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ignal
하트 시그널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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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그렇게 뒤적거려?"
"그때, 옷이요."
언제 만날지 몰라 불시에 들고 다녔던 그의 옷가지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나의 모습이 꽤 거슬렸던 모양인지 세모눈으로 내 쪽을 흘겨보았다.
그에 아랑곳 않고 가방 깊숙이 손을 넣어 연신 휘적거리기 바빴지만 잡히는 것이라곤 문제집 따위에 종이들뿐이었다. 얼마 전, 꾀죄죄한 가방을 세탁하면서 빼어뒀던 것 같기도 하고.
"야, 넘어지겠다."
"...."
"나중에 줘도 돼, 나중에."
도대체 나중이란 게 언제인데요.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온 한마디였지만,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었다. 옷을 찾느라 손잡이에서 손을 뗀 바람에,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흔들리는 버스와 같이 흔들리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많이 위태로웠던 것 같다.
그가 나의 손등께를 살포시 잡아올려 그대로 빈 손잡이 위에 올려뒀고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올렸다. 갑작스레 전해져오는 온기에 놀라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 붕어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남은 손잡이가 없네."
"네?"
"안전하게 가자."
__
버스에서 내리려는 그의 옷깃을 무턱대고 잡은 후, 처음 보았던 골목으로 나오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나의 말에 너스레웃음을 지으며 알았다는 말과 함께 내린 그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까, 서로 이름도 모르는구나.
마침내, 잡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저었다. 알 필요가 있나. 고작 두 번 본 사인데. 그것도 자의가 아닌 우연으로.
"성이름, 누가 너 부르는데."
"....."
하지만, 그마저 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닌 게, 그 남자의 잔상이 머릿속에 계속 떠다니더라. 첫 만남 때 매고 있던 기타 가방, 아까 전, 버스에서 맞닿은 손까지. 같은 반 아이의 부름에도 부동의 자세로 그를 떠올릴 지경에 이르렀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성이름!"
"아, 어... 왜?"
"앞문에서 누가 너 찾는다고."
한 없이 차가운 시선과 싸늘한 말투였다.
학교에서 좋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된 탓에 아이들의 시선에서 내가 호의롭게 보일 리가 없었다. 뭐, 돈 많은 건 물론이고 학업 성적까지 우월하면 남들 눈엔 싸가지 없게 보이기야 하겠지. 또, 내 성격 또한 호의로울 생각조차 없었고.
의자를 세차게 끌고 일어날 뿐이었다.
"....."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제 곁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낀 건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하나하나 다 꿰뚫고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그것이 유선호의 습관 중 하나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굳어진 표정 사이로 보이는 지금 선호의 기분까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나, 이틀 후에 아버지 올라오신대."
".... 생각보다 되게 빨리 오시네."
"......"
"유선호."
결연하게 뱉어낸 그의 이름 석 자에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흐트러지지 마.' 그와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한없이 높은 벽과 비슷했으니 당연지사, 선호는 불안함에 떨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주는 압박감은 거의 선호의 몫이었기 때문에.
유선호와 나는 남매 사이였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남매. 사람들은 우리를 이복 남매, 쉽게 말하면 배다른 남매라고 칭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남매보다 더 애틋한 사이를 유지해낼 수 있었던 건 나의 날카로운 성격도 누그러트릴 만큼 생각보다 매우 온순하고 여린 선호의 공이 컸다. 제 누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도 그는 많이 서툴렀을뿐더러, 이미 많이 무너져있었다.
아버지의 억압, 장남의 사명감, 학업 성적 문제가 모두 결합된 선호의 복잡한 속내가 나에게까지 느껴져 그저 그가 안쓰러웠다. 그래도, 내가 누나인데 많이 미안하네.
"오늘 집 들렀다가 바로 갈 곳 있어서. 먼저 밥 먹고 있어."
"늦게 와?"
"10시 이내로 갈게."
".... 일찍 와, 누나."
복잡하다.
Heart Signal
의자에 걸려있던 그의 남방을 곧게 접어 가방에 넣은 후, 발걸음을 빨리했다. 따로 만나는 시간을 정하진 않았지만 그 남자 또한 암묵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 골목에서 마주했던 시간, 9시.
집과 상가 골목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남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지 골목이 휑했다. 강렬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제외하면.
흘러내린 금색 실테 안경을 올려 고정시키고는 담배라도 피우며 기다리자 싶어 치마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불을 붙이자 무서운 속도로 타들어가는 담배를 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선호가 싫어할 텐데.
"와, 지금까지 모범생 코스프레 한 거야?"
"...."
"너 성이름 맞지?"
익숙하기도, 별로 듣고 싶지 않았기도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한 손엔 묵직해 보이는 종이 쇼핑백을 들고, 반대편 손의 검지 손가락으로는 나를 가리키며 삿대질했다.
학기 초에 빨빨거리며 반을 어수선하게 만들어, 내가 한 번 핀잔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아이에게 이런 모습을 들켜버린 것은 딱히 반갑지 않은 일이었고,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벌거벗은 느낌,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잘 보이려고 빌빌 길 땐 언제고."
"무슨 상관인데."
"너 되게 의외다."
"괜한 시간 소비하지 말고 그냥 가지, 좀."
"모범생의 이중생활, 뭐 그런 건가?"
아이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자신의 팔을 교차시켜 쓸어내렸고, 이미 내 미간은 될 대로 좁혀졌다. 피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내팽개친 후, 발로 힘껏 지져껐더니 비꼬는 식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진짜 같잖게.
"알고 보니까, 막 안경도 도수 없는 거 아니야?"
".... 아!"
"눈은 앵간히 나쁜가 봐? 존나 어지럽네."
뜬금 없이 나의 시력을 논하며 무작정 안경을 채가는 아이였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손톱에 긁힌 건지 눈 밑 주변이 아려왔다. 손톱은 또 더럽게 긴가 봐.
부글 부글 속이 끓었지만 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봤자 재는 남자였고, 난 여자였으니까.
"야, 장난이야."
"....."
"장난인데 그렇게 째려볼 필요까진 없잖아, 표정 좀 풀어-"
내 이성을 터뜨리기에 충분한 한마디였다.
그럼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어, 고개를 떨구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생길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도 잠시, 아이가 쥐고 있던 쇼핑백을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채갔고 그것을 골목 벽, 쓰레기 더미 쪽에 내동댕이 쳤다. 도대체 쇼핑백에 뭐가 들은 거야. 보통 큰 소리가 아니었다. 무슨 상황인지,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대충 파악하기 위해서 힘주어 고개를 들었다.
".... 장난인데,"
"....."
"웃어봐."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남자였다.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죠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 암호닉은 다음 편부터 꼭 기재해두도록 하겠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