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록해 - EARLY MOON(얼리 문)
첫 눈이 오는 날. 오늘은 .1
{Fragranza}
by. 내가 설레려고 쓰는 빙의글
온몸이 젖었다, 나름 가까운 거리라 빨리 도착할 줄 알았는데, 잠시 정신이 팔려 빗물을 정통으로 맞고 들어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실에 들어가 찝찝한 빗물을 씻어냈다. 아까 그 사람은 누굴까. 시간이 멈추어 눈을 뗄 수가 없어 한참을 그 자리에서 서있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왔다.
샤워를 끝마친 후,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침대에 걸터앉아 폰을 열었다. 통화 목록 맨 위에 저장된 번호를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더니 잔뜩 흥분되어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게 이 주 동안 잠수 탄 이유라고?
“네가 그렇게 걱정할 줄 몰랐지….”
처음 겪는 이별이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무작정 세상과 잠수를 탔다. 심지어 남자친구와 헤어져 잠시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당돌하게 아르바이트하는 곳 매니저님께 말씀을 드렸다.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고 심지어 일하는 곳을 찾아가 보아도 보이지를 않았으니 나는 대역 죄인이 되었다. 그렇게 10분간의 잔소리를 들으며 통화는 종료되었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자꾸만 생각이 난다.
누군지 궁금하다. 그 사람은 누굴까 무엇보다 머릿속에서 그 사람이 잊히지 않았다. 왜 난 바보처럼 가만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을까. 왜 일까….
띵-
[설아]
창섭이다. 이 주일 동안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생각했는데…. 흘러나오던 생각 주머니를 잠그고 잠금을 풀지 않은 화면에 쓰인 카톡 내용을 한참이나 보았다. 휴대폰에서는 아직 2년의 연애가 진행 중인 듯 미쳐 지우지 못한 애정스러운 호칭이 담겨있었고, 나도 아직 2년의 연애를 끝맺지 못한 것인지 한참 동안이나 휴대폰 앞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정확하겠지. 나는 우리의 끝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까지.
띵-
[보고 싶다]
2년 동안 사귀면서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었다. 항상 같이 있었고 항상 함께였다. 그러나 헤어지기 몇 달 전부터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탓에 서로에게 너무나도 지쳐있었고, 가까웠던 끈은 끊어질 듯 아슬아슬 늘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정서적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그래서 이 카톡의 의미도 알고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2년의 연애를 끝맺지 못한 미련이라는 것을
휴대폰 잠금을 풀고 연락처에 들어가 창섭이의 번호를 지웠다. 애정 가득하게 저장되었던 애칭이 지워지니 이제서야 또 조금은 실감이 난다.
힘없는 손에서는 휴대폰이 미끄러지듯 쓰러져 내려갔다. 그냥 넌 옆에 있는 자리가 조금 비어있는 게 아쉽고 허전한 거야. 손바닥 위에 아슬하게 걸려져있던 휴대폰을 다시 짚어 통화 목록 맨 위에 저장 된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아, 또 왜?
“야. 이창섭 연락 왔다?”
-다시 만나겠네
참 한결같이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는다.
“아니. 나 안 만나려고….”
-그럼?
“어떻게 할까? ….”
-다시 만나.
퉁명스럽게 말을 던진다. 내가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라 나는 아무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수화기 너머에서도 적막이 가득하다.
-너도 헤어지고 싶다며, 그럼 정리하는 게 맞지
“그치? 그럼 답하지 말까?”
-하지 마. 그냥 씹고 내일 일어나서 생각해
“알겠어…. 야 내일 알바 끝나고 너랑 술 마실 거니깐 준비해~”
-아니 무슨….
“그럼 나 끊을게! 약속 있으면 수요일 10시!”
-아니 나 그때도 약속….
대답을 다 듣지 않은 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래도 넌 올 거야. 시간을 보니 어느새 새벽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늘은 참 눈이 말똥하게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다. 침대에 누워 긴 생각에 빠져 추억을 정리하다 결국 정리를 끝마치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첫 눈이 오는 날. 오늘은
{Fragranza}
by. 내가 설레려고 쓰는 빙의글
지금은 이별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썼어요.
날이 많이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