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땀을 뻘뻘 흘리며 잠에서 깼다. 이불도 옷도 흠뻑 젖었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부재중 6통 모두 재환이의 전화였다. 문자도 가득했다. 진주 나 연습중ㅜㅜ 전화 안받네! 화났어? 전화 받아줘ㅠㅠㅠ 뭔일 있는 건 아니지? 내가 잘못했어.. 진주야 나 진짜 걱정돼서 그래 이거 보면 꼭 연락해! 이렇게 잠깐이나마 연락이 안되어도 걱정하는 널 보며 나는 또 안심한다. 그래, 아직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구나. 재환이 번호를 눌렀다. 두번째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재환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 강진주! “ “ 놀래라.. 왜! “ “ 왜? 너 왜이렇게 연락이 안돼. 걱정했잖아.“ “ 내가 할말인데 그건.. 연습중이야? “ “ .. 너 목소리 왜그래? “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아팠다고 걱정해달라고 어리광부리고 싶지만, 푹 자고 일어나니 괜찮다고 말한다. “ 목소리는 한개도 안괜찮구만. 집이면 문이나 열어줘 “ 문? 어디냐고 묻자 재환이는 그저 웃기만 한다. 내심 와주기를 바라던 내 마음을 읽은걸까. 기분이 좋다. “ 전화도 안받고! 화났는지 뭔지 몰라도 일단 달려와서 얼굴 보는 게 맘편하니까~ “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오는 재환이는 내 몰골을 보고 놀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이라도 사오는 건데 하고 내 안색을 살피는 너를 꼬옥 안아줬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했다. “ 아프니까 누가 제일 먼저 생각나? “ 기대하는 표정을 한껏 드러내고 나를 쳐다보는 너에게 더 안기며 고맙다고 돌려 말했다. 원했던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만족스러워하는 니가 사랑스러웠다. 달달한 이시간이 끝나지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재환이의 벨소리가 울렸다. 최은서였다. 거절하려는 너에게 괜찮다고 받으라고했다. 핸드폰 밖으로 최은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재환아, 집 잘 갔어? 엄청 급한 일인가봐 ] 걱정해하는 듯한 말투가 매우 거슬렸다. 아마도 재환이는 나를 만나러간다고 얘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 아 응, 연습 잘하고 있어? “ 너의 목소리가 꽤나 다정스러웠다. 벌써 서로를 신경쓰는 사이가 된거니? 혼자 무슨 연습을 하냐며 묻는 최은서의 애교 섞인 목소리와 내가 처음 반했던 환한 웃음을 그녀에게 보이며 대화하는 둘. 어느새 내가 빠져있는 듯 했다. 나는 없는 음악에 대한 둘만의 공통점이 내게는 서운함과 질투심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재환이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은서가 나보다도 더 좋은 대화상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나는 재환이를 응원해주는 팬일 뿐, 함께 고난을 겪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동료보다 더 나을 게 뭐가 있을까? 최은서와 재환이 사이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재환이에게도 작아졌을지 모르지. 길어지는 통화에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신경 안써, 나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잠시 최은서가 채워주는 것 뿐이야. 재환이도 즐거워하잖아. 내가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야. 애써 내 자신을 위로했다. 백설기가 쫄쫄 따라왔다. —재환이가 이름 지어준 강아지이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떡이라고 했다. 검은색 푸들인데— 내가 가장 외로워할때마다 옆을 지켜주는 게 오히려 재환이보다 낫다고 아주 잠깐 생각했다.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분명 아침에 잠들고 일어난 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저녁을 대충 차리고 재환이와 식탁에 앉았다. 긴 통화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보이는 재환이를 보니 또 화가났다. 그냥 저녁도 최은서랑 먹지 왜? 속에 있는 말을 꾹꾹 누르며 재환이 앞에 수저를 놓아줬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 ..서운해 “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와버렸다. 재환이가 밥을 한숟갈 뜨려다 나를 쳐다본다. “ 아, 아니.. 내 걱정해서 온 사람이, 오자마자 다른 여자랑 통화하고... 아픈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고.. 하니까... “ 살짝 마음을 내비췄다. 혹시나 네 기분이 상할까봐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표현해본다. 다행히 너는 내 말에 귀기울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 내가 내 마음대로 빠진 자리라 미안해서 그런 거 알잖아. “ 나는 조용히 있었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아녔다. 그래도 나를 이해한다는 너의 눈치를 보며 어떻게 이 분위기를 다시 돌리려 고민하던 중 너의 다음 말이 나를 아프게 긁었다. “ 최은서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심술 부리는 거 난 좀 힘들어. “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최은서도 이런식으로 자기얘기 오고가는 거 싫어할 거고, 우리도 걔 때문에 싸울 이유도 없고... 니가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는 말을 이어갔지만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심술? 힘들다? 너는 다른 사람은 배려할 줄 알면서 내가 왜이러는 지는 조금도 생각할 줄 모르니? “ 이렇게 집착하는 거 너답지 않아. 최은서가 너보다 뭐가,” “ 집착? “ 재환이가 한참 말하다 나를 쳐다본다. 나는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눌러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를 쫓는 재환이의 눈동자가 빨라진다. “ ..너, 너 그냥 가. 그냥 가서... 제발 그냥 가 “ 다시는 보고싶지 않을만큼 미웠다. 집착? 나는 니가 그런 감정을 느낄까 두려워서 내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내 스스로 느끼는 질투와 자격지심들이 무서울 정도로 커져서, 이게 너와 내 사이에 해가 되지 않기를, 내 자신이 너무도 못난 탓이라 빛나는 너를 내가 망치지않기를 바래왔다. 잘못된 나로 인해 니가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완벽히 나를 감추고 더 감췄다. 내가 뭘 얼마나 너에게 나를 표현했다고 힘들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말이 이젠 나를 멀리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 너는 말없이 일어났다. 곧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은걸까? 너는, 나오지마 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집을 나섰다. 나가는 네 뒷모습을 보자 참고있던 눈물이 터졌다. 열심히 숨기고 있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아 창피했다. 작게나마 내 마음을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뿐인데, 욕심이었다. 그 욕심에 내 이기적인 모습을 니가 봤을까봐 후회스럽다. 내 잘못이란 거 알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잘못된걸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집착하는 거 너답지 않아. 나답지 않아? 이게, 이게 원래의 난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와 내 사이를 오래 지속하기를 바랬다. 그렇다면 나를 계속 감춰야한다. 그게 옳은 일일까? 그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늦어서 죄송해요 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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