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A
○○그룹 인턴채용 안내. 의미없는 대학 졸업 후 취업난을 겪고 있던 참이라 당연하다는 듯 이력서를 넣었다. 별 생각없이 넣었던 볼품없는 이력서는 덜컥 1차 서류 심사 합격을 가져다 주었다. 다른 취준생들에겐 미안하지만 정말 별 생각없이 넣었던 거라 1차 합격은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벌써 최종합격이라도 된 마냥 동기들은 알코올 가득 담긴 술잔을 내 앞에 떠밀어 주었다. 이럴때면 마냥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김여주! 너 붙으면 한턱 쏘는 거다."
"미친."
"이 오빠는 오랜만에 그거 먹고싶다, 꽃등심"
"저게 축하해줘도 모자를 판에 친구 등골이나 빼 먹으려고."
다니엘은 대학 졸업 한 아직까지도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워낙 잘 웃고 다녀서 그런건지 붙임성이 좋은 친구여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렸다. 그 중 기억나는 거 하나는 신입생들끼리는 물론 선배들의 얼굴도 처음보는 오티. 같은 신입생에게도 우물쭈물 존댓말을 쓰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그런 낯가리는 어린 양에게 다가가 친구하자며 구원해줬다는 거? 그 어린 양은 애석하게도 나였다는 게 제일 슬픈 사실이라는 것이다. 다니엘은 술 취하면 늘 나에게 친구해준 자신을 고마워 하라며 들먹이곤 했다. 학기 초 까진 덕분에 잘지냈던 거 같은데 이렇게 친구 돈만 빼먹을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괜히 한 거 같기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붙임성 좋은데 친해지면 장난 많은 오빠병걸린 애.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존X 많다.
"여주 취업 성공기원하면서 다들 건배 한 잔 하자. 다음 술자리는 여주가 쏘는 걸로."
"저건 입만 살아서. 알겠으니까 가격 마지노선 넘으면 그때부터 너네들 택시잡아서 집으로 다 넘기는 줄 알아."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A
면접 당일,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대학교 면접 볼때 보다 더 떨렸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안절부절한 게 남이봐도 티가 났다. 가만히 있으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 같으니까 그냥 옷이라도 단정히 하면서 긴장을 풀고 싶었던 거고. 그렇게 식은땀만 흘리며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쯤 토요일에 연장근무를 하러 나온 사원들이 저 멀리서 보였다. 면접대기실과 가까워지더니 순수하게 그들이 궁금해졌던 나는 그들 목에 매달려 있었던 사원증에 관심이 쏠렸다. 마케팅부 팀장. 내가 지원한 부서라 눈이 번쩍 커졌다. 나도 저 사원증 매고 싶다라는 거? 그리고 팀장님은 키가 컸다는 거 밖에 기억이 안 났다.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면접이라는 단어에 부딪혀있는 내게 이 회사 팀장님은 잘생겼는지 몸이 좋은지 그건 눈에 안 들어와서. 벌써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거 보면 김칫국 마신게 확실하다.
[명단에 귀하의 이름이 존재합니다.] 작은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정보를 입력하고 새로고침을 알리는 하얀 창. 그리고 나타난 합격사이트. 미친. 아, 욕좀 줄여야 하는데 이건 욕할만 했다.
내 면접순서가 되었고 첫인상이 중요하다기에 떨리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거기까진 퍼펙트, 좋았다. 진지하게 면접에 임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날라왔는지 왠 파리가 시끄럽게 날아다녔다. 안그래도 떨려서 집중도 못 하겠는데 파리크리티컬... 그러다 파리가 내 코에 앉았다.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젖혔고 그 표정이 웃겼는지 오른쪽 면접관이 웃음을 참는 게 보였다. 그리고 뇌리에 오직 한 가지 감정이 들었다. 아, 망했다.
그래서 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다. 그래도 괜히 하면서 명단을 확인했는데 아, 애들한테 술 사러 가야겠다. 웃으며 옆에 있던 지갑을 바라봤다. 내 돈...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A
8:00 AM. 9시까지 출근해야되는데 원래 백수였던 걸 티내는 마냥 늦잠을 자버렸다. 시계를 확인하자마 허둥지둥 나갈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 첫날은 좀 여유롭게 일어나서 예쁘게 하고 첫출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지각만 안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만 줄 곧 했다.
회사 로비에 들어가 휴대폰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59분. 엘리베이터를 타면 백퍼센트 지각할 게 뻔해서 아직 길도 모르는 회사 비상계단은 어떻게 찾았는지 다짜고짜 뛰기 시작했다.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우리부서 층수가 높았다. 5층... 그냥 엘리베이터 탈 걸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헥헥 가빠른 숨을 고르며 도착했는데 못 마땅한 표정으로 누군가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인턴? 첫날부터 늦으면 많이 곤란한데."
눈을 돌려 벽에 붙어있던 시계를 확인하니 9시 1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잘해야 하는데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 무슨 말을 한거지. 뜬금없이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왜 꺼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난 진짜 미친게 틀림없다.
"이미지 회복하려면 좀 걸리겠어요, 인턴. 저는 그쪽이 일하게 된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팀장님은 아까 그 못 마땅한 표정으로 한마디 일침을 날리더니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죄송한 마음에 잘 하지도 않는 배꼽인사를 하며 잘부탁드린다고 말을 건냈다. 그러자 팀장님은 아무 말 없이 인턴자리로 나를 안내해주었고 자리로 돌아가기전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부서에 인턴이 필요했는데 열심히 해봅시다."
커피타러 가야하나, 탕비실 어디인지 모르는데. 이건 간접적으로 심부름을 시키겠다는 말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