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카, 소년기
w.뤼미에르
경수야. 두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어느 쪽에 대답을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결국엔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고개를 들고 창 밖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듯 하늘은 먹구름을 잔뜩 끼고 있었다. 우산 안 챙겨왔는데. 다시 한 번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경수. 비 쏟아지기 전에 얼른 집에 가야겠단 생각에 가방을 서둘러 챙겼다. 아니, 그럴싸한 핑계로 그들의 부름에서 빨리 도망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얼른 가야겠다. 그들은 가방을 챙기는 내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불러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할지는 짐작이 갔다. 분명 그들은 불가능한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 나를 옥죄어 오는 것만 같다.
- 백, 현아, 종인아 내일 봐….
- …….
내가 교실 밖으로 나가서 너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마. 제발. 맘 속에서 피어나는 간절한 바람을 그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낡은 나무 미닫이 문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발자국 앞으로 뻗었을 때 내 바람은 깨져 공중으로 흩어졌다.
- 우리 널 좋아해.
- 그리고 사랑해.
- …….
닥쳐, 제발. 열아홉, 그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우리 셋만 시간의 늪에서 빠져나가질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 더 이상 그런 어린 생각 할 때가 아니잖아. 우리 미래를 걱정하고 현실을 직시할 때잖아. 너흰 아직 어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조용히 하기로 했다. 그냥 그렇게 못 들은 척. 그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 내일 보자. 한 마디만 남기고 교실 밖으로 서둘러 뛰듯이 걸어나와 정문까지 정신 없이 뛰었다. 그때까지도 그들의 시선의 올가미가 날 옥죄는 것만 같았다. 몸서리가 쳐진다. 사실 그들보다 어린 건 나일지도 모른다. 겁쟁이 도경수. 그저 펼쳐진 탄탄대로를 걸어가면 되는 걸 굳이 그들과 엮이어 경사 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걸어 가는 게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다. 넌 겁쟁이야, 도경수. 맞아, 난 겁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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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짧ㅂ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