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바꼈어요!
01. 운수 좋은 날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진 것부터 시작해서, 늘 짝짝이로 그려지던 아이라인까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그려졌다. 집을 나오는 순간 늘 놓쳤던 버스도 오늘은 바로 탈 수 있었고, 사람이 많아서 못 볼 것 같았던 영화도 단 두자리가 남았을 때 마지막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그랬다.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은 날인 것 같았다.
내 앞에서 이 자식이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김여주. 우리 헤어지자."
"뭐라고?"
"헤어지자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너 좀 질려. "
어이가 없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영화 얘기도 나누고 즐겁게 카페에 온 것 같은데. 갑자기, 그래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게 어이가 없다. 오늘 무슨 날인가? 혹시 서프라이즈? 몰래 카메라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성우는 그저 내 앞에서 아무런 표정없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다. 진심인거다. 성우는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인거다.
"너 진심이야?"
"어. 진심이니까 그만하자."
이 말을 끝으로 성우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옹성우. 야! 문을 열고 가버리는 성우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지만 그게 끝이었다. 성우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정말로 끝이었다. 나는 멍하니 서있다가 자리에 주저앉듯이 앉았다.
정말 끝? 이게? 허무했다. 내 3년의 연애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나다니... 기분좋게 시작한 하루는 최악의 결말로 끝이났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
"김여주, 그만 마셔."
"나쁜 놈... 지가 뭔데, 감히 날 차? 김여주를?"
"그래. 알겠으니까 좀 그만마셔."
"종현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 자식이 나보고 질린다고 그랬다니까?"
"후... 그래. 옹성우가 나쁜 놈이네."
"아니야. 성우 욕하지마."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카페에서 나오면서 나는 종현이에게 연락을 했다. 6시도 안된 이른 시간이었지만, 성우와 헤어졌다고 술이나 마시자는 나의 연락에 종현이는 30분도 안되서 나왔다. 그리고는 쭉 술을 마시다가 지금의 상황까지 이어졌다. 나는 술을 마시고, 종현이는 말리고. 남들이 보면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었겠지만, 나는 정말 진지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현이는 나를 말리다가 포기했는지 가만히 앉아서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실 웃으면서 말이다.
"종현아, 뭐해?"
"수연이랑 카톡."
"좋냐?"
"당근이지."
종현이는 상상만해도 좋다는 듯이 바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넌 좋겠다. 수연이랑 오래오래 만나라. 한숨을 쉬며 말하자 종현이는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보고는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6시도 안되서 만났는데 벌써 11시라니, 참 오래도 마셨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짐을 챙겨 일어났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종현이에게 어느 쪽으로 갈거냐고 물어봤다. 종현이는 수연이랑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며 영화관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나는 영화관과 반대쪽 방향이여서 따로 가자고 했다. 종현이도 얼른 가고 싶어하는 분위기였기도 하고.
"혼자 가도 괜찮겠어?"
"당근이지. 애도 아니고. 나 많이 안취했어."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진짜 빨리 가야되서 못데려다 주겠다. 미안."
"괜찮다니까. 얼른가."
종현이는 인사를 하고선 먼저 갔다. 나는 가만히 서서 휴대폰을 보았다. 나쁜놈. 진짜 끝까지 연락도 없네. 갑자기 울컥했다. 불과 몇시간전이지만 헤어졌을 때는 나오지도 않던 눈물이 나왔다. 고여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자 더 서러워졌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정말 추했을거다.
엉엉 소리까지 내면서 걸어 가는 데 앞에서 오던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질 뻔했다. 나는 순간 뒷통수가 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넘어지지 않으려고 앞의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잡아 갑자기 쏠린 무게중심에 뒤로 넘어갔다. 물론 그 사람을 잡은 나도 함께. 아, 진짜 되는 일 없다.
"..."
"..."
"..."
우리는 넘어진 그 상태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왜냐고? 넘어지면서 이 사람과 입술이 닿았기 때문이다.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주위가 어두워서 다행이었지, 아니였으면 이 사람과 어색하게 눈을 마주칠 뻔했다. 그리고 한참동안이나 정적이 흘렀고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나를 밀치며 일어섰다.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아... 네."
"하지만 앞도 안보고 걸어오신건 그쪽도 잘 못한 일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매력적인 목소리의 남자였다. 남자는 단호한 목소리로 잊으라고 말하며 떨어진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갔다. 남자가 가고 나서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트를 털고, 떨어진 휴대폰을 주웠다. 팔을 굽히자 조금 아파왔다. 아마 넘어지면서 쓸린 것 같았다. 아, 정말 오늘은 최악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눕고 싶은 걸 참으며 화장을 지우러 화장실로 갔다. 불을 켜고 거울을 보자, 오 마이 갓. 울어서 그런지 다 번진 마스카라가 볼을 타고 검은 길을 만들었다. 아까 전, 주위가 어두워서 그 사람이 자신의 이런 몰골을 못 본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힘든 하루였다.
***
평소보다 몸이 노곤한게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왠지 이불도 더 폭신폭신하게 느껴지는 게, 오늘은 정말로 더 자고 싶었다. 아침이면 울려야 할 알람이 아직도 울리지 않은 걸로 보아 아직 더 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눈이 감기려는 찰나, 전화가 울렸다. 베개 근처에 있을 휴대폰을 찾아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휴대폰이 잡혔다. 여전히 눈은 감은채로 대충 화면을 밀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제 밤에 너무 찬바람을 많이 쐰 탓이 목이 잠긴 것 같이 낮은 목소리가 나왔다. 아프다고 쉴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수화기 저편으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쪽 누굽니까?
"... 네?"
-후... 일단 거기 가만히 계세요.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아침부터 뭐야?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눈꺼풀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불 속에서 나왔다. 일찍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익숙한 내 방이 아닌 낯선 곳이 보였다.
여긴 어디...? 혹시 술이 너무 취해 다른 곳으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술에 취해 다른 곳으로 왔을리가 없다. 어제 분명히 집에 와서 화장을 지운 게 정확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술이 덜 깨서 헛것을 보는 걸까... 몇 번이나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 봤지만, 방안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설마 꿈일까... 세수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서자 왠지 시야가 평소보다 높아진 것 같았다. 내 잠옷은 이런 색이 아닐텐데. 고개를 숙이자 보이는 단정한 체크무늬의 잠옷과 허전한 가슴 언저리가 낯설었다.
설마. 서둘러 가슴을 만져보았다. 없다. 평평했다. 설마.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봤다.
"...?"
거울 속에는 처음 본 것 같지만 어딘지 익숙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굴을 만져보았다. 거울 속의 남자도 얼굴을 만졌다. 뺨을 꼬집어보았다. 거울 속의 남자도 뺨을 꼬집었다. 그러니까 저 남자가 나고, 내가 저 남자라고? 결론이 나자 바로 옷장으로 향했다. 원래의 내 몸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가도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 것도 몰랐지만 무작정 가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옷장에서 아무 옷이나 대충 꺼내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는 와중에 어떤 곳인지 대충 살펴보니 시설이 정말 좋았다. 돈이 많은가 보다. 쓸데 없는 생각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빠르게 로비를 가로질러 가는 데, 출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어떤 여자를 막고 있는 것 같았고, 관리자에게 막힌 여자는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나가려면 그쪽으로 가야했기에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궁금하기도 했고.
"저 진짜 302호 사는 사람이랑 아는 사이 맞습니다!"
"그런 수법이 한 두번인줄 압니까? 그분이 아무나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 진짜 미치겠네."
가까이 갈 수록 관리자와 여자가 나누는 대화가 자세히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는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계속 실랑이를 벌였고, 내가 가까이 가자 관리자는 여자를 막고 나를 돌아봤다.
"오셨습니까? 요새 하도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 네 뭐..."
나를 아는척하는 관리자에게 대충 답을 하고 나가려는데, 관리자 뒤에 있던 여자가 나를 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그 목소리에 여자를 본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엔 내가 서있었다.
***
하핫....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몸이 바꼈어요! 작가 미녀단장입니다.
처음으로 글잡에 글을 썼는데 재밌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네요..ㅎㅎ
글 길이는 괜찮으셨나요ㅠ-ㅠ 제가 쓴다고 썼는 데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모르겠네요ㅠㅠㅠㅠ
혹시 분량이 너무 작은 것 같다 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담편은 더욱 분발하여 더 길게 열심히 쓸게요!!!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