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하은지 - 왕자님과 공주님
방송부 막내라니, 이거 실화냐?
00. 사건의 시초.
w. 포포도
"귀하는 우리 대학의 방송부에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추후 공지되는 날짜와 장소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오니,
꼭 참석하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
나 김여주는 이 문자를 시작으로 우리 학교의 방송부원, 즉 방송부 막내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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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씨 지각 겨우 면했네."
"야!!!!!! 김여주!!!!!! 여기, 여기!"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친한 친구가 한 명 이상이라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친한 친구가 셋인 난 굉장히 성공한 삶이라는 건데, 그 셋이 인생에서 제일 도움이 안 되는 셋인 건 무슨 모순이란 말이냐.
그 셋 중 한 명은 저기서 난리를 치고 있는 쟤, 박수영. 어쩌다 보니 중, 고, 그리고 대학까지 같은 곳에 오게 되었다.
"야, 그렇게 안 해도 아니까, 좀."
"야, 우리 아직 새내기야. 밝게 살자, 밝게."
그놈의 새내기, 새내기.
의자를 꺼내 옆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자, 짜기라도 한 듯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지루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 시장세분화라는 건..."
"야, 너 동아리 같은 거 할 생각 있냐?"
"갑자기 웬 동아리? 아, 나 방송부 접수는 했는데."
교수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엎드려 잠을 청하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나온 동아리 얘기에 눈만 대충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 연애의 꽃이 어디서 피냐, 동아리 활동이지."
"넌 그렇게 남자한테 데이고 또 연애가 하고 싶냐?"
제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말없이 노려보는 수영이의 표정에 피식거리며 비웃는 걸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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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여주 일어나. 수업 끝났다고!"
흔들리는 몸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몸을 일으켜 뭐냐는 듯 쳐다보자, 배고프다며 밥 먹으러 가자는 수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충 짐을 챙겨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이끌려간 도서관 앞엔 항상 권현빈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대충 손인사를 건넸다.
"야, 눈 좀 떠라. 어제 또 술 먹고 밤 새웠냐?"
"술 얘기도 꺼내지 마. 토할 거 같, 욱"
"아, 씹. 더러워. 밥으로 해장이나 해라."
권현빈, 내 친구 세 명 중 두 번째 친구.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이며, 내 식습관부터 모든 취향을 줄줄이 꿰고 있는 애다.
내 표정만 봐도 지금 상태가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거. 같은 학교 모델과에 재학 중인 잠재적 또라이다.
"왜, 못 먹겠냐?"
"어, 안 넘어가. 속 쓰려."
앓는 소리를 내며 괜한 카레만 숟가락으로 뒤적이자, 누구랑 마셨냐는 수영이의 말에 흐릿한 기억을 되찾으려 미간을 찌푸리다 아파오는 머리에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제 이마에 통증이 더 해졌고, 내 앞에 앉은 두 사람이 풉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씹. 미쳤냐? 안 그래도 숙취 오지는, 야, 잠깐만."
이마에 통증이 가시기도 전에 어제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퍼즐이 맞춰짐과 동시에 벽에 머리를 미친 듯이 박아댔다.
젠장, 진짜 꿈이길 바랐다.
"김여주 뭐 하냐, 너."
"야, 나 어제 방송부 면접 죽 쑤고 술 마셨어."
"웬 방송부? 너 또 뭐 사고 쳤냐?"
"...어제 면접에서 장기자랑 시키는데, 내가 거기서 춤췄어. 그, 소녀시대 춤. I GOT A BOY 그거."
수영이의 찌푸려진 미간을 보는 걸 끝으로, 내 완전한 기억이 돌아왔다. 김여주, 진짜 미쳤네. 이제 대학 어떻게 다니냐. 어제의 면접을 상상만 해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야... 너 몸치 아니냐? 근데, 춤을 췄다고? 고딩 때 너 춤 한 번 줬다가 옆 학교까지 소문나지 않았냐. 하여튼 김여주 술버릇 여전하다. 어떻게 하루 일정을 다 까먹냐."
어, 그래 췄다고. 나도 지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딱 죽고 싶은 때가 있다면, 이때가 아닐까 싶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날의 모든 일을 머릿속에서 다 지우곤 하는 나였다. 면접 중 진행된 장기자랑에 당황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춤을 추자 무표정을 일삼던 선배님들이 모조리 웃음을 터트렸고, 강한 인상을 남긴 나는 망했다 싶어 과음을 자처한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며, 죽 쒔으니까 그 사람들 다신 볼 일 없겠지 하고 애써 그 기억을 무시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만의 착각이었다.
"여주야, 대숲 보니까 방송부 합격 문자 지금 오고 있다는데...?"
"괜찮아. 불합격이라 안 올 거,"
"띵-"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 모두의 시선이 내 핸드폰 화면으로 향했고, 화면 속에는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내 눈엔 방송부 최종 합격이라는 문구가 들어왔고, 오늘부로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띵-"
"방송부 60기 아나운서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김여주 후배의 직속 선배인 59기 아나운서 황민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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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부 막내라니, 이거 실화냐?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반응 없음 빛의 속도로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