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7. 진심으로 I Loved You
DAY6 - I Loved You
[오늘 퇴근 후 6시 30분에 꺼먹갈비에서 마케팅팀 옹성우 과장님 송별회가 있습니다.
영업마케팅부서원 및 옹과장님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은 임직원 분들은 모두 자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옹과장님의 마지막 근무일이 다가왔다. 당연히 저녁에는 송별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출장 중인 강과장님은 참여할 수 없었다. 모레 돌아올 예정이라 출장 가기 전에 미리 인사를 마쳤다 했다.
오늘 업무량만 보면 야근을 해야 마땅한데 그럴 수가 없으니 서둘러 마무리를 짓는 중이었다.
과장님의 빈 자리를 안 느낄래야 안 느낄 수가 없지만,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옹과장님의 이직을 받아들이는 내 감정상태는 놀람-슬픔-분노로 이어져 지금은 어느 정도의 해탈에까지 닿은 듯하다. 서서히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갈 사람은 가더라도 남겨진 사람은 그 남겨진 상황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언젠가 황대리님이 했던 말인데 이제는 내 스스로가 그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죽도록 힘들긴 해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살 사람은 결국 저 사는 방법을 배워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랬다.
"강과장님이 안 오셨네, 그러고 보니까."
어쩌다 보니 옹과장님과는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공식적으로 보았을 때 중요하고 의미가 큰 사람이라는 경계에 나는 들지 못했고, 그에 따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중요하고 의미가 큰데도 불구하고 나처럼 멀찍이 떨어져 앉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김재환 과장님이었다.
"라스베가스 출장 중이세요. 모레야 돌아오신다고..."
"아아. 출장 간다고 했었지. 이야기했는데 까먹었어요. 요즘 자꾸 이래."
"벌써 자꾸 깜빡깜빡 하시는 거예요-?"
"팀장님이 스트레스 줘서 그래. 맨날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니까."
많지 않은 나이인데 그렇게 깜빡깜빡 하면 어떻게 하냐는 나의 말투에 한 쪽 손을 들어 팀장님이 볼 수 없도록 입모양을 가려 말하는 과장님이다.
그 모습이 웃겨서 한껏 소리를 내어 웃으니, 진짜라니까. 어찌나 바가지를 긁는지.. 요즘 더 그래요. 하며 힘든 기색을 내비친다.
영업1팀 팀장님이 바가지 긁을 게 뭐가 있으려나.. 그나마 영업마케팅부서 팀장님들 중에는 가장 온화한 성격이신데.
실적이 2팀보다 잘 나오지 않아서 그런 건가. 그건 과장의 잘못이 아닌데.. 그래도 팀장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긁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과장밖에 없으니 그러시는 건가.
생각이 이어지니 김과장님의 어깨가 좀 무거워 보였다. 딱히 힘이 되어 드릴 수는 없고, 술이나 한 잔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 소주병을 들었다.
"크으- 나도 한 잔 따라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졸졸졸 흐르는 소주를 바라봤다. 80% 정도 채워지니 김과장님은 소주 따르기를 멈추셨다.
안주도 없이 벌컥 들이키자 고기라도 먹으면서 마셔요. 후배 술 왕창 주는 데에 취미 없어요, 난. 하면서 사람 좋게 웃어보이신다.
늘 생각했지만 웃는 얼굴이 참 선하다, 김과장님은. 네, 과장님. 하면서 나도 웃었다.
옹과장님과 너무 멀리 떨어진 위치가 아쉬웠지만, 오히려 지금처럼 어수선하고 정신없고 사람이 많을 때에는 차라리 떨어져 앉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괜찮아요? 옹과장님 가시는 거요."
"네? 아... 네. 뭐... 그래도 이제 많이 적응해서..."
"적응보다도... 스킬을 더 배웠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옹과장님은 일을 잘한다. 과장님이 일을 잘하는 건 강과장님도 알고, 김과장님도 알고, 우리팀 팀장님도 알고, 온 해원 사람들이 다 안다.
그런 과장님을 사수로 두었다는 건 내가 해원 내에서 큰 사람으로 클 수 있던 기회였다고, 김과장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입사 후 7개월은 회사 적응에는 어느 정도 적당한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옹과장님의 업무 스킬을 배우기에는 짧디 짧은 시간이었다.
김과장님이 걱정하시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나는 아쉬운 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걸 어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 알려달라고 붙잡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도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하는 건 싫어서 그러게요. 저도 많이 아쉬운데.. 하며 멋쩍은 티를 냈다. 김과장님은 응, 많이 아쉽네. 하고 본인 앞의 불판에 놓인 고기를 뒤집으셨다.
"참, 과장님 노래 진짜 잘하시던데요. 저 워크숍 때 보고 깜짝 놀랬잖아요."
옹과장님과의 이별을 계속 대화의 주제로 삼기에는 마음이 녹록치 않았다. 좀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결국 원인을 파고들면 내가 그 원인을 적잖이 차지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옹과장님도 아는데 그걸 가지고 굳이 장시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워크숍 때 장기자랑이 생각나서, 그리고 그 후로 김과장님과 어떤 접점이 없었던 터라 그걸 주제로 꺼냈다. 화제를 돌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아, 그거... 제가 원래 노래 좀 해요. 하하."
"좀 하시는 정도가 아니던데요.. 저 진짜 깜짝 놀랬어요, 과장님."
"에이, 해원에 노래 잘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과장님 만큼 잘하는 분이 또 계세요?!"
"아 뭐, 저처럼 잘하는 사람은 드물죠."
하하하, 이어지는 톤 높은 웃음소리. 은근히 뻔뻔한 구석이 있으셨네... 새롭게 발견된 과장님의 성격이 신기했다.
노래도 노래였는데, 춤도.... 하면서 춤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 이야기는 하지 말라면서 술을 따라주셨다. 워크숍마다 흑역사가 하나씩 생기는데, 지날 때마다 부끄러워 죽겠다고 그러셨다.
나는 그래도 엄청 큰 웃음 주셨어요, 과장님. 했고, 과장님은 위로 고맙네. 하면서 내 공기밥 위로 고기를 한 점 놓아주셨다.
많이 먹어요. 김과장님의 다정한 말투에 나는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었다. 과장님도 많이 드세요. 다음 판은 제가 구울게요. 내가 말했다.
오고 가는 몇 번의 젓가락질 만큼 시간도 잘 갔다.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치 회식의 모습은 늘상 비슷했다. 그것이 송별회가 되었든 어쨌든, 사람이 여러 명 모이면 그 형태는 비슷해지는 모양이다.
1차는 갈비집, 2차는 치맥, 3차는 포장마차... 3차가 끝날 때쯤 되니 꼭 남아야 할 정예 멤버만 남았다. 물론 나는 옹과장님의 마지막 후배라는 이름의 정예 멤버였다.
새신랑 황대리는 사정상(사정이 정대리님이라는 건 누구나 공공연히 아는 비밀이었다.) 2차가 끝나고 자리를 뜨시는 바람에 후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사원- 조심히 들어가! 옹과장이랑 인사 잘하고!"
"네, 부장님. 조심히 들어가셔요-"
"여기. 택시비."
"아, 감사합니다..."
"내일 봐요."
거나하게 취한 부장님은 우리 팀장님의 몫이었고, 술에 떡이 된 옹과장님은 나의 몫이었다.
부장님은 택시비와 함께 내일 보자는 인사로 안녕을 고하셨다. 팀장님의 팔에 붙들려 너털너털 걸어가는 뒷모습은 덤이었다.
"......"
"괜찮으세요, 과장님?"
"으응...."
"저 잡으세요. 여기요."
옹과장님 주량이 약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한 것도 처음이었다. 걸음마다 휘청거리는 옹과장님이 팔랑대는 종이인형 같았다.
나는 혹여 과장님이 넘어질까봐 과장님의 팔을 들어 내 어깨에 감았다. 과장님은 몇 걸음 옮기시더니 눈에 보이는 벤치에 살짝 걸터앉으셨다. 나는 자연스레 그 옆에 자리잡았다.
"대리 불렀어요. 곧 올 거예요."
한 차례 맨손세수를 한 뒤 눈을 꿈벅이던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시간은 벌써 새벽 두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내 휴대폰과 휴대폰케이스 사이에는 부장님이 쥐어준 몇 만원이 있었다.
대리를 불렀다는, 곧 올 거라는 과장님의 말 뒤로 우리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나도 마실 만큼 마신 터라 취해 있었고, 과장님은 거의 대화가 어려울 만큼 취하셨기 때문이다.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고맙다는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이 상황에는 좀처럼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
"......"
"........"
내가 할 말을 고르는 동안 과장님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셨다. 별이 보이지도 않는 하늘인데 뭐가 그렇게 볼 것이 있어서 뚫어져라 보고 계시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빛은 분명히 너무도 맑을 거라서, 맑다 못해 투명할 거라서, 그걸 너무 잘 아는 나라서 또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하늘을 바라보는 과장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이렇게 과장님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허락되지 않겠지.
과장님을 처음 본 날이 기억난다. 잘생긴 얼굴에 놀랐던, 잘생긴 얼굴 만큼 젠틀한 성격에 한 번 더 놀랐던. 조곤조곤한 말투와 섬세하고 배려 넘치는 태도, 그런 것들에 감탄했던 시간들.
첫 도쿄 출장, 회사에서 같이 지새웠던 밤과 제주도에서의 그 고백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과장님과의 만남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래서 자꾸만 놀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시간들.
"먼저 일어날게요."
그 놀라움 뒤를 따르는 미안한 마음에 내내 가슴이 저렸던 시간들. 그리고 그가 내게 어색하게 뒷모습을 보이는 지금까지도... 나는 가슴이 저렸다.
뒤를 보이는 과장님의 모습은 내게 너무도 어색하고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 지금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린 사람마냥 얼이 빠져 대답할 말을 못 찾았다.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던 과장님은 울리는 휴대폰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일어나는 그 몸짓도 살짝 휘청.
하지만 잡아드릴 만큼은 아니었고, 잡아드리기도 어려울 만큼 짧은 시간에 금방 멀어지는 바람에 잡아드릴 수도 없었다.
"...마중... 나갈게요. 공항이요."
그래도 이 한 마디를 하면 들릴 수는 있는 거리라서, 꼭 들어달라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과장님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셨다. 희미한 미소가 이어졌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든 후 보이는 건 과장님의 뒷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과장님의 뒷모습. 그렇지만 이제는 뒷모습을 보는 일밖에는 할 게 없는 걸.
출국까지 보름 정도 남았다 들었다. 마지막 근무일과 출국일 사이에 간격이 있는 건 해원에서 옹과장님께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차를 타는 옹과장님의 모습을 보고 혼자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택시를 잡아 탈 때까지 과장님의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이유는,
[12사1784 오전 2:12]
[28일 밤 10시에요. 대한항공.]
두 개의 메세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택시 번호와 내가 탄 시간을 확인하고, 비행시간을 알려주려고.
과장님을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잔뜩 고민해서 보낸 흔적이 역력한 메세지였다. 밤 10시 비행기라면 퇴근하고 공항에 가면 얼굴은 볼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네. 공항에서 봬요.] 하고 답장을 보냈다. 보낸 답장 왼쪽의 1은 사라졌지만 더 이상의 답은 없었다.
창문 너머로 닿아오는 달빛이 따뜻했다. 과장님이 한참을 바라보던 게 저 달이 아니었나 싶었다.
-
"그.. 공항에 좀 다녀오려고요."
"혼자?"
"...네."
"......."
오빠, 그러니까 강과장님에게는 옹과장님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에 가겠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을 고민했다.
마지막 후배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기 위해 공항을 간다, 그래도 양심이 있으니까 마지막은 봐야겠어서 공항을 간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받은 게 많으니 고마워서 공항을 간다,
여러 핑계를 생각해보았지만, 심지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핑계들이었지만, 온전히 내 마음을 전하는 데에 이 핑계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다녀오겠다는 내 말에 길게 토를 달 과장님이 아니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운전기사는 안 필요하고?"
"버스면 충분해요."
"알겠어. 존중할게."
운전기사가 필요하지 않냐는 말은 곧 공항에 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본인이 운전해주겠다는 의미였다.
내 욕심으로 하는 일에 과장님을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버스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의 답은 '존중'이었다.
그는 나를 존중해주기로 마음 먹은 모양이다. 내 핑계가 책임감이든, 양심이든, 고마움이든 일단 내 선택을 이해하고,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고마운 마음을 고맙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좀 있어서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놀란듯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그였지만, 이내 놀라움을 지우는 미소가 그 얼굴을 가득 채웠다.
"조심히 다녀와."
"네. 고마워요."
6시가 땡, 되자마자 서둘러 짐을 챙겨 사무실에서 나왔다. 회사 근처 정류장에는 매시 20분과 50분에 공항 리무진 버스가 선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고, 서둘러 걸음을 걸어 12분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확히 20분이 되자마자 버스가 정차했고, 나는 인천공항이요. 하는 말과 함께 기계에 카드를 읽혔다.
막힐 걸 감안하면 일곱시 반쯤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그 이상 늦어버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늦을까 하는 초조함 반, 그래도 버스를 잡아 탔다는 다행스러움 반이라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으니, 한 시간 반 정도를 이런저런 생각에 바쁘게 채웠다고 할 수 있었다.
버스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떴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휴대폰에 꽂힌 잭을 뽑아 가방에 넣었다. 혹시나 했는데 옹과장님에게서 온 메세지는 따로 없었다.
내린 곳은 3층 출국장. 발이 닿는대로 걸어서 비행기 이륙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스크린 앞에 섰다. 밤 10시에 출발하는 도쿄행 대한항공은 D 카운터에서 체크인이었다.
아직 안 오셨나, 아니면 이미 체크인을 하신 건가... 혹시 내가 너무 일찍 온 건가.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 갖은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들여다 보는데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원!"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은 옹과장님이 맞았다. 찾아서 다행이란 안도감으로 온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장님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그 얼굴이 조금 수척해진 것 같아 보였다. 기분 탓일까. 오히려 눈은 더 반짝이는 것 같기도...
"방금 체크인하고 짐 부쳤어요."
"다행이네요... 저는 제가 너무 일찍 온 건지, 늦은 건지 감이 안 와서..."
"저녁 먹었어요?"
"아니요."
"같이 먹을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과장님과 먹는 마지막 저녁, 아니 식사...일 것이다.
문득 사무실 라꾸라꾸 침대 위에서 밤을 지새우고 먹었던 아침이 기억나기도, 도쿄에서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했던 저녁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동안 꽤 여러 차례 밥을 같이 먹었는데, 오늘과 같은 기분과 느낌으로 먹는 밥은 처음이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한국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로 과장님은 한식을 고르셨다.
사실 뭘 먹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말이 오가지 않는 밥상. 그렇다고 해서 여느 식사 자리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많이 먹어요. 내가 사는 마지막 저녁인데."
"...제가 사려고 했는데."
"과장 체면이 있지, 사원한테 삥 뜯으면 쓰나."
"그런 거는 아니지만... 제가 사드리고 싶어서요."
"내가 살게요. 더 좋은 거 사줘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이해해줘요."
마지막을 마주하는 이 시점까지도 한결같이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고집 부릴 타이밍은 아니라는 판단에 그저 알겠다는 한 마디를 말해버리고 말았다.
과장님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심장 변두리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왜 이런 건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차분히 식사하시는 과장님을 앞에 두고 나는 뭐가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처음 떠난다는 말이 나온 이후로 그렇게 많은 생각을, 그렇게 오래도록 했는데 뭐가 또 이렇게 할 생각들이 많이 남은 건지...
생각에 잠긴 나를 과장님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신다는 건 그저 그대로 나를 내버려두고자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잘 먹었습니다."
"....저도요. 잘 먹었습니다."
"잘 먹긴. 엄청 먹는둥 마는둥 했는데."
"...아니에요. 잘 먹었는데..."
내가 ○사원 먹는 양을 아는데? 하며 활짝 웃어보이신다. 그런...가요... 나는 맥빠진 소리를 냈다. 웃음이 나지 않았다. 맥이 탁 풀렸다.
과장님은 밥값을 계산하고, 나는 가방을 챙겨 식당을 나왔다. 휴대폰으로 본 시간은 어느덧 8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과장님을 보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걷고는 있지만 보안검색대까지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과장님과 나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는 채였다.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어 그저 입을 다물었다는 게 맞는 듯하다.
고개를 들어 과장님의 옆얼굴을 들여다 본다. 오래 보면 과장님의 눈빛이 나를 향할 것 같아 그러지는 못했다. 차마 앞을 볼 힘은 없어 되려 고개를 떨궜다.
"......"
"........"
도착한 보안검색대. 마지막 대면이다. 눈을 채우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제일 클 것이다.
또 운다. 과장님은 핀잔을 주듯 내 얼굴을 들여다 보셨다. 내 눈을 마주보는 맑고 투명한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보낼 때는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다짐을 했어도 다시 흘러 내리는 눈물이 부끄러워서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
과장님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뻗어 나를 안아 오셨다. 맥없이 안긴 나는 과장님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뚝, 뚝, 눈물을 흘려보냈다.
울지 말고... 나직이 읊조리는 과장님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눈물이 났다. 울지 말란 말 하도 해서 입 아프다, 이제. 과장님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그칠까..."
과장님은 어떻게든 내 눈물을 그치게 하려고 애쓰고 계시지만, 여전히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다.
어떻게 해야 그칠까, 혼잣말하듯 작게 이야기한 과장님이 품에서 나를 살짝 떼어냈다. 다시 나와 눈을 맞춰 오는 그 때문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눈물에 잔뜩 젖어버린 얼굴이 절대 보기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였지만 내 턱끝을 가볍게 잡아오는 과장님의 손에 다시 고개가 들리고야 말았다.
"......"
틈이 없었다. 과장님의 손에 잡힌 내 턱이 들리고, 내 입술에 과장님의 입술이 맞춰지기까지의 그 짧은 찰나에는.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이 떨어졌다. 아직 내 입술 위에는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당연했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울음이 멈췄다.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된 것이다. 너무 놀라버렸기 때문이다.
"멈췄다."
"......"
"나 이제 가요. 잘 지내고 있어야 돼."
나는 무어라 말할 타이밍도 잡지 못하고. 그 말을 끝으로 과장님은 한 걸음, 두 걸음씩 내게서 멀어졌다.
마지막으로 근사한 말을 해야 했는데,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얼이 빠진 채로 그 자리에 서있기만 했다.
보안검색대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멈춘 과장님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손을 들어 흔들며 안녕, 하고 말하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재생되었다.
"......"
과장님은 그렇게 문 뒤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손을 들어 온기가 남겨진 내 입술을 만져보았다.
짧은 순간 닿았다 떨어진 게, 분명 과장님의 입술이 맞았는데. 뭐가 지나간 건지 정신차리고 깨달을 새도 없이 그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게 바로, 그와의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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