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여름 01
아직 매미가 울어대고, 살이라도 닿으면 짜증이 절로 나는,
그런 한 여름인데 여름방학은 끝나버렸다
아이들은 저마다 불평을 몇 마디씩 늘어놓으며 책상에 축 늘어졌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방학이 끝남에 아쉬워하고 있는데
여름방학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나는 맞장구나 쳐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 오는 것을 너무 사랑하는 그런 모범생은 아니고,
그저 이유는 하나
" 박우진, 머리 색 예쁜 거 봐라 "
뒷자리서 떠들던 남자애들 중 한 명이 앞문으로 들어오는 박우진을 향해 장난을 던졌다
박우진은 웃으며 남자애에게 다가가 너도 만만치 않다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 개학을 기다린 이유는 그저 박우진 때문이었다
어디서나 눈에 띄고, 친구와 어울리기 좋아하고, 잘 놀러 다니는,
학교마다 꼭 한 명씩은 있는, 그런 아이가 박우진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박우진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는 그런 초 여름의 체육시간이었다
" 그래, 계속 아프면 다시 오고 "
" 네, 안녕히 계세요 "
평소에 딱히 생리통이란 게 없었는데 그날은 쿡쿡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보건실을 찾았다
보건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일어난 박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금방 샤워를 한 것처럼 머리카락부터 얼굴까지 흐르는 땀을 보니 아마도 축구를 하다가 온 듯싶었다
서로 잠시 멈칫하다가 그대로 운동장으로 나가려는데 박우진이 말을 걸었다
" 어디 아파? "
" 어? 아.. 그냥.. 좀 "
박우진이 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당황하여 어버버거리다가 대충 대답해주었다
평소에 말 몇 마디 섞어보지도 못한 박우진이 나를 걱정해준다는 것은 당연히 상상도 못해 본 일이었다
박우진은 여전히 걱정이 담긴 얼굴로 나를 살피다가 배에 얹고 있는 찜질팩을 보더니 눈치챈 듯,
'아..' 하고 짧게 내뱉고서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사탕을 하나 건넸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박우진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박우진은 머쓱한 듯이 말했다
" 아까 누가 준 건데 너 아프니까 먹으라고 "
" 어? "
" 아, 레몬맛 안 좋아하나.. "
" 아, 아니! 좋아해! 고마워 "
살짝 기가 죽으려는 표정에 당황하여 얼른 사탕을 받았다
박우진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운동장으로 향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박우진에게 받은 노란 사탕을 까서 입에 톡 넣었다
박우진은 운동장으로 향하는 듯하더니 뒤를 돌아 내 이름을 불렀다
조금 놀라 박우진을 멀뚱히 쳐다보자 박우진은 살짝 뜸을 뜰이더니 입을 열었다
" 아프지 마! "
평소 장난칠 때의 웃음과는 어딘가 조금 다른,
그런 밝고 시원하고 예쁜 그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해주었을 때,
박우진은 순진한 얼굴로 내게 밀려들어왔다
레몬 사탕이 달콤한 향을 풍기며 입안에 녹아들었다
열일곱, 여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