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열아홉 육아일기 w.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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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그들.
헐. 준석아 얼른 학교 갈 준비 해! 평소와 다를것 없이 바쁜 준면의 집. 준면은 급하게 검정색 계열의 니트를 낑낑 대면서 입으며 언제나 그랬듯 시선은 아들 준석을 향해 있었다. 요즘 유리인지 유라인지 무튼, 한참 이성에 눈뜬 8살배기 아들 준석이 슬림해 보이기 위해 옷을 얇게 입고 갈까 걱정해서 그런 것이 틀림없다.
" 너 또 옷 얇게 입지? 아빠가 너 이러다가 또 감기 걸리면 진짜 가만 안둔다고 했어? "
" 오늘 유리랑 학교 끝나고 놀러 가기로 했단 말이야. "
" 쪼그만게 어딜 놀러가려고. 와서 공부나 하고 있어. 아빠가 내준 숙제는 다 한거야? "
" 잔소리! 완전 구식이야. "
뭐 구식? 한참 밑에서 눈을 부라리며 병아리 마냥 땍땍 거리는 준석의 모습에 준면은 눈을 내리깔고 준석을 힐끔 노려보았다. 두달전에도 옷 가지고 실랑이를 하다 준면을 앞서 뛰쳐나간 준석이 결국 빙판에서 넘어져 팔에 금이간 적이 있었다. 회사로 걸려온 전화 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철렁였는지. 단순히 살짝 금이 간거긴 하지만 준석의 손을 거추장스럽게 감싸쥔 붕대에 준면은 다짐했다.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집에서 옷을 껴입어도 추운 마당에 잔소리를 안하면 말을 곱게 들을 준석이 아닐뿐더러 얇은 후드티를 하나 껴입고 나갔다간 꼼짝없이 하교 후 코를 훌쩍, 일게 뻔하디 뻔하다. 그리고 구식이라니. 내가 구식이라니. 이제 막 대학교 졸업한 입사 1년차 막내인데. 준면의 표정이 보기좋게 굳어져 갔다.
" 지금 아빠한테 너 구식이라 한거야? 어? 무슨 말인진 알아? "
" 응. 수호가 말했어. 완전 옛날 사람이란 뜻이라며? 아는 것도 없고. "
" 뭐? 아는게 없어? 야, 임마. "
야. 임마. 준면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저게 8살 입에서 나올 소린가. 보기만 해도 닳을까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웠더니 이게 아빠의 소중함을 모르고. 딱. 소리와 함께 얼떨결에 꿀밤을 얻어 맞은 준석은 온몸에 퍼지는 전율에 몸을 베베 꼬았다. 아빠! 정수리를 박박 문지르는 준석의 눈매가 오늘따라 유난히 사납다.
" 씨이… 씨. "
" 뭐, 씨? 이게 진짜. 너 내가 수호랑 놀지 말랬지. 수호 부모님 전화번호 불러, 얼른. "
얼른 말하라니까? 준면의 선하디 선한 눈매가 매섭게 찢어졌다. 이내 작정이라도 한듯 인상을 찌푸리며 준면은 정장 마이 주머니 안쪽에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여기다가 핸드폰을 넣어놨을텐데. 준면의 행동에 준석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리며 가방 끈을 매만졌다. 말 해 얼른. 준면이 핸드폰의 홀드키를 풀렀다.
" … 아빠 너무해. "
" 뭐? "
" 아빠 너무해. 아빤 바보야! 알지도 못하면서! "
" 뭐? 너 오늘 아빠한테 제대로 혼나야겠다. 며칠전에 성적표도 숨기더니. 다 유리인가 유라인가 그 여자애 때문에 그런거야? "
" 아빤 사랑을 몰라! "
" 뭐? "
" 사랑을 몰라! 씨이. 아빠 미워. 나 갈거야! "
" …준석아? 준석아! "
아빠가 데려다 줄게. 준석… 아빠. 미워! 쿵쿵. 거리며 준면을 앞질러 나가다 이내 뒤를 돌아보고 홱 째려보는 준석의 시선에 준면의 다부진 입술이 벙어리라도 된냥 꾹 다물어졌다. 준석아.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며 손을 뻗는 준면의 손을 차갑게 뿌리친 준석은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도어락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 준석아! "
아무리 불러봐도 뭐하리. 이미 띠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잠긴 동시에 준석이 뛰쳐나간 후였다. 하. 준면의 입에서 얕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곧 준면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벌써 100번은 반복된듯 싶다. 실랑이 하다 한쪽이 화나서 먼저 가는 이런 상황이. 초등학생이 된 이후 유난히 준석의 반항적인 면모가 심해졌다. 예전엔 그저 '장난감 사줘' '야채 싫어' 따위의 귀엽게 봐줄수 있는 가벼운 반항이였다면 이번만은 달랐다. 1년도 안되는 이 짧은 기간동안 준면에겐 아침은 그저 지옥으로 다가왔다. 지옥.
" 이걸 어떡하나. "
이게 다 이성에 눈을 떠서 생기는 일인게 분명하다.원래 부모라는게 이렇게 힘든걸까? 아님 내가 부족한가.준면은 힘없이 고개를 돌려 티비 옆 선반에 놓여진 한 남녀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나. 잘 있지. 미안해. 이것밖에 할 말이 없다. 준면의 쿵쾅 거리는 심장에 따라 째깍째깍. 시간은 8시 30분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오늘도 또 지각이네. 김팀장한테 제대로 까이겠다. 준면은 자신의 왼쪽 손에 들린 준석의 작은 패딩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오늘 영하 10도라는데. 김준석 나쁜자식. 잘 정돈된 머리가 안쓰럽게 헝크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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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시작이네. 세훈은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을 발로 쾅 찼다. 이런다고 누가 알아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에 실행한 행동이었다. 이사온지 고작 한달째였다. 워낙 사업 때문에 바쁘신 부모님이 사정으로 인해 이동네로 이사를 왔어야 했고 아직 어린 나이로 인해 같이 가자는 부모님의 말에 흔쾌히 승낙한 세훈이었다. 독립해봤자 결국 독립 같지도 않은 독립일게 뻔했다. 집 치우고 밥 해먹는게 얼마나 귀찮은데. 혼자 살아본 세훈에게 독립하고 싶다는 존경 반, 부러움 반의 눈빛을 보내는 반 아이들의 모습을 쿨하게 무시한 것도 그 이유였다. 저런 별 같지도 않은 애들이 독립이라 치고 도움 받을거 다 받으며 허세 부릴꺼 뻔히 아니까.
근데 이게 뭐란 말인가. 조용해보이는 동네 풍경에 마음에 들어한 것도 잠시일뿐, 이사온 날부터 계속되는 옆집의 쫑알 거리는 목소리에 세훈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안그래도 방음도 약한데. 얼핏 들리는 말로 의하면 20대 초중반 정도의 젊은 남자와 8살 초등학생이 산다고 전해졌다. 벌써 이사온지도 3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602호는 베일에 쌓인듯 잠잠했다. 실제로 옆집 사는 사람의 얼굴은 세훈조차도 보지 못했다. 무슨 신비주의야? 세훈은 뒷목을 손으로 흝으며 603호' 라 적힌 현관문을 열었다.
" 사랑을 몰라! 씨이. 아빠 미워. 나 갈거야! "
" …준석아? 준석아! "
오늘도 역시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분명 닫혀있는 현관문에도 생생히 들리는 두 남자의 목소리에 세훈은 허,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목소리는 세훈에게 아침을 알려주는 모닝콜이자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애기는 딱 질색인데. 물론 긍정적인 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같은 아파트 사람들한테도 잘 안보여주는 저 잘난 얼굴을 내가 직접 맞대고 욕을 퍼부어줘야지. 세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 12월달에 올려놓고 사라졌던 작품이란걸 몇몇 독자분은 아실거에요 ㅋㅋ 이제야 시간이 나서 쓰게 되네요. 우선 못보신 분들을 위해 0편부터 올립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