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와 편의점 알바생의 상관관계
07
여주씨. 손에 묻어있는 물기를 닦아내려 휴지를 뽑아드는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곤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조금전까지만해도 내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웃으며 반응을 해주던 선배가 나를 내려다보는 눈길에 저절로 눈을 내리 깔았다. 혹시나 나에게도 마음을 열어주는건가 싶었으나 역시나 카메라가 자신을 향할때만 나에게 호감을 보였다는 생각에 허탈했다.
"여주씨 이미지 메이킹 되게 잘하더라."
"......"
무어라 할 말이 없어 입술을 깨물었다. 언뜻 언뜻 말 속에 내비치는 비웃음에 빨리 화장실을 빠져 나가고 싶다는 조급함뿐이었다. 이런 내 묵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선배는 한 걸음 다가와 내 말 안들려? 조금은 큰소리를 냈다. 그 탓에 급히 고개를 들어올려 눈을 맞추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탁- 막혀버린 듯 했다.
"낯을 가린다느니, 예능 촬영은 몇 번 안해봤다느니 하던데,"
"......"
"여주씨가 낯을 가려서 주변 사람들한테 못다가가는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여주씨한테 안다가가는거야."
"........."
"설마 이제서야 안거야? 여주씨 스태프들 사이에서 소문 안좋았던거?"
"......"
"혹시나 오늘 촬영으로 내가 잘해줄거라는 착각 하지 말라는 소리야."
입꼬리를 올리며 나긋하게 하는 말에 눈가에 열이 올랐다. 차라리 쓸데없는 패기라도 있었으면 이런 곳에 써먹었으련만, 손톱만큼의 자존심도 없어 그저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무엇보다 일주일에도 몇번씩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는 배우에게 나는 엄청나게 작은 존재였을 뿐더러, 드라마 촬영 내내 말을 잘 걸어주지 않던 스태프들의 행동과 둥글게 모여 눈물이 핑- 돌만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들었기에 나 자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맞아, 난 그것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지, 하고.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리다 선배가 매정하게 등을 돌려 화장실을 나가는 순간, 앞이 뿌얘지는가 싶더니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안되는데, 화장 지워지는데- 다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나왔다. 후- 울지 않으려 숨을 내쉬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 미처 다 뽑지 못한 화장지를 뽑아 눈가를 꾹- 눌렀다.
그리고 결국, 울음이 터졌다.
이 곳이 우리 집 화장실이 아니라 방송국 안의 화장실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누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이렇게라도 울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
눈이 부은 채로 차에서 내렸다. 매니저 오빠는 무슨 일이냐며 답답해했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 내 모습에 금방 지친 듯 했다. 내심 미안한 마음에 찝찝함을 마음 속에 담아둔 채 길을 걸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무서운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빨리 걷곤 했었는데 오늘만큼은 땅만 바라보며 느릿하게 걸었다. 신경쓰지말자- 하면서도 내일 연기하는거 그만하겠다고 대표님께 말씀드려볼까- 하는 생각이 번갈아 머릿 속에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얼마 안 가 사라져 버렸다. 톡- 머리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올렸다. 조금씩 비가 오고 있었다. 오늘 밤에 비가 올거라는 기상 캐스터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급한 정신에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을 뒤졌지만 큰 물건이라곤 물이 반쯤 들은 물병뿐이었다.
조금씩 거세지는 빗줄기에 결국 손으로 머리 윗부분을 막은 채 빠른 걸음을 했다. 진짜 어떻게 아무도 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속으로 화를 내며 고개를 숙인 채 였다.
그렇게 깜깜한 길을 걷다 눈이 부실만큼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빛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편의점이었다. 그 알바생 덕에 벌써 눈에 익은 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술을 먹고 그리 난리를 쳐 한동안 그 남자를 피해 다녔으면서도 새삼 그 알바생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피어 올라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안을 살펴 보았다. 이런 내 모습을 그 남자가 보면 창피해할 걸 알면서도 차라리 그렇게라도 그 남자를 한번만 볼 수 있었으면했다.
소용없는거 알지만, 그래도 한 번만 나 좀 봐줬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연이어 하며 카운터 쪽을 보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거짓말같이 내 앞에 그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약간 멀리서 우산을 든 채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멈춰만 있었다. 남자는 누나- 작게 나를 부르며 몇 걸음 다가와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었다. 톡- 톡- 빗방울들이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내내 입가에 웃음을 띄우던 남자는 나와 눈을 맞추곤 조금 표정을 굳혔다. 그제서야 눈이 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자 남자는 자신의 팔에 걸쳐져 있던 후드집업을 내 어깨에 걸쳐주곤 나와 눈을 맞추려 고개를 틀었다. 내가 흘긋-거리며 눈치를 보자 남자는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은 채 물었다.
"누나, 다 알고 있어요."
"...뭘요?"
"그러니깐 나한테만 말해봐요."
"......"
"누나 울린 사람."
남자의 직설적인 물음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어버버- 거리며 입을 열지 않자 남자는 괜찮으니깐 말해봐요- 어린 아이를 달래듯 가까이 붙어 내 대답을 얻어내려 했다.
"...말해주면 어떡할건대요?"
"괜찮다고 토닥토닥 해줄게요."
"......"
"물론 누나 울린 사람도 내가 혼내줄거구요."
진지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조금 엉뚱한 답에 피-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남자는 억울한 듯, 설마 나 못믿어요? 누나 위해서라면 진짜 해줄 수 있어요- 곧바로 대답을 해보였다. 나를 위해서라면 진짜 해줄 수 있다는 말 하나에 나는 고개를 숙여 운동화 코로 바닥을 툭- 툭- 치며 입을 열었다.
"그냥, 선배한테 한소리 들었어요."
"......"
"뭐라 대답하고는 싶었는데, 말이 안나와서 가만히 있었어요."
"......"
"그래서...그냥...억울해서..."
말 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혹여나 남자가 조금이라도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든 찰나,
"나 누나 한심하다고 생각안해요."
"......"
"오히려 잘했어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모습에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어 남자는 조금은 축축해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누나가 안지고 싸웠으면 그 사람, 누나처럼 안참고 더 마음 아픈 말 했을지도 몰라요."
"..."
"근데 누나는 참았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계속 참으라는건 아니구요,"
"...그럼요?"
"대학교에서도 선배, 후배 가리는데 배우라고 안가리겠어요? 그냥, 딱 한번만 참아요, 이번 한번만."
"그럼, 나중에 또 그러면 어떻게 해요.."
"말했잖아요, 내가 혼내준다고."
조금은 자신감이 가득한 말에 나는 오히려 풀이 죽은 목소리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조그맣게 물었다. 그러니깐 어떻게요. 금방이라도 땅에 꺼질듯한 목소리에 남자는 내 턱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끔 했다. 그 빤한 시선에 나는 얼굴에 열이 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직접 가서 말할거예요."
"......"
"누나 남자친군데,"
"...."
"아니, 곧 김여주 남편 될 사람인데,"
"......"
"한번만 더 누나 울리면 내가 가만 안있을거라고."
드디어 글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ㅇ아아아ㅏㅏ아아ㅏ!!!!! |
라고 하지만 사실 어제 밤에 쓰다가 너무 졸려서 내용이 엉망진창이라 오늘 겨우 다시 썼다는 점..... 그래도 수능 끝나고 이 글로 돌아오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울컥) 이제부터는 정말로 하루에 한 편, 아니면 이틀에 한 편으로라도 꼭 오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이 글 읽어주시는 여러분, 저 기다려주셨던 여러분 모두 너무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