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야, 일어나. 안일어나면 맛있는거 안사줄꺼야, 얼른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설정해두었던 알람음이 울렸다. 오빠에게 달달한 아침을 맞아보고 싶다고 부탁해 즉석해서 녹음해 알람음으로 설정해두었는데 아침부터 달달한 오빠 목소리가 들리니 아침 잠이 훅 달아나 달달하면서도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따뜻한 정기장판에서 벗어나기 싫어서 기지개를 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눈을 비비다가 멈칫, 손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어젯밤의 기억에 후다닥 일어나 거울로 향하니 이건 무슨 사람꼬라지인지, 잠자기,울기,눈비비기 이 세박자가 한번에 다 이루어져 눈화장은 누가누가 멀리까지 번지나 시합이라도 한건지 얼룩덜룩 다 번져있었고 메이크업을 지우지않아 건조한 얼굴이 땅겨왔다.
급하게 화장실에가서 화장을 다 지우고 피부에게 사과 할겸 아침부터 얼굴에 팩을 했다. 기분좋게 일어나서 아침에 팩이라니 갑자기 여유넘치는 하루가 된것같은 기분이었다.
띵동-
아침부터 찾아올 사람도 없고 몇일전 부터 기다리던 옷이 드디어 배송된걸까 하는 설레임에 인터폰을 보지도 않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어, 여주야 일찍 일어났,”
쾅-
문앞에는 아침부터 화사한 민현오빠가 서 있었고 나는 오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아, 어떡하지. 상쾌했던 아침이 한순간에 우르르쾅쾅 번개가 내리치는 아침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돌돌말아올린 상태에서 얼굴에는 하얀 마스크팩을 붙이고 밑에는 불편하지않게 돌돌 말아 무릎까지 접어올린 트레이닝복과 (심지어 한쪽은 흘러내렸다.) 목이 다늘어난 후즐근한 긴팔티하나.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민현오빠는 이 사람아닌듯한 몰골을 이미 봐버렸고 물은 이미 엎질러진 후였다. 잠시만요!!!하고 소리친 뒤 일단 급하게 아무 옷이나 갈아 입었고 마스크팩을 뗄까 하다가 이걸 때면 아침부터 땡땡부은 얼굴과 적나라한 쌩얼을 다 보여줘야하니까 그냥 가리개용으로라도 붙이기로 했다.
“오빠,들어와요.”
“일찍일어났네? 아침해주려고 왔는데.”
아침이요? 그럼 여기 계실거다, 그말인 거죠?
죄송한데 집주인 안계시고 저는 집주인 아는동생이라고 하고 쌩얼을 보여주면 믿지않을까? 하는 별 이상한 상상까지도 다 들었다.
“아침이요?”
“응, 어제 술먹었잖아. 북엇국 끓여주고싶었는데 내가 하니까 너무 맛이 없어서 그냥 사왔어.”
오빠는 나 잘했죠, 칭찬해줘요 하는 표정으로 얼굴 옆에 포장봉지를 흔들어보였다.
언제까지고 마스크팩을 하고있을순 없는 노릇이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저 “팩 정리좀 하고 올게요.” 라고 말하고는 방에 들어가자 급하게 비비라도 찍어발랐다. 피부야, 언니가 진짜 미안해...
자연스럽게 틴트라도 조금 바르고 빨리 방밖으로 나오자 오빠는 그동안 아침상 준비를 다 해놓았다. 포장한지 얼마 되지않아서 그런가 북엇국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오빠도 배가 고팠는지 우리는 금세 아침을 해치웠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쇼파에 누워있었다. 정확히는 오빠의 무릎을 베고 내가 누워있었다. 오랜만에 아침다운 아침을 먹어서 몸이 나른해져왔다.
“오빠 오늘은 뭐해요?”
“좀있다가 회사들어가보려구. 이제 컴백준비 해야지.”
아,맞다. 그래서 컨셉은 정말 섹시려나. 무대에서 있는 오빠는 늘 빛이나고 멋있었지만 막상 이제 내남자가 되어버린 사람을 가장 멋있는 공간에 세우고 보이려니 나만보고싶은데, 공유하기싫은데 하는 욕심도 피어올랐다.
♩♪♪♪♪-
아침부터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이른 아침에 울릴 일 없는 전화기가 울리자 또 묘하게 긴장이 됐다. 휴대폰 화면에는 ‘다니엘이모’ 라는 다섯글자가 떠있었다. 그 불안함에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여보세요?”
“여주야, 나 서울와서 다니엘 집가는중인데 점심먹고 얼굴도 좀 보게 다니엘 집으로 좀 넘어오렴.”
“아, 서울이시라구요?”
“응, 너 어제 또 아버지 기일이라서 술먹고 그랬을거아니야. 얘, 나 손에 짐들고 있어서 통화 오래못해. 니네 어머니가 챙겨주신 반찬도 들고왔으니 집에서 보자.”
서울이라는 이모의 말에 오빠의 무릎에서 튕기듯 일어났다가 전화를 다시 끊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다시 오빠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 와중에 이오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당장 어제일도 그렇고 지금 내가 강다니엘을 어떻게 보냐고, 더군다나 내앞에 민현오빠가 있는데 다니엘한테 어떻게 가냐고. 그냥 아프다고할까? 아냐, 그럼 부랴부랴 다 이끌고 우리집으로 오시겠지. 아 진짜 알고보면 오늘 하루는 시작만 좋았지 알고보면 다 꼬여있는 실타래 같았다.
“가자.”
“어딜요?”
“다니엘집. 가야하잖아,태워줄게. 어짜피 나도 회사들어가봐야해.”
아무렇지않게 다니엘의 집으로 가자는 오빠의 말이 더 가슴아팠다. 거기다가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는 이오빠는 속이 없는건지, 속이 깊은건지. 어찌되었든 너무 착해서 탈인건 확실했다.
“괜찮아, 다니엘 어머니가 부르시고 어머니 반찬도 들고오셨다잖아, 오랜만에 얼굴도 뵈어야지.”
좋지 않은 내 표정에 오히려 오빠가 나를 달랬다. 오빠는 시간 없다며 얼른 준비하자!하고 나를 재촉했고 나는 민현오빠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겨우 강다니엘 보러가는데 뭐하러 꾸며요,이렇게 가면 돼요. “ 하며 쌩얼에 잠옷을 입고 오빠차에 올라탔다. 내 나름 민현오빠를 위한 가장 최선의 배려였다.
차에 타서도 다니엘집 위치를 모르는 오빠로 인해서 길안내를 해야했다. 남자친구랑 있다가 전남자친구집에 가야하기때문에 남자친구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이리로가라,저리로가라 주문하는 상황은 정말 최악중에 최악이었다. 정말인지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차로는 2~3분 채 되지않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같았다. 그래서 도착했음에도 함부로 내릴 수 없었다.
“나 진짜 괜찮아 여주야. 너무 미안해 하지마.”
“어떻게 안 미안해해요. 진짜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근데 또 이 와중에 오빠가 데려다주고있고...”
“너한테 다니엘은 이성으로써의 감정 이전에 15년을 함께 지내온 친구잖아, 가족끼리도 다 아는 사이고. 내가 비록 남자친구여도 그 시간들이 존재하는데 그 사이에 내가 낄수는 없다고 생각해. 난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말고 어머님이 해주시는 음식 많이 먹고와.”
마지막까지도 착한 오빠가 너무 마음에 걸려서 오빠의 엄지손가락을 손에 잡고 놔줄수가 없었다.
“혹시 흔들린다 싶으면 오빠한테 달려와, 맛있는거 먹으러가자. 알았지?”
오빠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너무 아려서 그럴일 없다고 큰소리 뻥뻥치고 내렸지만 솔직하게 불안했다. 당장 강다니엘 너를 어떻게 마주해야할지도 모르겠는걸.
다니엘의 집은 초라한 우리집과는 다르게 고급 아파트였다. 네가 유명한 스타임을 증명하듯 집의 입구부터 달랐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복도에 이모의 음식냄새가 흘러나왔다.
이모는 잠옷차림에 쌩얼인 나를 보고는 다큰 아가씨가 이렇게 다니면 어쩌냐고 엉덩이를 한대 때리셨다. 그러다가도 왜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속상한 마음에 잔소리도 길게 늘어놓으셨다. 오랜만에 이모를 보니 고향에 내려간것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걱정거리였던 강다니엘은 막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타고난 포커페이스덕인지, 내가 올걸 알아서인지 놀라움이나 당황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 이모는 지금이 여름도 아닌데 왜 벗고 돌아다니냐며 윗옷없이 반바지만 입고 나온 다니엘의 등짝을 때리셨다. 너의 하얀피부에 빨간 손자국이 남는게 제법 우스웠다. 이제야 사람사는 집 같았다.
이모는 원래 아침을 먹지않는 나와 다니엘인걸 알기에 빠르게 아침겸 점심을 차리셨다. 먹기전부터 아침을 먹은지 한시간밖에 안됬는데 어쩌지했던 걱정은 필요도 없었다는듯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에 위가 끝없이 늘어난것 같았다. 뇌도 위처럼 이렇게 잘 늘어나주면 얼마나좋아.
“그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 검사 딸로 나오는 걔, 실물도 이쁘제?”
“걔 나랑 예능 두번같이 했는데 할때마다 내한테 들이대드라, 엄마 아들이 이정도다.”
“에이, 무슨 니는 물어볼 때 마다 여자연예인이 다 니한테 대쉬했다고 하노.”
“진짜다,엄마. 와- 아들을 못믿네. 김여주, 진짜 다이가 맞제?”
오랜만에 세 사람이 모이니 제대로된 사투리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엄마앞에서의 다니엘은 내가 15년간 알아오던 강다니엘의 본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초딩같기도하고, 그냥 딱 20대 남자같았다. 너는 평소처럼 나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걸어왔고 나는 그에 으응,하고 대답해줄 뿐이었다. 너는 늘 이렇게 아무렇지않았다. 매일 나만 고민하고, 나만 슬프고 나만 괴로웠다. 물론 이모앞에서야 티를 내지않는게 고맙지만 늘 아무렇지않은 너는 나빴다.
이모는 대체 여자가 얼마나 많이 대쉬하냐고 물었고 그렇게 너의 여자이야기가 시작될것 같았다. 그 이야기는 듣고 싶지않아서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거울에 보이는 나는 제법 우스웠다. 머리는 그냥 질끈 묶어올린 똥머리였고 비비를 급하게 발랐다지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 가관이었다. 매일 예쁜 여자연예인만 보다가 이런 나랑 밥을 같이 먹는 네 비위가 새삼 대단한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너랑 있으면 늘 한없이 작아졌다. 나는 너의 수많은 여자 중 한명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볼품없었다. 하지만 민현오빠는 달랐다. 오빠와 함께 있으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눈을 통해서 느껴졌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것 같았다. 그게 너와 민현오빠의 차이였다.
민현오빠와 있을 때 강다니엘을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강다니엘과 있으면서 민현오빠를 떠올리는 내가 신기했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거,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거 진짜 맞는말인가보다.
갑자기 문밖에서 그릇을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가 정리를 하시는것 같아서 도와드려야하니 화장실을 나가려는데 화장실 안에 있는 칫솔 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집 보다 너의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을 때,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둘이 있는게 좋았던 그때, 놔두었던 칫솔이 아직도 걸려있었다. 심지어 칫솔 꽂이는 새것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던 칫솔은 그대로였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일부러 나의 칫솔을 가지고있는거였다 너는.
저 깊은곳에 꽁꽁 숨겨두었던 눈물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칫솔이 뭐라고 또 이렇게 흔드는건지, 네가 나를 이렇게 잡고있으니까 내가 쉽게 벗어나지를 못하는거다. 그 칫솔이 너와 내가 함께했었다는 증거같아서 결국 어찌하지 못하고 화장실을 나와버렸다. 매번 혼자 열심히 너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가도 이런 너의 행동들이 달려가던 나를 넘어트리고 뒤돌아보게했다. 이미 내 무릎은 상처투성이인데.
화장실 밖을 나오자 이모는 보이지않고 네가 혼자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단 너를 따라 그릇치우는 일을 도왔다.
“이모는?”
“장보러.”
그 말은 이제 너와 나 둘뿐이라는거였다. 식탁을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설거지를 끝냈다. 끝내자마자 입고왔던 패딩을 손에 들었다. 이모도 없는 이곳에 내가 더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모한테 급한 일 생겨서 먼저 간다고 전해줘.”
“안간다며.”
신발장으로 걸어가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너는 거실 쇼파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안간다며, 너 거짓말 안하잖아.”
눈을 떠 나를 바라보는 네 눈은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고 너는 천천히 나에게로 걸어왔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나에게 걸어오는 너의 눈빛은 방금 내가 헛걸 본건가 싶을 정도로 원래 모질던 강다니엘로 바뀌어있었다.
그 눈빛을 더 이상 마주하기 싫어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자 너는 거칠게 나를 벽으로 밀쳤다. 그리고 두 팔로 나를 가두었다.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매서워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손으로 턱을 잡아 억지로 자신을 쳐다보게 만드는 너였다.
“내가 널 보낼줄 알았어? 미안한데, 넌 나한테서 못벗어나.”
“비켜.”
“안비킬거 알잖아.”
“나도 미안한데, 이제 너한테 안흔들려.”
너를 밀쳐내고 떨어진 패딩을 주워들었다. 너는 꽤나 순순히 밀려나주었고 그대로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신고 집을 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몇층 안되는 높이인데도 불구하고 한층 한층이 왜이렇게 느린건지. 집안에서는 몇번의 쾅-쾅- 소리가 들렸다. 또 네가 집 어딘가에 주먹으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 소리겠지.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소리는 상반되게도 경쾌했고 그 안으로 발을 옮기자 문이 닫힙니다-하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문이 닫혔다.
문은 닫히지못한채 다시 열렸고 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나의 팔을 잡고 다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대충 구겨신었던 신발이라서 집안으로 끌려가면서도 신발을 벗을 수 있었고 신발을 벗자마자 너의 손을 뿌리치며 뭐하는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다시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너는 나의 팔을 잡아 끌어 나를 품에 안았다.
발버둥 치며 너의 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러지못했다. 불규칙적이고 울음섞인 너의 숨소리가 들려왔기때문에.
너는 늘 남자는 우는게 아니라며 우는 모습을 보이는것을 부끄러워했고 너와 함께 지낸 오랜 시간동안 네가 우는 모습을 내눈으로 본적이 없었다. 그런 네가 지금 나를 품에 안고 울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을 충분히 묶어둘 만 했다.
“너, 너 울어..?”
애써 울음을 참지만 자꾸만 입을 통해서 너의 울음이 흘러져나왔다. 당황스러움에 너의 품에서 벗어나 얼굴을 보려했지만 너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버렸고 나의 머리를 감싸 다시 품에 안았다. 우는 모습은 보이기싫은건지 나를 안은 팔에 제법 힘이 들어갔다.
“나 너 없으면 안돼.”
“........”
“세상에 딱 두개, 춤이랑 김여주 너.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 늘 말했잖아. 근데 네가 가버리면 내 세상은 무너지는거잖아.”
울음 섞인 너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는 너의 애절함이 그 모든게 다 낯설었다.
“내가 너한테 못된짓 한거 알아.
나한테는 네가 내 세상인데 네가 다른남자랑 손잡고 모텔에서 나오는데, 그냥 그때부터 돌아버렸어. “
“........”
“네가 없으면 나는 이렇게 망가진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 진심을 전했는데 네가 이미 다른놈이 좋다고 가버리면 어떡해. 내가 망가져가면 그래도 친구니까 착한 김여주는 나 버리고 가지않을꺼아니야, 정신차리라고 옆에서 잡아줄꺼니까 그래서 그랬어. “
“........”
“그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내가 진짜 나쁜놈인거 아는데, 너무 무서웠어. 가지마, 가지마 여주야. 제발.”
처음 듣는 너의 속마음이었다. 이렇게 듣게 될꺼라고는 예상치도 못해서, 너의 마음이 그래서 일꺼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너의 우는 모습과 애원하는 너의 목소리가 마음을 송곳으로 찌르는것 처럼 아팠다. 되돌리기엔 우리 너무 많은 길을 걸어온것 같은데, 서로 다른 길을 걷고있다 생각했는데 뒤 돌아 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 너도 함께 걷고있었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이 새로운 길에 너는 올 수 없으니 가지마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네가.
그동안 너에게 당했던 모진 수모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흉터를 보면 다쳤다는걸 알지만 그 아픔은 자세히 기억못하는것 처럼 이미 내 마음은 흉터로 가득한데 너의 속마음을 듣고 다니 아팠던 고통은 기억이 나질않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좋았던 기억, 미안한 마음만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 모질면서도 뒤에서 나를 챙겨주던 네 모습만 생각나고 달콤했던 우리의 추억만 떠올랐다. 분명 나를 떠나게 만든건 너인데, 너에게서 떠나버린건 나라서 죄를 지은것 착각도 일어났다. 그만큼 너의 눈물은 대단했다.
나는 어느새 너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너는 조심스럽게 품에서 나를 떼어 손으로 나의 눈물을 닦았다. 오고 가는 서로의 눈빛이 마주쳤다. 슬픔이 가득한 우리의 눈은 진하게 서로만을 비추었다.
오랜만에 안긴 네 품이 너무 좋아서 다시 너에게로 안기고 싶었다. 강한 욕구가 밀려왔지만 멀어져야 했다. 나는 이미 강을 건넜고 네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다른길을 걷고 있으니까.
흔히 말하듯 배는 이미 떠나버렸으니까, 냉정해야했다.
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한걸음,두걸음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허공에서 갈곳을 잃은 너의 손은 방황했고 너는 나의 마음을 읽은 듯 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너는 뒤돌아 마른세수를 하며 이마를 짚었다.
“나 먼저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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