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ngle
07
무슨 스프 하나가 이렇게 비싸? 메뉴판을 넘기는 손이 가격을 보고 멈칫했다. 그런 나와 달리 정재현은 익숙한 듯 점원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있었다. 단골인가? 역시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소문이 괜히 도는 게 아니네. 뭐 먹을래?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정재현의 시선에 나는 크림 파스타를 콕 집었다. 그나마 가격도 덜 부담스럽고 양도 그림처럼 생겼으면 괜찮겠지 뭐. 그렇게 주문을 다 받은 점원이 사라지고 다시 우리 사이를 휘감는 어색한 기류에 물을 꼴깍꼴깍 삼켰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정재현은 빈 물컵을 슬쩍 보더니 다시 물을 따라주며 천천히 말문을 틔웠다.
"있잖아."
"… 응?"
"아직도 내가 불편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당황한 채 괜히 애꿎은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불편해? 라니.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분위기가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물컵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들이 아래로 뚝뚝 추락한다. 표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어쩐지 입이 무겁다.
"응. 사실 좀 불편해."
그런 답을 툭 내뱉고는 곧바로 눈동자를 들어 올려 정재현의 표정을 살폈다. 화난 건 아닐까, 화났으면 어떡하지. 그런 내 걱정과 달리 놈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았어.
사실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티를 냈는데, 모르면 멍청이게? 더군다나 상대는 정재현이었다. 눈치 빠르고, 남들 감정을 쉽게 다루는 정재현. 나는 호랑이 앞에서 재롱부리는 고양이처럼 보이진 않았을까. 정재현은 제 쪽에 놓인 물을 한 번 들이키더니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낮은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네가 무서웠나봐."
"…."
"진짜 내 모습을 알면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날 어떻게 대할까."
"…."
"그게 무서워서 널 괴롭힌 거 같아."
미안. 짧게 떨어지는 사과에 누군가 뒤통수라도 맞은 듯 얼얼한 느낌에 그저 가만히 정재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달리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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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2016
"내 프린트가 없어졌다니까?!"
"야야…… 좀 진정해."
"아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 가운데 얼굴이 벌게져 씩씩거리고 있는 정연이와 그걸 옆에서 말리고 있던 주혁이가 보였다. 멀리서 대화 내용을 엿들어보니 정연이의 과제 프린트물이 사라진 것 같았고. 정연이가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라는 걸 아는 주혁이는 그런 정연이를 말리기 급급한 듯했다. 저거 저거 성격 좀 고쳐야 할 텐데. 내 옆에서 가방을 정리하던 유타가 혀를 쯧쯧 찼다.
"학교 끝나고 병원 꼭 가, 저번처럼 안 가지 말고."
"예예. 알겠습니다."
아까부터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게 꼭 감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유타를 따라 가방을 정리했다. 저 많은 인파들 속에서 정연이의 벌게진 얼굴이 단연 눈에 띄었다. 정연이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사물함부터 찾아보자며 혼자 쿵쿵 발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다가 유타와 천천히 밖을 나섰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덜컹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매웠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는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내 어깨를 붙잡는다.
"야 김시민, 네가 가져갔어?"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정연이가 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정연이가 그토록 찾던 프린트물이었고. 그 뒤엔 내 사물함이 활짝 열려있었다. 뭐야, 김시민이 훔친 거야? 시민이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많은 시선을 받는 건 내게 익숙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정연이의 프린트를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내 사물함에서 나와?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한 채 입만 벙긋거렸다. 그런 내 반응에 정연이는 내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준다.
"네가 가져갔냐고 물었잖아. 왜 대답을 못 해?"
"아, 아니. 잠깐만."
내 어깨를 잡고 흔드는 탓에 머리가 어지러워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안 그래도 그 날은 감기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던 걸로 기억한다.
작게 들썩거리는 느낌에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면 익숙한 향기가 먼저 코끝을 간질였고, 그 뒤엔 널찍한 등이 시야에 가득 찼다.
도영이었다.
"도영아……."
"일어났어?"
"나 내려줘…."
"안돼. 너 아직 아파."
끄응, 짧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도영이는 어째 나보다 내 상태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많이 무거울 텐데…….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웅얼거리니 도영이는 푸스스 웃어버렸다. 그렇게 웃다가도 도영이는 조금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쓰러졌다는 소리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으응…… 미안."
"사과 듣고 싶어서 말한 거 아니야. 아프면 나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
"하필 다른 수업 때 그럴 게 뭐야. 옆에서 챙겨주지도 못 하고."
"그래도 이렇게 왔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실실 웃어버렸다. 아프지마, 걱정했잖아. 도영이도 아마 그렇게 말했던 거 같다. 그때 도영이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던 날은 아직까지 마음 속 한켠에 남아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정연이 프린트물을 내 사물함에 넣은 그 범인은 소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정연이는 내게 사과를 했고 소진이는 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그렇게 휴학을 해버리는 걸로 그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학년이 돼서 알게 된 건 그 사건 안에 정재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혼자 과제를 하던 내게 정재현이 처음으로 말을 걸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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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sub>〈sup>〈/sup>
그때의 그 일부터 시작해서 정재현은 내게 모든 일을 사과했다. 사과하는 정재현의 모습이 어색해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직까지 정재현은 내게 그저 불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풀리지 않았을까. 정재현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생각했다. 정재현은 제 감정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남의 감정을 쉽게 잘 다룰 줄 아는 그도 자기에겐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학교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식당이어서 그런지 걸어가는 것보다는 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 싶어서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 여기면 민형이 고등학교랑 가까울 텐데. 마중 가야겠다. 사실 중간고사라고 해도 수험생인 꼬리표를 달고 있는 고3들은 밤 10시까지 야자를 해야 했다. 물론 자유였지만. 민형이는 항상 10시에 학교가 끝났다. 집에서는 해가 뜰 때까지 불빛이 켜져 있던 적도 있었다. 내가 고3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코쓱)
나는 버스를 타고 민형이 고등학교인 영오고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렸다. 10시가 딱 되자, 많은 학생들이 교문에서 쏟아져 나왔고. 나는 교문 옆의 벽에 기대어 서서 민형이를 기다렸다. 뭐라도 사 올 걸 그랬나.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다음에 뭐라도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오늘 아침에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 했는데.
"시험날에도 야자라니……."
"그럼 다시 고1 하던가."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민형이와 그 옆엔 친구로 보이는 남학생 둘이 같이 교문을 나오고 있었다.
"그건 좀 심했다."
"다른 학년들은 시험만 치고 가는데 왜 우리만…."
"우리 아직 이틀 더 남았어."
민형이의 옆에서 꿍얼꿍얼 거리는 친구들이 귀여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데, 여기서 뭐 해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민형이의 목소리에 엌!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 아니. 근처에서 밥 먹다가 너 끝날 때 된 것 같아서 데리러 왔지. 옆엔 친구들이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런 내 모습에 민형이의 친구들은 웃음을 참고 있는 듯 보였고 금세 민망해진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친구들은 그렇게 교문 앞에서 헤어지고 어두운 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이 상황이 괜히 어색해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민형이는 친구들이랑 있을 때도 차갑구나 차가워…… 얼음왕자 오셨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어색하지 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까…! 얼른 생각해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는데 민형이가 먼저 말을 툭 내뱉는다.
"저기, … 누나."
"어… 어? 어?! 왜?"
아씨, 너무 놀랐나? 민형이의 입에서 나오는 누나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참 어색하기 그지없다. 듣기 싫다는 건 아니고 그런 기준이라면 오히려 듣기 좋은 쪽에 가깝달까.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민형이는 마른 입술을 꾹 깨물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국어 잘 해요?"
"으응?"
"다른 과목은 어떻게 해보겠는데, 국어가 잘 안 돼요."
도와달라는 뜻인가. 평소 내게 부탁 아니 부탁 비슷한 것도 하지 않은 민형이의 첫 부탁이었다. 와- 또 내가 다른 과목은 영! 꽝이어도 국어는 자신 있지. 아, 물론 문학만이다. 문학만… 문법은……(절레절레)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다. 그런 내 모습에 민형이는 오른 손을 들어 뒷목을 매만졌다.
"오늘 밤만 알려주시면 돼요."
"…."
"내일 과목이 국어거든요."
민형아 나는 네 부탁이면 오늘 밤만 아니라 매일매일이라도 알려줄 수 있어…! 이 말을 내뱉을까 하다가 기겁하며 나를 피하는 민형이의 모습이 떠올라 뒷말은 목구멍 뒤로 삼켜냈다.
어니언's
오늘도 애매하게 끝난 것 같죠? 여기서 더 쓰면 분량이 뭔가 평소보다 더 길어질 것 같은 느낌에...
독자님들이 보고 싶은 소재들 하나하나 다 정리했답니다 :D 모두들 댓글 감사드려요 엉엉ㅠㅠ 저 정말 감사해서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요.
“대학교 - 하숙집 - 고등학교 - 식당” 거리는 뭔가 이런 느낌이랄까요?
앗, 그리고 저희 학교는 이번 주가 시험기간인데 다들 시험은 잘 보셨는지요...! 안 보셨다면 잘 보세요!! 스트로니 - !
혹시 셰프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멤버랑 시골 소년에 잘 어울리는 멤버는 누가 좋을까요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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