나게 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운명처럼 그 체리남을 다시만났다.
"김재환!!! 내가 방금 뭘 본 줄 알아?"
"뭐, 그렇게 흥분할걸 보니까 오늘 급식에 치킨이라도 나오냐?"
"지금 치킨이 문제가 아니야! 방금 봤다니까"
"뭘?"
"나의 체리남!!"
나의 호들갑에 인상을 구긴 재환이의 표정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고 2-12반에 앉아있던 체리남의 모습만 둥둥 떠다닐뿐이었다.
-------------
체리남= 체리블라썸에서 따온 말입니다.
워너원고 예고 영상의 우진이와 재환이가 자꾸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ㅠㅜ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