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D
"김여주 돈 더 많이 벌어서 다음엔 꽃등심 각?"
"돼지고기에 만족해라. 다음에 너 빼고 만나기 전에."
"지지배가 괜히 튕기기는."
"나 스시 먹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삼겹살 먹으러 왔더니 고마운 줄 모르고."
저 입만 살아서 꽃등심만 외치는 오빠병 걸린 애. 오래 두다간 지갑 통장에 잉크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무섭다. 그러니까 애인이 없지 매일 친구 돈 터니까 소개도 안 시켜주는 거 아냐. 그래도 가끔은 참 좋은 친구인데, 아쉽게도 매우 가끔인게 함정이다. 저 함정은 오늘 얼마나 먹을지도 중요한 논란이다. 정말 진지하게 지갑이 거덜나게 생겼으니까. 인턴이라고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마케팅부서 인턴은 더욱 답이 없다. 마케팅부서 인턴은 왜 나일까. 난 왜 경영관리부 인턴이 아닌걸까. 취직한지 5일만에 외쳐본다. 팀장 망해라. 그러다 조용히 옆에서 잘익은 삼겹살 두 점을 상추에 올려 쌈을 야무지게 싸고 있던 김재환이 묻는다.
"넌 그런 거 없냐? 막 상사들이 구박하고 그런 거."
"말도 마셈. 나 오늘 사직서 양식 찾고 있었다니까. 심부름 존나 시킨다고."
"내가 볼 땐 말이야 네 상사가 더 불쌍함. 무려 일주일에 다섯 번을 네 얼굴을 봐야되잖아. 불쌍해..."
"그 삼겹살 내려 놔라. 오늘 내가 사는 건데."
전생에 뭘 잘못했나 다들 오늘 나에게 똥을 주고 난리다. 고기는 먹고 싶은데 나랑 친구하기는 싫은거지? 에라이.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D
직장인에게 있어 토요일과 일요일 즉, 주말이란 것은 굳이 말로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들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아닐까. 그런 황금같은 주말을 날려버렸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자몽에이드를 보면 그녀가 생각났고, 책상위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A4용지를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가봐도 인정할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민현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터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뒤로 이성과 멀어진 그였다. 민현의 회사 대부분의 여직원들 모두 마음 속에 그를 생각하고 있을 만큼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팀장이란 단어는 매우 잘 어울렸다.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 궃은 일에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는 사람. 그게 황민현이었고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던지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던 것이였다. 그러다 문득 민현의 주말을 빼앗아 간 사람이 김여주였다.
모두의 호감이었던 황민현이 김여주에게만 힘들고 박하게 굴었던 것. 아마 다른 직원들이 보면 굉장히 의아해할만한 행동일 것이다. 그럴리없다며 손사래 치는 사람이 대부분일테고. 그렇기에 민현의 마음은 순수하지만 표현이 서툴렀던 것이었다. 주말내내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던 민현이었다.
"점심 누구랑 먹어요? 없으면 나랑 같이 먹죠."
"...네? 아, 네..."
"왜이렇게 말을 흐려요. 저번에 자몽에이드 사준거 갚으려고 그런건데. 점심시간되면 식당가지 말고 자리에 남아있어요."
잘한걸까. 마음 속으로 몇 번을 외쳤다. 말하고 생각해보니까 너무 성의 없던 거 같기도 하고 내맘대로 잡아버린 약속같아 조금 찝찝하기도 하다. 왜그랬어, 민현아라고 자책해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도 제가 잡은 약속에 순응해주는 여주가 고맙다. 이제 메뉴는 어떡하지라는 의문이 남아버렸지만 말이다. 혹시나 잘못선택했다가 싫어하는 음식이라던지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음식은 아닐지 깊게 생각하다보니 끝이 없었다. 파스타? 파스타 먹기엔 너무 날이 밝지 않나. 백반? 혹시나 싫어하면 어쩌지. 백반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지만 여주는 싫어할 수도 있는거고. 아아, 머리아프다.
마케팅부서 팀장 황민현입니다 D
그래도 일주일 근무했다고 조금 익숙해져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전근무는 빨리 지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자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팀장이 씩 웃으면서 나온다. 같이 먹기로 했다는 걸 드디어 자각했다. 좀 많이 의아했다. 갑자기 왜?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자몽에이드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며 함께 먹자는데 영 찝찝한게 아니다. 이번주엔 더 부려먹으려고 밑밥치는게 아닐까라고 예상해본다. 예상이 아니라 밑밥치는게 맞다. 백퍼센트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래도 이왕 얻어먹는거 복수라도 하는 듯 많이 먹을 생각이다. 나 부려먹은 거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마음이다.
근데 점심먹으러 가자는 사람이 차키는 왜 들고 나오는거지.
"주차장으로 내려갈까요? 식당을 차타고 가야할 것 같아서."
뭘 먹으려고 차타고 까지 이동하는걸까. 다른사람이 아니고 팀장이 하는 행동이라 의심병이 들었다. 이래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거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내내 단둘이 있으니 어색한 공기가 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키를 누르더니 삑- 하며 팀장의 구두처럼 먼지하나 없는 화이트 색의 차가 반응했다. 팀장이라는 걸 뽐내는 듯 꽤 비싼 차 같아 보였다. 입을 동그랗게 말아 작게 감탄하고 있을 때 쯤 차에 타라며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 이렇게 회사에서도 매너있었으면 내가 자몽에이드 매일 가져다 주겠지. 애도 아니고 자몽에이드가 뭐람.
조수석에 저를 태우더니 긴 다리로 성큼성큼 반대편으로 걸어가 운전석에 타더니 곧장 안전벨트를 매었다. 마치 차에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매는 게 몸에 벤 사람 처럼 칼 같이.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 쯤 고개를 돌리더니 안전벨트를 매라며 웃었다. 그래도 안전은 생각해주는 거 같아 양심은 있구나 생각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 위를 가볍게 달렸다. 사실 외간남자의 차에 그것도 조수석에 타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어색했다. 많이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다는 게 좀 낯간지러웠다고 해야하나 어색한 기운이 매우 컸던 거 같다. 혹시나 물어보면 맑은 하늘에 날씨가 좋다는 핑계를 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어색한 기운에 괜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어색한 기운을 깨고 싶었는지 신호가 걸리자 팀장의 입이 열렸다.
"회사는 어때요? 일은 많이 힘드나."
"...당연히 좋죠. 일은 전혀 안 힘든걸요."
그쪽 때문에 힘들어요라고 말하려는 게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했다간 죽을 것을 알기에 참고 참았다. 내 언젠가는 퇴직할 때 다 말해야지. 너무 힘들었다고. 제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신호가 바뀌더니 먼지하나 없는 새하얀 차가 다시 움직였다. 그러다 왠 일식집 앞에서 차를 멈췄다. 소름, 저번주부터 스시먹고 싶다고 친구들한테 말하고 다녔는데. 오늘 날 잡고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앉더니 메뉴판을 제 앞으로 내주었다.
"먹고 싶은 거 골라요. 이왕 먹는 거 좋아하는 거 먹어야지."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가장 아래 쓰여 있는 특별 코스요리A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래 눈에 띄는 건 띄는 거고 얻어 먹는 입장인데 그럴 수 없었다. 가격이 일식집 중에서도 비싼 편이었는지 전반적으로 모든게 값이 나가 선뜻 고를 수 없었다.
"그거... 코스요리 먹고 싶어요? 시켜요, 상관없는데."
뭐 꿰뚫어 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척척 잘 아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이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걸 어떻게 시켜요... 괜찮다며 런치초밥세트를 검지로 가르켰다. 뭐가 재밌는지 실실 웃다 종업원을 부르더니 팀장은 특별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아니, 저 진짜 괜찮아요! 팀장님 무리 안 하셔도 되는데."
"자몽에이드 값는 거라니까. 나 빚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망했다. 앞으로 이 코스요리를 대신해서 나는 팀장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이제 커피랑 자몽에이드 둘 다 시키는 게 아닐까 부터 시작해서 디저트도 사오라고 시키는 거면 어쩌나, 시도때도 없이 복합기에 가서 복사해오라고 시키지 않을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뒤덮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코스요리는 먹고 싶은데 팀장의 노예는 되기 싫고. 아침을 못 먹어서 배고픈 상태이기에 어쩔 수 없이 코스요리를 먹어야했다. 아침을 못 먹은 게 핑계는 아니다. 코스요리를 먹는 것에 대한 일개 인턴의 변명일 뿐.
스시부터 시작해서 규동, 라멘 그리고 그 비싸다는 성게알까지 말하기에 입 아플정도로 뭐가 많이 나왔다. 일단 먹고보자라는 마음에 젓가락을 들었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팀장은 가만히 있었다.
+) 어제 오고 싶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