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성
13
하루 전,
"어찌되었던간에 지금의 난 여기가 처음이잖아요. 무슨 상황인지, 알려줘요. 말하기 힘들어도 알려줘요."
"... 부탁할게요."
그렇게 시작된 그가 들려준 과거의 이야기들은 끝없이 쏟아졌다. 밝았던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했다. 중간중간 말을 끊고 한숨 짓는 민형에 안쓰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다시 돌아온 나는 정말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 그렇게 다시 현실 세계로 가버린 당신이 오랜시간 지나 다시 이렇게 온거에요."
"........."
"도영이가 계속 살 수 있던 이유도, 이렇게 다시 당신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민형의 말에 계속 답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금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 난, 난 뭘 해야하죠 이제?"
궁극적인 질문이었다. 모든 과거 이야기를 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했다. 하자드가 다시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 오늘 밤이 지나면 이제 2일 밖에 남지 않았다.
"......."
"......."
그리고 그 답에 대해서 우리 둘 모두 말할 수 없었다. 어렴풋이, 정말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그러기엔 생각해야할, 정리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내일 아침에도 이 곳으로 와요. 장소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어디로요?"
"향기 맡아지는 대로. 오고 싶은 대로. 애탈 때쯤 찾을 수 있는 곳에 만들어 놓을게요."
"그리고 내일 올 땐 웃으면서 돌아와요. 약속해줘요."
모든 이야기를 끝마치고 내일의 약속까지 마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첫 날 내가 만났던 날 돌려보내기에 급급했던 그가 아니었다. 이제 이야기의 열쇠들을 모두 주었으니, 정답을 찾아달라며 따뜻하게 웃고있는 것만 같았다. 현실에서 황자, 당신을 만난다면 똑같이 이렇게 웃어줄까. 따뜻하게 창조주, 여주, 라고 불러줄까.
"웃으면서 부를게요."
아마 오늘 밤은 생각하느라 다 보낼 것 같다. 무수히 많은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계속해서 생각하겠지. 어떤 그림이 이 곳에 어울릴지를, 예쁘게 맞을지를.
조심스레 내 손을 잡은 황자는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억나라는 주문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했다. 그 말에 그 어떤 말도 못하고 계속 꼭 잡은 채로 길고 긴 수국 꽃밭을 거닐었다. 누군가, 그것도 남자 손을 잡은 건 아빠 빼고 처음이라 괜히 신경이 쓰였다. 욕망이 넘치면 꿈으로 보인다더니. 그렇게 욕망 넘쳤단 말이야 내가?
"어젯일 말이에요."
"........"
별 생각을 다 한다 싶어 하려던 말을 냅다 질렀다. 어젯일, 하며 운을 떼자 그는 곧바로 내 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영이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나와 민형에게 달려갔던 어젯날. 그리고 간절히 과거 이야기를 부탁했던 날. 남겨진 그들이 참 아팠을 과거 이야기를 들은 그 날. 그리고 모든 것을 털어놓은 그의 온화한 미소를 보았던 날. 그 날 밤은 정말 괴로웠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안했어요."
난 조심스레 밤새 생각했던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꿈 속이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곳이다. 깨버리면 그만, 이라 생각하며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곳이다. 어렸을 때의 내게 이 곳은 무슨 의미였을 지 알 수는 없다. 잠깐 놀다가는 공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너무 소중해 늘 간직하고 싶은 곳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알 수 없는데, 그들을 보면 그들에게 이 곳은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와닿아서 미안하기만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더, 더.
그들에게 이 곳은, 그리고 나는 너무나 소중했구나.
어제와 똑같이 아침부터 이 곳에 날 부른 민형에게 난 조심스레 물었다. 어젯밤 생각하고 생각하다 결론 내린 질문이었다.
"나랑 돌아갈래요?"
돌아가자는 말.
하자드에 뛰어들어보자는 말.
이 길고 긴 지긋지긋한 꿈 속에서 깨어나 현실에서 만나자는 말.
"........."
내 질문이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민형은 그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우리 둘 사이엔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고 정적만 일고 있었다. 쉽사리 말을 떼지 못하고 잡던 손만 더 꼭 쥐어왔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그의 행동이라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이 곳에 온 이유, 난 이제 알 것 같거든요."
"황자님 꿈에서 일어나라구요."
"... 이제 그만 일어나야하지 않겠어요?"
다른 구름성 안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내 첫번째 왕자님이었던 그를, 다들 두려워하는 그곳에 다가가 날 구하려 했던 그를 난 그냥 두고 갈 순 없다. 그리고 그게 내가 맞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당신을 원래 세계로 데려가는 것. 아마도 그가 이제 그만 꺼내달라며 이 곳에 날 불렀을지 모른다. 내 인생 마지막의 특별한 일이 되도록 그가 부른걸지도. 그래, 내 인생의 마지막. 민형이 점점 손에 힘을 푸는 게 느껴졌다. 그가 놓기 전에, 내가 먼저 붙잡았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걸까, 그는.
"방금 오면서도 생각했어요. 황자님이랑 있으면 맞설 수 있겠다고."
".............."
"내 첫 왕자님이잖아요."
"............"
흔들리는 두 눈동자 안으로 온전히 내가 담긴다. 걱정만 가득해보였던 그 두 눈에 이제야 투명한 생기가 깃든다. 머리에 걸린 망각이라는 주문은 풀리지 않아도, 마음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내 첫 왕자님은 이민형, 그가 맞다.
+
도영은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민형에게 가버리던 여주를 생각했다. 그녀는 도영의 전부다. 망각의 주문을 쓴 후, 구름성 안의 모든 이들의 원성을 샀다. 어떻게 창조주가 우릴 기억 못하게 할 수 있냐며 모진 말까지 들어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도영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이곳 전부를 잊지 않은게 분명했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 도영이 살아있음이었으니까.
"....... 내일이면, 내일이면."
어렵게 다시 돌아온 만큼, 다신 그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세계 속에서 단 둘만 있을 수 있다면, 여주를 보고싶었던 만큼 실컷 볼 수만 있다면. 이젠 물불 가릴 것 없이 뛰어들 수 있었다. 그의 첫 왕자가 민형이었다면, 도영은 그녀의 마지막이 되고 싶었다.
Hazardous spell (★★★★★) (Don't try this!)
How to Break a spell?
= Kiss your love.(Aftereffect; Forget everything.)
사실 망각의 주문은, 저주의 풀림을 의미했다. 입술이 맞닿을 때 미리 걸어두었던 흑마법은 바로 풀렸다. 만약 도영이 마음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민형은 현실 속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다 이 곳에서 죽어갔을 것이며, 여주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을 것이었다. 그 날 도영의 마음을 돌려놓은 그녀가 보낸 편지 한 통과, 떠오르던 그 무수한 음성들이 아니었다면, 이 곳에 남게 되는 것은 주문의 영향을 절대 받지 않는 그녀와 도영 둘 뿐이니, 그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8216, 黑魔法. Black magic.]
그 옛날처럼 다시 흑마법이 적혀져있는 장을 펼친 도영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거라 다짐하던 도영이었다.
+
"하랑,"
"네, 황자님."
"각국에 연락해줘요. 지금 이 곳으로 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여주의 말을 듣고 동궁으로 돌아온 민형은 계속해서 한숨을 짓곤 했다. 평생 떨지도 않던 다리를 떨다,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머리를 싸매지를 않나. 불안한 듯 하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그의 모습이었다. 민형은 하랑에 명령하곤, 서재 탁자에 앉아 양옆으로 움직이는 시계추를 멍하니 바라봤다. 째깍째깍, 하는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던 건 아니었다. 현실 속 자기의 모습을 봐버린 이후부터 늘 생각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 다시 돌아와 기억할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그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근데 잠잠하던 그 생각에 여주가 불을 붙인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는 것 쯤은, 민형도 알고 있었다.
'꼭 제멋대로 오지.'
'말도 안듣고.'
제멋대로 오고싶어서 온 게 아니라는 것 쯤은, 민형도 알고 있었다.
'돌려보내드려야지, 우리 창조주님.'
오랜만에 봤던 만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
'너가 생각하는 친구는 도대체 뭐죠?'
도영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그가 나쁜 마음을 먹게 된 것도, 그녀가 기억을 못하는 것도 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던 민형은,
'이유가 있을거에요.'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분명 다시 온 이유가 있을거에요.'
그 날 이후로 그 어떤 기억도 못하는데도, 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모습이 결국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돌아갈까."
다시 갇히게 되면, 도영은 다신 자길 구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민형은 어떤 힘도 쓸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겁이 나는게 당연했다. 차라리 이대로 이 곳에 남아있는게 더 나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다.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이 곳에 오지 않았을 땐, 언젠가 올거라 믿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다시 이 곳에 올 일 따위는 없었다.
"황자님, 도착하셨다 합니다."
"........."
"황자님?"
"... 아, 미안. 들이세요."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민형이 하랑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정도 마음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유타, 재현, 태일을 보자마자 민형은 그들이 앉기도 전에 본론부터 말했다. 하자드에 갈거라던 그 결연한 목소리로, 아니 조금은 더 확고해진 목소리로.
"돌아갈거야. 여주랑."
"원래 있던 내 세계로."
10년은 훌쩍 넘은 이 구름성의 끝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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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ㅠㅠ 정말 마지막이 다가와요...!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ㅠㅠ 느낌이 이상하네요 ㅠㅠ 지금 창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날씨가 쌀쌀하네요. 우리 독자님들 따뜻하게 하고 자요!❤️ 14화에서 만나요! |
♥암호닉♥ |
❤️암호닉❤️ [빵싯빵싯] [윙윙] [하쿠] [디보] [써니호] [슈비둡] [맠둥이] [초록] [도랑] [어피치] [오렌지] [잼잼] [오렌지 스파클링] [재현나라곤주] [쟨니] [0806] [빵자] [골든로드] [왓더젓가락] [띠용이] [에벳] [피자] [꼬앙] [크림치즈빵] [뿌뿌] [재뇨니] [꼬미][초록] [우재사랑해] [찌뽕] [미뇽천사] [삐약빨] [또용] [로미] [우주] [토낑이] [텐크루10] [고기로케][지나가던 타팬] [플라아이] [초코드링크] [꾸꾸] [마크갈맹이] [구름이민형] [꿀돼지] [맠깅] [윤오윤오] [밍도] [더꾸] [지성오빠] [알티스트] [맠깅아사랑해] [러러] [차차] [열렬] [뽀잉] [썸머] [혜온] [쮸잉껌] [엥씨리인더하우스] [당나귀] [입주] [저하] [복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