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 02.
by. 8월의메리
또각또각.
구두는 언제나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침마다 힘든 지옥철을 견디며 나는 무얼 위해 일을 할까, 돈이 전부인 것일까 .
쓸모없는 질문에 답을 얻지도 못하면서,
반복적인 일상에 반복적인 질문을 한다.
조금 더 내 인생이 특별해질 수는 없는걸까,
헛된 희망을 품으며. 쓸데없이 깊은 고민에 빠져본다.
"아앗.."
역시. 뭔가 뒤틀려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주일 전에 산 구두의 굽이 부러질 리가 없다.
평범함을 추구하면서 특별하기를 바라는 게 못된 심보일까.
그래서, 이렇게 조그마한 욕심에 조그마한 벌이 내려오는 거라고 말도 안되는 망상을 한다.
인상을 쓰며 발목이 부었을까
확인하려던 찰나,
" 여주씨, 어디 다치셨어요?"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서영호 팀장님.
나의 구두소리와는 다르게 묵직한 그의 발소리는 뭔가 모르게 달라보였다.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처럼
검정색의 수트가 묘한 인상과 맞물려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분위기에 먹혀,
마음을 다해 다가가질 못하는 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저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아, 팀장님.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하..하..."
갑작스레 허리를 곧세우는 나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순간적으로 커진 서영호 팀장님의 눈을 피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굴린다.
그러다,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에 시선을 옮겨본다.
짙은 눈썹은 타인을 향한 방어적인 자세와 닮은것 같다.
습관처럼 치켜세우는 눈썹은 위압감과 존재감이 되어 돌아와
고풍스러운 서양 엔티크 가구로 채워진 방 중앙에
나홀로 고고하게 전시되어 있는 값비싼 백자를 보는 듯 했다.
거기에,
부드러운 웃음과 목소리의 달달함은
중독적인 향을 내뿜어
마치 바라지도 않는 갈망을 하게 만들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내가 이상했던 것인지,
되물어 온다.
" 여주씨 발 많이 부은 것 같은데... 접질렀어요? "
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에 넣은 채 허리를 숙여 나의 발을 보려 다가오는 서영호 팀장님의 행동은,
뚫어지게 쳐다본 내 잘못임이 분명했다.
" 아, 아뇨 !. 그냥 ,
구두가 좀 꽉 끼는 것 같아서요. 굽이 이상한가 싶어서 잠깐 확인해봤습니다...하하.. "
괜히 식은땀이 났다.
하지 않아도 될 거짓말은 하는 건
짙은 향을 내뿜는 자에게 다가간 홀린 자의 죄다.
"아.. 그럼 다행이네요. "
"저 그런데 , 우리 팀 회식 내일이라고 했는데 맞나요?"
살았다.
나의 표정을 읽은건지,
아니면 이러한 반응이 익숙한 것인지.
결론은
매너를 지킬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사실
내 눈과 ,
감정과 ,
마음이
이미 서영호 팀장님의 모든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매혹적인 향이다.
"네 맞습니다. 장소랑 시간 한 번 더 확인해보겠습니다."
"Oh, No. 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오, 죄송해요.
여주씨 부담주려던 건 아니었어요."
손사레를 치는 그의 모습에서.
영어에 익숙한 그에게서.
소리없이 인지되기도 전에 무언가가 나의 시간을 스쳐간다.
"아.. 아니에요! 그냥 그게 마음이 편해서..."
"네?.. Ok, 그렇게 하세요 그럼.
ㅎㅎㅎ ,너무 감사해요 여주씨 "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괜히 오바했나....
나란년 오바질했는게 틀림없다.
의도치않게 그를 붙잡아둔 나의 행동이 바보같았다.
생각에 잠기지만 않았어도.
괜히 잘보이려 한 행동처럼 보일까 그게 걱정이었다.
"어머 , 여주씨 서영호 팀장님이랑 벌써 친해졌어?"
오지랖 넓으신 우리 대리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질문부터 하시는 우리 대리님.
하. 그래 자기보다 어린 분이 팀장이라니.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이 관찰대상이 될 수 밖에.
이제 또 소용돌이속의 줄타기 전쟁이 시작되는 건가.
문 밖으로 지켜보고 있었는지
대리님은 궁금증을 쏟아낸다.
"아뇨, 지나가다 마주쳤는데 회식 장소랑 시간 때문에 잠깐 이야기 했어요."
평범한 생활을 원한다.
아무 탈 없이 그렇게 물 흘러가듯이, 바다가 아닌. 조용한 강가처럼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눈에 띄지 않는 강가 주변의 조약돌처럼.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어 발악을 해본다.
모순적이게도, 특별한 생활에 대해 꿈꿨던 몇 분 전의 내가.
평범하기를 바래본다.
"아.. 그렇구나 근데 서영호 팀장님은 여친 없으시대? "
없으신 걸까.
없어도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자체로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게 더 어울릴것 같았다.
"음....하하 제가 그건.. 잘 모르겠네요"
제발. 더이상 묻지 않기를.
" 아니 진짜 요즘에는 잘생긴 사람이 능력도 좋고 성격도 좋다더니 서영호 팀장님이 딱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오늘은 누가 미로속에 나를 내던진 것 같다.
꼬리의 꼬리를 문 질문을 회피하는 학원이라도 있으면 당장 끊을 것 같은 마음이 불타오른다.
여기서 '맞다'라고 대답해버리면 나는 서영호 팀장님을 좋아한다고 소문날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내가 배운 사회 생활 중 하나지 . 암 그럼. 절대 안되지.
"서영호 팀장님이 나이가 어리시지만 능력이 대단하시잖아요.
거의 드물죠 하하..불가능한 일이라고 할수 있죠."
"흐음.. 그건 맞아...
아!! 내일 회식있지!
근데 특이하게 왜 회식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하냐."
"아.. 서영호 팀장님이 고기구워먹는 것보다는
다같이 조용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곳 원하시더라구요.
와인 주문 넣어놓으신거 보면..
시끄럽게 하고 싶진 않으신가봐요.
차라리 시끌벅적하게 소주 드링킹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와.. 그렇구나...
고급지다 고급져
뭐 나란 인간이 와인을 알겠냐만. 역시 집안이 좋아서 와인도 주문할줄 알고 안그래?."
동의한다는 짧은 고개짓과 웃음으로 대신 대답을 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누군가에게 붙잡혀 또 다른 질문들로
나를 곤란하게 하려는 운명의 골탕짓을 벗어나기 위해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6시 30분,
누군가 나를 붙잡기라도 할까. 열심히 서두른다.
"안녕히계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집에 가는 길에 대충 도시락이나 사서 집에 빨리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목도리를 분명히 들고 나왔는데 막상 하고 나가려니 보이지가 않는다.
허겁지겁 뛰어오다 떨어뜨린게 분명했다.
어디로 찾아나서야 할지 순간 막막해서 힘이 빠졌다.
그냥 내일 찾을까,
혹시 누군가가 주워다 인포데스크에 놔두겠지.
아.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그냥 버리시려나.
어떡하지.
오늘따라 뭐가 이리 꼬이는지.
다시 가야할까 그냥 빨리 퇴근이나 할까
허둥지둥대며 갈까 말까.
한 발자국 내딛었다 다시 뒤로 가려다 앞으로 가며
누가보면 탭댄스라도 추는 거라 생각할만큼
생각을 따라 몸을 움직이다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생각보다 추운지,
회사입구의 큰 창문들은 하나같이 김이 차서 밖이 보이지가 않는다.
다시 되돌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섰을 때,
" 하하, 여주씨는 뭐가 그렇게 생각이 많으신거에요?"
언제부터 보고 계신건지, 뒤에서 우두커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웃음으로 서있는 서영호 팀장님을 마주해야했다.
"아.. 팀장님.."
이 바보.
아까, 인사할때 확인할 걸. 팀장님보다 먼저 나가는 머저리로 생각했을텐데.
분명히 다 퇴근하셨던걸로 기억하는데..
하.. 미친 군기빠진 신입사원이 된 것이 틀림없다.
혹시 몰라 자동적으로 뱉은 인사말에 잘못이 없었나 되짚어 보며
"아, 아뇨 괜찮습니다. 목도리를 놓고와서 다시 갈까말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아..'
풋, 하며 웃는 그에게서,
반달이 되는 눈과 눈썹이 마치 저녁 하늘의 달이 되어
달빛을 머금은 선선한 공기로 전해져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분명히. 아까와는 다른,
차분하다 못해
산뜻한 느낌이다.
"아, 저..먼저 가보겠습니다 팀장님! 저 때문에 늦으시면 어떡해요 얼른 가보세요 !"
"네? 어딜 늦어요?"
"아... 어 그게 아니라 제가 붙잡아 두신건가 해서.."
"하핫, 아뇨 전혀요.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여주씨."
"아!, 그리고 여기 목도리요.
여주씨가 뛰어가시면서 흘리시는 거 같길래 뒤따라 나왔는데
설마 회의실 문 앞에 버리시려고 했던 건 아니죠??"
오마이갓.
설마 지금 농담하시는 건가.
북실북실한 나의 빨간 목도리여. 오늘따라 왜이리 초라해보이는걸까.
평소에 보이지도 않던 실밥들과 엉켜있는 잔실들이 눈에 들어온다.
초라하다 못해. 얼굴이 붉어진다.
"어.. 제가 농담이 심했나요? 아..죄송해요. 혹시 중요한거라면.."
"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팀장님께서 농담하시는 걸 처음봐서...농담인지 진심인지 뭔가 저도 모르게...
그 버리려고 했던게 아니구요..아 저..."
"푸하하하, 여주씨 너무 반응이 온 몸으로 나타나시는 거 아니신가요..
아 죄송해요. 하핫, 여기요.
저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는 농담하는게.. 서로 편한 관계가 아닌 이상 힘들더라구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저런 매력적인 입꼬리는
매서운 눈빛에 가려져 보지 못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이지, 나에게는 가혹할 정도였으니.
" 그럼 여기요. 잘 하고 나가세요.
밖이 굉장히 추운것 같아요.
그럼 정말 내일 뵐게요"
뒤돌아 나가는 그의 모습에 황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안녕히가세요. 내일뵙겠습니다 팀장님."
나무라도 된것마냥 그 자리에서 우뚝 서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한건지 안한건지 정신이 없다.
나 무슨 말을 했었지.
그의 웃음이.
그렇게 강력한지 몰랐다.
오늘은 집에가서 라면을 먹어야겠다.
따뜻한 침대보를 둘러싸고
라면에 계란을 풀어 치즈를 넣고 후후 불며
그렇게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어,
육성으로 풋 하며 웃는 내가 순간적으로 어색해져 목도리를 휘휘 두르며 경쾌한 발걸음을 옮겼다.
좋은 날이 올거라는 기대감과.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형. 여기요!"
손을 세차레 흔드는 상대방을 발견한 영호가 다급히 뛰어간다.
" 해찬아 전화하지 언제부터 기다렸어?"
모순적인 순간이
언제든지 일상생활속에서
언제든지 자리잡고 있다는걸 걸 왜 깨닫고도 지나치는 걸까.
이기적인 욕심때문인걸까.
아니면,
지독한 집착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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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왔어요!
갑자기 댓글 달아주신 분들이 늘어서 행복하네요 ㅎ
아직은 어떤식으로 풀어갈까 구상중인 부분이 많아서
늦어지고 있어요 ㅠㅠ
더군다나 목감기에 코감기까지 ㅠㅠ
여러분들 감기 조심하시구요
다음편에 뵐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