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A w. 미이 1. 눈을 떠보니 깜깜했다. 본능적으로 이불 속을 더듬거리다 손끝에 느껴진 찬 기운에 급하게 집어 들어 올렸다.
어두운 방 안을 채우는 휴대폰 속 불빛은 냉정하게도 고요히 새벽 5시를 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왜 불렀냐는 나의 물음에 보고만 있어도 좋다며 항상 내 머리를 지분대던 네가 왜 그날따라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을.
" … "
뒤늦게 느껴진 무거운 분위기에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마주한 너의 눈은 빨개지다 못해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 … 어. " 당황스러웠다. 7년간의 연애 기간 동안 너의 눈물을 마주한 게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던지라. 사람을 불러놓고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울어버리면 어쩌라는 건지. 짜증이 났다. 예전 같았다면 토닥여주며 너를 달랬겠지.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연애 초반엔 안 그랬는데. 살다 보니 바빠서, 항상 나만 바빴지만. 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큰 눈에서, 눈물은 참 서럽게도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의 사이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 ...로워. "
" 응? " " 외로워. " " … " " 여준아 " " 응 "" 나 너무 힘들어 "
" … " " 난 너를 계속 사랑하고. 있는데. 왜 계속 외로워. "" 너.. 이렇게 차가운 사람, 아니었잖아. "
발음이 뭉개지고 말이 눈물에 먹혀 끊여져서 내뱉는게 답답한지 숨을 헐떡이는 넌 괴로워 보였다. 무엇이 널 그렇게 괴롭게 했을까.
" 우리.. 이제. 그만해... "
" 그래. 그렇게 하자. " 종현아. 네 이름이 낯설었다. 요즘 들어 이름만 불렀던 적이 없었는데.7년간의 사랑이 생각보다 많이 식어있는지 김종현의 헤어지자는 말에 쉽게, 가볍게 대답을 뱉은 내 모습에 놀라 주춤거리자 더 놀란듯한 김종현이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응시했다.
내 어깨에 걸쳐진 손의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3. " 음, 고마웠고. 조심해서 가. "
이미 끝난 결론 질질 끌기 싫다는 생각에 어깨 위의 손을 조심히 밀어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7년 연애의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은 생각보다 허탈할 만큼 가벼웠다. 넌 어떨지 모르지만 난 예전보다 너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말투나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으니. 어차피 끝내야 할 인연이었다 우린. 허하지만 곧 채워지겠지. 너에 대한 마지막 기억까지 버려두고 가야겠다며 먼 길을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나. 달래주고 왔어야 했나. 돌이 가슴에 박혀있다 빠져나간 기분이 이질적이었다. 그 생각이 하루도 못 넘길 것이라고 생각도 못 한 채 돌아온 집은 여전했다. 늘 그랬듯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작은 자취방은 생각보다 너의 흔적이 많았다.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하다며 가져다 놓은 신발부터 밥 챙겨 먹으라고 냉장고 앞에 작게 공간을 차지한 쪽지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인형들을 지나 화장실 선반에 나란히 놓인 칫솔까지. 가볍게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너의 흔적은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다 치우려면 이사를 가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지만,
" ... "
" 종현아..? "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9시 뉴스가 그렇게 재밌는지 미간을 좁히며 TV에 집중하는 너는 가끔 입술을 깨물었다. " 여준아 " 마침내 TV에서 눈을 뗀 너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대체 무슨 뉴스였길래 찌개가 다 식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 것이지 " 너 집에 잠금장치 하나 더 달면 안 돼? 아니 내일 당장 나랑 같이 가서 사자 " 불안할 때 나오는 네 습관은 동공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것 이었다. 흔들리는 네 눈을 보다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뉴스를 보니 혼자 사는 여자 주택에 강도가 침입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사는 지역이었다. " 설마 뚫고 들어오겠어. 여긴 안전해서 괜찮아. " 가난한 대학생이 도어락에 투자 할 만한 돈이 어디 있겠는가. 솔직히 범인을 아직 못 잡았다는 말에 조금 불안했지만, 괜히 네 걱정을 사기 싫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 그래도 내일 가보자. 내가 불안해서 안 돼. " " 밥이나 먹어. 절대 그런 일 없거든요 " 밥이나 먹으라는 내 핀잔에도 넌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나 마나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을 네 눈을 생각하니 귀여워서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 불안해서 어떡해. " 갑자기 와락 나를 안는 너의 모습에 숟가락을 놓쳐 손을 더듬었다. 머리가 아직 다 안 말랐는지 촉촉한 네 머리에서 샴푸 향이 가득 올라왔다. " 왜 이래. 밥 먹어 식겠다. " " 안 되는데 정말.. " 밥 먹다 말고 이게 뭐야. 너를 밀어내려고 어깨를 툭툭 치니 더 세게 나를 안아왔다. " 종현아. 나 숨 막혀.. 밥 먹고 안아줄게 " 숨이 막혀 답답한 기분에 어깨를 힘을 줘서 밀치니 그제야 손을 풀고는 나를 뚫어져라 처다보는 넌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 나 여기서 살까. " " 어디서 개수작이야 " " 그렇긴 해.. 내가 여기서 살아도 위험하네. 어떡하지. " 왜 위험하냐며 소리를 지르려다가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숙이고 입 안 가득 밥을 떠넣었다. " 그러게 왜 예뻐서 " 뭐라는 거야 진짜. 눈을 흘기며 입을 열심히 우물거렸다. 이것만 다 먹고 나면 쫓아낼 계획으로. " 예쁘지만 않았어도 내가 여기서 살아도 안 위험한 건데 " " 밥 다 먹고 쫓겨날래 지금 쫓겨날래 " 미안해.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능글거리는 말투로 실실 웃는 게 얄미웠다. 물론 밥을 다 먹자마자 가기 싫다는 너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 머리가 덜 말라서 지금 나가면 감기에 걸린다고 징징거리는 네 말에 대꾸도 없이 무시하는 것은 사소한 나의 복수였다는 건 비밀
여전히 감겨있는 네 눈이라 내가 방심하던 틈을 타 고개를 내려 예고도 없이 입을 맞추는 너였다. 놀래서 움찔했더니 숨이 막힐 정도로 꽉 안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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