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높은 너와
자존감이 낮은 나의
상관관계
02
숨이 막혔다. 차라리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절이 더 편하지 않을까, 헛된 고민도 해보았다. 사실 나는 끔찍한 악몽을 꾼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마치 악몽이 되살아 나는 것만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늘 네 앞에만 서면 그랬다.
지금 네 표정을 볼 수가 없다. 내가 감히 너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도 없었고 실상 마주할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네 눈은 보나마나 한심한 존재를 내려다 보고 있을 게 뻔했다.
아직은 어리기만 한 열일곱의 그 날 아침은, 소나기가 우릴 삼키며 그렇게 막을 내렸다.
떨렸다. 너는 존재만으로도 나의 나약함을 건들였다. 평소에도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은 시도때도 없었다. 하지만 너를 보면 단순히 자존감이 낮아지기만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미치도록 괴롭고 답답해.
난 이 아이가 왜 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지 알 길이 없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단순히 내 이름이 목적이 아니란 사실은 다들 알 것이다. 도대체 왜 나에게 기피하고 싶은 감정만을 선물하는가.
뽈뽈 거리며 따라오는 너를 떼놓으려 수없이 비탈길을 걷고 방향을 틀었다. 뻔하게 실패한 모든 전략에 내 인상은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이런 내 속을 알긴 하는 지 한결 가벼운 발자국으로 내 뒤를 따르는 저 이가 이젠 점차 무서워질 참이었다.
" 이름이 무슨 소용이야. "
아뿔싸, 결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어 버렸다. 좋게 타이르면 될 것을 괜히 건들여 화만 부른 꼴이다. 경거망동, 이럴 때 제 격인 말이었던가.
" 그게 뭐가 중요해. "
눈에 띄게 네 표정이 굳었다. 널 떼내려던 건 맞지만 화나게 할 의도는 분명 아니었는데. 지금 너에게 얘기해도 믿기가 힘들겠지만 정말 아니었는데 말이다.
" 내가 네 이름이 알고 싶다는데. "
아 확실히 잘못 걸렸다.
첫 결석이다. 초등학교 3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년 하고 8개월. 통 틀어서 7년 8개월의 첫 결석이었다. 엄청나게 허무하고 아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저 편했고 일탈이 계속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전부였다.
그 아이는 학교로 돌아갔을까. 문득 궁금해지더라. 웃을 때는 세상 다정하더니 무섭게 왜 그랬나 몰라. 다시 생각해도 짙게 깔린 표정이 무서워 팔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내가 못생겨서 그런가.
자존감 낮은 내게 매우 어울릴 법한 상상은 뗄 수 없는 상표였다.
우울해지려는 찰나에 폰이 시끄럽게 울며 감정을 호소했다. 아차, 아직도 기본 벨소리다. 매번 바꿔야지 생각만 하다 최신 유행곡을 몰라 그만두기 일쑤였다.
" 아 네, 선생님. "
젊은 담임 선생님의 카랑한 음성은 소리 세기를 높이지 않아도 충분힌 존재감을 뽐냈다.
_ 어 그래 여주야, 몸은 괜찮고? _
그녀는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인지 말을 빠르게 해댔다. 퍼질러져 있던 내가 자세를 고칠 만큼이나 덩달아 급해지는 내 마음은 모르는 눈치였다.
" 네. 아 음 약 먹고 쉬었더니 한결 나아졌어요. "
약은 커녕 물 한 모금 마시지도 않았으면서.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거짓말이 나는 아직도 익숙치 않다.
_ 그래. 괜찮다니까 다행이네. _
_ 아 참, 여주야 아침이 다니엘 만났다며? 다니엘이 네 걱정 많이 하더라. _
다니엘, 난 그 얘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지만 누군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에 만난 이는 그 아이가 전부였으니깐.
" 제 걱정요? "
_ 너를 어찌 안 건지, 여주 너 아파 보여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오느라 늦었다더라고. _
_ 내일은 학교 올 거지? 다니엘이 여주 너 빨리 보고 싶다더라. _
고작 몇 마디가 주름 하나 없던 이불이 바싹 움켜쥐게 만들기 충분했다.
인사말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