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을 걷다
w. 공 백
날 찾았던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 05 ]
지독한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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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그마한 카페에 가기까지 태형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카페에 도착해서 들어서기까지도 꽤 복잡하고 긴 고민의 회로를 거쳐야 했다. 들어갈까, 말까. 몇 번을 카페 앞에서 기웃대던 태형은 결국 카페의 문을 열고 말았다. 어쩌면 태훈이 봤던 여자가 공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모자를 깊숙히 눌러쓴 태형이 카페 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밤색의 앞치마를 하고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일을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얼굴 중에 공백과 닮은 얼굴은 없었다. 고개를 창 쪽으로 돌린 태형의 마음속에 일순 약간의 안도감과 아쉬움이 들어찼다.
그냥 바로 갈까,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 아르바이트생한테 물어볼까.
태형이 앉은 테이블에 밝은 5월의 햇빛이 가득 찼다.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인 태형의 머리칼 위로 햇볕이 부서졌다. 태형의 기다란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초조하게 두드렸다.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손 끝으로 입술을 매만지던 태형이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의 챙을 얼굴 쪽으로 더더욱 끌어당긴 태형이 카운터에 서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음을 건넸다. 저기, 죄송한데요. 낮은 태형의 목소리에 '김은아'라고 적혀진 명찰을 가슴께에 달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 여기 김공백이라는 아르바이트생 있나요? 태형의 물음에 카운터 너머에 있던 은아가 잠시동안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 … 아, 언니 아직 출근 안했어요. "
" 언제쯤 오는지, 혹시 아세요? "
" 조금 있다가 올 것 같은데. 기다리실래요? "
" … 아니요. 괜찮습니다. "
감사합니다. 태형이 은아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바지 주머니 안에 아무렇게나 집어 넣은 휴대폰이 웅웅대며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려왔다. 휴대폰을 꺼내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오랜 친구인 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김태형! 지민의 전화는 실로 오랜만인지라 태형의 입꼬리가 옅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고개를 숙여 은아에게 무언의 감사의 인사를 한 태형이 유리문을 어깨로 밀며 카페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민이 심심하다는 둥의 말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너는 요즘 뭐하고 지내냐? 벌써 촬영하고 있어? 제 근황을 묻는 지민의 밝은 목소리가 귓가에 댄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 그냥 뭐, 예전이랑 똑같지. 작품 검토하고 있어. 아직 촬영 안 했고. "
" 아 …, 근데 요즘 우리 너무 못 본 것 같지 않냐? "
" … 그러게. 이번 달 안에 한 번 보자. "
안 된다고 하면 뒤진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던진 지민이 곧 보자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지민과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기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태형의 입매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혹여 누군가가 알아볼새라 모자를 여전히 푹 눌러쓴 태형이 차를 향해서 걸어갔다. 제법 뜨거워진 듯한 햇볕에 머리카락 아래로 땀이 흘러내렸다. 거의 달음박질하듯이 걷다가, 깊게 눌러쓴 모자 탓에 앞을 차마 보지 못한 태형은 걸어오던 한 여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앞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태형이 그녀에게 먼저 괜찮으냐고 물었다. 아, 네. 괜찮아요. 괜찮다는 대답을 들은 그가 미안하다는 말을 지나가듯 흘리며 그녀의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찔러왔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벗어나던 태형이 길의 끝을 얼마 남기지 않고 제자리에 바로 섰다. 주저하며 고개를 돌려 제가 잠시 머물렀던 카페로 눈길을 돌렸다. 자신과 부딪힌 여자가 들어갔던 것인지 카페의 유리문 위쪽에 달린 종이 두어번 흔들리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자신과 부딪힌 여자의 목소리가 왜인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던 탓에 태형은 한동안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깊게 눌러쓴 모자 탓에 머리카락이 눈을 아프게 찔러왔다.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 목소리같은데. 유난히 맑았고, 목소리에 봄을 머금은 듯 따뜻한 음색을 가진 사람. 기억해야 할 사람을 잊어버린 느낌에 태형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 누구더라.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면서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 … 김공백? "
골목길 바로 바깥쪽,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의 문을 열려던 태형의 손이 순간 멈췄다. … 설마. 어지럽게 흔들리는 태형의 동공 위로 옅은 색감의 원피스를 걸친 채 부지런하게 발걸음을 옮기던 한 여자의 형상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너였던 걸까…. 갑작스레 파도처럼 밀려오는 갑갑함에 태형이 제 머리카락을 짓누르는 모자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내었다. 다시 가 볼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두어번 쓸어넘긴 태형이 다시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통화 후에 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웅웅거리며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골목길 입구에 멈춰선 태형이 제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었다. 발신인은 태형의 매니저인 윤기였다.
" … 여보세요. "
" 너 어디야. 11시 30분에 스케줄 있다고 분명히 말했지 않냐? "
" … 아, 맞다. "
귓가에 대었던 휴대폰을 잠시 떼어 화면을 켜서 확인한 시간은 벌써 오전 11시 17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빨리 와. 끊는다. 휴대폰 너머의 윤기의 목소리에는 조급함과 약간의 짜증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곧이어 전화가 끊기고, 까맣게 변한 화면 위로 5월의 햇살이 가득 담겼다. 잠시동안 제 휴대폰 화면을 멀거니 쳐다보던 태형이 발걸음을 차 쪽으로 돌렸다. 다음에, 다음에 다시 가 보자.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은 태형이 이내 발로 엑셀레이터를 꾹 밟았다. 운전을 해서 스케줄 장소로 가는 그의 머릿속에는 다음에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보고 싶었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생각이 튀어올랐지만 태형은 애써 그 생각을 지워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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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적당히 맑았고, 햇살 또한 적당히 따뜻했던 그런 날. 내가 좋아하는 날이었지만 내 기분은 좋지 않은 기류에 머물러 있었다. 정확히 은아가 날 찾은 사람의 이름이 김태형이라는 것을 말해준 그 시점부터. 은아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라커룸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한 가지 질문만이 내 머릿속을 유영할 뿐이었다. 넌, 무슨 생각으로 날 찾았어?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졌다가 이름 모를 감정으로 다시 가득 채색되었다. 분노와는 조금 다른 감정.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나는 그저 갈아입은 옷을 넣은 캐비넷의 손잡이만 거세게 그러잡을 뿐이었다. 5년만에 갑자기 날 찾은 너의 행동. 그 행동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고, 5년동안 잊지 않았던 너였는데. 막상 그가 날 찾아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기쁨과 설렘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앞섰다. 아마도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꺼낼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두려웠던 동시에 자신이 없기도 했다.
네 앞에 서서 떳떳하게 이야기를 할 자신과 네 얼굴을, 네 눈을 마주 볼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은 넌데. 내가 너를 떳떳하게 마주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네가 너무 빛나는 사람이 된 탓일까.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아이를 아등바등 키우는 나와는 다르게 너는 대한민국의 톱배우로 활약하고 있었다. 나와 대조되는 네 생활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볼수록 점점 가라앉는 기분에 캐비넷의 손잡이를 놓고 라커룸 밖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 안으로 들어올 때와는 사뭇 다른 내 표정에 은아가 눈치를 살피며, 언니, 무슨 일 있어요? 라고 묻는다. 그에 나는 없다고 답하며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유리벽 위로 아니라는 말과는 다르게 우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축 쳐진 입꼬리를 보기 싫어 나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이 고요한 카페 안으로 비쳐 들어와 모든 사물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오후가 되어 퇴근할 시간이 될 때까지 가라앉은 기분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베레모를 벗어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은 앞치마 위에 올려놓았을 때, 문득 그만 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네가 다시 찾아올까봐. 그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는 내가 강하다고 믿었고, 강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 나는 아직까지도 약하기만 했다. 그랬기에, 나는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캐비넷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점장님께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점장님, 죄송한데 … 저 …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요. "
" … 왜? "
" … 개인적으로 사정이 좀, 있어서요 …. "
" 아 …. "
갑작스럽게 그만두겠다는 내 말에,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계시는 점장님이었다. 그러다가, 잠깐 기다려요. 라고 하시더니 라커룸 안쪽 깊숙히 들어갔다가 몇 분 만에 모습을 드러내셨다. 손에는 월급 봉투로 보이는 흰색 봉투를 꼭 쥔 채였다. 공백씨,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건 월급인데, 너무 열심히 일해줘서 내가 얼마 더 넣었으니까 부담갖지 말고. 퇴직금이라 생각해줘요. 점장님은 내 손에 봉투를 쥐여주시고는 눈웃음을 지어보이셨다. 왜인지 모르게 지방에 계신 엄마가 생각났다. 따뜻한 웃음 탓일까, 나를 생각해주는 그 따스한 말투 탓일까. 혹시,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줘요. 부담 가지지 말고. 그 따뜻함에,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 … 언니. "
" … 은아야. "
" 혹시,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 "
내가 그만둔다는 것을 언제 들었던 것인지 짐을 챙기러 들어간 라커룸에서는 은아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차마 다 끝마치지 못한 은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니야, 그냥 개인 사정 때문에 그만 두는 거야. 팔을 뻗어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은아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너 때문이 아니야, 알겠지? 손으로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은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계속해서 등을 토닥여주자 울음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언니, 연락 … 계속 할 거죠? 의자에서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내 티셔츠의 소매끝을 잡고 은아가 물었다. 울었기 때문인지 코끝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응. 계속 할게. 애써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은아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였다. 갈게. 일 열심히 하고.
안 나와도 된다고 한사코 손을 내저었지만 은아는 기어코 배웅을 나왔다.
손을 흔들기에 나 또한 손을 들어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햇살이 가득한 거리로 걸어 나갔다.
나는…, 너와 마주치기보다는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
정확히 카페를 찾아갔던 날의 일주일 뒤, 태형의 발걸음은 또다시 조그마한 카페로 향했다. 스케줄이 없던 날이었기에 태형의 옷차림은 한결 편한 차림이었다. 물론,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쓴 것은 여전했다. 저번에 갔었던 시간보다는 좀 더 늦은 시간에 태형이 카페의 문을 열었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어서오세요- 라는 인사가 들려왔다. 카라멜 마끼아또를 시킨 후, 예전에 앉았던 자리에 똑같이 앉아서 둘러본 카페 안에는 저번과 같이 공백과 닮은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카페를 구석구석 둘러보는 태형의 눈동자에 일순 허망함이 들어찼다.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진동벨이 부르르 떨리며 불빛을 내었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걸음걸이로 카운터로 걸어간 태형이,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저번에 질문을 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또다시 말을 건네었다.
" … 저기, 저번에 김공백씨, 오늘은 안 나왔어요? "
" … 어? 언니 저번주에 그만 뒀어요. "
" … 네? "
" 모르셨구나. 알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
언제 그만 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태형의 표정은 이미 차게 굳어진 뒤였다. 설마, 내가 왔다 간 후인가. 모자 아래로 언뜻 보이는 차게 굳어진 표정에 은아가 말을 꺼내려다가 머뭇거렸다. 그, 저번 주에 … 오셔서 찾고 가셨다고 말했는데, 그 날 바로 그만 뒀어요. 은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 사이에 따뜻한 햇살과는 반대로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태형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트레이에 놓여진 카라멜 마끼아또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어 카라멜 마끼아또를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커피가 쓰게만 느껴졌다.
따뜻하기만 했던 햇살도, 유난히 시리게만 느껴지는 오늘이었다.
난 왜 그리워해서는 안 될 사람을 그리워하는 걸까.
/
안녕하세요 공 백임미다 ♡
열투숨투하다가 쓰고 있던 푸른 밤을 걷다 올려봐요.
엄청 늦게 왔네요. 아마도 쓰다가 안쓰다가 이래서 그런 것 같아요.
투표하시는 분들이 제 글 보고 힘내서 투표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도 이거 올리고 하러 감미다.
우리 망개도 생일 축하하구요 헤헤
암호닉은 여기에다가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조만간 암호닉 신청 그만 받을까 생각중이에요.
항상 제 글 봐 주셔서 고맙고, 사랑해요.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봐요, 안녕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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