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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1>

 

 


5년 만이었다. 일본에서 켄타 라인을 타고 문어발처럼 세력을 확장하며 곧 빛을 볼 수 있겠다는
내 부푼 희망을 회장은 단칼에 저버리게 하려는 듯 날 찾았다. 마치 내게 그런 건 꿈도 꾸지 말라고,삼회 기업에서 길러진 아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걸 확인사살 해주는 듯했다.





"行かないで"

(가지마.)

 

"すぐ行ってくる"

(금방 다녀올게.)

 


조직원들 중 왼팔인 나를 유난히도 아꼈던 켄타는 내가 다시 한국으로 가는 걸 영 개운치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긴 그러겠지, 켄타 네가 날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이대로 한국에서 눌러 살까 걱정하는 거잖아.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켄타의 손을 잡고 믿으라는 듯 내 가슴께에 가져다 댔다.




"戻ってきよ。"

(다시 돌아올게.)




불안해하는 켄타를 어렵게 안심시켰다. 공항, 내 손을 놓지 못하는 켄타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켄타, 내가 전에 말했던가? 넌 너무 걱정이 많아.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켄타에게 내 모국어로 말을하자 정말 내가 한국으로 떠나는 게 실감이 났는지 한숨을 쉬는 켄타다.







"나중에 봐"








도착하고 연락해, 저 멀리 힘껏 손을 흔드는 켄타를 향해 선글라스를 코끝으로 내려 찡끗 한쪽 눈을 감았다 떴다. 켄타, 걱정 마. 꼭 돌아올게.

 

 

 

 


 * * *


 



"어이구, 이게 누구야?"
"안녕하셨습니까?"


 

 



공항으로 마중 나온 사람을 따라 도착한 곳은 삼회 기업. 나의 집이었던 곳. 하나도 안 변했구나. 이쪽으로, 사람을 따라 10층의 회장실로 들어가자 골프연습을 하고 있던 회장이 나를 반겼다. 오랜만이야, 응? 와하하 웃으며 내 등을 가볍게 토닥인 그는 내게 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아,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온통 화려한 가구들과 값비싼 것만 가득한 이곳, 몇 번을 와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곳이었다.
회장은 못 본 지 5년 만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마에 자글자글 지렁이 같은 주름과 얼핏 보이는 검버섯 그리고 흰머리. 회장님도 세월은 못 이기네요. 별 수 있나? 그런 그의 모습에 마음 한편이 아팠다. 어릴 적 고아인 나를 키워준 건 그였고 그런 회장의 울타리 안에서 자란 건 나였다.






"많이 컸네"








눈물날만큼 다정한 음성이었다.

 


 

 

 

 

 

 

"내가 원망스럽니?"

 

 

 

 

 

 

 

 

 

 


후우, 회장이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내뿜으며 말했다. 무엇이 원망스럽다는 걸까, 날 거두고 지옥이라 불리는 곳에서 날 훈련받게 한 일?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날 무작정 일본으로 보내버린 일?
매케한 담배연기가 내 눈을 아프게 했다.








"... 이번에 기부 또 하셨다면서요?'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포크에 사과를 꽂고 회장에게 건넸다. 내 손에 들린 사과가 꽂힌 포크를 빤히 쳐다보던 회장이 됐다는 듯 손을 휙휙 저었다.











"기업 이미지가 있잖아."





 


회장의 말대로 삼합 기업은 러시아, 일본, 중국, 베트남 등과 거래하는 큰 무역회사 그리고 기부를 많이 하는 기업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 이익만을 추구하는 회사 아니 범죄조직.
대중들은 이 사실이 발각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배신감에 치를 떨까 아니면 원래 그런 줄 알았다며 손가락질을 할까? 하긴, 그런 일은 없지. 정부가 뒤를 봐주는 이상 기업의 정체가 탄로날일은 없으니까.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더러운 삼회 기업의 뒤를 봐주고 있다니. 대한민국 국민들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 거야. 회장에게 거부당한 사과를 입안에 욱여넣었다. 내 앞에 놓인 사과는 먹음직스러웠고 에덴동산의 사과를 떠올리게끔 했다. 아담과 이브가 먹은 사과도 이랬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게 그 사과라면 나는 지금 금단의 열매를 먹고 있는 건가.

 

 

 


"탄소야"
"말씀하세요."
"너 나랑 한 건 할래?"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사과를 관찰하던 내가 확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라고요? 이런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회장은 몸을 뒤로 젖혔다. 크음, 소리를 내며 혀로 입을 축였다. 눈을 감고 있은 채로 그가 검지를 까딱거리자 문 앞에 서있던 남자가 탁상 쪽으로 달려와 회장 앞에 종이 뭉텅이를 내려놓았다. top secret이라고 적힌 겉표지를 넘기자 남자들의 인적 사항이 담긴 서류가 보였다. 낯익은 남자가 보였다. 이 사람…








"김석진?"









맞냐는 듯 회장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회장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었다. 기억하네? 네. 하긴, 같은 팀이었지? 훈련장에서. 네.



 

 

"내가 몇년전에 물건들만 모아서 만든 조직 말이야. 알지?"









네가 들어갈 번 했던 곳이기도 하고 말이야. 후우, 이번엔 허공에 담배연기를 내뿜은 회장이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삼회 그룹에서 탄생하는 조직들은 테스트를 통해 레벨 A부터 E까지 나누어진 뒤 고루고루 섞여져 팀으로 만들어지고 사회로 내보내졌지만 회장이 말하는 물건들은 레벨A인 아이들로만 구성된 조직, BTS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회장의 말처럼 나도 그곳에 들어갈 번 했었지만 이 조직에 여자라는 오점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상부 사람들의 거센 반발로 나는 일본으로 보내졌다.









"네."

"탄소야"







내가 뭐 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고아원에서 떨고 있는 불쌍한 똥개 새끼들을 데려다가 길러주고 먹여주고 훈련도 시키고 아주 잘 길러났어. 어느 정도 예뻐지니 이제 사회로 내보냈지. 그런데 애들이 덩치가 커지다 보니까 언젠가부터 꼬리를 잘 안 흔들어. 가끔 짖기고 하고… 이젠 회장 자리까지 넘보고 있어. 그런데 웃기는 건 자기들은 자기가 개새끼라는 걸 모르는 거야. 개새끼가… 여기서 질문, 이때 주인은 이 개새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말을 끝으로 회장이 눈만 추켜올린 채 나를 쳐다봤다. 표독스러운 눈빛이 그가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

"말해봐"

"……자기들이 한낱 개새끼에 불가하다는 걸 알려줘야죠."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표독스러운 눈빛을 거두고 미소를 짓는 회장이었다. 내 앞으로 종이 뭉텅이를 던져주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페이지를 넘기며 그들의 정보들을 읽기 시작했다.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김남준, 박지민, 김태형, 전정국……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이름이었다.












"……제게 뭘 원하세요."

"..."

"..."

"BTS 조직에 들어가."









거기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제가 스파이가 되라는 말씀이세요? 짝짝, 역시 대단해. 그가 껄껄거리며 손뼉을 쳤다.










"이미 다 말해놨어. 너희들 앞으로 선물이 갈 거라고."

"..."

"너는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회장님."

 

 

 

 

만약 제가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 물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회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 주름은 회장을 더욱 악랄하게 보이게 했다.









"뭐 어떻게 되겠어. 그땐 나는 물론이고 삼회 기업도 모두 다"









회장은 말 대신 엄지 손을 치켜들고 아래를 향하게 했다. 죽음이라는 뜻이다. 할 거지? 이미 정해진 답이었다. 내가 한국으로 올 때 정해졌었던 답. 나는 회장을 살려야 한다. 나의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삼일 뒤야."










내 위치는 하루하루 불안해지고 있으니 서둘러야 해. 회장답지 않게 평소와는 다르게 성급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 두려움이 회장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건가. 회장은 5년 전 내 뺨을 때리던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었다. 성공하면 네게도 큰 보상이 있을 거야. 다른 한 쪽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는 회장이었다.

도리도리,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돈은 필요 없었다. 그냥 나는 회장을 살리고 싶었다, 나는 내 손위에 있는 회장의 손을 치우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회장이 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일본에 있을 보스에게 저 좀 늦을 거 같다고 연락하려고요."

 

 

 

 

 

 

 

 

마음대로 해. 회장은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해결이라도 한 듯 회장의 얼굴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켄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이번 년 안으로 돌아가겠다는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켄타가 보고 울면 어떡하지? 미안해 켄타. 하아, 한숨을 쉬며 내 눈앞에 놓인 사과를 바라봤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지 변색이 되어버린 사과. 하지만 여전히 탐스러운 사과. 그 사과를 하나 집어 내 입에 욱여넣었다. 나는 이 시간만큼은 내가 아담이고 회장은 뱀이라는 착각에 빠져버렸다. 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나 그리고 나를 유혹한 뱀. 둘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 사과의 즙이 넘치다 못해 결국 내 입 밖으로 흘러넘치고 내 입과 손 주변을 적셨다.









/ 불한당을 보고 쓰는 글입니다. 그래서 많이 들은 대화가 나올수도 있어요. 엉터리 일본어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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