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F w. 미이 35. " 종현이는 좀 어때 "
" 살아는 있어 "
" 니가 수고가 많네, 미안. "
" 지랄. 니 친구기 전에 내 친구 거든 "
끊어. 나 글 써야 해. 다음에 오면 연락하겠다는 황민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 전화상이라 안 보였겠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을 알 거다. 어렸을 때부터 고치지 못한 습관이라서 ) 휴대폰을 탁자 옆에 올려두었다.
누가 들으면 김종현이 환자인 줄 알겠네.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환자와 별다를 것이 없는 것 같아서. 제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텐데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꼴에 우리가 걱정하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집에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며 하루에 한 번씩 살아있냐는 문자에 답도 꼬박꼬박한다. 무슨 생존신고도 아니고.
아 진짜. 마감이 코앞인데. 괜히 얼굴만 거칠게 쓸어내렸다. 답답한 거 진짜 싫은데. 당장 짐 싸 들고 김종현 집에 눌러 앉아있어야 속이 편할 것 같았지만, 집에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 놀랍게도 쓸데없이 착한 김종현에게 있어서는 엄청 강한 부정이었다. 꺼지라고 발악하는 정도랄까 )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 걱정만 산더미처럼 쌓아둔 신세가 되었다.
충분히 힘들 텐데 제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자. 나중에 필요할 때 연락하겠지.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나름 우리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생각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겠지만, 멍청한 김종현은 그게 더 신경 쓰인다는 것도 모를 거다.
36. " 왔어? "
" … "
" ..하핫 "
이삼 주 가까이 생존신고에 가까운 안부 문자들만 주고받다가 ( 일방적으로 나 혼자 묻는 것에 가까웠지만 ) 먼저 연락이 온 것은 1시간 전이었다.
- 오늘 시간 돼?
- 지금?
- 아무 때나. 너 편한 대로
챙겨서 바로 나갈게. 문자를 끝으로 겉옷을 챙겨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김종현 자취방 쪽으로 걷다 방향을 틀어서 주변 마트로 향했다. 밥은? 먹었어. 매일 끼니 챙겼냐는 내 문자에 먹었다고 꼬박꼬박 답을 하긴 했지만, 안 봐도 훤했다. 니가 퍽 잘 챙겨 먹었겠다. 물론 이 말은 속으로만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적중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면서 꼬라지가 왜 그래. 습관처럼 잔소리를 뱉으려다 다시 삼켰다. 그렇게 춥지도 않은 날씨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는 애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있어서.
안 그래도 살집 하나 없는 몸이 육안으로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 야위어 있었다. 나름 감춘다고 옷을 막 껴입은 모습에 가슴 한쪽 구석이 찌그러져 뭉개지는 기분이 들었다. 볼이 움푹 파여 두개골의 형태가 그대로 도드라진 얼굴은 제 친구가 갑작스럽게 표정이 굳어진 이유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 … "
" ..추워. 들어와. "
내 손목을 잡아 자신의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 순간에도 난 여전히 표정을 풀지 못했다. 이때까지 우리가 늘 그래왔듯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끌어당겨 봤지만, 내 손목 위를 감싼 손에 얼굴 근육이 모두 굳어버리는 느낌이었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피부가 전달한 촉감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고, 비참했다.
" 웃기지도 않네 "
" 너 설마 나 온다고 이런 거면 진짜 실망이다. "
뭐래. 빨리 앉아. 내 말에 넌 가볍게 대꾸하곤 소파 한쪽 구석에 앉았다. 누가 봐도 방금 급하게 치운 티가 나는 방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손님 대접받는 게 괜한 거리감이 느껴져서. 제아무리 지금 몰골이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지만.
술병들이 구석에 몰려 있었음에도, 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 작은 몸에 다 때려 부었을 거라 생각을 하니 골이 아파왔다.
" 찾아오지 말라고 쫓아낼 땐 언제고, 오늘 왜 불렀냐 "
" 글쎄. 그냥 보고 싶어서. "
" 지랄. 징그러워 "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물어보니, 딱히 일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 자체가 충분히 ' 일 ' 이기도 했고. 징그럽다는 내 말에 넌 웃어 보였지만 웃는 모습이 볼 가죽만 들썩이는 모양이라. 사람 속상하게 진짜.
" 온 김에 얘기 좀 들어주고 가 "
뭔 온 김에야. 이러려고 불렀구먼. 괜히 툴툴거리니 볼 가죽이 한 번 더 들썩였다. 넌 여전하네. 좋다.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내 귓가에서 울렸다.
" 너 이 생활 그만두겠다고 약속하면 "
" … "
" 밤새도록 듣고 갈게 "
냉장고 옆에 기대서서 내려다본 방 안은 엉망이었다.
내 말에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곤 소파 한쪽 구석에 걸터앉아있는 넌 더 엉망이었고.
원래 저 옷 저렇게 안 헐렁했는데.
손에 땀이 배어 나오는지 양손을 바지에 느릿하게 문지르다 넌 이내 입을 열었다.
" 노력해볼게 "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 거짓말인 거 다 알면서도.
37.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저녁 9시가 넘어 깜깜했다.
아 제발. 아직 원고 마감까진 좀 시간이 있었지만, 과제까지 겹쳐버려서 조금 급했다.
분명 엄청 밝았었는데 깜박 잠이 들었는지 탁자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땐 노트북 화면을 제외하곤 온통 어둠이 집안을 감싸고 있었다.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갑작스러운 빛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다 식어버린 커피를 보며 기억을 되짚었다. 원래 낮잠이 많은 편이 아닌데. 잘 먹지도 않는 커피까지 타서 앉아있던 것을 보니 전날 밤을 새웠나. 얼굴을 쓸어내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어젯밤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못 본 사이에 어째 지난번처럼 상처만 잔뜩 짊어지고 왔는지. 아마 밤새도록 김종현을 달래주느라 잠을 못 잤던 것 같다. 달래준다고 해봤자 얘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지만. 자기 딴엔 티 안 내려고 애쓰는 것 같긴 한데, 그 애쓰는 것이 눈에 훤히 보여서.
수면리듬 꼬이는 것이 제일 싫은데. 별수 있나. 혼자 중얼거리다 겉옷 하나만 걸치고 노트북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다음에 마감 끝나면 김종현한테 비싼 거 얻어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38. 내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집중력이 좋다는 것이다.
단점인 이유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좋아서. 말하고 보니 좀 재수 없는 것 같기도 한데, 한 가지에 집중하면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폭우가 내리거나, 강풍이 불어서 창문이 흔들려도 모를 정도다.
많고 많은 비유 대상 중에서 왜 하필 날씨냐고 묻는다면, 그야 경험적으로 제일 피해를 본 것이 날씨를 모르고 지나칠 때라서.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 더 강한 면이라.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꽤 많아 시끄러웠던 24시 카페에서 금방 원고를 써 내려갔다.
“ 아, 죄송합니다 ”
한참 노트북에 코를 박고 손가락을 놀리던 때였다. 누군가 지나가다 실수로 의자를 쳤는지 사과하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 ... ”
죄송하다며 스쳐 지나간 남자는 내 앞 테이블에서 멈춰 섰다. 일행인가. 왠지 모를 익숙한 얼굴에 안경을 고쳐 쓰곤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익숙하다 했더니. 오늘 새벽까지 김종현을 그렇게 시달리게 했던 장본인이었다. 이 시각에, 김종현이 아닌 다른 남자랑 카페를. 누가 봐도 좋게 볼 수 없는 상황에 휴대폰을 꺼내 들려다 내 귀에 들린 목소리에 행동을 멈추곤 앞 테이블을 응시했다.
“ 실례가 안 되면,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남자친구는 그쪽 때문에 한숨도 잠을 못 잤는데, 안색이 좋아 보여서 참 좋으시겠어요.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지만,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시선을 앞 테이블에 고정했다.
남자친구도 있는데 금방 거절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쉽게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거슬렸다. 제 남자친구 속은 그렇게 뒤집어 놓고.
“ 그쪽 남자친구 있지 않나? ”
더 쏟아낼 눈물이 없어질 지경이 될 때까지 울어내고, 먹던 것을 게워내던 하루 전의 김종현의 얼굴이 겹쳐 보여서. 내가 내뱉었다. 남자친구 있는데 왜 거절을 안 해. 내 물음에 조용히 눈만 깜박이는 모습이 꼴사나웠다.
“ 나 왔어. 어, 최민기? ”
남자가 돌아가자마자 카페 문이 열리고, 더 익숙한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불과 하루도 안 지났지만, 새벽과 다르게 멀쩡한 모습으로.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지만. 제 몸 썩어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왜 같이 있냐는 물음에 먼저 일어섰다. 저렇게 노력하는데 내가 무슨 명목으로 이 관계를 엎을 수 있겠나 싶어서.
39. “ ... ”
원래 진짜 그런 사람 아닌데. 아닌 거 너도 알잖아. 내가 너 만날 때마다 얘기했었잖아.
이 말만 여러 번 반복하다 결국 넌 고개를 숙였다. 다 내 잘못이야. 덧붙이면서.
“ 이제 그만하자. 너 잘못 없어 ”
잘못이 없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 비워낸 술병을 문지르며 넌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 나도 알아. 너 여준 싫어하는 거 ”
“ 내가 이런 모습 보이는 것도 싫어하는 거 알아 ”
그래서 항상 미안해. 그런데 난 너희밖에 없어서. 진한 쌍꺼풀을 천천히 접어 올리며 네가 뱉은 말은 조금 충격이었다. 티 안 내려고 노력은 했는데.
“ 이제 좀 실감 나더라. 난 또 습관처럼 아침에 전화 걸 뻔했잖아 ”
“ ... ”
“ 아침에 전화 안 받는 거 많이 서운했는데 ”
“ ... ”
“ 이젠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깐. 그냥 전화 걸 수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
죽겠어.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거의 3주 가까운 시간 동안 체력을 다 소모했는지 벽에 등을 기댄 채 입만 달싹이다 자신의 주머니를 헤집어 무언가를 꺼내 내 손에 쥐여준다.
손바닥에 닿는 찬 기운에 고개를 숙였다. 전 여자친구가 웃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잠금화면에 담겨있는 휴대폰 액정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 지워줘 "
" 지금? "
" 응. 전화번호랑, 사진이랑. 아. 연락 기록도. "
" 너 술 안 마셨을 때 네가 지워. 아침에 후회하지 말고 "
" 그럼 나 평생 못 지워. 아무리 마셔도 내 손으로는 못 하겠더라. "
그럼 내가 휴대폰 당분간 갖고 있을게. 생각 정리하고 말해. 내 말에 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 넌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내일 아침에 징징거려도 네가 좀 말려줘. 여전히 벽에 등을 기댄 채 입만 달싹이며.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고, 김종현이 보는 앞에서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7년간의 흔적이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휴대폰에 담겨있었는지, 지우고 지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액정을 한참 두드리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용하길래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다르게, 넌 한순간도 휴대폰 액정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늘 밝고 든든했던 네가. 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더보기 |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민기가 집중력이 좋다는 얘기가 예전에도 한 번 나왔었어요ㅋㅋㅋ쿄쿄 꽁꽁 숨어있어서 찾기 어려울 것 같지만.. 힌트를 주자면 비유대상..? + bgm첨부는 나 노력 많이 했어요... 휴대폰이 오래되어서 그런가 계속 튕기더라고요ㅠㅠㅠ 제대로 첨부되었는지도 이 글을 올려야 알게되겠지만 : ( 첨부 안 되어있으면.. 어쩔 수 없고........ |
더보기 |
☆암호닉☆ [금붕어][율무][황제의 하루][딥러블리][부깅이][윙깅][캔버스][지밍][호두][마카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