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h boy_
너한테서 복숭아 향 난다. 응? 나의 말에 애들은 은근슬쩍 박지훈에게 다가가 향을 맡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너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고, 그러면 나는 더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지. 어어, 얘들아 그러면 지훈이 불편할 텐데…. 그러고 보니 얘 얼굴도 핑크색이야! 우리 반에서 나대기, 아니 시끄럽기로 유명한 아이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아이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꼭 복숭아 같잖아! 너 피치 해. 피치. 박지훈의 얼굴은 어느새 부끄러움으로 붉어져 있었다. 아, 내가 원한 건 이런 상황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나의 입에서 나온 '복숭아' 발언으로 인해 박지훈의 별명은 피치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저, 향이 좋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홍조 있는 걸 신경쓰여 했던 너는, 그 별명이 생겼을 때 별로 달갑지 않게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피치야. 피치야 뭐 해? 야, 피치! 이제는 다른 반 애들까지 박지훈을 피치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했던 박지훈도 이제는 익숙한 듯 그에 대답했고 우리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피치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복숭아라는 주제로 박지훈과 나 둘만의 꽁냥거림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걸 그, 그 나대는! 자식 때문에 이렇게 모두가 다 알게 된 게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피치라고 부를 생각도 없었으면서 괜한 심술이 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다들 피치라고 부를 때 오기로 가득 차서 박지훈, 지훈아 하고 부르다가 결국에는 피치라고 불렀다. 줏대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박지훈은 꼭, 내가 피치라고 부르면 해맑게 웃었다. 사람 싱숭생숭하게, 그 얼굴로 그러는 건 반칙 아닌가. 이건 내가 얼빠인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마는…….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랬다.
물론 나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금사빠는 아닌데, 난 오히려 신중한 편인데, 박지훈은 그것을 뛰어 넘을 정도로. 나의 연애철칙을 씹어먹을 정도로 잘생겼다. 그러니까 …… 나는 박지훈의 얼굴에 반한 것이다. 물론 그 순둥한 성격도 한몫했다. 잘생긴 주제에, 그 얼굴이면 싸가지 없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지훈은 조용했고 공부만 했다. 전교권에 머무는 성적에 수업 시간에 집중도 잘 하고 심지어 필기한 것도 잘 빌려줬다. 물론 글씨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알아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박지훈은 우리 학교 공식 피치이면서 공식 엄친아였다. 전교 1등은 아니지만 언제나 전교권에 머물렀으니까. 그러면서 얼굴은 최상위권이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성격도 좋고. 그러니 박지훈이 유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박지훈은 그렇게 주목 받는 것이 싫은지, 학교 행사에서 튀는 일 한 번 한 적 없었다. 반장을 한다거나 학생회를 한다거나 아니면 축제에서 무대에 선다거나,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왜일까. 그냥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기피하는 걸로 보였다, 나에게는. 그리고 피치는 가끔씩 그런 말들을 하곤 했다.
" ……… 시끄럽다. 시끄러워. "
" ……. "
" 조용히 살고 싶다. "
그때는 쉬는 시간이었고 반이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박지훈은 때때로, 다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 밖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시선을 돌렸고…… 다시 박지훈을 쳐다보면 박지훈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짝 웃었고 박지훈은 그 잘생긴 얼굴로 나를……
" 여주야. "
" 응? "
" 너무 시끄럽다. "
" ……. "
" 너는 조용하잖아. 그래서 좋아. "
" 어? "
" 조용해서, 네가 좋아. "
너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조용해서 좋다고. 그리고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너는,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조금씩 흩날리고, 꼭 영화 속 장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너는 그렇게…… 잘생겼었다. 나는 네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부끄러워 하고 나의 볼은 어느새 너의 얼굴처럼 홍조를 띠었다. 그날 하늘은 유독 파랗고 높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래. 그렇게 너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피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가는 길에 열쇠를 떨어트렸는데 하필 으스스한 골목에 떨어졌던, 그 때였다. 열쇠는 굴러굴러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몸을 쪼그리고 가던 나는 그 열쇠가 누군가의 신발 앞에 떨어진 걸 보았다. 그 사람은 천천히 내 열쇠를 주웠고 나를 보지도 않고 대충 던졌다. 날아오는 열쇠를 겨우 받아든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얼굴이나 보자 싶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고 나는 곧 그게 피치, 박지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던 너를. 너는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는 내가 이상한지 담배를 태우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고 얼빠진 내 모습에 너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피우던 담배를 그대로 떨어트렸다. 그러다 손에 떨어트린 것인지 손을 털어대며 뜨거워 하고…… 나는 여전히 얼빠진 상태로 너를 쳐다보고…….
" 여주야, 그게……. "
" 너 손…… 괜찮아? "
너는 당황해서 손을 털다 말고 내게로 다가왔다. 다가오는 순간 풍기는 담배 냄새에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너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고 나는 담배가 스치고 가서 붉어진 너의 손을 맞잡았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당황스럽지만, 일단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서 붉어진 손에 물을 부었다. 화상 입으면 보통 흐르는 물에 씻는다고 했던 것 같아서, 도움이 될까 하고. 물이 주르륵 흘러 내 손과 박지훈의 손 그리고 신발까지 적셨고 나는 여전히 당황스러워서 그냥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가방에 텀블러를 쑤셔 놓고 아무런 말 없이 가려는 나를 박지훈은 서툰 손길로 붙잡았다.
" 나, 나한테 실망했어? "
" 뭐? "
" 내가 어울리지도 않게 담배 피운다고…… 아니, 담배 피우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잘못된 거지만…. "
" ……박지훈. "
" 원래 피치라고 그랬잖아. 요즘 계속 피치라고 불렀으면서, 갑자기 왜 박지훈이야? 피치라는 별명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아니 오히려 싫어했는데……. 아 나 지금 뭐래냐. "
" ……. "
" 그러니까 나는, 네가…… 나를 피치라고 불러주는 게 좋거든. 다른 사람 말고 네가……. "
박지훈은 많이 당황스러운지 횡설수설하면서 말을 정리하지 못 했다. 그냥 말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박지훈과 안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 봤다. 자신의 감정 표현을 하는 게 많이 서툰 건지 내 눈도 마주치지 못 하고 그냥 바닥만 보면서 그렇게 말을 쏟아냈다.
" …… 여주야. 나는 시끄러운 게 너무 싫어. 조용한 게 좋은데 이 세상은 나한테 단 한 번도 조용했던 적이 없었어. "
" 그래서 나는 조용한 네가 좋은데, 나긋한 목소리로 나를 피치라고 부르는 네가 좋은데……. "
" 너한테 이런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