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 정준일
BGM을 꼭 들어주세요
남자친구 김태형 X 너 탄 X 세컨드 김남준
上
오랜만에 너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아 병신 같이 들뜬 나는 너의 집 앞으로 뛰다싶이 찾아갔어.
우리가 만나는 날이면 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준비하는 너를, 나는 적어도 10분, 길면 1시간.
그렇게 하염없이 너의 집 앞에서 기다렸었지. 그게 여름이든, 겨울이든.
여름에는 더워 죽겠어서 목 뒤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 너를 기다렸어.
너가 나오면 덥지, 하면서 손부채를 해주는 것도 잊지 않고.
겨울이면 너를 기다린다고 얼어버린 두 손을 호호 - 불어내면서 너가 나오기를 기다렸고,
너가 나오면 너의 작은 두손에 따뜻이 데워둔 핫팩을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
그렇게 몇년을 나는. 더운 내색, 추운 내색 한번 안 하며 너의 집 앞에서 너를 기다렸어.
그래, 너의 집 앞에서 나는 항상 그렇게 오래 기다렸었어.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오늘은 참 이상하게도 너가 먼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거야.
나는 그게 이상한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웃으며 너를 내 품에 꼭 안았지.
“많이 기다렸어?”
“추웠지, 어구. 어떡해 내 새끼. 이리와, 오빠 품에 안겨.”
잠자코 묵묵히 내 품에 안겨 있던 너는 내 품을 슬며시 밀어내며 내 손을 잡았어.
이제서야 기억한건데, 너의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우리 커플링, 그거 없더라 네 손가락에.
바보 같이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이쁘다고. 언제봐도 이쁘다고
속삭이며 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로 너를 데리고 갔지.
“여주야, 우리 뭐 먹을까. 오빠가 맛있는거 사줄게.”
“나는…”
“프라푸치노 먹을까? 시럽 세번 펌핑해서, 어때. 맛있겠지.”
“난 아메리카노 먹을래."
“… 아메리카노? 오늘은 달달한 거 안 마시네. 너 쓴 거 싫어하잖아.”
“... 이제는 달달한 거 안 좋아해.”
사람 입맛이 그 짧은 시간동안 변하는 거.
그거 참 쉬운 일이 아닌데 난 그냥 넘겼어.
또 바보같이 너가 어디 아픈건가 걱정을 하면서 너의 이마에 내 손을 올렸는데, 넌 내 손을 차갑게 쳐 버렸고.
갈 곳을 잃은 내 손은 잠시 허공에 머물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지.
덩달아 내 마음도 불안해졌고.
“…어디 아파? 약 사다줄까? 오늘 괜히 만난…”
“…오빠.”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봐. 오빠가 저기 건널목에 약국…”
“할 이야기 있어.”
맞아. 나 사실 회피하려고 했던거야.
너가 그 무거운 말을 꺼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오늘따라 너답지 않게 안 그래도 낮은 분위기를 더 낮게 깔며 내 눈을 바라보는데 오빠가 마음이 안 아플리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조금 덜 아파보려고 그랬는데 실패했네.
“… 여주야.”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나 봐. 왜 내 눈 피하는데.”
내 눈을 바라보며 생긋이 웃어주던 넌 더 이상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고,
갈 곳을 잃은 너의 시선은 자꾸만 바닥을 향했어.
톡 - 하고 건드리면 눈에 맺힌 눈물을 펑펑하고 쏟아낼 것 같은 너의 손을 꽉 잡았어.
난 그거 밖에 할 수 있는게 없더라.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네 손을 잡아주는 일.
“오빠, 정말 미안해.”
예상했지만 너는 나에게 사과를 하며 너의 그 작은 손을 내게서 빼내려 안간힘을 쓰며 힘을 주었고,
나는 그런 너를 보며 속에서 왈칵 올라오는 무언가를 참으며 너의 손을 더 꽉 잡았어.
“손 놓지마. “
“…”
“손 놓으면 나 갈거야.”
“진짜 갈꺼야. 놓지마.”
“오빠.”
" 뭐가 미안한데."
" 너 나한테 미안할 짓 안 했잖아. "
“싫어. 나 진짜 싫어 여주야. 손 놓지마. 오늘 진짜 왜 이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굳어져가는 너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며
두 눈에 뜨겁게 차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꾹꾹 눌러담고 따뜻한 목소리로 너에게 다시 물었다.
오랜만에 만나자고하고는 갑자기 왜 이러는데, 응?
여주야. 대답 좀 해 줘. 나 좀 봐봐.
“나 만나는 남자 생겼어.”
“그래서 오빠 연락도 일부러 다 피했어. 그 남자 만나려고.”
" 반년 다 되어가. 오빠 몰래 그 사람 만난거."
“... 김여주”
“오빠보다 한살 많아. 김남준이라고.”
“아메리카노도 그 남자한테서 배웠어.”
“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나 사람 오래보면 지겨워지다 못해 질린다고.”
“…”
“ 남준씨는 배려심이 많아."
“오빠보다 나이 한살 더 많은게 다른점이 있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많더라고.”
“오빠처럼 징징거리지도 않아. 다 받아줘, 감싸 안아줘.”
“배운 것도 많아서 내가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야. 딱 그런 사람이야. 내가 찾던 사람.”
" 여주야, 오빠는 ..."
" 오빠는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까.."
"오빠가 .. 아니 내가 ... 방금 이야기 다 못 들은 걸로 할테니까 ... "
“...그러니까”
“...하지마.”
“우리 그만 만나자.”
툭 -. 내게 이별을 고하며 마지막 뜨거운 숨을 뱉은 너의 볼줄기에서 뜨거운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어.
우는 너를 보며 난 또 병신 같이 손을 뻗어 너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고,
너는 다가오는 내 손길을 보며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렸지.
그리고 너는 네 눈물을 손으로 슥 하고 닦아내더니 가방을 챙겨 일어나 자리를 떴어.
바보. 바보 김태형.
머저리같은 새끼.
바람 피웠다잖아.
그 엿같은 아침 드라마에서 바람피는 장면을 볼 때는 그렇게 화를 내더니
왜 너한테 그 드라마 같은 일이 닥치니까 화는 못 내고 울음을 참고 있어.
드라마 보면 남자 주인공들은 벨도 없이 바람핀 여자친구에게 매달리잖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나 아직도 너 사랑하니까, 제발 다시 한번만 더 생각해달라고.
차라리 너도, 너도 그래야지 김태형.
그녀에게 화를 못 내면 더 매달려야지 병신같이 왜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어.
쫓아가. 쫓아가서 말해. 이렇게 끝내기 싫다고.
손목을 붙잡고 멈춰 세워.
그리고 품에 안고 말해. 아직 사랑한다고.
아니면, 그것도 아니면.
지금 그녀 앞에 천천히 멈추는 차에서 내리는 그 새끼 멱살을 잡고 주먹이라도 날려.
분이 풀릴때까지 욕하고 때려버려.
근데 그거 아니 여주야.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못할거야.
차에서 내리는 그 새끼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 너를 보면서
꽉 막힌 숨을 터뜨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는.
호구새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