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B
토요일. 직장인에게 꿈만같은 주말이라서 쉬려고 했더니만 연장근무라는 명목하에 토요일에 오전근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거 회사 욕해도 되는건가. 그것도 각 부서 팀장들만 출근해서 이번 프로젝트 사업 준비하라고.
마침 인턴채용 하는 날이라길래 초심으로 돌아갈겸 그 분위기도 느끼고 싶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에 도착했다. 초심을 되찾는다는 핑계를 해도 몸은 안 따라주는 거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빨리 집 가서 맥주나 한 잔하고 싶다. 라고 느낄 때 쯤 저 멀리서 성우가 보였다.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출근하는 게 꼭 나를 대변해주는 듯 한. 얼굴에 에 '오늘 연장근무 하기 싫어요.'라고 써져있다. 팀장들 눈에만 선하게 보이는 성우 이마에 놓인 글씨... 안타깝다.
"황.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은 무슨. 어이구, 경영관리부 팀장님. 네 얼굴에서 퇴근하고 싶다는 거 다 보인다."
"...티 많이 나?"
성우의 얼굴을 딱 보니까 금요일 밤을 달리고 온 모양이었다. 옹성우는 그랬다. 근무 전 날엔 음주하지 않는 철칙을 가지고 있는 본인과는 달리 그러한 분위기를 즐기는 편. 그래도 회사 내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자 점심을 같이 먹는 사이였다. 저거 상태를 보니 점심에 해장하러 가자고 할 게 뻔할 뻔자이다.
아무 생각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성우와 내려가다 서류 정리때문에 2층에 잠시 들렸다. 아, 오늘 인턴채용있는 날이구나. 긴장한 모습이 보이는 여러 사람이 달달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그냥 예전의 자신을 보는 거 같아서. 뭣도 모르고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개고생까지 거치고 나니 팀장까지 진급한 오늘날 내 시점에선 귀여운게 당연했다. 그러다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던 한 여성분이 제 사원증을 빤히 바라보다 토끼눈을 뜨더니 작게 감탄하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선 보통 '내가 이런 존재였던가' 하며 우쭐해하지 않을까. 근데 나는 그보다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었다. 팀장이라는 단어를 보고 놀랐겠지. 그래도 내심 응원해 주고 싶었다. 다음엔 회사에서 보면 좋겠다라는 가벼운 응원정도?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B
새로 뽑힌 인턴이 첫 출근 하는 날. 괜히 내가 설레는 마음에 오랜만에 일찍 눈이 떠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8:50AM. 10분 남았는데도 인턴이 출근하지 않는다.
8:55AM. 첫날에 지각하면 곤란한데.
9:01AM. 늦잠을 잔 모양인지 부시시한 머리로 인턴이 출근을 했다. 안타까웠지만 늦잠은 늦잠이고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 잘못이었다. 첫날부터 그러면 굽히려던 내 태도가 돌변하지 않겠는가 싶고. 그래서 그런지 좋지 못한 표정이였나보다.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편 인지라 좋게 보이지 않았다, 새 인턴이. 제 모습에 많이 당황할 수 있겠지만 이래야만 우리부서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인턴이라고 봐준다면 그건 좀.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식은땀 흘리는 것도 그렇고 안절부절하는 모습도 그렇고... 인턴채용 면접 당일 날 사원증 빤히 바라보던. 일치했다, 여기서 보니까 뭔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이런 이미지인가.
아직은 회사가 많이 어색한지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았다. 계속 지켜보다간 제 할 일을 못 할 거 같아 모니터에 초점을 맞추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업계획보고서.hwp 를 클릭하자 누가 팀장실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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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 할 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각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건지 많이 무거운 분위기에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주눅이 들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일찍 좀 일어나라고 알람 몇개든 맞출 수 있는데. 아침부터 일에 몰두해 있던 옆 사원분에게 작게 물었다. 탕비실이 어디냐고. 여기 회사사람은 다들 왜 이렇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예민한 건지 찡그린 얼굴로 탕비실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괜히 들어왔나 싶었다. 역시 백수가 최고. 탕비실에 들어가 믹스커피 한 잔을 탔다. 이런게 인턴의 삶아닌가. 지각을 만회하기 위해서 하는 짓... 맞다. 김이 나는 믹스커피를 조심히 들고서 팀장실 앞에 섰다. [마케팅부서 황민현팀장] 이라는 글자가 박힌 명패가 달려있는 문을 노크했다.
"누구시죠?"
"새로 들어온 인턴 김여주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예."
웃으며 믹스커피를 팀장님 책상 위에 두었다.
"?"
"아, 이런게 인턴이 하는 일이 잖아요."
내 이마로 식은땀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저게 팀장이 뭐라고 달달 떨어, 여주야.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B
김이 나는 믹스커피를 들고 새로 들어온 인턴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믹스커피를 제 앞 책상에 내려 놓았다. ...나 커피 안 먹는데. 괜히 말하면 분위기가 상할 것 같아 조용히 있었다. 앞으로 인턴이 들고오는 커피를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들었다. 버리긴 아깝고 거절하자니 그건 미안한데. 그나저나 늘상 내게 보여지는 인턴의 이미지는 우물쭈물해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신인 아이돌 같았다. 비유가 이상할 지 몰라도 그랬다. 지금 딱 생각나는 건 그 뿐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눈치보는 것. 귀여웠다. 어린 아이 보는 느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거다. 누군가에게 장난쳤을때 반응이 재밌어서 계속 놀리고 싶은 사람.
+)
분량 조절 실패... 죄송합니다...
제가봐도 너무했네요... 면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