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이가 너무 보고싶은데 한동안 글잡에 영민이 글이 너무 뜸해서 자급자족하고자 … 가볍게 읽어주세요 …
1
연애는 때가 되면 하겠지. 굳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야한다는 생각도 없었던 나는 무미건조한 학창시절을 보내며 충실하게 공부만 한 결과 바라던 학교, 바라던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교 입학이 나와는 먼 이야기일 줄만 알았는데 오티 일주일부터는 혹여나 지각이라도 할까 수능 전 컨디션 조절을 하듯이 알람을 꼬박꼬박 맞춰놓고 그도 모자라 알람이 울리기 십 분 전에는 꼭 눈이 떠졌다. 또, 대학생이 되는 설레는 마음에 친구들에게 화장품이라던가 옷이라던가 렌즈라던가. 칙칙한 무채색으로 가득했던 옷장에는 하나 둘 유채색의 옷가지들이 자리잡았고 꼭 필요한 것 빼고는 없었던 화장대에는 친구들이 골라준 색조화장품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특히 눈크기가 반토막 날 정도의 두꺼운 안경을 벗고 처음으로 렌즈를 낄 때는 30분이나 걸리기도 했었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지만 오티 당일. 일주일간 바짝 긴장했던 탓인 걸까. 기껏 맞춰놓았던 알람소리를 듣지 못한채 엄마의 잔소리로 눈을 떴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친구들이 알려준대로 준비하기엔 촉박한 시간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꾸역꾸역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렌즈를 낄까 하다가 결국 렌즈를 낀다면 정말로 늦어버릴 것만 같아 렌즈를 포기하고 안경도 포기한채 시력까지 포기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시간을 확인하는 내내 긴장이 되기도 설레기도,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다행히 차가 많이 막히는 시간이 아니었던 터라 오티 시작 5분 전에 도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눈도 나쁜데 학교 건물 위치까지 모르는 상황이니 혹여나 늦을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볼까, 했지만 아직 개강 전 겨울방학인 대학생들이 학교에 왔을리가 없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리를 재촉했다. 얼마나 헤메인 걸까. 마주오고 있던 사람을 보지 못한채 꽝하고 부딪혔다.
"…괘, 괜찮으세요?"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인데.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세게 넘어진 탓에 찢어진 스타킹 사이로 피가 나오는 걸 보니 참고있었던 눈물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 부끄러웠다. 앞 사람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당황하는 듯 했다. 죄송합니다…. 울음 사이로 목소리를 쥐어짜내었다. 많이 죄송한데 혹시 여기 여울관이 어딘지 아세요? 남자는 내가 오늘 오티 온 예비 새내기인 것을 알았는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도 그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같이 가자며 아직도 넘어진채로 일어나지 못하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좋은 사람이구나, 그 사람의 한 발짝 뒤에서 걸어가며 얼굴 가득 번졌던 눈물을 닦아냈다. 정신이 없어 보지 못했는데 빨간색 머릿칼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저 색이라면 입학하고 나서 알아볼 수 있겠구나,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 다짐도 잠시 흐릿한 눈으로 보이는 그가 입고 있던 과잠의 과 이름에는 나와 같은 학과가 적혀있었다.
아, 큰일났다.
2
입학 후 한 달 가량은 정말로 열심히 피해다녔다. 개강총회는 참여해도 뒷풀이는 가지않는다던가, 엠티투표는 누구보다 먼저 불참을 누른다거나. 프사에 절대로 셀카는 올리지 않는다던가. 그렇게 열심히 피해다닌 결과 오티 때 사귀었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서먹해지고 어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혼자 다니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니 그렇게 열심히 샀던 옷이나 화장품이 모두 쓸모 없어졌고 나는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립밤만 바른채로 안경을 쓰고 다녔다. 이 정도면 그 사람도 못 알아보겠지. 한결 불편하고 서운한 감정들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대학교도 시험기간에는 별 다를게 없었다. 공부해야 할 건 빼곡했고 조별과제다, 리포트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보다도 더 정신이 없어진 것 같았다. 새벽 네 시까지 과제들을 모두 끝내고 한결 개운해진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을 간다면 완벽한 하루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감은 눈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것을 느꼈을 때쯤에는 이미 시계는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아무리 빨리 씻고 준비해도 도서관에는 빈 자리가 없겠지. 동네 카페나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느릿느릿 준비했다. 그 날은 왜인지 시험기간에도 불구하고 옷장에 쳐박혀있던 입학 전 사놓았던 옷들이 자꾸만 생각나고 거울을 보는 내내 알록달록한 화장품들에 시선이 가는 그런 날이었다. 준비 시간에 쫒기지 않아서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인지 분명 이럴 시간이 없는데도 어느새 손가락에는 분홍색 셰도우가 묻혀져 있었다.
입학 후 한 달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렇게 꾸며본게 손에 꼽힐 정도지만 이 기분좋은 어색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가방 가득히 든 전공책들도 가벼운 느낌이었고 봄이 곧 오려는지 바람도 따뜻했다. 누굴 만나는 것도 아닌데 설레는 기분을 꾹꾹 눌러담은채 조금은 한적할 것 같은 카페로 향했다. 뭘 먹지, 고민하다가 새로나온 음료라며 잔뜩 꾸며놓은 딸기음료가 귀여워 주문하려고 알바생과 눈이 마주친 순간 지난 한 달간의 수고들이 와장창 무너지는 것 같았다.
"주문하시겠어요?"
토마토가 생각이 날 것 같던 빨간 머리색은 언제 염색을 했는지 새카만 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정신없던 그 상황 속에서도 흐릿하게 기억나던 그 따뜻한 미소는 여전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반갑다는듯 오랜만이라며 말을 건내는 것 같았다.
3
그 어색한 만남 이후, 어째서인지 마주치는 날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적어도 이틀에는 한 번꼴로 만났으니 말 다 했지. 하루는 혼자 학식을 먹는 내 앞에 앉더니 같이 밥 먹어도 돼요? 라고 묻는게 아닌가. 이미 앉아서 숟가락까지 들었으면서. 헤헤 웃는 그 얼굴에 그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밥 먹는데 집중했다. 원래 친화력이 참 좋은 사람인가보네, 라는 시시콜콜한 생각으로.
"같은 과던데 어떻게 한 번도 못 마주치지."
혼자 중얼거리는 그 말은 들으라고 한 말인지 나를 콕 찝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다 씹지도 못한 음식들을 꼴깍 삼키느라 사레로 콜록거렸다. 남자는 깜짝 놀라 떠왔던 물을 건냈다. 조금은 진정이 되자 남자는 괜찮냐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래요? 불편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불편하게 생각하셨다면 죄송해요."
"……."
"반가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동네도 같은 것 같았고…."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일하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같은 동네 사는구나. 아…, 그 동네 사시는 거예요? 어색한 물음에 남자는 하하, 웃으며 자취하는 중이에요, 라며 대답했다. 그의 말투에는 사투리가 조금씩 묻어나왔다. 남자는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더 걸어주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여기에 더 오래 앉아있다가는 정말로 체할 것 같아 그 시선을 무시한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이 빠른 속도로 밥을 먹었다.
"체하실 것 같은데 천천히 드세요."
"…감사합니다."
많이 티났나. 되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는 그런 나를 보며 무언가 할말이 있는듯 잠시 고민하다 어렵사리 입을 뗐다. 혹시 제가 불편하세요? …네? 음, 많이 불편해보여서요. ……. 혹시 처음 만났을 때 때문에 그러신 거면 저 그 때 기억 안 나요. 그러니까…. 눈을 도르륵 굴리며 횡설수설 말하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처음으로 그의얼굴을 똑바로 보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나를 정말 많이 생각해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니에요."
"…네?"
"그 쪽이 불편하고 싫은게 아니라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래요."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싫은 건 아니었으니까. 이정도의 하얀 거짓말은 괜찮겠지. 내 말에 남자도 긴장한 듯한 얼굴이 풀어지며 다행이라는듯 웃었다. 참 표정에서 꾸밈없이 그대로 나타나는구나. 더 이상 남자는 나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4
임영민. 이름도 본인을 닮아 동글동글한 것 같았다. 남자는 나보다 두 학번 위였고 군대를 갔다오느라 복학하고 수업은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그를 피해다녔는지 알게되었다. 학식 이후로 번호도 교환하고 시험공부도 같이 하고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같이 가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짧게나마 연락도 주고 받았다. 시험 마지막 날 바래다주는 그 길에 문득 당연한듯 그가 데려다 주는 걸 받아드리고 있던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친구들에게 물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내일이면 시험 끝이지?"
"네. 전공 시험 하나만 남겨놓고 있어요."
"좋겠다. 나는 교양도 하나 더 남았어."
울상을 지으며 작게 투정부리는 그를 보니 어떤 걸그룹의 노래 제목과 같은 눈물 이모티콘이 닮아보였다. 그런 그를 다독거리며 준비했던 선물을 건냈다. 내가 건낸 선물을 보더니 깜짝 놀라 동그랗던 그 눈이 더 동그래졌다. 뭐야?
"그동안 오빠가 저 시험공부도 많이 도와주시고 이것저것 잘 챙겨주셨잖아요. 피곤하실텐데 집도 바래다 주시고…."
"……."
"큰 건 아니예요.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남자는 선물 한 번, 나 한 번. 번갈아 보더니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민하는 건가, 선물을 건낸 손이 민망해졌다. 괜히 선물을 준비해서 불편하게 만든 거면 어떡하지. 문득 불편하고 어색하게 지내던 날들이 스쳐갔다. …그 때처럼 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까지 들자 불안한 마음이 드는 내가 이상했다. 그…, 정말로 비싼 건 아니에요. 부담스럽게 해드렸으면 죄송해…. 아니. 그런게 아니라…. 네…? 부담스러워서 그러는게 아냐. ……. 혹시 이번 주말에 약속있어? 남자의 물음에 이번 주말에 약속이 있었던가 생각하다 친구가 없는데 약속이 있을리가 없었다.
"아니요. 특별한 약속은 없어요."
"…그럼 우리 그 날 영화보러 갈래?"
"네?"
"아니…. 그…, 나도 큰 건 아니고 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선물 받으니까 고마워서…. 친구가 영화관 알바하는데 공짜표 준게 있는데 마침 볼 사람 찾고 있었거든…."
"……."
"…너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횡설수설하는 그 모습이 학식 때 그 모습과 겹쳐보였다. 여전히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있구나.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고맙다고 다 표현하기엔 어딘가 간지러운 마음. 감사해요. 내 말에 놀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꼭 영화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제야 그 특유의 해사한 웃음을 짓는 남자를 보며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선배…, 정말 죄송해요."
통화 너머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가 화 났다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당일날 약속 취소라니. 무례한 행동이다.
어젯밤 늦게 급하게 연락 온 동기는 과팅을 나갈 생각이 없냐 물었고 거절하려는 찰나 선배가 잡아준 과팅인데 한 명이 갑자기 빠져버려 공석이 생겼다고 했다. 동기는 이 과팅이 파토나면 선배에게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른다며 걱정어린 말투로 부탁했다. 통화를 하던 중 눈에 들어온 책상 달력에는 그와의 약속이 적혀있었다. 5시, 영화. 한숨을 푹 내쉬며 여전히 걱정스러운 말을 주르륵 나열하는 동기에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통화를 끊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한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늘 시험 끝난다고 했는데, 지금쯤 잠들었겠지. 무척이나 피곤할텐데도 잘 자라며 남긴 카톡은 세 시간이 지났어도 답장하지 못했다. 고민하다 결국 내린 결정은 내일 아침 일찍 미안하다고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용기내어 쥔 핸드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늘어질수록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보세요? 아직은 일어나지 못한 건지 잠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에 내가 깨운 것 같아 미안했다. 선배, 저예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아, 미안. 지금 일어나서 정신이 없었다며 무슨 일이냐며 물어오는 그에게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사정설명을 전하자 그는 대답이 없었다.
"저도 갑자기 약속이 잡혀버렸는데 친구가 너무 곤란해해서…."
ㅡ…….
"다음에 제가 꼭 영화 보여드리면서 자세한 얘기 해드릴게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내 말에 선배는 괜찮다고, 다음에 만나자고 하며 연락을 끊었다. 통화가 끝났음에도 나는 핸드폰을 놓지 못했다. 어두워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많이 실망했겠지.
시간은 어느덧 약속시간이 가까워져 집을 나서는데도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이 어색함이 불편했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이 취소됐다고, 만나면 안 되겠냐며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또 다시 누군가에게 실망을 시키는게 무서웠다. 무거운 걸음으로 향한 곳은 대학가의 술집이었다. 술 안 좋아하는데. 왜인지 카페에서 만난 그 날 그가 만들어주었던 딸기음료가 생각났다.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런거지. 정말.
말이 과팅이지, 친목 도모와 마찬가지였다. 과 애들과 친하지 않은 나는 그 무리 속에 섞여들지 못하고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만 홀짝일 뿐이었다. 하나도 재미없다. 그냥 거절할걸, 그랬으면 지금쯤이면 그와 함께 있겠지. 취기가 올라서인가, 다정한 그 얼굴이 머리 속에 떠오르자 눈물이 터져나왔다. 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는 건 싫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손에 쥔 핸드폰에서는 그에게서의 연락이 없었다. 그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친구에게 연락했을 때 친구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거냐고. 그 때는 정말로 고마운 마음인 줄 알았고 크게 부정하며 웃어 넘겼지만 아니었나보다. 자꾸 떠오르는 그 얼굴을 생각하면 두근거리고 지금은 이렇게 불안한 걸 보니.
"괜찮아?"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그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며 문장을 썼다, 지웠다만 수십 번.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바라보면 내 짐들을 챙겨나온 남자애가 서 있었다. 아까 과팅 때 내 맞은 편에 앉아있던 애였다. 짐들을 받으며 고맙다고 하자 애들 다 돌아갔다고 우리도 가자고 했다. 데려다준다는 의미인 것 같아 부담스러운 마음에 거절했다.
"무슨 고민있어?"
"…응?"
"아니, 아까도 계속 핸드폰만 쳐다보고 한숨만 푹푹 쉬다가 지금은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무슨 걱정있는 것 같아서."
"…아, 미안해. 내가 계속 방해만 한 것 같다.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데. 가시라도 걸린듯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 말이 너무나 버거웠다.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 아이에게서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한 번 더 떠오른 그 모습에 나를 부르는 남자애를 뒤로 한채 빠르게 달렸다. 당장이라도 얼굴을 보고싶었다. 얼굴을 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었다. 오늘에서야 깨달은 내 마음을 전하고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데도 마음은 더 조급해져만 갔다. 그런 나를 멈춰 세운 건 내가 그의 집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걸까 하다가 아까의 망설임으로 방전된 핸드폰이었다. 또 다시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정말로 겁쟁이었구나. 매일 같이 나를 바래다주던 그와는 다르게 나는 그의 집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늦어버린 것만 같은 마음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길 잃은 아이꼴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될 것을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의 이름이 입 안에 가득 맴돌았다.
5
얼마나 헤메인걸까. 혹시나 카페에 있지는 않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역시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멀었다. 다리도 아프고 발도 욱씬거리는 것 같았다. 잘 신지도 않은 구두는 굽이 낮아도 불편할 뿐이었다. 싸구려 신발은 한참을 걸어다닌 하루 끝에 너덜너덜 해져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른 집으로 돌아가 그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집 가는 길이 이렇게나 멀었던가. 최근 한 달간 나를 바래다주던 그가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이렇게나 멀지 않았는데. 결국 생각은 그에게로 회귀했다.
도착한 집 앞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내가 잘 못 보고있는 건 아닐까. 하루종일 그토록 떠오르던 그였다.
"…이제야 오는거야?"
"……."
"온 거 봤으니까 나는 이제 갈게. 쉬어."
온갖 낯선 냄새에 시달리던 하루에 그가 나를 스쳐지나가자 많이 그리운 냄새가 났다. 그 때였을까, 대체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그를 와락 안아버렸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여기서 나를 놓고 가버릴까 그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가지마요. 사과보다 먼저 나온 말은 가지말라는 말이었다. 가지말고 내 변명을 들어주세요.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싶고, 좋아한다는 말도 하고싶은데. 그 수많은 말은 삼켜버리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안 것인지 그는 내 손을 쥐었다. 나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그 말에 깜짝 놀라 얼른 손을 풀어버렸다. 죄송해요!
"손."
"…네?"
"손 풀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장난스러운 그의 말에 웃음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그를 만난 그 순간부터 참 많이 울보가 된 것 같았다. 그 때문이 아닌 나 때문에. 그런 내 모습에 많이 놀랐는지 당황한 그는 눈물을 닦아주랴, 장난이었다며 얘기하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그는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 깜짝 놀랐지만 벗어나고 싶지않았다. 나를 가득 감싸는 그의 냄새가 참 포근하다고 생각했다. 좋아해요. ……. 많이 좋아해요. 긴장이 풀린 탓에 생각하고 있었던 그 말을 내뱉어버렸다.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더 후회할 것만 같았다. 작은 이기심이었다. 그러자 그는 살며시 나를 품에서 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내가 참 좋아하는 그의 말간 눈은 오늘도 참 따뜻했다. 그런 그는 작은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도."
"……."
"나도 많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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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이가 많이 보고싶어서 쓴 글에다 꼭 쓰고싶었던 주제가 있어서
시작했는데 갑자기 분량이 늘어지더니 결국 넣지 못했네요 8ㅅ8
여러분이 싫어하셔두… 저는 꼭 그 소재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