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다신 이런거 내가 해주나 봐라. "
" 어유 , 알았어 얘! 성질은. "
씩씩거리며 소란스럽게 들어온 흥수는 누나의 앞에 쇼핑백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흥수의 누나는 쇼핑백을 뒤적이더니 흥수와는 매치가 전혀 안되는 노란 올빼미 핸드크림을 보고 작게 웃었다. 짜식, 그렇게 안봤는데 귀여운 취향이네. 투덜거리며 외투를 벗는 흥수를 팔꿈치로 살짝 쳤다.
" 아 씨! 왜 쳐! "
" 어이구 우리동생, 핸드크림 사오랬더니 이런 귀여운건 또 어떻게 찾았대? 난 그냥 평범한거 사오라는 거였는데. 이거 나온지 얼마 안됐는데 용케 찾아서 사왔네. "
알바생 개새끼. 이게 제일 인기 많다며. 그냥 지 취향대로 고른거고만? 꼭 지같이 생긴걸로 골라서 사람 쪽팔리게. 흥수는 신경질적으로 컴퓨터에 접속했다. 아 오늘은 영 롤할 기분이 아니야. 고남순에게 대충 너혼자 하라며 문자를 보내두고 이불을 폈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가라앉을려나. 오늘은 재수가 없어!
***
" 영재야아 "
재규는 아까 미르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게 신경쓰여 결국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편의점에 들러 과자 몇개를 집어들고는 품에 안고 영재의 집 앞에 섰다. 영재의 이름을 부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취한것 같아 보이는 미르의 얼굴이 보였다.
" 여- 똘마니! 잘 왔네. 뭐로 때려야 잘 때렸다고 소문이 나려나? "
금방이라도 한대 칠듯이 노려보는 미르의 기세에 재규는 겁에질려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다신 안그럴께. 응? 금방이라도 울 듯한 재규 탓에 미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번 한번만 용서해준다며 재규를 집에 들였다. 아니 근데 이게 뭐야. 재규는 거실에 들어가자마자 괜히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3박4일 여행가셨다는 영재의 집에서 크게 술판을 벌였다길래 예상은 했다지만, 이건 뭐. 영재는 팬티 한장만 걸치고 소파에 늘어져 있었고 윤수 역시 제정신은 아닌 듯 보였다. 치훈은 리만 방정식을 구석에서 조용히 풀고 있었고 무열은 술 대신 주스를 홀짝이다 재규를 보며 반겼다.
" 재규야 안녕, 근데 품에 그건 뭐야? "
" 과자! 미르한테 사과할 겸 해서 겸사겸사 "
과자 조옿-지! 미르가 재규의 품에 안겨있던 과자를 뺏어들고는 식탁에 내려놓았다. 너네가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거 사왔는데. 괜찮아? 순진한 재규의 얼굴에 무열과 미르는 표정을 굳혔다. 그러니까 잠깐만 심호흡좀 하고. 후하후하. 미르는 재규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 이재규 죽고싶냐? "
" 왜애! "
" 왜애? 왜애애? 왜라는 소리가 나와? 대체 대한민국의 어떤 고등학생이 과자 취향이 이래! "
계란과자에 베베, 얼씨구 이건 컵솜사탕? 그것도 핑크로 사왔네. 다섯개나. 거기다 앙증맞은 동물그림이 가득한 쥬쥬과자까지. 이재규 취향으로 골랐다는 말에 설마 하긴 했는데 진짜 과자취향마저 이재규스럽다. 아주 재규재규해. 재규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미르를 무열이 제지하고 과자들을 조용히 재규 쪽으로 밀었다. 그냥 재규야 너 먹어. 우유나 데워줄까? 재규의 작은 끄덕임을 보고 무열은 영재의 냉장고를 제 집 냉장고마냥 열어 우유를 꺼냈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 무열을 구경하던 재규의 얼굴을 미르가 자신 쪽으로 돌렸다.
" 방학식 일은 그렇다고 치고. 아까 전화에서 한 얘기는 뭐야?"
아 깜짝이야, 재규가 미르의 얼굴을 밀어버리고 미르가 장난스레 상처받은 척 테이블 위 안주로 놓여있던 마른 오징어를 주욱 찢으며 제 입에 넣었다. 재규는 노란 병아리 그림의 베베과자 봉지를 까서 동그란 과자를 세개정도를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아 그거?
"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너랑 머리색 빼고 완전 똑같이 생긴거 있지? "
" 여- 신기한데? 성격은 어때보여 "
성격? 재규는 아까 만났던 남자의 성격을 곰곰히 생각했다. 말투가 틱틱대긴 했어도 자신의 실수들에 대해서 별 말 않고 넘어간걸 보면 나쁜 편은 아닌 듯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 너보단 좋아보… 켁, 잘못했어어! "
" 죽고싶어 환장했구나 니가? "
미르의 헤드락에 바닥에 나동그라진 재규는 거실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어번 내리쳤다. 항복! 항복! 재규의 항복에도 미르가 헤드락을 멈추지 않자 치훈이 리만 방정식을 풀던 걸 멈추고 조용히 재규에게서 미르를 떼어놓고 다시 구석에서 연필을 들었다.
" 아 씨- 최치훈, 저 개새 "
" 천만에 "
이제는 치훈에게 발길질을 하려는 미르를 무열이 잡아 앉히고는 재규에게 우유를 건넸다. 여기. 미르가 표정을 잠깐 굳혔다 이내 다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꾸었다. 야, 이야기나 하자. 박무열. 너 내일 뭐할건데?
" 일단 늦었으니까 영재네서 자고, 내일은 나 강모랑 같이 강모네 형 알지? 마로형이 하는 카페 일 도와주기로 했어. 요 앞 시내에 있는거. 서빙이 많이 모자라다나봐. "
" 카페에 서빙이 있어? "
" 응. 요즘 대부분 셀프시대인데 레스토랑 형으로 고급스럽게 했다나 뭐라나."
" 올- 카페싸나이, 까리한데? 수신고 남편감 1위 박무열 내일은 시내 통틀어 남편감 1위 하겠는데! 좋아. 나도 도와주지 "
미르가 무열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무열이 미르의 어깨동무를 풀어내려는 찰나
" 그건 사양할께. "
언제 들어온건지 강모가 미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말했다. 여, 찍사 언제온거야?
" 나야 뭐, 이새끼랑 집 비밀번호쯤은 공유한지 오래. 얘가 내 와우 배터리를 몰래 슬쩍했더라고. 집에서 사진 보정이나 하려다 배터리 찾으러 왔지-. 배터리가 얼마 안남아서 갈아끼우려고 봤는데 없는걸 보면 용의자 1순위는 당연 조염병이니까. 그나저나 강미르 넌 카페서빙은 영- 재규라면 땡큐지만. 재규야 생각있어? "
어? 어어… 얼떨결에 대답한 재규의 어깨를 강모가 두어번 두드렸다. 역시 이재규! 감사감사! 자기는 왜 안되냐며 툴툴거리는 미르 옆에 재규는 뭔가 굉장히 일이 꼬여가는것을 느꼈다. 이러다 방학때 신나게 놀기는 커녕 아르바이트 대타만 하게 생겼네…. 어느 새 뻗은 영재의 바지주머니에서 배터리를 찾아 갈아 끼우고 있는 강모에게 재규가 말을 걸었다.
" 저기… 강모야. "
" 어, 잠깐만. 이제 들리네. 재규재규 주위에 시간 비는 애들 없어? 물론 미친미르나 조염병같은 애들은 제외. 서빙 일손이 너무 모자라거든- 애초에 우리 형이 정상고에서 스트로베리필즈라고 형 친구들이랑 밴드공연을 정기적으로 할 셈으로 만들었는데 어쩌다보니 손님이 너무 많아져서, 얼마 전에 확장공사까지 해서 3층이나 되는데 아르바이트 생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나봐. 주위에 괜찮은 애들 있으면 추천좀 해줘! 그래서 할말이 뭐야? "
아냐…. 차마 강모에게 나는 못할 것 같아. 라는 말을 할 상황이 아니기에 재규는 결국 내일 하루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이번 방학은 사회에 나가기 전 미리 해두는 경험이라고 치자. 용돈은 많이 생기겠네. 에휴-
***
' 어서오세요, 왕자님! "
" 뭐야… 저리가 ! 아, 꿈이네. "
기분 좀 가라앉히려고 잔건데. 흥수가 짜증스레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꿈속에 나올줄이야. 왠지 모르게 어제 만난 이후로 계속 그 알바생이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병에 걸렸나? 흥수가 한참 고민하고 있을 즈음 남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흥수야! 너 요 앞에 새로생긴 카페 알지? 스트로… 뭐시기가 운영한다는. 알고보니 거기 카페 오정호네 사촌이 하는데래. 오정호가 일손 모자른다고 시간당 칠천이라는데 하자! 응? 응? "
시간당 칠천? 시간당 칠천이면 얼마야. 흥수가 머릿속으로 안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생각했다. 세시간에 이만천원 여섯시간에 사만 이천… 좋은데?
" 거기 어딘데. "
남순에게 카페의 위치를 들은 흥수가 잽싸게 신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아 신발! 아직 안말랐는데! 또 다시 유행 지난 작은 운동화를 구겨신고 흥수가 남순이 말한 곳으로 가니 남순이 흥수에게 손을 빙빙 흔들고 있었다. 흥수가 남순에게 가서 창피하니까 잽싸게 남순의 손을 내리고선 물었다.
" 근데 오정호는? 걔도 일해? "
그럴리가. 자기네 형 일이라고 걔가 도울리가 없지. 남순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늦었다고 흥수를 카페 안으로 마구 밀어넣었다. 남순의 밀침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문을 열고 앞으로 쓰러진 흥수는 누군가와 세게 부딪혔다. 그 반동으로 본의아니게 누군가를 깔아 뭉개버렸다.
" 으아, 뜨거워! "
흥수가 고개를 밑으로 내리니 뭔가 익숙한 머리통이 보였다. 데쟈뷰인가? 보아하니 커피를 들고가던 중 흥수와 부딪혀서 팔에 커피를 뒤집어쓴 듯 해 보였다. 흥수가 놀라서 남자를 일으켰다. 저기 괜찮아요? 친구가 밀어서, 죄송합니다!
" 네에… 어! "
재규는 겨우 몸을 일으켜 괜찮다고 말했다. 어! 그 그 킁수씨? 재규의 말에 흥수 역시 재규를 알아봤다. 어! 어제 알바생!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따라 온 남순이 둘을 바라보았다.
" 둘이 아는 사이에요? 박흥수 너 애정이 식었다! 내가 모르는 친구도 있었어? "
" 아, 그게 아르… "
흥수가 말을 이을려는 찰나 재규의 뒤에서 무열이 수건을 들고 나타났다. 재규야 괜찮아? 재규는 괜찮다며 팔을 닦았다. 갑자기 등장한 무열에 의해 말이 끊긴 흥수때문에 남순이 재차 물으려는 걸 무열의 말에 멈추었다.
" 재규 친구분이세요? 강미르랑 닮았네."
" 아 그게 아니라 어제 아르… "
흥수가 말을 이으려고 하자 재규는 순간 만약 아르바이트를 한걸 무열이 알게되고, 무열이야 걱정없지만 만약 미르 귀에 들어가게되면? 이라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되자 급하게 소리쳤다.
" 와앗! 어! 친구야! 응, 친구지? 무열아 친구, 응 친구야! 하하- "
뭐요? 흥수가 놀라 재규를 쳐다보자 재규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살…려줘요? 뭔지는 몰라도 흥수가 일단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순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내가 모르는 친구가 있어! 하며 흥수에게 장난으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고 재규가 무열의 눈을 피해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했다.
" 근데 재규야, 네친구 강미르랑 판박이네? "
" 어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재규는 남순과 투닥거리는 흥수를 쳐다보며 어제의 도플갱어 기운을 새삼 느꼈다. 근데 무열아 너 어떻게 미르가 아닌 줄 알았어? 무열은 당연한 듯 받아쳤다.
" 너 서빙하느라 몰랐구나? 강미르… "
무열의 얼굴 위로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 투닥거리던 남순과 흥수도, 무열의 말을 듣던 재규도 무열의 뒤를 쳐다보았다.
" 감히 내가 서빙을 해주겠다는데 거부해? 손님이 왕이다! 여기 커피 왜이리 늦어? "
" …우릴 골탕먹이겠다고 손님으로 왔지뭐야. 네가 쏟은커피, 그거 강미르 테이블이야. "
붉은 머리의 미르의 소란스러운 말과 함께 무열의 뒷말이 이어졌다. 말도 안돼. 흥수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바라보며 내뱉었고 뒤이어 남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규는 아까 아르바이트 발언을 막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왜이래? 미르는 무심코 앞을 쳐다보았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헐. 진짜 이재규 말대로 나랑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다니. 미르와 흥수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이건 꿈일거야.
흥수재규보다 이번화는 뭔가 되게 어수선하고ㅋㅋ큐ㅠㅠ
예정에 없던 미르를 등장시켜서 그럴려나ㅋㅋㅋㅋㅋㅋ
다음화에서 흥수재규를 끌어내보겠어요! 화이팅!
환상그녀님, 미미재규님, 홍종현님, 그 외에 익명으로 신알신 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