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극과 S극의 연애방식
by. 달콤한 망개
엄마 친구 아들. 딱 그 정도였다. 녀석과 나의 관계는. 처음부터 녀석과 내가 으르렁거리며 싸워댔던 건 아니다. 오히려 나답지 않게 과한 친절을 베풀면 베풀었지. 날선 고양이 같던 녀석의 첫인상은 은연중에 내게 선을 긋고 있었고 그 당시 딱히 그 선을 넘을 마음도 없었던 나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렸었다. 그래, 어쩌면 그냥 처음부터 안 맞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녀석과 나의 성격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구석이 하나 없었고 그 덕에 하루라도 안 부딪치는 날이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나랑 안 맞는 사람도 존재할 수가 있다는 게. 그러나 엄마와 아주머니가 왕래하는 날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반강제적으로 녀석과 붙어 지내는 시간 또한 늘어갔고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렸던 일들도 크면 클수록 눈엣가시가 되기 일쑤였다. 덕분에 유년시절부터 이 악연을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는 건 두 말할 것도 없고.
그게 취미가 됐든, 취향이 됐든 뭐가 됐든간에 녀석과 나는 서로에게 차이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상하리만큼 살벌하게 싸워대곤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내가 싫어하는 걸 그가 좋아한다는 게 정말 죽기만큼 싫다.
***
쾅- 교실 문을 세게 열어젖히자마자 보이는 두 인영에 욕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책상 위에 엎어진 민윤기 덕택에 눈에 보이는 건 익숙한 검은 뒷통수 뿐이었지만 그 옆에 제 자리인 마냥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정민아의 태도에 습관적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깜짝 놀란 얼굴로 저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민윤기의 자리로 다가갔다.
"어, 여주? 안녕 오랜만이다?"
싸늘한 분위기와 맞지 않는 발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오려 그랬다. 세상에 너 같이 뻔뻔하고 눈치 없는 것도 찾기 힘들 거다,
"됐고 비켜."
"응? 뭐라고?"
"비키라고. 민윤기 옆에 내 자린 거 몰라?"
"음... 그치만... 윤기가 나보고 자기 옆에 앉아 있으라고 했는걸?"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며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뜨는 정민아는 가증스러운 얼굴로 잘도 민윤기를 팔아먹었다. 아 진짜 아침부터 열 받게. 더워 죽겠는데 아주 날을 잡았는지 아니면 진짜 끝장을 보자는 건지 끝까지 비킬 생각은 없는 듯 빙글빙글 비위 좋게 웃기만 하고 있다. 민윤기 존나 짜증 나는 새끼. 이 사단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꿈쩍도 안 하는 납작한 뒷통수를 한대 후려갈길까 싶다가도 녀석과 여기서 싸웠다가는 교실에 남아날 성한 물건이 없을 것 같았다. 아무 죄도 없는 반 애들한테 괜한 피해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야, 정민아."
"응?"
"민윤기가 너 좋대?"
"...어?"
"민윤기가 너 자기 옆에 앉아 있으라 그랬다며."
"아... 응."
"걔 지 여친 아니고는 자기 옆에 안 앉히는데."
"...어? 근데 여주 너 1학년 때부터 계속 윤기 옆에 앉,"
"아 시끄럽고 묻는 말에나 답해."
"....."
"민윤기가, 너 보고 자기 옆에 앉으래?"
아까 잘만 놀리던 입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건지. 땅을 파고 기어들어 갔나.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는 정민아에 한숨만 픽 새어 나왔다. 사실 알고 있다. 정민아가 민윤기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굳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이럴 담이 있는 애는 아니다. 그 말은 즉슨, 민윤기가 그런 말을 하긴 했다는 거지. 다시금 밀려오는 두통에 눈가를 꾹꾹 누르면서 발로 툭 민윤기 무릎 밑을 걷어찼다.
"야, 안 일어나?"
"...아 누구, 김여주?"
"그래, 김여주다 이 새끼야."
"또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불만은 무슨. 눈 뜨자마자 새끼라는 말을 들은게 어이가 없는지 삐딱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게 까딱 잘못했다간 진짜 주먹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음만 같아서는 두들겨 패서 병원에 입원이라도 시키고 싶다만.
"너 예전부터 나한테 그랬지. 귀엽고 애교 많고 착한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
"그 여자 지금 네 옆에 앉아있으니까."
"....."
"꼭 놓치지 말고 잡아라. 알겠니, 친구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돌린 민윤기는 이내 짜증스럽다는 듯 머리를 털며 아, 김여주 그게 아니고- 라는 말을 내뱉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툭툭 그의 어깨를 털었다. 괜찮아, 윤기야. 나는 취향이 아쉽게도 너랑 정확히 정반대라서. 귀엽고 착하고 애교 많은 건 딱 질색이였는데 어떻게 일이 좋게 풀렸네. 얼이 빠진 민윤기를 내버려 두고 그대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앞으로 민아야, 거기 계속 앉아."
"...어?"
"거기 계속 앉으라고. 나 이제 거기 안 앉을 예정이라서."
멍청한 정민아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근사근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민윤기 옆에 딱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알겠지? 아주 그냥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어, 숨 못 쉬어서 살려달라 빌 정도로. 참고로 민윤기 이상형 귀엽고 착하고 애교 많은 거니까 알아두도록 하고. 잘해보라는 듯 정민아의 어깨도 툭툭 털어주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맨 뒷자리로 향했다. 동시에 핸드폰을 켜 문자도 보냈다.
'헤어져, 이 병신아'
반짝 전송 확인이 뜨자마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는 민윤기가 보였지만 아까도 말했듯 교실에서 그와 싸울 생각은 단 일 퍼센트도 없었다.
'앉아, 더 열 받게 하지 말고.'
민윤기 표정이 어떻든, 나를 바라보고 있든 아니든 그대로 고개를 숙여 얼굴을 책상 위로 파묻었다. 그 순간에도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렇게까지 안 맞기도 힘들겠다.
14년을 함께했어도 녀석과 나는 여전히 상극이다.
+) 치고박고 싸우는 로맨스물 정도 되겠네요. 물론 치고박고의 정도가 좀 살벌할 수는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취향부터 취미까지 전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맞지 않는 상대랑 사랑을 하면 어떨까 싶어서 쓴 글인데... 그래도 윤기랑 여주랑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둘 다 성격이 불도저라는거죠. 딱 봐도 둘 다 성격이 한 가닥 하는 것 같죠? ㅎㅎ 그나저나 요즘 너무 더워요 ㅠㅠ 비도 많이 오구... 내 님들 모두 몸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셔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