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0214, 더 파라디(The paradis) 12
w.규닝
12. 좋아서 좋아
호원과 동우가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성규의 집은 우현이 걸어놓은 천사의 옥탑방,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시끄럽고, 또 시끄러운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현과 마찬가지로 하루가 멀다하고 옥탑방에 찾아오고 있는 둘은 브루마블로는 모자라는 모양인지 카드나 젠가, 도미노같은ㅡ 보드게임이란 보드게임은 싹싹 긁어 입성했다. 성규의 집에 한 발 먼저 도착한 우현은 둘의 발소리가 들릴 때쯤이면 문전박대를 할 준비에 들어갔지만 성규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우현이 손 쓰기 전에 일어난 성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새로운 보드게임 장비들과 나타난 호원과 동우는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형! 안녕!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지켜보게 되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성규는 하는 게임마다 호원과 동우에게 참패를 당하고 있는 듯 했다. 우현은 멀찍이 떨어져 앉아 팔짱을 끼고서는 세명이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간간히 동우가 배를 잡고 구르면서 성규를 삿대질 하는 것을 보니, 아마 김성규는 지지리도 못하는 게 맞다. 특히 젠가를 할 때엔 더욱 그랬다. 표정만큼은 프로급으로 진지한 성규가 신중한 손길로 나무 패를 슬슬 빼내어내고 있을 때 우현은 옆을 지나가는 척, 성규의 팔을 발로 살짝 떠밀었다.
야! 씨발!, 나무 탑이 와르르 무너져내리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규가 이미 저만큼 도망가 있는 우현의 뒤를 쫓아 달렸다. 아 김성규, 실수였어! 눈은 휘어져라 접은 채 웃어대고 있는 주제에 뱉어내는 말은 얄밉기 그지 없는 변명 뿐이었다. 식탁을 가운데 두고 요리조리 도망가려 저를 간보는 태도에 성규가 씩씩거리며 우현을 잡으려 한참을 뛰어다녔다.
어느덧 날씨가 풀려가고 있었다. 더 이상 눈은 오지 않을거라 예상될만큼 맑게 개인, 백팔십도 바뀌어버린 하늘과 함께 서로를 알게 된 지 두어달 전과는 확연히 다른 생활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분명했다. 짜증나도 좋아. 우현이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다. 천사의 옥탑방에 두마리 불청객이 끼어들었다는 것은 미치도록 짜증이 치솟았지만 좋다. 김성규는 요즘따라 부쩍, 살짝이라도 웃는 날이 많아졌으니까. 우현이 결국엔 성규에게 한 대 엊어맞은 뒷통수를 문지르며 배시시 웃었다.
성규는 의외로 동우를 좋아했다. 전혀 다른 성격이라 마냥 귀찮아하는걸로만 보였지만 은근히 동우의 옆에 바짝 당겨앉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형,형 하며 시덥지않은 수다를 걸어오는 동우를 쳐다보다 저도 모르게 웃고 있는 듯 했으니까. 우현은 호원이 티비를 보고 있는 곳 즈음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가만히 그 둘을 지켜보는 날이 많아졌다. 꼭 저 때문에 웃는 성규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찌됐든 웃고있는 김성규니까 좋다. 삐에로라도 되는 듯이 재롱을 부리고 있는 동우와 마주해 앉은 성규가 키득거리며 웃기라도 하면 우현의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예뻐 죽겠다. 잘 웃는 김성규는ㅡ어찌됐든 예뻐 죽겠다.
우현과는 다르게 호원과 동우는 성규를 어느정도 다룰 줄 알았다. 겉으로는 매사에 무심해 보여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일쑤이지만, 조금만 구슬린다면 그 어떤 짓도 마다않는 성격이라는 걸 일찍이 알아챘기 때문에. 그래서 놀려먹는 게 매력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호원과 동우가 매번 신세지는 값을 한다며 명동으로 성규를 데리고 나오던 날에는, 쪽팔려 게임을 하자면서 의도적으로 성규가 패하도록 모의하기도 했다. 둘은 성규에게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개다리춤을 출 것을 요구했고, 우현은 '그런 거 시키면 죽여버리겠다'며 호원의 멱살을 잡아 짤짤짤 흔들어댔다. 하지만,
"푸하하하! 우와! 성규형!"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지만, 김성규는 했다. 우현이 호원의 멱살을 잡아대던 손을 뚝 멈추고는 풉,하고 터지려는 입꼬리를 감추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있던 성규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명동 한복판에서 개다리춤을 췄다. 이 씨발. 귀엽기는. 우현은 미친듯이 올라가있는 제 입꼬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옷소매로 입을 감추었고 동우는 폭소를 하며 성규에게로 달려갔다.
형! 나 형 너무 좋아요! 그렇게 냅다 안겨버린 동우에 의해 허리가 꺾어질 뻔한 성규는 그대로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야. 남우현."
호원이 제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눈으로 성규를 좇고있는 우현을 불렀다. 왜.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한 우현이 동우와 함께 있는 성규의 행동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있었다. 번화가에 나온 건 오랜만인 모양인지, 이것저것 둘러보던 성규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악세사리들이 즐비한 가판대 앞이었다. 동우와 함께 가판대 앞에 멈추어 선 성규가 허리를 굽혀 악세사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성규형 그만 좀 봐라. 닳겠다."
"안 닳으니까 보고 있지. 평생 봐도 안 닳아."
그렇게 말하는 우현의 입가는 금세 또 올라가 있었다. 호원이 그런 우현의 옆모습을 쳐다보다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니가 이렇게 팔불출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도 몰랐어."
"병신. 좋은 거 아니거든."
호원이 우현의 어깨를 툭 쳤다. 그 덕에 오른쪽으로 쏠린 우현이 잠시 인상을 구겼다가 자세를 바로했다. 그 때까지도 성규의 눈은 가판대를 향해 열심히 굴러가고 있는 중이었지만. 우현은 대충 어어.하는 대답을 남기고 또다시 성규의 옆모습에 시선을 돌렸다.
"근데 성규형 진짜, 매력 있는 사람인 건 씨발. 인정."
호원의 눈도 어느새 성규에게 향해 있었다. 그렇게 말해오는 동시에ㅡ 허리를 굽혀 악세사리를 구경하던 성규의 눈이 호원과 우현 쪽을 향해 돌아왔다. 턱을 괸 채로 성규의 행동을 뚫어져라 관찰하던 우현은 그대로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알아. 그래서 내가,"
멀찍이 떨어져 선 성규가 웃었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고, 수많은 인파에 묻혀 보일 듯 말듯 했지만 분명. 저와 눈을 마주친 성규가 기분이 좋아 옛다,하며 웃어준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해사한 웃음을 지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현은 그대로 성규를 따라 헤픈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답이 없어."
그렇게 보여, 새끼야. 호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현의 머리통을 옆으로 밀었다.
* * * * *
동우는 성규와 취향이 비슷한 것이 분명했다. 낮에는 옥상을 청소해야겠다며 저 혼자 신나게 물청소를 해댄 탓에 피곤함이 몰려와 고개를 꾸벅이는 와중에도 성규가 틀어놓은 보노보노를 보겠다며 티비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했다. 성규는 그런 동우의 고개를 쓰다듬어주다가, 또다시 멍한 시선을 화면에 고정했다.
"이성열이 심심하다고 카톡왔어."
호원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우현에게 던지듯이 말했다. 소파에 늘어지게 드러누워있던 우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바 안 가고?"
"알바 쉬는날이랜다. 그리고 이새끼, 너 때문에 과생활 망친지 오래야. 이제 친구는 아마 우리밖에 없을걸."
"이성열 과생활 망친 게 왜 나 때문인데."
우현이 호원의 다리를 아프지 않게 내리쳤다. 난 아무것도 안했어. 그렇게 변명한 우현이 제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을 습관적으로 꺼내어드려 할 때였다.
"너 몰랐냐? 이성열 종강총회 때 선호선배 앞에서 너 쉴드쳐주다가 호프집 한바탕 뒤집었던 거."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던 우현의 손이 한순간 멈추었다. 뭐? 우현이 한쪽 눈썹을 일그러뜨려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게 뭔 개소리야.하고 물어오는 듯한 우현의 눈을 마주한 호원이 종국에는 혀를 찼다.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니가 선호선배한테 죽을거다 어쩐다 하면서 난리쳤다며. 그 선배가 술기운인지, 미친건지ㅡ그걸 공개적으로 떠벌리고 있더라. 같은 테이블이 아니라서 난 좀 늦게 들은거지만, 이성열은 그 말 듣자마자 그 선배 얼굴에다 주먹을 냅다,"
확, 꽂았지. 호원이 제 주먹을 꽉 쥐고 휘두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래서 이성열은 그 날 이후로 과생활에서 아웃.
"근데 진짜냐? 너 죽으려고 했었어?"
호원이 성열의 행동을 재연하느라 휘둘렀던 주먹을 펴며 의아한 눈을 했다. 죽으려고 했냐며 물어오는 말. 예상 외의 질문에 굳어버린 손을 거두어들인 우현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던 상체를 퍼득거리며 일으켰다.
호원이 앞서 말했던 설명 같은 것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현은 그 날, 어째서 제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기도 전에 머릿속에 번뜩거리며 떠올린것은 성규였다. 김성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듣고…있을텐데.
급히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성규의 눈이었다.
멍한 눈을 한 채 동우와 함께 티비를 시청하던 성규의 눈은 어느새 우현 쪽으로 돌려져 고정되어있었다. 귀만큼은 호원과 우현의 대화를 듣고있었던 모양인지, 빤한 시선을 우현의 얼굴에 고정한 성규가 가부좌를 튼 채로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둘은 허공 위에서 눈을 마주했다. 야 인마, 진짜냐고. 호원이 제 물음에 대답이 없는 우현의 무릎을 소리나게 쳐대는 와중에도. 소음이 되어 귓가에 박히는 보노보노 성우의 목소리들이 정신없이 뒤엉켜오는 와중에도 의미를 모를 둘의 시선은 거두어 질 줄을 몰랐다.
*
"어디 가?"
"담배."
그 뒤로 설설거리며 성규의 눈치를 보던 우현이 대뜸 일어나 물었다.
제가 죽으려고 했다는 사실은, 성규의 귀에 들어갔음에 분명했다. 물 흐르듯이 화제가 바뀌었어도 알 수 있는 것은, 미묘하게 달라진 성규의 눈빛이었다. 아무런 생각 없는 눈으로 티비 화면을 향하던 눈은 알게 모르게 의식이 돌아와 화면이 아닌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듯 했으니까. 계속되는 호원의 추궁에도 우현의 눈은 성규의 눈치를 살피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김성규가 동요하고있다. 우현은 갑자기 바뀌어버린 성규의 눈빛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리고는 몇분 후, 느닷없이 일어난 성규의 행동에 우당탕,하는 소음까지 내며 따라 일어선 우현은 성규에게 어딜 가냐는 어설픈 물음을 던졌다. 성규는 그새 주머니에서 꺼내어 든 담배를 입에 물고 나즈막히 대답했다. 담배. 고개를 바깥쪽으로 까딱인 성규가 현관 문을 열었다.
다녀와요 혀엉. 마치 제 집인 양 배를 보이고 드러누워 늘어지듯 말한 동우가 하품을 했다. 뒤를 돌아 고개를 끄덕인 성규가 옥탑방을 나가고 난 뒤에는 만화 속 성우가 만들어내는 소리만이 좁은 거실 안에 가득 찼다. 호원은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동우의 배를 베고 누워 똑같은 모양새로 하품을 하고 있었고,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옆머릴 긁적이던 우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치부를 들킨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껄끄러움을 떨쳐낼 수가 없다.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잊고 있었던 과거인데 덜컥 드러나 성규의 귀에 들어가버린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무엇하나 변명거리를 늘어놓을 수조차 없이 명백한 사실인 것도 짜증이 나서. 우현은 답답한 제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성규가 지났던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하고 귓가를 찢는 쇳소리와 함께 열린 문으로 들어온 찬 공기가 우현의 얼굴을 덮쳤다.
언젠가 봤던 것처럼, 성규는 평상 위에 올라 앉아 담배 한 대를 물고 있었다. 등 뒤에서 들린 우현의 인기척에 시선을 비킨 성규가 또다시 빤한 시선으로 우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김성규. 쟤네 언제 보낼거야? 우현이 먼저 눈을 접어 웃었다. 사실은, 저 묘한 시선을 어떻게든 회피해보려 암묵적인 화두를 돌리기 위해 웃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현은 대충 걸쳐 입고 나온 호원의 패딩에 손을 찔러넣으며 성규의 옆 쪽에 다가와 앉았다.
"너랑만 있고 싶은데. 내가 쟤들 들이지 말랬잖아."
우현이 제 쪽을 향해 힐끔,눈길을 던진 성규에게 조르듯이 말했다. 보노보노도, 장동우 말고 내가 같이 봐줄게. 우현은 담배 연기가 피어나는 성규의 얼굴 앞쪽에 고개를 대고 머리를 기울였다.
"지랄. 머리 치워."
그렇게 말하며 성규가 우현의 머리통 위로 비켜나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우현은 확,하고 제 코를 덮치는 매캐한 연기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거두었다. 와, 비흡연자한테 이게 뭐냐. 김성규 완전 비매너. 우현이 제 얼굴 앞으로 손을 휘휘 내저으며 툴툴거렸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명령하래."
"명령이 아니라 부탁인데? 둘만 있어도 좁은 집에 장동우 이호원이 왠말이야. 솔직히 난 니가 장동우랑 노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
"…너무 재밌게 놀잖아."
나랑 있는 것보다 더. 우현이 꼭 다문 제 입을 삐죽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들어 성규는 동우와 짝짜꿍을 하고 있을 때 더욱 밝아보이는 것도 같았으니까. 우현이 옥상 위를 지나는 전깃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성규의 옆모습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에 명동 갔을 때도 장동우랑만 돌아다니고."
"그게 왜."
"그게 왜?"
"어. 그게 왜. 이호원도 가만 있는데 니가 왜 참견이야?"
성규의 고개가 우현 쪽으로 홱 꺾어졌다. 그 덕에 열심히 피워대던 담배연기가 한 순간 우현의 숨을 막았다. 우현은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ㅡ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호원의 이름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호원이 여기서 왜 나와? 우현이 잔기침이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호원 이름이 갑자기 왜 나온거냐고?
투정부리듯이 말하는 우현의 어투에 무덤덤한 눈을 하고 있던 성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말이 안 통하네. 됐어. 짧게 덧붙이며 입에 물었던 담배를 뺀 성규가 찬 공기 위로 담배 연기를 뿜었다.
하지만 굳이 옆을 돌아다보지 않아도 우현이 저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성규는 애꿎은 눈동자를 전깃줄 끝에서부터 끝까지 굴려보며 딴청을 피우려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저의 말을 기다리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숨통을 가로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김명수가ㅡ그런 모습에 자꾸 오버랩 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뱉어냈던 담배 연기가 어느새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을 때 즈음, 성규가 높이 들었던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난 사는 게 좋아."
그런 성규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건 정말이지 뜬금없는 말이었다. 입을 비죽 내민 우현이 성규의 옆모습을 노려보고 있던 눈을 누그러뜨리며 허리를 폈다. 뭐?
"그게 무슨 뜻인데?"
"평생 살 건 아니잖아."
"……."
"곧 죽게 되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시끄럽게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성규가 차갑게 얼어붙은 평상 위 나무판자에 다 피운 담배 꽁초를 비벼서 껐다. 그러니까 지금이 좋아. 그렇게 말해오는 성규의 입에서는 미처 뱉어내지 못한 담배연기가 입을 뗄 떼마다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우현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시끌벅적하게 하는 게 좋다'라는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곧 죽게 된다니ㅡ무슨 말을 저렇게 해. 아마 아까 호원이 폭로한 저의 과거를 듣고 나서 은연중에 비꼬는 거라 생각한 우현이 허,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죽을거라 말한 적이 없지 않아 있어 찔리지만, 죽는다는 말 참 쉽게하네. 우현이 또 한소리를 하려 허리를 마악 폈을 때였다.
"장동우 좋아. 이호원도 좋아. 그리고,"
딱,하고 둔탁한 소리가 평상 위를 울렸다.
"아! 씨팔! 왜 때려?"
그와 함께 제 머리 위로 느껴진 통증에 몸을 수그린 우현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오랜만에 입에서 튀어나온 욕지거리는 우현이 충분히 깜짝 놀랐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우현은 아려오는 이마께를 살살 문지르며 눈을 들어 성규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저를 때린 도구로 측정되는 화분 받침대를 손에 든 성규의 눈은 아까와 달리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성규가 손에 들었던 화분 받침을 평상 위로 던지듯이 버려둔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싫은 건 아니야. 그러니까 다같이 사이좋게 살면 되지."
자꾸 그렇게 떼쓰면, 집 밖에 개집 하나 만들어서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묶어놔버릴테니까. 성규가 슬쩍 웃으면서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왜 때리냐며 씩씩대고 있던 주제에 싫은 건 아니라고 해주니까 금방 샐샐 웃는 것을 포착해버려서. 성규는 개새끼가, 그래도 나름 충성스러워 맘에 든다고 생각하며 손잡이를 잡았다. 아이 씨, 같이 들어가! 밉지 않게 소리를 지르며 평상에서 벌떡 일어난 우현이 제 앞에 굴러떨어진 화분 받침을 도로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성규의 발걸음이 뚝 멈추었다. 물론 그것은 같이 가자며 소리친 우현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조그만 인기척에 걸음을 멈춘 성규가 컴컴한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런 성규를 따라 같이 고개를 돌린 우현이 살살 문지르던 머리통에서 손을 내렸다.
"…그 쪽도 여기 올라가요?"
"……그런데요."
녹슨 철문이 내는 쇳소리 후에는 짧은 대화까지 들려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개의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린 성규가 완전히 몸을 돌려 계단 입구쪽을 응시했고, 천천히 성규쪽으로 걸어오던 우현도 그 옆에 멈춰 서서 계단을 오르고 있는 두개의 발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 시간에 뭐야? 우현이 단단하게 팔짱을 끼며 어두운 계단을 응시했다.
투닥거리는 발소리는 엇갈리듯이 이어졌다. 아, 밀지 마요. 굴러떨어질거같거든요. 주변이 고요한 탓에 속삭이듯이 말하고 있는 목소리마저 크게 크게 귓가에 들려왔다. 두개의 발소리가 옥탑방 위로 가까워지자 나란히 선 성규와 우현의 눈빛이 똑같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니까, 초대한 적 없는 한밤중의 낯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눈으로.
"아 미친, 깜짝이야!"
그 싸늘한 눈인사를 맞이하게 된 불청객의 목소리가 고요한 옥탑방 위를 쩌렁쩌렁 울렸다.
조금 앞서 타다닥,하는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뿐하게 옥상 위로 오른 남자는 예상 외로 이성열이었다. 품 안에 무언가를 가득 안고 등장한 성열이 그렇잖아도 큰 눈을 최대치로 키워 우현과 얼굴을 마주했다. 그에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계단을 주시하던 우현의 눈이 허탈해져 풀려감과 동시에 화들짝 놀란 성열은 화분 옆쪽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씨,씨팔. 남우현 너 왜 여깄는데??? 긴 팔로 입가를 가린 채 화통이라도 삶아먹은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친 성열이 게 걸음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너,너너너,너 여기서 뭐하냐고?"
"…너야말로 왜 이시간에 이런 델 오는데?"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어깨를 내려뜨렸던 우현이 다시금 어이없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여긴 김성규 집인데? 나만 알고, 나만 찾아왔던 천사의 옥탑방인데. 우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랑 성규를 번갈아보고만 있는 성열을 쳐다보다가 성규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한 찰나였다.
"뭐야? 형."
성열의 뒤이어 올라온 남자는 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명수라는 남자였다. 코까지 끌어당겼던 검은 목도리를 턱 밑까지 끌어내린 명수가 성열의 옆 쪽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명수가 우현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성규의 얼굴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걘 또 뭐고."
명수의 미간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전에 잠깐 봤었던 주인집 아들. 반찬배달이나 한다던 녀석이 성규의 옆쪽에 보란듯이 서 있다. 명수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옥상 위에 올라옴과 동시에ㅡ 도란도란한 인기척이 들리던 옥탑방 안쪽에서 미친년 널뛰듯 현관문이 열린 것은 또, 한순간의 일이었다.
이성열 왔어? 가지고 오란거는? 거의 맨발로 현관 안을 뛰쳐나온 동우가 문 앞쪽에 나란히 섰던 우현과 성규 옆에 멈추어 섰다. 그것도 잠시,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바깥쪽의 상황에 활짝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얼은 동우가 성열과 명수, 우현과 성규의 얼굴을 차례대로 번갈아보았다.
"쟨 또…뭔데?"
아까보다 한 층 더 일그러진 표정의 명수가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짜증스럽게 고개를 치켜 든 명수가 아직까지도 가만히 입술만 물고 있는 성규의 얼굴만을 뚫어져라 쳐다봐왔다.
평상에 나와 떠들 때 까지만 해도 시원하기만 했던 바람이 살갗을 차갑게 에는 것 같다는 생각은 기분 탓일까. 우현은 찬바람에 전깃줄이 흔들리는 강도가 유난히 세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불청객 두 사람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그러니까, 우리 손님과 김성규의 손님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독히도 시기를 잘못 탄 불청객 중의 불청객들. 저도 놀란 모양인지 품 안에 안아 들었던 초록색 포대를 삐끗한 성열이 정체불명의 그것을 다시 한 번 고쳐 안았다. 그 탓에, 둥글게 말린 포대 안쪽에서는 화투패 한두개가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다섯사람의 눈동자가 시멘트 바닥 위로 떨어져 내린 화투장들에 정확히 모여들었다. 그리고,
"문 닫고 나가아, 추워!"
거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호원의 목소리는 미칠듯이 이상한 옥탑방의 기류에 한층 더 어색함을 끼얹어주었다.
ㅠㅡㅠ |
저기염..ㅜ,ㅡ..그대들? 원래도 댓글 많이 읽지만 공지에 달아주신 댓글들은 또읽고 또읽었어요ㅠ,ㅠ 암호닉을 정리해서 비록 반토막!나듯이 많은 분들을 잃었지만 행복해요 내가 비록 안아육대여도 행복하다니까? 빈말 아니에요 진짜에요..☞☜.....흡흑ㅂ흡흐하.. 부끄러워서 답글들은 못달았어요 ㅜㅜ////......스릉해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