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혐오스러운 장면 묘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1. 문준휘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던 첫 직장 생활을 드디어 때려치우고, 3년간 일해 모은 돈으로 중국 여행을 가게 됐다.
비행기 값을 아끼고자 배에 몸을 실었고, 그게 문제였다.
새벽같이 도착한 항구는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었고 한자라고는 하늘 천 따지 밖에 모르는 내게 출구를 찾아가는 일이란 정말이지 하나의 도전이였다.
이리저리 미로같은 길들을 돌고 돌다가 발견한 것은 컨테이너 속에서 삐져나오는 불빛. 길이라도 물을 겸 문 가까이로 다가가자 창문에 드리우는 두 사람의 인영이다.
한참은 티격태격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바닥으로 쓰러진 여자의 앙칼진 신음 소리가 몇번 들려온다.
"어우...커플인가...? 되게 뜨겁게 노는구만"
그렇지만 이 새벽 중에 다른 사람을 찾는 건 정말이지 설상 가상인 부분이라 소리가 멎을 때까지 컨테이너의 문 밖에 쪼그려 앉아있던 참이였다. 마침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바닥엔 남자로 보이는 그림자만 일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컨테이너의 문이 열리며 문에 기대있던 나는 바닥에 고꾸라졌고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봤을 땐
온 몸이 피로 얼룩진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뿐이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남자를 위아래로 빠르게 흝어보다가 마침내 남자의 발치 뒤로 보이는 축 처진 여성의 피투성이 손하나가 내 마지막 기억이였다.
눈을 떴을 땐 그 컨테이너 안이였다. 살인의 흔적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단지 얼얼한 뒷통수에 그를 만지려 손을 들어올렸을때야 비로소 손 발이 묶여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와...아버지어머니부처님예수님..."
제발 이게 꿈이라고 해줘요.
그리고 그때, 인기척을 느낀건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제의 그 남자다.
표정없는 차가운 눈빛에 온 몸이 덜덜 떨리며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이내 남자의 신발코가 눈 앞에 드리웠고 한손으로 내 턱을 들어올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남자였다. 허? 하며 대답을 강요하는 듯 하는 남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워, 워 셔, 한,한궈런"
하며 두 손을 모으고
"살려주세요, 못본걸로 할게요"
하며 울먹거리자 그제서야
"아, 한국인"
하며 유창한 말을 구상하는 그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한국인이세요?"
하며 묻는 나에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리곤
"중국인인데"
하는 그에 벙쪄있을 때 즈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그거 봤으니까, 못보내줘. 한동안 거기 앉아있어야 할걸"
하며 뒷주머니에서 한자로 무어라 써진 빨간 캔과 소세지같은 것을 꺼내 내 발치에 던졌다.
"자면서 계속 꼬르륵거리더라"
하곤 다시 컨테이너를 나서는 그였다. 귀까지 달아오르는 느낌을 뒤로하고 묶인 두 손으로 열심히 캔을 까먹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콩 조림 같은 것이였는데,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먹어치웠다.
다음번 그가 들어왔을 때는 내 발에 묶인 밧줄과 침대의 기둥에 묶여있는 긴 사슬을 묶어두었다. 그리곤 컨테이너 한켠에 난 작은 문을 가리키더니
"화장실"
하곤 다시 나갔다.
그러니까 한 몇주를 그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겨우 화장실과 침대만을 왔다갔다거리며 잠긴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는게 다였다.
그리고 몇일이 지났을까, 이제는 습관 비슷하게 문고리를 만지작거렸는데, 그가 문을 잠그는걸 잊은건지 뭔지 몰라고 오른쪽으로 홱 돌아가는 문고리에 작은 탄식과 함께 문을 열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한 인영에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쇠사슬에 다리가 묶인 내 모습을 보고 놀라 달려온 경비인 복장의 아저씨가 사슬을 풀어주려 낑낑거리던 참이였다.
아저씨의 뒷통수에 깡, 하며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동시에 쓰러지던 아저씨를 뒤로하고 그 남자가 나를 들어올려 방안에 던져놓고는 곧 문을 잠근 뒤 뒷통수에서 피가 흐르는 아저씨를 어디론가 질질 끌며 사라졌다.
두번이나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나는 두려움에 떨려 방 한구석에 앉아있을 수 방에 없었다.
"엄청 화나보이던데, 나도 죽이겠지"
온갖 끔찍한 상상을 다하고나니 눈물이 북받쳐올랐다.
한참을 울었을까, 밖이 어두워졌고 문고리에 열쇠를 꽂는 소리가 들리자 다시금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볼 뿐이였다.
한손에는 비닐을, 한손에는 칼을 든 모습에 정말 딱, 기절하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한참의 정적 뒤에, 내게 가까이 다가온 남자가
"나는 비명소리를 아주 싫어해"
하며 눈을 내리깔곤 내 팔을 들어올려 주욱 칼자욱을 그었다.
너무 놀라 비명은 커녕 눈물도 나지 않았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에 그제서야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제서야 안면에 미소를 띄우는 그다.
"근데 네건 나쁘지 않아. 계속 듣고싶어"
2.권순영
"피고인은 범행 사실을 인정합니까"
변호사 생활 2년차, 법정계의 신인인 내가 이렇게 빨리 위기에 빠질 줄 누가 알았을까. 내 생에 3번째 재판. 제 부모님과 동생까지 무참히 살해한 살인자를 변호하게됐다.
"승소하려면 솔직하게 말해줘야해요. 왜 가족들을 죽인거죠?"
"글쎄요"
"내 대답을 듣고싶어?"
등골에 치밀어오르는 소름에 결국 자료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인간 진짜 누가봐도 사이코라니까? 어떻게 지 가족을 다 죽여놓고..."
"좀 늦었네요"
"꺄아아악!!"
"제발, 제발 죽여줘 제발"
어째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날 내려다보는지
"안타깝지만"
이내 그의 뜨거운 손이 나의 턱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곧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살려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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