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D w. 미이 24. " 김종현? 걔 엄청 착해 " 이제 막 인간관계가 조금씩 틀이 만들어지던 중학생 시절부터 김종현에 대한 평가는 늘 그랬다. 설령 김종현과 말 한마디 안 섞어본 옆 반 아이들도 ' 안 친해서 잘 모르는데 착한 것 같은데 ' 라며 입을 모을 정도였다. 울거나 화를 낸다든지, 하다못해 무표정을 짓는 모습조차 김종현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유의 동글한 얼굴은 항상 웃고 있었으니. 게임에서 지는 일이 있어도 저 특유의 웃음소리인 ' 하핫 ' 과 함께 아쉬워하는 표정을 내보였지 욕을 내뱉거나 얼굴을 구긴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거다. 아니, 확실하게 없었다. 오히려 답답했던 내가 호구냐며 소리를 질러댔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내 지랄 맞은 성격도 김종현 앞에선 비교적 가라앉고는 했었다. 오죽했으면 애들이 ' 최민기 넌 그 성격 죽이려면 김종현 옆에 딱 붙어 있어야겠다 ' 라고 얘기를 하곤 했다. ( 물론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 늘 웃고 다니다 보니 종일 붙어있어도 어떻게 속마음을 알겠는가. 감정적으로 챙겨줄 것이 많은 친구. 김종현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늘 그런 존재였다. 항상 웃고 다녀서 다른 감정은 우리가 대신 표출해줘야 하는, 어쩌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 그래 봤자 시험을 엄청 못 쳤을 때다 ) 우리에게 얘기할 때도 실실 웃으면서 바보처럼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럴 때면 우리가 더 화를 냈었다. 그 선생님은 뭘 그렇게 주관식 점수를 짜게 줬대. 감정표현이 서툰 남중생이었지만, 김종현한테 만큼은 말 한마디를 뱉고 표현해도 조심했다. 늘 웃고 있으니 무슨 말에 상처를 받아 혼자 앓을지 아무도 몰랐으니깐.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지만, 우리 사이에서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힘들거나 우울할 때는 김종현을 붙잡아 다 털어놓았고, 항상 웃으며 들어주는 그 한결같음에 나를 포함한 우리는 사춘기 시절을 의지하곤 했었다. 김종현이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닌, 정말 화가 나지 않고 슬프지 않아서 웃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임에서 지거나 시험성적이 생각보다 못 나왔다거나 충분히 우리 나잇대 아이들이 행복해하지 못하고 과거에 미련을 갖는 상황에서 김종현은 ' 다음에 더 잘하면 돼 ' 이런 식으로 항상 웃고 넘겼었다. ( 그렇게 넘겨도 다음에 보면 항상 성장해 있었다. 그러니깐 무책임하게 넘긴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 이런 성격 덕분에 주변에서 사랑을 엄청 받고 살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다 보니 모든 사람이 김종현을 좋아했다. 그때 당시에는 정말 쓸데없이 피곤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나잇대에, 어쩌면 인간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갖기 힘든 대단한 정신력을 중학생 김종현은 갖고 있었다. 절대적인 정신적 지주이자, 표현은 절대 하지 않지만 친구로서 배울 점이 많았던 김종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여전히 내 사춘기 시절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25.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던 버팀목도 결국엔 사람이고 감정이 있다는 것을 직접 느꼈을 때의 기분은 딱히 반갑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마지막 급식이라 식판에 밥을 한가득 쌓아서 입에 밀어 넣던 나와 애들의 눈치를 보던 넌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내 기억으론 그때 애들 다 뒤집어졌을거다. 누구냐고 묻는 우리 물음에 얼굴을 붉히며 옆 반에 김여준 이라고 얘기하는 네 표정이 적응 안 돼서. 연락하고 지낼 때 미리 얘기 안 해서 미안하다는 애한테 서운하다는 티도 못 내고. 누군지 모르겠지만 종현이 데려갔으니 잘해줘라. 다들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김종현 감정 배려하는 습관 어디 안 가서 다들 궁금한 거 꾹 참는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퍽 웃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은 22살의 겨울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내며 단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김종현은 그 날 펑펑 울었다. 자신이 다 잘못했다며. 계속 잘못했다며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넌 못 본 반년 사이에 많이 야위어 있었다. 여자친구랑 처음으로 크게 싸웠단다. 그날 우린 아무도 김종현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몰라서. 그 뒤로도 쭉 그랬다. 다투거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앞에선 내색조차 없이 참다가 이렇게 뒤에서 혼자 쏟아내기 바빴다. 그렇게 헐떡이는 너를 지켜봐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고. 몇 년 사이에 김종현은 많이 바뀌어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바뀌어 갔다. 늘 웃기만 하던 애가 울기도 하고 화도 낸다. 자신을 잘 챙겨주는 여자가 이상형이었던 애가 오히려 챙겨주느라 자신을 못 돌본다. 답답하고 화도 났다. 그 여자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멀쩡했던 애가 저렇게 망가져 가는 것인지 갑과 을이었다. 우리가 쓴소리를 하고 모진 말로 자극해도 여전히 김종현은 갑과 을의 연애에서 꿋꿋이 을의 자리를 지키며 끌려다녔다. 김종현의 입을 거쳐서 나온 그 여자의 얘기는 분명 예쁘게 포장되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김종현을 제외한 모두가 느꼈다. 김종현 혼자서 하는 연애라고. 언젠가 우리 중 누가 말을 꺼냈다. 이럴 거면 헤어지라고. 여느 때와 같이 혼자 상처를 잔뜩 짊어지고 와서 풀어내던 김종현을 보다 못해 한 말이었다. 나, 그럼 못살아. 풀린 눈을 겨우 뜨며 대꾸하는 모습에 두 번 다시 꺼내진 못했지만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도 제일 가까운 사이인 우리는 여전히 김종현에게 함부로 말을 뱉지 못한다. 아직도 내 지랄 맞은 성격은 김종현 앞에서 가라앉는다. 그에 비해 많은 것이 바뀐 김종현은 요즘 들어 우리에게도 소홀하다. 몸은 엄청 노력하는 것이 보이지만 그 여자 생각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머리는 친구까지 챙길 여유가 없겠지. 그럴수록 우리는 김종현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버팀목이 친구 잃는 모습까지 보기 싫어서. 26. 오전엔 분명 고요했는데. 저녁쯤 되니 물방울이 창문을 할퀴며 떨어지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혹시나 싶어 블라인드를 올렸더니 그새 창문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에 시작할 걸. 다시 블라인드를 내리고 덮은 지 몇 시간 안 된 노트북을 열었다. 이상하게도 비가 내리면 글이 잘 써지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날이면 무조건 원고를 붙잡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징- 창을 날카롭게 때리는 빗소리에 푹 젖어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연달아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 최민ㄴ기 - 너 김종현이랑 연락돼? - 오늘 하루 종일 전화 했는데 - 한 번을 안 받아; 김종현이 연락 안 받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별생각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다시 진동이 울렸다. - 보고 무시하지 말고. 소름 돋는 놈. 중학생 때부터 촉이 꽤 좋았는데 그 촉 아직 안 죽었네. - 네가 한 번 연락해봐. 한 손으로 연락처를 뒤적이는 동안 우산을 집어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황민현 전화도 온종일 안 받는데 내 전화를 받을 리가 있나. 직접 찾아가야지. 애초에 애들 중에서 김종현과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으니 황민현이 나에게 연락한 것은 김종현한테 찾아가 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기도 했다. 자취방으로 걸어가는 내내 비가 쏟아져 내렸다. 김종현 얘는 비도 오는데 전화도 안 받고 뭐 하고 있대. 띵동- 벌써 자나.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밖에 있을 리가 없는데. 초인종을 한 열 번은 연달아 눌렀는데 기척도 없어서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난번에 현관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알려줬던 것이 생각나서. ‘ 1128# ’ 꽤 오래된 메시지였는데도 비밀번호는 맞아 떨어졌다. 안 그래도 단순한 비밀번호 좀 자주 바꾸라고 황민현이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잔소리할 것 하나 더 늘었네. 자기 자신도 못 챙기는 애가 누굴 챙기겠다고. 27. “ 야 김종.. ” 현관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알코올 냄새에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 야 너 왜 이래 ” “ ...응 ” “ 왜. 또 싸웠어? ” “ ... ” “ 휴대폰은 장식이냐 ” “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해야 할 거 아니야 ” “ ...안 싸웠어 ” “ 그럼 혼자 왜 이러고 있는데 ” 애새끼도 아니고 다 컸다는 애가 뭐하는데.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 김종현한테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정말 끝까지 갈 것 같아 덜컥 겁이 나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도 난장판이었고, 제 몸 제대로 못 가눠서 입만 달싹이는 김종현도 난장판이었다. “ 헤어졌어 ” “ ... ” “ 내가... 내가 헤어지자고 했는데.. ” 왜, 후회돼? 내 물음에 김종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떨궜다. 분명 후회하고 있었다. 김종현은 절대 생각 없이 말을 뱉는 사람이 아니였다.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는 것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난 모르는척 할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척 해야 했다. “ 종현아 ” “ ... ” “ 김종현 ” “ ... ” “ 잘했어. 고생했어 ” 고생했어. 이때까지 아팠던 과거에 대한 위로의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앞으로 두 번 다시 전 여자친구를 볼 생각은 하지 말라는 압박도 담겨있었다. “ 뭐라도 사 올게. 너 하루 종일 굶었을 거 아니야 ” 압박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내가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겨 들어 현관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도 넌 대답이 없었다. 제발, 너 너무 잃은 것이 많잖아. 28. 헤어진 건 김종현인데 내 머리가 다 복잡했다. 화가 나다가도 제 몸 하나 못 가누던 모습을 생각하면 착잡했다. 무엇이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원래 정말 그런 애 아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기억과 추억을 함께 공유해온 사람의 밑바닥을 지켜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감정을 소비했다. 왜 7년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서. 하여튼 손 많이 간다. 혼자 중얼대며 바쁘게 발을 놀렸다. 비는 점점 그쳐 가는지 가볍게 우산을 두드렸다. “ 아, 죄송합니다. ”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도 보이지 않는 고민 덩어리에 한눈을 팔고 있었는지 앞사람과 부딪혔다. “ ... ” 얼굴을 기억할 만큼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김종현 여자친구이기 전에 고등학교 동창이었으니. 차였다면서 꼴에 나름 잘살고 있는지 이렇게 밖에서 다 마주치고 말이야. 헛웃음이 나왔다. 당황하는 것을 보니 나를 알아본 것 같기도 했고. 있는 힘껏 비웃으며 자리를 떴다. 당신 덕분에 우린 친구 하나를 잃을 뻔했네. 더 망가지기 전에 떠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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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내... 많이 늦었어요.... 원래 지난주 주말에 오려고 했었는데, 글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3번 갈아엎았어요ㅠㅠ 지금 이 글도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을 다 못담아내서 속상하지만 절반이라도 독자님들에게 닿았으면 좋겠어요ㅎㅎ 다음부턴 일찍 올 수 있게 더 노력할게요♡ 읽어줘서 다들 고마워요!!! + 이번화는 민기로 시작해서 민기로 끝났어요! 눈치 채셨겠지만 종현이와 민기를 포함해 친구들은 총 5명이에요ㅎㅎㅎ 아직 민기와 민현이 밖에 언급이 없는데 더 나올지는 아직 계획에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출연시키고 싶어요. + 제가 지난 글부터 댓글을 달기 시작했어요ㅎㅎㅎ헤헤 어떻게 달아야할지 고민 많았는데, 한 번 달기 시작하니깐 엄청 쉽던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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