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영물이 산다. 04
w. 깝질무
-위잉 위잉
아침부터 이 소리가 집에 울려 퍼진지도 1주일 째다. 청소가 취미라는 이 여우는 우리 집에 살게 된 영물 때문이다.
평소 청소와는 거리가 먼 나완 달리 결벽증이 있는건 아닌지 의심되기까지 한 민현은 내가 어질러 놓으면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묵묵히 옆에서 치우기 바빴다.
처음엔 눈치가 보였으나 이젠 편하게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본다. 다만 청소기 때문에 티비소리가 안들린다는게 흠이랄까.
"발 좀 치워봐."
"......"
민현이 청소기로 내 발을 톡톡치며 말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쭈그리고 다리를 끌어안는다. 이런 아침이 어쩐지 익숙하고 편안해 티비로 고정되어 있던 눈을 감고 청소기 소리를 들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던 청소기 소리가 이내 멎더니 소파가 출렁였다.
내가 자는 줄 알았는지 티비를 끄고 슬그머니 내 머리를 어깨에 기대어주는 민현의 조심스런 손길에 살풋 미소가 새어나왔다.
이런 안정감, 기분 좋은 설레임들이 나를 감싼 느낌이였다. 이 순간을 깨고 싶지않아 입가에 걸린 미소를 애써 숨기며 가만히 잠든 척했다. 그런 여주를 내려다 보는 민현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
나는 일러스트나 포스터 등을 제작하는 일도 하지만 주 업무는 동화 그림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나에게 일을 주고 작업을 도와주는데 최종 작업물을 보내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회의를 하기 위해 민현을 만난 날 나는 서울에 올라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작업물은 이메일로 보내드렸으나 오늘 우리집에 담당자 분이 온 이유는 새로운 작업에 대해 컨택해주기 위해서였다. 보통 이메일로 주고 받지만 프로젝트로 일이 커질 경우 직접 만나서 전달해주기도 하는데 오늘 같은 상황이 그러한 일이다.
서문이 길어졌는데 어쨌든 오늘 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을 담당한 출판사 여직원 분이 우리 집으로 오셨고, ...민현은 그 여직원 분을 홀려버렸다.
민현이 문을 열어 주었는데 넋이 나간듯 보인 여직원 분의 표정을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다.
잊고 있었던 민현의 특수능력이 사람 홀리기였단 것을.
"아 저 작가님 어.. 그 프로젝트가.."
"네 천천히 말씀하세요."
"그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가 컨셉인데 어.. 작가님은...그러니까."
"......"
하 미치겠네. 말을 하다가 거실에 앉아있는 민현을 흘끔 쳐다봤다가 다시 말을 하려다 다시 흘끔 쳐다보고 무한 반복이었다.
저기 담당자님 눈이 풀리신 것 같은데..?
"후.. 잠시만요."
잠시 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여 민현에게 다가갔다.
"민현씨"
"응?"
"지금 저 분한테 대체 무슨짓을 한거에요?"
"나 아무 짓도 안했는데."
"아무 짓도 안했는데 저분이 저래요?"
"진짠데. 저 사람이 기가 약한가 보지."
빠직 솟아오르는 혈관을 느끼며 마음을 다스렸다. 저 뻔뻔한 낯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을른 방에 들으그이쓰."
이를 꽉 깨물며 말하자 민현은 그제야 눈치가 보이는지 슬그머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면서 직원과 눈을 맞추고 윙크를 날리는 걸 잊지 않는 민현을 보자니 혈압이 다시 상승하는게 느껴졌다. 뒷목이 뻐근하다.
"담당자님 죄송해요. 저희 집에.. 저기 담당자님?"
담당자님 얼굴 토마토됬어요. 터지기 일보직전인데요. 괜찮으세요? 멍한 눈으로 민현이 들어간 문만 바라보고 있는 담당자님을 보며 목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홀릴 것 같은 얼굴이긴 한데 이정도 일줄 몰랐다. 마트에 가서도 시식코너 아주머니들에게 사랑받고 덤으로 자꾸 뭘 받아왔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가 방심했다. 이마를 짚은 상태로 깊은 한 숨을 쉬었다. 앞으로 중요한 업무가 있으면 내가 서울로 가야할 것 같다.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은 느낌에 비척비척 담당자님에게 다가갔다.
"담당자님.. 담당자님!"
"..에 네!"
어깨를 잡고 흔들자 그제야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는 담당자님에게 가방을 챙겨 쥐어주었다.
"아무래도 아프신것 같은데 제가 내일 서울로 올라갈게요. 이만 가보세요."
"아니..아니에요! 괜찮은데"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아.."
지금 아쉬우신 거 같은데 그거 아니야. 안돼요. 단호하게 밀고 나가는 나와 방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가방을 들곤 천천히 걸어나갔다.
"가세요~"
"아..네.. 내일 뵐게요.."
차 문을 열고 타기 전까지 자꾸 흘끔거려 슬쩍 현관문을 가리고 섰다.
"안녕히 가세요."
민현의 목소리가 들리고 담당자님의 얼굴이 다시 토마토가 되자 홱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았다. 창문을 열고 몸을 반쯤 내민 상태로 인사하는 민현을 째려보자 나를 보곤 어깨를 으쓱한다.
우여곡절 끝에 담당자님을 보내고 나서 일부러 쿵쾅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나와서 찻잔을 치우고 있는 모습에 괜히 열이받아 씩씩거렸다. 찾잔을 치우다 말고 내 앞으로 다가온 민현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질투나?"
질투? 이게 질투인가? 내가 왜?
내 앞에 서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민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홀렸나? 내가? 이 여우에게?
민현에게 홀려서 멍한 표정으로 돌아간 담당자님은 민현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머리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저 민현으로 가득찼고 여러 의문들도 함께 가득차버렸다.
가만히 쳐다만 보던 내가 손을 올려 민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능글맞게 웃고 있던 민현의 표정이 점점 당황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질투인가? 왜지?"
"......"
내 말에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민현이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설거지를 마저 해야해서."
어색하게 미소지은 민현이 손에 든 찾잔을 들어보이며 싱크대로 걸음을 옮긴 다음에도 나는 멍하니 뒷 모습을 쳐다보았다. 나 아무래도 홀린 것 같다. 민현에게 아주 지독하게.
-
숨을 참으며 설거지를 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지다가 이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사라졌다.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쉰 민현은 싱크대를 손으로 짚고 경직된 어깨를 풀었다.
참지 못할 뻔 했다.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올려다보던 그 사슴같은 눈망울 아래 채리빛 열매를 머금은 듯한 입술이 눈에 가득찼을 땐 정말이지 참지 못하고 그대로 입을 맞출 뻔 했다.
점점 참지 못할 만한 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 민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의 욕심때문에 여주의 곁으로 왔고 그저 바로 옆에서 바라만 보려고 했으나 점차 욕심이 더 커져가 자기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올까봐 민현은 무서워졌다.
잠시 생각하던 민현은 설거지를 마저 끝낸 후 여우의 모습을 하고 배란다를 통해 뛰어나갔다.
아무래도 친구를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15년을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는 친구는 분명 민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민현은 생각했다. 뒤를 돌아 마당을 쳐다보던 민현은 이내 빠르게 사라졌다.
자리를 비운 2일 동안 홀로 남은 여주와 어떻게 엇갈리게 될지 이때는 알지 못했다.
다음화 예고)
서울 남산 꼭대기에 있는 한 개울가.
"커헝- 컹!"
개울에 몸을 반쯤 담근 거북이가 자기를 보며 짖는 여우에게 고개를 돌려 눈을 깜빡인다.
펑 사람으로 변한 거북이가 여우를 향해 미소지었다.
"오랜만에 보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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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깝질무입니다! 여러분.. 일단 죄송합니다.. 흑흐규ㅡㄱ 제가 너무 늦게 왔죠...? 하.. 현생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네요ㅠㅠ 제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고 학교 내에서 맡은 것도 있어서 정신이 없었어요ㅜㅜ 진짜 진짜 죄송합니다. 기다려 주신 분들도 너무 감사하구요. 그대로 지금 좀 여유가 생겨서 자주 올 수 있게 노력해보겠습니다! 오늘도 읽어 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사랑해요.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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