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그의 슬픔
w. 겨울의 봄
오늘은 왜 사는거야.
타닥타닥, 키보드 위를 오가는 정국의 손가락이 멈춘건 그리 오래 지나지 못한 후다. 오늘을 왜 살까, 내가. 마감이라고 써있는 달력에 시선을 한번 두었다 도로 밝은 노트북 화면으로 고갤 돌린 정국은 이내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조금만 쉴까.
침대 위로 몸을 던져 누운 정국은 제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몇 번 더듬거리더니 이미 여러번 열었다 닫았다 하는 탓에 이음새 부분이 반쯤 튿어진 -그렇다고 일기장이라고 하기는 뭐한- 정국의 손바닥을 조금 더 벗어나는 크기의 수첩을 꺼내 들어선 흰 종이 위로 꾹꾹 힘주어 글자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2017년 9월 1일
나의 달력에 9월 1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건 확신할 수 없다.
기껏 해야 두 줄뿐인 글을 적어놓고는 툭, 제 침대 아래로 던져놓았다. 왠지 이 수첩의 자리는 바닥인 것 같아서.
띵동-
"...안 열어주면"
알아서 가겠지. 뒷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이마저도 그쳐버린 정국은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워선 눈에 담고있던 흰 천장을 제 눈꺼풀로 까맣게 덮어버리곤 이불을 고쳐 덮었다.
머리 속을 맴도는 허황된 생각을 글로 옮겨적었던 것이 내 밥벌이가 될거란 생각을 하기나 했을까. 어느새 나는 성을 뗀 내 두 이름자가 내 가면이자 거울이 되어 돈을 벌고 있었고, 제 타고난 몽상가라는 생각이 들 즈음 통장에 두둑히 쌓인 돈으로 좋은 집에 들어온 정국이었다.
집도 자신의 것이고,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고, 소란 피우지 않고 제 몫만 봐줄만 하게 살아가는 정국에게 찾아올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않는다는게 맞는 표현인지는 몰라도.
"옆 집이에요"
정국은 문 밖에서 나는 저 목소리가 꽤나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사실 족히 한두달은 흰 종이와 검은 글자로만 이루어진 화면을 오가고 종이 위를 오가던 정국의 귀에 아주 간만에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을 무슨 이유로 찾아온건지 문을 열어줘야 겠다는 생각은 더 사그라 들었다.
사람 더럽게 귀찮게 하네, 진짜.
초인종 소리는 그 후 서너번 더 들려왔고, 정국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온 건 아마도 다섯 번째의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난 후다.
"...무슨 볼 일 있습니까"
혼자 있는 탓에 입을 열 일이 없는 정국은 조금 잠긴 제 목소리에 말을 마치고는 큼큼, 두어번 잔기침을 해 목을 풀고난 뒤 말을 덧 붙였다. 없으시면,
"잠시만요! 아, 제가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요..."
그렇다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람을 다짜고짜 찾아와 같이 저녁을 먹자는 말인지. 할 말이 없으면 그만 가보라는 듯 정국이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그런 정국의 손등을 제 손으로 덮는 여자의 행동에 미간이 잔뜩 구겨진 정국은 저와는 반대로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정국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여자의 손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떨궈내고는 대답했다.
"뭐하자는 겁니까, 지금."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는건가. 비아냥에 가까운 정국의 날이 선 말투에 여자는 제 손을 뿌리치기 전까지 짓고 있던 옅은 미소를 서서히 지워내고는 무어라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기다림없이 닫히는 현관문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사람 되게 까칠하네.
제 손을 아주 기분 나쁘다는 듯이 뿌리쳐낸 정국이 기분 나쁘지도 않은지 조금전 지웠던 미소를 다시 한번 지어보고는 기분좋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국의 옆 집인 제 집으로 들어가는 여자다.
-
처음 보는 낯선 여자를 상대하고는 제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정국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바로 욕실이었다. 콸콸 시원하게도 내리는 물줄기에 제 손을 가져다 대고는 이미 두 번을 씻어내린 손을 또 한번 하얀 거품을 내어 닦는 정국은 이마저도 제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아씨.
그 이후로도 세 번 더 제 손을 닦은 정국이 욕실에서 나와 제 걸음을 제 침실이자 작업실인 방으로 옮겨두었다. 풀썩 드러눕듯이 침대 위로 엎어진 정국은 편집장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을 핸드폰을 들어 익숙해지기 싫지만 이미 제 손 끝은 기억하고 있는 11자리의 수를 누르고는 제 이마 위에 팔뚝을 올려다두고는 핸드폰을 귀 옆에 가져다 대었다.
"..."
몇 번이나 더 걸어도 받지 않을 거란 것을 이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건 아까전 정국의 문을 두드린 여자 때문일거다. 아마.
...기분 더럽게, 보고 싶을 때는 오지도 않더니.
***
처음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갑자기 문득 정국이가 소설가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쓰긴 썼는데...
처음이다보니 스토리나 움짤이나 부족한 것 투성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