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 - 밥 영화 카페 (feat. 뉴이스트 아론)
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아니. 심하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하고 마주 앉아있는 것처럼 어색한 일은 또 없었다.
굳이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직 친하다 싶은 사람이 아니면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
"..."
그리고 지금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 앞에는 최민기가 멀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17
w. 갈색머리 아가씨
나는 sns도 하지 않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너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정보원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너의 친구들은 최민기, 강동호, 김종현 이 셋이 전부였다. 그리고 사실 믿을 만한 사람들도 이 셋이 전부였다.
얼마 후면 너의 생일이었다.
너의 생일이기도 했고 너와 함께 여행을 가는 날이기도 했다.
일찌감치 100일이네 뭐네 이런 기념일은 챙기지 않기로 했던 우리였다. 우선 내가 그런 기념일을 하나하나 챙기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너는 은근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그럼 매일 기념일처럼 지내요.' 라는 닭살돋는 말로 받아들였지.
기념일은 날짜를 일일히 계산을 해서 챙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생일은 달랐다.
네가 태어난 날이니까. 게다가 이번 너의 생일은 우리가 만남을 이어간 뒤로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거창한 것은 내가 해줄 수 없어도 네가 좋아하는 것을 주고 싶었다.
네 친구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너에게 서프라이즈로 준비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사실 네 생일에 여행을 간다는 거 부터에서 서프라이즈는 글러먹었지만)
내가 너에게 '뭐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네가 할 대답이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에.
'선배가 주는 건 다 좋아요!'
굳이 듣지 않아도 머릿속에 울릴 정도로 음성지원이 쩔어줬다.
"근데 민현이는 선배가 주는 건 다 좋다고 할텐데..."
"그게 싫다는 거에요."
"네?"
"민현이도 호불호가 있을텐데 그냥 무조건 좋다고 하는 건 좀 그래요..."
하긴. 그렇긴 하네요.
최민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만들어준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나름의 뇌물이었다.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 알려주는 거에 대한 대가랄까.
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만든 레몬청을 아낌없이 쏟아부어야 했지만 이정도야 뭐. 어차피 내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가게 물건 쓴 건데.
아니지.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에휴...
한숨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뭐 해주지. 생각해보면 나는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먹는 거는 갈비찜을 비롯한 고기 종류. 음료수는 딸기 바나나 쥬스 또는 자몽 에이드나 헛개수.
옷을 입는 걸 보면 이미 옷은 차고 넘치도록 많은 거 같고.
향수는 워낙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이다보니 함부로 선물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먹을 것을 줄 수는 없잖아. 진짜 어쩐다...
"민현이가 싫어하는 거는 알아요?"
"술..?"
"술도 안좋아하고 커피 안좋아해요. 음... 알러지 있어서 입욕제 같은 거는 잘 못쓰고요."
"알러지요?"
"염분 알러지. 목욕 소금 같은 거 쓰면 큰일나요."
그럼 입욕제 같은 거는 당연히 안되겠네.
몰랐던 사실이었다. 사실 알 기회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최민기의 말을 들어보니 네 알러지는 생각보다 조금 심한 것 같았다. 여행 장소를 바다로 정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근데 진짜 선배가 주는 건 다 좋아할걸요?"
"..."
"아니면 선배만 줄 수 있는 거라던가."
"나만요?"
"네. 선배만."
나만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턱을 괸 채로 곰곰히 생각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거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으니 패스.
무언가를 사서 주는 거는 나 말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니 패스.
최민기가 홀짝거리고 있는 레모네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레몬... 레몬청...
레몬청 말고 자몽으로 청 담가서 줄까?
"민현이 자몽 에이드 좋아하죠?"
"걔 만날 그거만 먹는데."
"..."
근데 왜 우리 카페에서는 딸기 바나나 주스만 먹은걸까...
어쨌든.
"뭐 만들어줄지 대충 생각났어요."
"그럼 선배."
"네?"
"부탁 하나만..."
"뭔데요?"
"저희 엄마 옷 하나 만들어드리려고 하는데 선배랑 사이즈 비슷하시거든요. 신체 사이즈 한 번만 재가도 될까요?"
"...네?"
"오늘 상담 값은 이걸로 퉁치겠습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민기는 얼른 주머니에서 줄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내 앞에서 꼬물꼬물 줄자를 쭉쭉 꺼내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굉장히 철두철미한 친구였네... 라고.
-
네가 자몽에이드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랑 다른 카페에 갈 때면 항상 자몽에이드를 주문하곤 했으니까.
딸기 바나나 주스를 가끔 주문하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먹는 건 자몽에이드였다.
마트에서 자몽 몇 개를 골라왔다.
나도 자몽 꽤 좋아하긴 하는데. 청을 담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카페 알바 하면서 몇 번 담가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몽청 말고 너에게 또 줄까 싶은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면 내가 너에게 편지나 그런 글을 써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문예창작과지만 진짜 내가 써야겠다 라는 글 보다는 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글을 쓴 경우가 많다보니 그럴 수 밖에.
노트북을 켜고 한글 파일을 열었다.
하얀 바탕 위로 까만 커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키보드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타닥거리며 자판이 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주변에는 새하얀 벽돌이 쌓여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 때마다 여자는 느릿한 손길로 벽돌을 쌓아올렸다.]
네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책 이라는 매개체 덕분에 너와 내가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니 내게도 나름 남다른 의미가 있는 부분이었다.
생각보다 글이 술술 잘 써내려가졌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서 그런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건 처음이었다.
하얀 바탕 화면에 까만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졌다.
"뭐해?"
"선물."
"남친?"
"응."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곽아론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언젠가 네가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곽아론에게 조금 질투가 난다고.
하여튼 바보라니까. 어릴 때부터 볼 꼴 안볼 꼴 다 보고 자란 곽아론하고 너하고 같을 리가 있나.
그렇다고 해서 네가 곽아론 보다 나에게 못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솔직히 나는 너한테 그렇게까지 볼 꼴 안볼 꼴 다 보여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가족 과 연인 의 차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물론 연인이 가족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다른 의미잖아.
"얼마 후면 생일이라고 했지?"
"응."
"남친님 좋겠네."
"이런 걸로 선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싫다하면 뭐. 다른 거 주면 되는 거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은 몸이 뻐근했다. 장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자판만 두드려서 그런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오늘 너는 네 하숙집 식구들과 외식을 하러 간다고 했었다.
최민기는 그 외식을 나가기 전에 나를 잠시 만난 것이었고. 전화 해도 괜찮으려나?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즈음이면 밥은 다 먹었겠네. 네가 술마시는 건 별로 안좋아하니 술은 안마시겠지.
익숙하게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에는 너에게 오는 전화를 받는 것이 익숙했는데 어느새 내가 전화를 거는 게 어색하지 않아졌다.
너를 만나고 이런 저런 변화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걸 일일히 나열하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다는 것도 신기하고.
(여보세요?)
"밥 먹고 있어?"
그래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항상 느낌이 색달랐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똑같은 거이기는 한데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거. 내게 네 목소리는 그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
"아직까지 먹고 있는 거야?"
(늦게 시작했거든요.)
"술은?"
(마실 줄 아는 애가 민기밖에 없어요.)
"너 도대체 주량이 얼마인거야..."
(비밀이에요. 비밀. '최민기 존나 잘생겼다!!!!!!!!!!!!!!!!!!!!!!!!!!!!!!!!!!!!!!' 아. 또 저러네...)
"누구야?"
(있어요. 민기가 만날 하는 짓 중 하나.)
"헤에..."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아닌 듯 싶었다. 누구긴 누구겠어. 네 친구 최민기지.
(갑자기 왜 전화했어요? 나 보고싶어서?)
"왜. 나는 먼저 전화하면 안돼?"
(너무 좋아서 그러죠.)
"오글거리는 말은 하지말고."
(진짠데.)
이래서 문제라는 거야.
다 좋다고 하면 네가 뭘 싫어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턱을 올렸다. 손가락을 까닥까닥 움직이며 팔걸이를 탁탁 두드렸다.
"나 네 생일 선물 샀어."
(선물이요? 안줘도 되는데.)
"얼마전에 향 되게 좋은 거 찾았거든. 목욕소금."
(목욕 소금이요?)
"응. 반신욕할 때 쓰는 거. 너 복숭아 향 같은 거 좋아하잖아. 입욕제인데 향도 좋고 그래서 너도 좋아할 거 같아서."
(...)
"민현아?"
(나 복숭아 향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선배 진짜 최고다.)
...
호구 맞네. 나쁜 놈.
"황민현."
(네?)
"너 거짓말 할래?"
(...)
"너 알러지 있다며. 근데 고맙다는 말이 나와?"
(그래서 선배가 나 준다고 산 거니까...)
"망할 놈아."
(죄송합니다.)
"됐어. 입욕제 아니야. 다른 거야."
(뭔데요?)
"안알려줘."
내가 좋아하는 거일 거에요. 선배가 주는 거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오글거리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끝을 살짝 오므렸다.
내가 주는 거면 다 좋다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사실 별로였다.
네가 이러는 게 나 한정이라는 건 네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싫은 건 싫은 거잖아.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다정한 건 좋은데 네 몸은 챙겨가면서 다정해야지.
"그래서 너 주량이 도대체 얼마야?"
(안알려줄거라니까... '소주 두 모금이요!!!!!!!!!!!!!!!!!!!!!!!' 강동호!)
"... 알쓰였네."
(놀리지마요.)
"뭐 그런 걸로 놀려."
(...)
"알쓰 황민현 선생."
(선배!)
그래서 이번에는 네가 진심으로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아무래도 내가 마음을 담아 준비하는 너의 첫 생일 선물이니까.
-
〈암호닉>
짱요 / 응 / 뿜뿜이 / 책상이 / 너우리 / 0713 / 모기 / 아몬드 / 황제님충성충성 / 책민현 / 샘봄 / 붐바스틱 / 아가베시럽 / 다녜리
수 지 / 과자 / 민현29 / 윙팤카 / 0846 / 슬 / 융융 / 댕댕민현 / 애정 / 숨 / 뿌얌 / 하핫
레인보우샤벳 / 사이다 / 쟈몽 / 하나 / 짐느러미 / 사용불가 / 3536 / 루케테 / 마카롱 / 돼지바
현 / 나라빛 / 나침반 / 윙크장인 / 사용불가 / 집요정 / 배코 / 슈팅 / 월이 /valeny / 옵티머스 / 초록보꾸 / 장뚜 / 챰새
다별 / 민꾸꾸 / 루케테 / 마카롱 / 코알루 / 캬마 / 하람 / 03330 / 99 / 파이 / 센터 / 홍시 / 필소 / 파요 / 0303
오랜만에 망고 출연했습니다.
(박수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