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파란 미용실
w. 비명
“어서오세요. 달파란 미용실입니다.”
달큰한 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굳이 집에서 한참 떨어진 이 미용실에 오는 이유? 그냥 이 남자의 목소리가 좋으니까. 다른 사항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남자의 목소리에서 얼마나 진실됨이 보이는 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진실됨을 아는 데에 있어서 나만큼 밝은 귀는 없을 거라고 난 믿기 때문이다. 성규는 다른 날과 같이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아무렇지 않게 쇼파에 앉았다. 쇼파 앞에는 테이블이 있을 것이고 그 위에 잡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만히 성규는 잡지를 들어올려 페이지를 넘겼다. 음, 이런 내용이 있었군.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척을 하고선 민망한지 헛기침을 또 한 번 큼큼 내뱉고는 가만히 또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손님 여기 앉으세요.”
“…….”
“손님?”
“아, 예? 저, 저요?”
“네.”
웃음기가 가득 찬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손님, 손님. 언제나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졸다가 깬 척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어올렸으며, 아무렇지 않게 비어보이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보았고, 난 아무렇지 않게 웃어버렸다. 그 남자가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나에게는 얼마나 짜릿한 것일 지 그는 절대 모를테지만, 난 지금 몹시 예민해져 있었고 몹시 흥분된 상태인 것이 분명하다. 미용실에 잔잔히 흐르던 노래가 끝나고 다음 노래로 넘어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 익숙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뻔 했다. 움찔, 나도 모르게 몸을 떨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어? 이 노래 아세요?”
“아, 아니요?”
“아, 모르시는구나...”
이 남자가 이 미용실의 주인이고, 이 남자가 '달파란'이란 존재를 알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했다. 이 미용실의 이름을 보고추측하건대 이 남자는 달파란의 팬인 것이고, 달파란을 그리워하는 것이 맞다. 달파란은 3년 전, 얼굴 없는 가수로 앨범을 내고 나서 어떤 프로그램도 출현하지 않은 채로 음악성에만 충실했던 가수였다. 앨범도 딱 하나를 내놓고서는 사라졌으며, 대중적으로 인정해줄만한 데뷔 무대라던가 앨범 홍보도 없이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층에만 널리 알려진 전설의 가수였다. 그 앨범은 인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앨범 베스트 셀러 TOP10 안에 약 3달 간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달파란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을 해버렸다. 더 이야기가 길어지면 너무 당황스러워질테니까.
“제가 미용사 준비 시험 볼 때요.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듣고 봤었거든요.”
“…….”
“제가 진짜 팬이었는데 활동도 없고, 얼굴도 몰라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닫힌 내 눈 틈새로 혹시나 눈물이 새어나오면 일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김성규가 절대 밖에서 울지 않는 이유였다. 눈물이 흐르면 눈가부터 천천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 하고 또 그 눈물을 닦아내려면 제 선글라스를 벗어야하기 때문에, 또 그 상황이 이르면 자신이 곤혹스러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내 눈가에 있는 징그러운 흉터가 드러날테니까. 그걸 보면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 사람이 알아버릴테니까.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세상을 본다.
“여튼, 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빨간색으로 염색해주시겠어요?”
“빨간색? 완전 새빨간색이요?”
“네... 불, 불같이 빨간 색으로요.”
'불같이'라는 표현이 꽤나 생소해서 그랬을까? 약간의 실소가 터져나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웃는 중에도 난 그도 나와 함께 웃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란, 청각에 있어서는 완벽한 법. 그리고 항상 감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당연히 알 수 있었다. 함께 웃고 있다. 좋았다. 무작정 이런 분위기나 상황이 좋았다. 그가 '넵, 알겠습니다!'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자 나는 비틀어진 것 같은 선글라스를 다시 고쳐 썼다.
차갑고 별 반응 보이지 않는 심심한 남자 김성규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불'이었다. 불과 관련된, 뜨거움, 따뜻함, 빨간색, 불을 피우면 나는 특유의 타는 냄새까지 온갖 감각기관에 불과 관련된 것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런 김성규가 지금 빨간색으로 염색하는 건 나름의 도전이었다. 물론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고통이 아니어서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머리 위에 빨간색이 얹어진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져 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그런 아픔들을 딛기 위한 스스로의 자극.
고개 숙여보세요. 고개 잠깐만 들어주세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너무 뜨거우면 말씀해주세요. 이 사람은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아는 인물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친절하다. 물론 내 기억상 내가 가본 미용실이라곤 이 곳밖에 없지만 이만큼 친절한 사람은 요즘 보기 드물었으니까. 혹시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걸까?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걸렸을 때 다가오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과도한 친절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모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친절함과 챙겨주는 태도는 어쩌면 나를 설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기, 혹시... 이름 여쭤봐도 될까요?”
“에? 여기 명찰 있는데. 맨날 달고 다녔는데. 남우현이에요. 우현.”
“아, 아.”
김성규 인생 최대 위기... 아니, 최대 위기까지는 아니고 두 번째 위기다. 이를 어떻게 말해야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지? 이미 바보 같이 '아, 아.'하고 이상한 말을 꺼내놓은 상태여서 빨리 말하지 않으면 안 될텐데? 김성규, 어서 머리를 굴려라. 어서, 빠르게!
“제, 제가 시력이 좀 안 좋아가지고. 아이고, 죄, 죄송합니다. 우현씨.”
“손님도 알려주셔야죠.”
“예?”
“이름.”
다행히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걸리지는 않은 것 같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빨간색으로 염색하고 있으니까 마음이 축 처지는 거겠지? 나 스스로 다른 이유를 대가며 상황을 모면한 핑계거리들을 스스로 되뇌였다. 고개를 들어서 거울을 보았다. 아니, 거울에 나를 비춤으로서 그를 쳐다봤다고 해야지 맞는 표현일까? 그와 눈을 맞추고 싶다. 그의 진실됨을 보고 싶다. 내 귀로 모든 것을 판정하기엔 난 너무 불리한 위치에 서 있으니까. 조금은 지금 이 순간이 원망스러웠다.
“성규요. 김성규.”
안녕하세요! 비명입니다 조금 많~이 늦었죠?
1화를 가져왔는데요 보시다시피 시각장애인 성규와 미용사 우현의 이야기입니다!
뻔하디 뻔한 달달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욥 허허...
암호닉: '볼펜'님, '호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