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게 들린 문소리. 조심스러운 발걸음.
그리고 얕은 쇠붙이 소리
“기다렸어 my boo.”
모든 것이 너를 말해주고 있었다.
익숙한 체향도 오른발보다 왼발이 빠른 네 발걸음 소리도 내가 알려준 총을 잡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내가 사랑하는 너의 것이었다.
너는 너를 보기위해 뒤를 돌려는 나에게 빠르게 경고했다.
“입 닥쳐. 돌아보지 마. 내 얘기만 들어.”
뒤를 돌아 너를 돌아보면 너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어떤 눈으로 날 보며 어떤 입으로 나를 부를지
설령 그게 흡사 악마의 것이라도..
아 승관아 난 네가 어떤 표정을 지어도 널 사랑할 것 같아.
“사랑해.”
“닥치라고!!!”
사랑을 고하는 내 말에 너는 닥치라고 외쳤다.
악에 받친 소리에 섞인 물기가 나에게 네 표정을 그리게 만들었다.
-나한테 왜 그랬어?
너의 물기 섞인 물음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나는.. 난 그저.
愛憎
-애증
“사랑해서 그랬어.”
사랑해서 그랬다는 너의 말에 절로 이를 세게 악물게 되었다.
네가 면죄부라고 믿고 있는 사랑이라는 게 대체 뭐 길래 왜 내 모든 걸 앗아간 걸까.
“왜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내게서 앗아갔어?”
갈색의 뒤통수가 짧게 떨렸다.
그래, 너는 사랑에 약했다.
아니,
너는 나의 사랑에 약했다.
작은 동물 하나라도 쓰다듬으려 팔을 뻗으면 곧장 제게로 가져가며 자신을 쓰다듬으라고 했고
조금만 친밀한 사람이 생기면 나와 떨어트려놓았다.
“너를 사랑해서 그랬어. 승관아.”
너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생명은 더 이상 숨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는 말은 항상 같았다.
‘나만 사랑해줘 boo. 난 너만 사랑해.’
“넌 틀렸어 최한솔. 그건 사랑이 아니었어.”
사랑을 빙자한 괴롭힘이었어.
내 말이 끝나자 네 등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아.
“아니야.. 난 널 사랑해서 그랬어.”
너는 울기 시작했다.
물기어린 목소리가
떨리는 두 어깨가 말 해 주고 있었다.
네가 울고 있다고
“미워하지 마.. 사랑해..”
아니야. 넌..
“틀렸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해.. 사랑해 boo..”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는 내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져갔다.
무너지는 너를 보며 나는 총을 더 단단하게 쥐었다.
“나는 이 날을 끔찍히도 오래 꿈꿔왔어. 내 모든 게 사라진 그 날부터.. 진짜..”
덩달아 새어나오는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무너지는 너를 향한 동경인지
너무 기쁜 마음에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내 세월을 향한 그리움의 눈물인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새어나온 내 흐느낌이 젖어있는 목소리가 너에게 닿았을 때
너는 조금 더 거세게 무너져갔다.
“울지 마 boo.. 나 지금 너 안보여서 못 달래줘.”
울지 말라며 나를 달래는 너는 나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더 애처로웠다.
“나 이제 죽으면 너 못 보는데 어떻게 해? 나 진짜 나쁘게 살아서 천국도 못 가는데 나..”
“ 조금만 더 있으면 살고 싶어질 것 같은데 어떡하지 승관아..”
아. 최한솔이 뒤를 돌았다.
흰 피부에는 선명한 물줄기들이 흐르고 있었고 눈가는 발갛게 올랐다.
"승관아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하지 마.”
“만약에 내가 널 다른 방법으로 사랑했다면..”
“하지 마 최한솔.”
“넌 날 사랑했을까?”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표정의 너
그리고
그런 너에게 울며 총을 겨누고 있는 나.
만약 우리가 이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현실에 만약은 없어.”
“근데 만약이라는 게 있었다면,”
난 널 사랑했을 것 같아.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거야.”
마지막 말에 너는 눈을 감고 내게 다가왔다.
너는 내 손에 쥐어진 총을 제 가슴께로 가까이 붙여왔다.
내 손이 눈에 띄게 떨림에도 불구하고 너는 계속해서 너에게 총구를 붙여갔다.
마침내 내 총이 네 왼쪽 가슴에 닿자 너는 손을 내렸다.
”괜찮아. 그럼 다음엔 네가 더 행복하게 사랑할게 승관아.“
모든 준비를 끝낸 사람처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최한솔이 내 눈앞에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의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리고 원해왔던 순간인데,
딱 한번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일인데 나는.. 난 왜..
”짜증나..“
내 총이 너에게 잡혔을 때 어쩌면 이미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억울해. 나는 이 모든 게 다 싫어.“
왜 내가 너와 함께 울고있는지 나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처음에 그렇게 다가왔어? 그렇게 시작했으면서 왜 나한테 잘해주고 나를 그렇게 챙겼어? 왜 빌어먹게 잘생기게 웃어서 내가 널 보게 만들어? “
악을쓰며 너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더 닿을 것도 없는 총은 그대로 너를 뒤로 주춤거리게 만들었고
이내 너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왜 지금 그렇게 아프게 나를 봐서 왜...“
나는 이러면 안됐다.
먼저 간 내 가여운 짝사랑을 위해서라도 저 아이가 죽이고 상처 입힌 수많은 생명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너를 좋아하게 만들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총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나는 이미 이 방 문을 열고 최한솔의 뒷 모습을 본 순간부터 알고있었다.
나는 그를 쏠 수 없더는걸.
이미 내가 그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걸 인정하고 총을 버린 나 역시 이미 무너진 네 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의해 무너져 내렸고
나는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던 것들에 의해 무너졌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서로의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졌다.
너의 표정을 보자 석민이 생각났고, 순영이 생각났다.
나와 가장 가까웠고 한때 내가 가장 사랑했고 내가 가장 미워하던 그들은
나의 감정 때문에 솔의 손을 타고 넘어가 생명을 잃었다.
그렇게 나를 향한 네 사랑은 추악하게 시작 되었고 끝내 나 역시 추악한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추악하게 사랑을 시작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하자 한솔이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너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나 역시 엉망으로 울고 있었다.
”사랑해. “
물기 가득한 목소리와 떨림이 공존하는 고백은 씁쓸한 눈물맛이었다.
현실에는 만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이란 없는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바보 같은 행위였지만
너는 우리의 엇갈린 마음과 너의 물들어버린 사랑을 만약이라는 단어로 빌고 또 빌었고
신은 그것을 기적으로 가져다주었다.
바닥에 떨어진 총,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굉음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밖에서 도망치라는 말이 들리고 또 들렸었지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 작은 침대 위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안으려 애를 썼다.
마주친 입술은 더욱 서로를 갈구하듯 탐했고
처음의 서투름은 우리를 더 애달프게 만들었다
애달픔에 새어 나온 눈물은 우리의 입가를 적셨고
우리의 처음은 눈물맛으로 기억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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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된 솔부 외전입니다 :)
사건번호를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아파요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