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2월 31일 L.A 날씨 흐림.
모든 일이 끝났다.
더 이상 정부의 연락도 오지 않았고,
모든 아이들은 평화로움 속으로 돌아가려 각자의 길을 향해 갔다.
원우는 한국에 있으면 그 아이가 계속 보고 싶을 것 같다며 유럽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났다.
가끔 오는 연락을 들어보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물론 그 안에 저 혼자만의 고민과 아픔을 꽁꽁 숨겼겠지만...
찬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름 친구도 많이 사귀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종종 소식을 전하러 오곤 했다.
승철이형은 한국에 있다는 신경 쓰이는 여자와 아이의 곁에서 전전긍긍 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뭐 예상이지만, 잘 될 것 같기도 하고...
준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땅에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초적인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아이들이 예쁘니 다음에 한번 와보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승관이는... 그 날 이후로 모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빅과 함께 실종되어 아직까지 소식조차 들리지 않고 수소문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서 살아있겠지 라고 빌고 있다.
그리고... 」
” 형 뭐해요? 일기? “
..이 녀석.
그렇게 내 옆에서 나만 보라고 할 때는 안보더니
이제야 내 옆에 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안하는 이 녀석.
DIARY -
- 12월의 이야기
그날 분명히... 모두 자기 일을 위해, 평범했던 지난날을 위해 모두 돌아갔을때
마지막까지 너는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다.
이녀석도 본디 평범한 학생이었기에 네 인생을 살라고 떠나보내야했다.
그게 내 마지막 계획이었으니까.
”다 끝났어. 너도 이제 네 인생 살아. 안 잡을게. 소식이나 종종 전하고.“
그런 내 말에 이 녀석이 뭐라고 답했더라..
”형 내 말 안 들려요?? “
”..나 생각중이야 조용히 해. “
그날 이 녀석은 미간을 찌푸리고 나에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네가 했던 말을 기억하기 위해 천천히 기억을 더듬자
너는 머리를 털던 수건을 내리고 천천히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생각 하는데요? “
책상 가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는 너를 보며 멍하니 뱉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
내 애매한 대답에
너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 그때도 저런 표정이었는데...
... 뭐라고 했더라...
여하튼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참 이상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원래는 이렇게 가깝지 않았는데.
그 날 네 말 이후로 우리는 불이 붙었고 서로 그 뜨거움을 감당하기 위해 긴 밤을 함께 했었다.
그날의 생각을 하느라 멍해진 정신에 표정 또한 바보같이 멍해졌을것이다.
멍한 표정의 내 얼굴 위로 네가 겹쳤다 떨어졌다.
...
이런 입맞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사이였는데.
”형 립밤 발라야겠다. 입술 텄네. “
씩 호선을 짓는 입 꼬리가 미워졌다.
언제였더라,
내가 네 첫사랑을 없앤 날.
그때까지만 해도 너는 날 이런 눈으로 이런 표정으로 보지 않았다.
감정을 갖지 말라는 내 말에 죽일 듯이 날 노려보던 네가 이젠 나의 감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달려오던 시간 속 나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그런 내가 나의 첫사랑이 너임을 인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었다,
네 첫사랑을 죽게 만들었을 때 네가 내가 보인 표정과 행동들에 가슴이 머리가 내 모든 게 욱신거리고 아팠으니까.
그래서 너에게 표현하지 않았다.
네 첫사랑을 죽이고 내 첫사랑이 너이니 날 사랑해달라고 하는 건 너무 웃긴 일이었으니까.
... 그런 너와 내가 언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입을 맞추고 같이 자는 사이가 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사건이 있었던 밤,
우리는 선을 넘었고 다음날 아침 한 침대에서 아침을 맞았다.
그날부터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입을 맞췄고 너무 당연하게 일상에 서로가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연인들이 하는 달콤한 말따위를 하진 않았었다.
우리 사이엔 좋아한다. 사귀자. 사랑한다. 같은 단 내나는 말 따윈 존재 하지 않았다.
이 전부터 종종 생각 해 왔던 거긴 하지만 너무..
”너 나 가지고 놀아? “
의자 등받이에 푹 누운 채 너를 올려다보자 네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진다.
”내가 널 왜 가지고 놀아. “
그럼 우리는 무슨 사이인데?
목끝까지 차오르는 말이 차마 뱉어지질 않았다.
네 입에서 그냥 잠만 자는 사이, 그냥 필요에 의한 관계 따위의 말이 나오면 채 꽃피우지 못한 내 사랑은 너무 허망 되고 아파질 것 같아서,
꾹 눌러 담았다.
그런 말을 듣고 이 관계를 끝내기엔
내가 너를 너무 좋아했다.
”... 아니야“
아니라는 내 말에 너는 내 턱을 아프지 않게 들어 눈을 맞췄다.
잠깐 사이에 네 눈은 더 깊어져 있었다.
화라도 났는지 미간 사이 골이 깊게 내려 앉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것이
어째 발가벗겨진 채 큰 짐승 앞에 놓인 기분이었다.
네 시선끝에 닿은 나는 어쩐지 야릇한 상상에 갇혔다.
헛숨이라도 들이켜야 단전에서 피어오르는 야릇한 상상이 꺼질까 싶어 숨을 깊게 들이켰다 내쉬자
너는 더 깊은 눈으로 나를 훑었다.
그 시선을 더 마주할 자신이 없어 눈을 내리 깔자 너는 낮아진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 권순영. 나 봐. “
아무렇지 않게 불러지는 내 이름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반말에 순간적으로 기가 찼다.
아무리 우리가 모두 흩어졌어도 나는 저에게 몇년간 머리였고 상사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부르고 턱을 그러쥐는 모습이 퍽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 네 보스야 말 똑바로 해. “
”그건 지난달에 끝난 거고. 너 내가 한 말 기억 안나? “
냉철하게 말하는 네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다.
내 위치가 지워진것이 기분이 나쁜게 아니었다.
네가 한 말 중 사랑한다. 좋아한다. 사귀자 함께해달라는 말 따윈 단 한 번도 없었다.
-표정 보니 기억 안 나네.
네 말에 울컥 눈물이 찼다.
”네가 그날 나한테 가라고 했을 때. “
”나 분명히 너한테 이렇게 말했어. “
한참을 내가 생각할 기회를 주듯 내 눈을 맞추는 너에 입술을 악물었다.
기억을 다시 천천히 더듬었다.
너는 미간을 구긴채 내게 다가왔었고
...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너는 그래 그렇게 말했다.
딱 이 표정으로.
”내 세상이 너인데 내가 어딜 가. “
그날의 있던 일들이 모두 아찔하고 긴장감 넘쳐서 이었을까
아니면 그 말 이후로 이어진 우리의 관계가 너무 아찔해서였을까
나는 잊고 있었다.
너는 절대 평범한 말로 사랑을 고할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나 아무하고나 그런 짓 안 해 권순영. “
네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너만의 고백 방식이었음을
사랑 표현의 방법임을 배워갔다.
아 너는 너무 치명적이다.
지금 스피커 속에 나오는 끈적한 선율보다 네 짧은 말 한마디와 네 표정이 더 아찔해서 나는 오늘도 죽어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내 시선의 끝에 네 입술이담겼다.
너 역시 마찬가지 였는지 그 잘난 턱선이 나에게 다가왔고
이내 깊은 숨들이 섞이며 눈이 절로 감겼다.
이 또한 너의 표현방식 이리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너는 다시 허리를 펴 책상위에 걸터 앉았다.
여전히 내려다보는 묘한 시선에 짐짓 사랑이 담겨있었다.
”언제까지 내 옆에 있을 거야? “
내 바보 같은 질문에 너는 또 아찔하게 웃었다.
저 웃음은 나에게 너무 치명적이었다.
”권순영 똑똑해질 때 까지. “
네 말에 의미를 찾지 못해 표정이 이상해지자
너는 나를 네 품 안에 가뒀다.
”평생 있을 거라고“
적다 만 일기장, 옅은 향초냄새와 은은한 조명,
책상위의 너와 의자 위의 나,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네 품안의 옅은 바디샴푸 냄새.
모든 게 완벽했다.
아 한 가지를 빼고
”사랑해? “
”물론, 사랑해. “
아 완벽하다.
네 마지막 사랑 고백으로
내 일기의 마지막 구절은 이미 정해졌다.
「그리고... 이석민은 내 곁에. 평생. 함께. 」
마지막 일기의 구절이 끝나고 펜을 내려 놓고 너를 다시 올려 볼 때까지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자자."
"졸려?"
졸리냐는 너의 말에 사근히 웃었다.
오늘은 내가 좀 더 치명적이고 싶었다.
" 안졸린데 침대로 가야할거같아."
"아니면 여기도 좋고."
내 말에 너는 곧장 내게로 다가왔고 두 입이 맞물렸다.
뜨거운 불이 서로의 손길이 닿는곳마다 퍼질때
서로의 시선에 온전히 서로가 담길 때,
괘종시계의 종이 열두번 울렸다.
새해의 시작도 뜨겁게
너와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