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상 인간 75%, 피스틸 15%, 스테먼 10%, 베놈스테먼 4%, 안티스테먼 1%로 정하겠습니다.
* 음슴체주의
PISTIL BUS
w. 시타
D
1교시부터 이동수업이었는데 반 안에서 음악하고 미술로 나뉘어져서 받게 되는 수업이었음. 가까운 친구들은 다 음악을 선택해서 음악실로 갔고 나는 미술을 선택했음. 마찬가지로 미술을 선택했던 문형서는 나와 같이 친구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린 처지라 아무런 제약 없이 같이 동행하게 되었음. 오늘도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얘기, 그래봤자 오늘 점심 뭐임? 스테이크 나오는 것고 몰라. 넌 아는 게 뭐냐? 라는 식의 대화를 이어갈 줄 알았는데 오늘따라 약간 다운되어 보이는 형서였음. 무슨 일 있나 싶었지만 캐묻진 않았음.
운이 좋게도, 나와 형서는 짝이어서 이젤도 가까웠음. 게다가 뒷자리에다 넓은 미술실, 둔하고 자유로운 미술쌤이라 잡담 보장이어서 평소처럼 형서의 스케치북을 구경함. 역시 금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림들을 구경하다가 한 그림에서 시선이 멈추게 됨. 형서와 확연히 다른 그림체, 선이 부드러운 형서의 그림에 비해 약간 거친 듯한 선. 그 그림은 갈색 나무였음. 아무것도 없는 갈색 나무와 앙상한 나뭇가지. 뭔가 낯익어서 자세히 보다가 순간 굳어버림. 이거 내 등에 새겨진 나무 아닌가..? 피스틸이라면 다 있는 나무. 그런데 문형서는 피스틸도 스테먼도 아닌 인간일테고, 그렇다면 피스틸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 복잡한 표정으로 소묘를 하고 있는 형서의 옆얼굴을 바라봄. 갑자기 날 지그시 쳐다보는 형서에 당황해서 붓을 떨어뜨림.
" 너 진짜 그 권한, 걔한테 주연이 소개시켜준 거 맞아? "
" ...응..? "
" 뭔가 이상해서. "
바지춤에서 과일폰을 꺼내드는 형서였음. 평소같았으면 폰 안낸 양아치라고 놀렸을 텐데 지금은 놀리기도 뭐한 상황인 것 같았음. 형서가 보여 준 권한의 얼굴책 글에는 주연하고 찍은 셀카들이 올라와 있었음. 게시글은 더 가관이었음. 누가 보면 사귀나 싶을 정도로 달달한 말들이었음. 주연이 얼굴책 안 하잖아, 이런거 완전 싫어하거든. 나도 처음엔 다른 애들처럼 사귀나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여자애만 일방적으로 올리는 것 같아서.
" 형서야. "
" 나 번호만 줬어. 물론 그것도 일방적으로 준 거라서 내가 백번천번 잘못한 것도 알고 반성도 많이 했는데, 진짜로 번호만 줬어. 얘기같은 건 안 했다고. "
" 그럼 나머지는 다 걔가 소설 쓴 거네? 번호 하나 얻었다고. "
쪽 줘야하는 거 아냐? 형서의 말에 순간 상처주기 싫다는 생각이 밀려옴.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본성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 나무 그림 누가 그린거야? 형서는 힐끗 쳐다보곤 대답함. 최찬희가 그렸어. 그답게 그림의 귀퉁이엔 찬희의 이니셜이 필기체로 쓰여져 있었음. 그리고 형서한테 스케치북을 돌려주려고 덮으려는 순간 뭔가를 본 듯 했음. 그것은 나뭇가지에 위태로울 듯 흔들리고 있는 한 떨기의 독초가 분명했음.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 ailee
" 우리, 뭐 할까 주연아? "
난감하다, 참으로 난감하다. 무슨 프로젝트 어쩌고 수업이랬나. 조를 형성하고 과학 탐구 주제 중 하나를 정해서 발표를 해야 했는데 1반부터 3반까지 합반이었음. 그 말은, 권한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뜻이었고 권한과 같은 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권한과 같은 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권한만 있었으면 좋았을 걸. 나머지 2명이 이주연하고 최찬희면 나는 어쩌라는 거냐. 머리가 지끈댔음. 맞은편엔 이주연, 과학 탐구 주제를 찾아보고 있고 그 옆자리에선 권한이 비음과 유음이 적절한 듯 섞인 목소리로 이거 하쟈! 저거 하쟈! 참 공기가 따뜻하구나. 그럼 이쪽 공기는? 오지고 지리게 차가웠지.
이번엔 또 뭐가 기분이 나쁜거야, 라고 물으면 분명히 쪽이라는 것이 되돌아올 게다. 그만큼 최찬희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뭐가 불만인 듯 한과 주연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고 있었음. 그런데 그 자태에서 뿜어나오는 냉기 때문에 내가 얼어죽을 듯. 힐끔힐끔 바라보니 매서운 눈빛으로 뭘 보냐고 함. 그럼 아..아니야 하면서 쭈그리가 되겠지.
" 주제 다음시간까지 하고 싶은 거 몇 개 정도만 적어오자. "
" 주연아, 우리 토요일날 만나서 준비하면 안돼? 내가 다음 시간에 스피치대회때문에 빠져서. "
저기..? 나와 최찬희는 권한한테 철저하게 무시당했음. 쟤 아까부터 주연만 보고 얘기하잖아, 어처구니가 없어졌지만 최찬희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껴서 시간을 조정하고 있었음. 뭔가 셋이 잘 흘러가는 분위기에 토요일날 안된다고 클레임을 걸어보아도, 나도 학원 빼고 하는거고 같이 하고싶다면서 웃는 권한 때문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음. 아, 여주 만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좋다. 저렇게 말하면서 예쁘게 웃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그 웃음이 사악하게만 보이는 것일까.
" 모르겠어. "
" 뭐가? "
깜짝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선 시야 앞에서 툭 튀어나온 머리통을 퍽 하고 때려버렸음. 체육복 차림의 남학생이 머리통을 부여잡고선 많이 아픈 듯 끙끙거리고 있었으니, 정말 당황스럽기도 그리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음. 그런데.. 뭔가 지창민도 아닌 것 같았고 하기야 최찬희도 아닌, 쌩판 모르는 사람 같았달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과 동시에, 벤치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즈음 목덜미가, 정확히 말하면 후드티 모자가 잡혀버림.
지금 때려놓고 도망가겠단 거야? 뒤를 돌아보자마자 키가 크고 조각같이 잘생긴 남학생이 눈썹을 약간 찌푸린 채, 깊은 눈망울로 날 바라보..아니 째려보고 있었음.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억울해, 왜냐하면 먼저 놀래킨 건 그쪽, 아니 너잖아. 그 뜻을 전하니까 얼굴을 뜯어보기라도 하는 듯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함.
" 너가, 그 유명한 3반 이여주냐?"
" 김여주야, 멍청아. "
" 아 그르냐? "
" 그런데 네가 뭔데 내 반하고 이름을 알아? "
" 너 완전 유명하잖아, 그래서 이 몸이 친히 얼굴을 보고 싶었다는 거란다. "
저 색희, 왕자병 말기에다 허언증 도졌어. 게다가 장난도 아닌 것 같았음. 가뜩이나 어지러워 죽겠는데 모르는 애한테 시비까지 걸린 것도 모자라, 이젠 왕자 행세로 변명까지 해 댄다. 솔직히 처음 보는 애지만 정강이를 힘껏 차 주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음. 바꿔 말하자면 인내심 발휘 중.
그런데 내가 왜 유명해? 너, 1반 애 남친 뺏었잖아. 내가 언제..? 그 애는 신난 듯 자신이 보고 듣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걸 다 말해주기 시작했음. 어떤 여학생이 얼굴책에다 남친을 사귀었다고 쌩난리를 쳤는데 오늘 지하철역에서 나하고 그 남친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 애가 얼굴책에서 또 난리를 쳤다고. 결론은 그 애 주관으로는 그 여학생은 평소에도 맘에 안 들었는데 남친을 뺏은 내가 너무 통쾌하고 멋있었다는 것이었음. 물론 사실무근함.
" 야. 그 여자애가 권한이고 그 남친이 이주연이지? "
" 당연하지, 그래서 주연이랑 잘 ㄷ.. "
퍽, 으어어억. 진짜 그 애의 정강이를 차고 말았음. 그제야 뭔가 숨겨진 것들이 맞춰지는 기분, 왜 있잖아. 복도를 걸어다닐 때마다 시선이 느껴지는 것과 친구들의 미묘한 태도. 지금은 뭐랄까, 아픔과 해탈의 경계선에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런데 약간 그 남자애한테 미안해지긴 했음.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괜찮겠지..?
토요일
권한과 토요일날 만나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한 채 아침부터 한달음에 달려온 친구는 왠지 모르게 비장해 보였음. 친구여, 오늘이 오늘이다. 도대체 무슨 말이여..? 친구가 가져온 옷은 무려 분홍색 맨투맨에 연두색 테니스스커트였음. 그것을 내 몸에 대고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섭게 다가오는 친구에 반사적으로 도망을 쳐 버림.
" 일루와 이 계집애야! "
" 싫어! 내가 왜 저 멘토스 같은 걸 입어야 하는지 정말 백두산이 뒤집어질 각. "
" 걍 닥치고 입어 넌 키가 작지만 비율은 좋으니까 괜찮아. "
" 안 입...너 방금 내 욕한 거 맞지? "
결국 반강제로 맨투맨과 테니스를 입고 화장까지 해 버림. 뭔가 부족해, 또 뭐가! 갑자기 내 머리끄댕이를 잡더니 양갈래로 머리를 땀. 내가 무슨 삐삐냐! 친구랑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누나 나 밥... 까지 하곤 썩은 표정을 지은 채 문을 닫아 버리는 선우였음. 쟤가 저럴 정도라면 나 진짜 심각한 거 아냐? 아냐, 넌 추우우웅분히 예뻐. 그런데 쟤가 방금 문 쾅 닫은거잖아. 여주야, 저건 남동생의 일반적인 반응이란다.
머리까지 따고, 마지막으로 드레스룸 복숭아 향 나는 것을 뿌린 다음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임. 친구야, 건투를 빈다.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친구한테 빙긋 웃어주고선 약속 장소로 향했음. 공원 근처 카페. 내가 제일 늦은 듯 다 보이는 창 안으로 한 테이블에 앉아 조별활동을 하고 있는 그들이 보였음. 권한은 예상대로 예쁘게 꾸몄고, 이주연과 최찬희는 예상대로 잘생겼더라. 꾸미고 온 게 다행일 정도로, 쭈뼛거리며 합석하자마자 한이 웃으면서 맞아주었음.
" 여주야~ 너가 발표하면 될 것 같아! "
" 그.. 그래? "
" 엉. 그러면 우리가 자료조사하고 ppt 만들어서 화요일까지 이메일로 보낼게! "
명백하게 사이가 갈라진 것만 같았음. 너가, 우리가. 약간 씁쓸해지는 기분을 무시해 버렸지만 이대로 있으면 뭔가 어색해질 것만 같아서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댔음. 칸에 들어가서 몇 분간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복도에서 마주친 건 권한이었음.
" 한아. "
" 응? "
" 너 주연이랑 사귀는 사이였어? "
" 그게 무슨 말.. "
" 그럼, 왜 내 주위 사람들은 너랑 주연이랑 사귀는 걸로 알아? 그리고 어쩌다가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고. 너도 뻔히 알면서 왜 가만히 있었어? "
" 김여주. "
" ... "
" 사실, 네가 너무 싫어서 그랬어. "
*
지금은 공원, 그리고 저녁 시간. 왜 귀가 안했냐고 물으면 사실 나도 할 말이 없었음. 바람은 약간 쌀쌀했고, 춥기도 했지만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었음. 그것도, 혼자가 아닌 최찬희와 함께. 처음에 알바 누나가 널 불렀다라고 끝까지 기다리게 했지만 다 거짓이었고 해산하자마자 지금까지 잡아 둔 것이었음. 무슨 얘기라도 할 줄 알았건만, 찬희가 한 짓은 과일주 캔을 건네곤 저 혼자 맥주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었음.
" 넌 안 마셔? "
" 나 술 안 마셔. "
찬희는 맥주캔을 몇 번 홀짝이다가 약간 풀린 눈으로 날 바라보기 시작했음. 야, 너. 이주연 좋아하냐? 뜬금없는 그의 물음에 잠시 멍하니 있었음. 내가, 이주연을 좋아했던가. 인간의 사랑과 피스틸의 사랑은 달랐음. 특히, 피스틸이 베놈스테먼을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속박으로 이어지기에,
" ....모르겠어. "
" 걔, 좋아하지 마. "
갑자기 날 품에 안고 어르듯 등을 쓰다듬는 최찬희에 몸이 경직되어버렸음. 찬희의 돌발스러운 행동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그냥 품에 몸을 맡겨버렸음. 그때,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알싸한 향이 도는 것도 같았음.
/
이쁜 독자릠들..제가 너무 늦었죠? 정말 죄송해요ㅠㅠㅠ 그리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함미다ㅠㅠㅠㅠ망할 혐생..
오늘도 복선 파티에용 진짜 결정적인 거! 감안해서 읽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조금있으면 덥즈 데뷔 ♥ 에다 쇼케 하는데 저는 혐생떄문에 못갑니다.. 독자릠들은 꼭 가셔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