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OST - 월야밀회
BGM을 꼭 들어주세요
중전 너탄 X 왕 전정국
下
반란의 씨앗을 제 손으로 없애고 궐로 돌아온 정국은 환복을 한 후 제일 먼저 여주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너에게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느렸다.
이 더러운 손으로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지 않는다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궐 밖에서 일어난 일이 그녀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길 그리 빌고 또 빌면서 그녀의 처소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 쨍그랑!
- 마마...!
- 마마, 아니되옵니다 !! 마마 !!!!
“ 저하 .. 지금은 마마께서 …! “
그녀의 처소에 가까워지자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지금은 들어가시면 안된다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어린 궁녀를 옆으로 밀치고
너의 침소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처참했다.
“ 놓아라.... 나도 죽을 것이다... “
“ 마마 ..! 마마 아니되옵니다..! “
“ 이거 놔..! “
제 손에 깨진 화병 조각을 들고 피를 뚝뚝 흘리며 죽을것이라 울부짖는 그녀의 행동을 말리고 있는 궁녀들이 보였다.
순간 정국의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정국은 여주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뾰족한 조각을 제 손으로 빼앗았다.
그리고 위태로운 여주를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안았다.
“ 빈. 빈, 제발 …! “
“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
“ 제발, 내가 다 잘못했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제발 …”
한참을 제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며 버둥대는 여주를 부서질 듯 세게 안아주었다.
그녀의 머리와 등을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자 여주는 제 앞에 보이는 정국의 가슴팍을 밀치며 떨리는 동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 저하, 저하 아니지요? “
“ …. ”
" 사람들이 그러더이다... 다 죽었다고... "
“ 설마 … 저하가… 저하가 그러셨습니까..? "
“ 빈… 내가, 내가 다 설명을... “
여주의 얇은 어깨를 잡고 그녀의 눈을 저의 눈과 마주치게 한 정국은 깨달았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그리도 해맑게 제게 미소를 보여주던 그녀는 저를 보며 떨고 있었다.
“ … 미안, 미안합니다… “
“ … 하아 … 이건, 이건 아닙니다. 저하께서 .. 아아… “
“ 미안합니다 빈…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
떠나지마라. 제발 떠나지만 말아다오.
“ 하아... 저도 다 압니다… “
“ 빈… “
“ 저도 죽이시려 오신 것 이라면 … 저도, 제 아비처럼… 그리 하실 것이라면… “
“ 빈!!!!!!! “
다 내 탓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지금 이 지옥같은 상황도.
내 품에서 이리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는 너도.
다 빌어먹을 내 탓이었다.
* * *
숨이 넘어갈 듯이 제 품에서 눈물을 흘리다 정신을 잃은 여주를 두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돌린 정국에게 돌아온 것은 자그마한 옥새였다.
지긋지긋한 조정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정국의 아비는 세자인 정국의 공을 빌미로 반역자들을 처단한 제 아들에게 모든 짐을 떠 넘기다시피 조정을 떠났다.
선왕이 조정을 떠나자, 정국은 자연스레 왕이 되었고 세자빈이었던 여주도 그의 단 하나뿐인 왕비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아직은 많이, 아주 많이 여린 정국과 여주가 18세였던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 전하, 중전 김씨를 폐위하셔야 합니다!
- 중전 김씨는 반란을 꾀한 영의정 김씨의 여식입니다. 살려두시면 훗날 큰 화를 부를 것이니 속히 폐위하셔야 합니다!!
-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정국이 미간을 좁히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곧 지독한 열병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 폐위.. 폐위… 폐위..!!!!! “
“ 그대들은 중전의 폐위가 아니면 할 말이 없는 것이오? “
“ 한번만... 단 한번이라도 더 폐위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가는... 그때는 그대들의 목이 날아갈 줄 아시오. “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중전의 폐위를 속히 진행하라 소리를 키워대는 대신들의 성화에 한참동안 아파오지 않던 심장 부근이 다시 아파오는 것 같았다.
중전이 폐비가 된다면 제 여식을 중전의 자리로 올리려는 뱀 같은 대신들의 얼굴을 더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칼을 빼들어 저들의 목을 벨 것 같아 제 옆에 있는 호위무사 태형에게 손짓을 했다.
“ … 중전은 어떠한가. “
“ ... 그대로이십니다. “
“ … 오늘도 날 보지 않겠다 하던가. “
“ … 예. “
여주를 못 본지 스무밤이 지났다.
매일 밤 태형을 보내 그녀가 머무르는 곳에 보내 그녀의 안부를 묻고 그것을 다시 나에게 전달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오늘따라 머리가 지끈거리며 깨질듯이 아파오는데, 너가 참 보고싶구나 여주야.
“ 아프다고 하거라. “
“ 예..? “
“ 아프다고, 내가 아프니 제발 오늘 밤만 나와 있어달라. 그리 전하여라. “
“ … 명 받잡겠습니다. “
* * *
- 전하, 중전마마께서..
“들라.“
네가 도착했다는 내게 와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릿한 심장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켜 앉으니 굳은 표정으로 내 처소에 들어오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스르륵- 하고 문이 닫히자 여주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셨네요.”
“…안 올 줄 알았는데.”
“….”
넌지시 건네는 나의 말에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는 너의 모습에 또 다시 가슴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왜 이리 수척해진 것이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그녀가 수척해진 이유도, 웃음을 잃은 이유도 다 내 탓이었다.
괜시리 그녀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 눈 앞에 보이는 술잔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 몇잔을 입에 털어넣고 나니 평소에는 오르지도 않는 취기가 네 앞에서는 잘도 오르더구나.
“보고 싶어서요.”
" ... 보고싶어 이리 불렀습니다. "
네 손을 잡고 싶었다.
네 우는 얼굴을 더 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내 품에 널 꼭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하루에 수백번도 마음속으로 외친 내 진심이었다.
그녀에게 절대로 내 보여서는 안되는 나의 진심이었다.
너에게 내 진심까지 내 보인다면 나는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네 얼굴을 보자 휘몰아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담자 보고싶었다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보고싶었다 말하는 것조차 힘겨운 난.
보고싶었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크게 일렁이는 너의 눈동자를 보는 난.
결국은 네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 가까이 오지마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뗀 너는 역시 나를 밀어내는구나.
점점 내 발걸음이 그녀의 쪽으로 향하자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제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송골송골 그녀의 아랫입술에 맺히는 피를 보자 기분이 저 나락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입술.”
가까이 다가가자 질끈 눈을 감아버리는 너의 아랫입술에 내 엄지 손가락을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엄지의 움직임을 따라 풀려가는 그녀의 아랫입술과 그런 내 엄지에 뭍은 그녀의 혈흔은 점차 사라져가는 취기를 다시끔 올라오게 만들었다.
" 아픕니다. "
" ... "
“어떤 방법을 써도 안 오시더니.”
“아프다고 하니까.”
내가 드디어
“ 오시는 연유를 “
“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미친게로구나.
그녀가 보기에 나는.
내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눈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비치는 나는.
얼마나 잔인하게 비추어질까.
제 아비를. 제 어미를. 그리고 제 모든 것을 앗아가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제 앞에 있는데.
열여덟. 제 모든 떨림과 외로움을 함께한 지아비라는 작자가 제 모든 것을 짓밟아버렸는데.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기는 커녕 제 마음을 받아달라 떼를 쓰고 있으니.
나 같으면, 만약 내가 여주라면 아마 내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을 것이다.
“ … 밉습니다. “
“ …. “
“ 절 저만치 절벽 아래로 내모시는 전하가 하염없이 밉습니다. “
“ …. “
“ 아픕니다. 너무 아픕니다… “
진심이었다.
바들바들 떨며 토해내는 그녀의 진심.
나를 보자마자 내 가슴팍을 때리며 울분을 토해낼 것 같았던 그녀는 오히려 나를 보며 떨었다.
그리고는 한글자 한글자 천천히 내게 토해내는 그녀의 진심.
" 차라리... 차라리 전하께 이리 고하면 되겠습니까. "
" .... "
“ … 제 아비가 벌인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
“ … 중전”
" 아비가 숨기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
" 반역을 꾀한다는 것도, 다 알았습니다.... 허나 묵인하였습니다.... "
" 중전... 제발..."
" 대신들 앞에서 말하겠습니다... 제가 ... 제가 다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눈 감아준 것이니 ... 저도 죄가 있는 것이라고 .."
“ ... 그러니 부디.. “
“ 아니, 아니됩니다. “
“ 중전, 다 내 잘못이니 제발.. 제발 그 말은 꺼내지 마세요. “
“ .... 저를 폐위시켜달라고 …. “
뜻하지 않게 왕위를 얻고 없어져 버릴 것만 같은 너를 중전으로 앉히고 나니 나는 모든 것을 얻은 것만 같았다.
네 마음이 이미 내게 멀어졌어도, 나는 다 괜찮다. 너 하나를 지킬 수 있었으니 나는 다 괜찮다 수십번을 세뇌시켰다.
허나 이리 내 앞에서 구슬피 울며 내게 ‘폐위’라는 단어를 그리도 쉽게 꺼내는 너를 보며 내가 어찌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으리.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울음을 참아보이려 하는 너에게 천천히 내 손을 뻗어 너를 내 품에 가두었다.
네 앞에서 자존심을 버려둔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그저 내 최후의 발악이었다.
너를 놓쳐버리면 내가 미칠 것만 같아 네 앞에서 외치는 최후의 발악.
“ 여주야… “
“ …. 흐으… “
“ 나는 너를 … “
“ …….. ”
수천번을 가슴속으로 외쳤던 나의 진심을.
일렁이는 울대를 가까스로 삭히며 너에게 전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를 연모한다....
내 속이 썩어 문들어져도 너에게는 닿지 못할 나의 진심.
오늘도 묵묵히 멍든 속에서만 맴도는 나의 진심.
그러니 부디. 부디 내 사랑아. 떠나가지 말아다오.
지독한 열병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