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번클로 ;
우리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
황인준, 그 애는 어딘가 멍청한 구석이 있었다. 호그와트 전교 1등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리 만큼, 그 애는 항상 어딘가 하나가 빠진 것 처럼 굴었다. 그 애가 전교 1등이라는 소식은, 도영 선배의 빠른 입을 통해 우리에게 항상 전해졌는데, 황인준은 그걸 모르는 듯 했다. 그 애는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수업시간에 가끔 같은 조가 되어 이야기를 나눌 때 빼곤, 나 역시도 그 애와 대화를 많이 나눠본 편은 아니었다. 황인준은 아주 말이 없는 편은 아니었으나, 자타공인 인간 올빼미 도영 선배에 비하면 말이 많이 없는 편이었다. 입학 초반에는, 그런 황인준을 신경 써주는 아이들의 손길이 많았지만, 해가 거듭되고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해갈 수록, 황인준은 신경을 써야하는 존재에서 요약 정리 노트를 빌릴 수 있는 정도의 아이가 되었다. 물론 황인준이 래번클로가 아닌 다른 기숙사였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인준이 왕따를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학년에 아이들은 겨우 40명 정도였고, 같은 기숙사인 아이들끼리는 주로 우르르 몰려다녔기에 서로서로 챙기는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나와 헤린처럼 단짝! 이라고 할 만한 애가 황인준에게 없었던 건 맞았다. 황인준은 주로 교수님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인 것 같았다. 전교 1등인데다가 싹싹하기까지 한 그 애를 싫어하는 교수님은 없었다. 아마도 황인준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겉도는 이유는 교수님들과의 시간에서 사회성을 모두 소진해버린 탓 인 것 같았다. 아니면, 그 애가 유독 또래들과의 관계를 귀찮아하거나. 헤린은 그 애가 제게도 미소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수업시간이 되면, 래번클로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나가 우르르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일단 래번클로는 학생들간 관심이 비슷해 수업이 많이 겹치기도 했고,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퀴즈를 풀어야하기에 많은 머리가 필요한 것도 있었다. 그 탓에 같은 학년 끼리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이 래번클로의 전통 아닌 전통이었는데, 황인준은 그게 꽤나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청동 독수리 상이 내는 문제를 맞추는 것은 거의 황인준의 몫이었고, 그런 황인준에게 동경의 눈빛 정도를 보내는게 나머지 독수리들의 일이었으니까. 황인준이 우리를 귀찮아했대도, 우리는 별 할말이 없었다.
황인준이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시간은 머글 연구 시간이었다. 물론, 크게 발표를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황인준의 짝인 나는 - 호그와트에서는 학기 마다 짝을 정한다. 서로 공부나 숙제를 도와야 하는 것이 주 임무지만 나는 황인준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 그 애가 교수님이 질문을 하실 때마다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럼, 나는 그걸 크게 말하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황인준은 고개를 번쩍 들고,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가끔 교수님들이 내 발표 탓에 우리 기숙사에게 점수라도 주시는 날이면, 나는 그 애의 등을 몇번 쳤다. 알면 크게 말해. 똑똑한 건 창피한게 아니야. 그럼, 황인준은 창피하다는 듯 샐쭉 웃기만 했다.
축제 시즌이었다. 각종 부스와 재능있는 마법사들의 공연도 재미있었지만, 축제의 꽃은 기숙사 대표들의 경기였다. 총 4가지의 종목이 있었는데, 미로 통과와 퀴디치, 보물 찾기, 골든벨이었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은 미로 통과였는데, 이 종목은 출전 선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과 이 경기로 우승팀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았다. 다른 세가지 종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낸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미로를 통과하는 것이 이 경기의 룰이었는데, 작년 축제때 슬리데린이 우승하는 바람에 각 기숙사마다 이번 우승컵을 꼭 가져가야한다며 과열된 상태였다.
나는 파수꾼이기 때문에 미로통과에 출전한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몰이꾼인 박지성이 난데없이 블러져를 이상한 데로 날려버리는 바람에, 수색꾼인 도영 오빠가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후플푸프와의 경기였기에 우리의 우승이 당연시되고 있었는데. 결국 퀘이플을 가장 많이 던져넣은 내가 래번클로 퀴디치 팀에서의 최고 득점자가 되어버렸다. (박지성은 내게 굉장히 미안해했다. 물론 도영오빠도) 헤린이 걱정스레 내 등을 두드렸다. 걱정 마, 아직 두 경기 남았잖아. 나는 관중석에 앉아 헤린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헤린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건지, 바로 다음 경기였던 보물 찾기에서 레번클로 출전자인 쟈니 오빠가 반칙 탓에 실신해버렸다. 보물 찾기면 얌전하게 보물이나 찾을 것이지, 망할 슬리데린 뱀새끼 하나가 쟈니 오빠한테 스투페파이를 쏘는 바람에 아주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난 당연히 수색꾼인 도영 오빠와 쟈니 오빠가 출전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황인준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황인준은 억지로 골든벨에 출전한 듯 보였는데, 유력한 미로 통과 출전자 둘이 떨어져버리는 바람에 황인준이 그 다음으로 유력한 후보가 되어있었다. (물론 나는 확정이었고) 황인준! 너 여기서 망쳐도 어차피 미로 통과 출전해야하니까 열심히 해라! 해리가 고래고래 외쳤다. 강당 가운데에 앉아있던 황인준이 뒷통수를 긁적였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래번클로, 아니 황인준의 우승이었다.
미로 앞에 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교장선생님이 출전자들을 모아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안엔 어떤 것이 있을지 몰라, 너희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게 될지도 모르지. 포기하고 싶으면 붉은 불꽃을 쏘렴. 그렇지만 페리큘럼을 외쳤다가 기숙사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했기 때문에, 아무도 중도에 (자의로) 포기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알았다. 그렇지만 황인준은 별 생각 없는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포기하고 싶어보였달까.
황인준과 짝으로서의 이야기를 나눈 것 빼고는 이야기를 나눠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자꾸 말이 나왔다. 야, 너 마법 잘 쓰지? 난 너만 믿을게. 내가 빗자루 잘 몰잖아, 너는 공격해 알겠지? 그럼 황인준은 살짝 미소지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황인준이 전교 1등이긴 하지만, 아직 우린 공격 마법 실기 시험을 볼 정도의 학년은 아니었으므로 (물론 필기 시험은 봤다. 실기 시험은 졸업반 부터. 나와 황인준은 6학년) 나는 황인준의 마법 실력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황인준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미로에 들어가고 나면, 빨리 빗자루를 소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지만 무슨 마법을 걸어놓은 것인지 아무리 빗자루를 많이 소환해보아도 빗자루는 도통 하늘로 떠오를 생각을 안 했다. 다른 기숙사 애들은 벌써 저만치 갔겠지? 황인준은 내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얼른 가자, 늦겠어. 황인준의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조금씩 흩날렸다. 미로 안은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자꾸 이상한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고, 황인준의 지팡이를 쥔 손이 조그맣게 떨렸다. 지팡이는 주인의 감정을 느낀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조그마한 루모스 불빛이 자꾸만 떨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황인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의식하지 못 한 행동이었는데 (헤린과 손을 잡고 다니는 버릇 때문인 것 같았다.) 황인준의 손에 자꾸 땀이 나는 바람에 알아차렸다. 깜짝 놀라 황인준을 올려다보자, 그 애는 또 입가를 끌어올려 미소지었다. 무서우면 손 잡아도 돼. 황인준이 솜씨 좋게 지팡이 끝에서 솜사탕을 뽑아냈다. 먹으면서 걷자. 그냥 놀이동산이라고 생각해보는거야. 황인준이 그렇게 말하자, 정말 여기가 놀이동산인 것 처럼 느껴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사람 없는 놀이동산처럼.
저 멀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스투페파이랑, 또 뭐 있었지? 머릿 속으로 공격주문을 잔뜩 떠올렸다. 손을 가슴 높이 정도로 올리고, 이론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이런 상황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너 할 수 있는 공격 마법 있어? 황인준이 또 살짝 미소 지었다. 걱정 마. 전교 1등이잖아. 이제는 왠지 모르게 그 애를 아주 많이, 저 가슴 속 부터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루모스 솔렘! 황인준이 저 멀리로 빛을 쏘아올렸고, 주위가 서서히 밝아졌다. 그와 동시에, 나와 황인준은 그 소리의 근원지를 알 수 있었는데, 그건 바닥에서 악마의 덫에 싸여 빨아들여지고 있는 다른 기숙사 애들이었다. 다른 참가자들 전부가 거기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본 내가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았다곤 말 못 하겠다. 황인준의 주문 탓에, 악마의 덫이 꿈틀거렸고, 그 사이에 끼어있던 다른 참가자들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악마의 덫이 꿈틀거리는걸 보는게 너무 두려웠는데, 저 멀리 반짝거리는 우승컵이 보였다. 다들 저걸 보고 걷다가 빠져들었구나, 그럼 어떡하지? 자꾸 울음이 울컥울컥 삐져나왔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황인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게 너무 부끄러웠다. 난 나름 퀴디치 선수인걸, 고개를 떨구자, 황인준이 내내 잡고 있던 손을 빼 내 어깨를 살짝 그러쥐었다.
우리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
황인준이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저 악마의 덫에 감기는 것보다 황인준이 감기는 걸 보는게 더 두려웠는데. 황인준은 그걸 용케 알아채고 날 달래왔다. 악마의 덫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야. 난 전교 1등이잖아, 그렇지? 여기서 잠시만 머리를 굴려볼게. 나는 이제, 완전히 황인준을 믿고 있었다.
후플푸프 ;
난 너와 함께 죽을게
이제노의 하얀 피부와, 새하얗게 질린 금발의 머리를 보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제노가 '말포이' 가의 사람이라는 걸. 그 애의 어머니는 말포이 가의 수장 격인 루시우스 말포이의 누나였는데, 그 탓에 말포이 가 안에서의 이제노의 서열은 꽤나 높았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애의 어머니는 루시우스가 죽음을 먹는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그 애는 두 부모님을 모두 잃고 말았다. 말포이 가의 사람이 후플푸프라는 것, 이제노가 입학 이후 매번 제 머리를 까맣게 물들이는 것 모두가 센세이션이었지만, 이제노는 호그와트에 숨어 조용히 살아가는 편이었다. 가끔 드레이코가 그 애 멱살을 잡고 가문의 배신자라며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이제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드레이코 녀석이 쥐고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었다.
이제노의 정수리가 노랗게 물들어갈 즈음이었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확실히 죽음을 먹는 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제노도 죽먹자가 되면 어떡해? 에-이, 그 애는 호적에서 파였는데? 어둠의 마왕이 그런 걸 신경 쓸까? 모두들 이제노의 앞에선 말을 삼갔지만, 그 애가 죽음을 먹는 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꾸만 우리를 잠식해왔다. 결국, 이제노는 하나 둘 친구를 잃었고, 그 애의 하얀 피부는 점점 질려가는 것 같았다. 괜찮아? 이제노에게 물어도 이제노는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너도, 내가 죽음을 먹는 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 그 애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믿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 그런 소문이 돌았다. 오늘은 이제노가 드레이코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누가 봤대. 이제노가 드레이코한테 손목을 까더라니까? 거기 분명히 죽음의 표식이 있었어. 이제노는 분명히 그런 말들을 다 들었으면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우리도 이제노에게 손목을 까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매우 무례한 것임을 알았고, 만약 그 애의 손목에 진짜로 죽음의 표식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녁 시간이었다. 나와 이제노는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아있었는데, 이제노는 소파에 기대 장작이 타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작이 타닥타닥 탈 때 마다, 그 애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았다. 타닥거리는 장작 소리와, 편안해 보이는 이제노의 얼굴. 그때였다, 후플푸프에서 죽먹자라니! 난 용납 못 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델타가 벌떡 일어났다. 미쳤어? 따위의 소리가 들렸지만 델타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기숙사에서 죽먹자가 나오는거 못 보겠어. 그러니까 그 누구라도 죽먹자가 될 거면 꿈에도 꾸지마. 델타는 침실로 올라가버렸고, 이제노는 가만히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왜 후플푸프에 와선,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괜한 소리를 하는 거라는 걸, 이제노가 부디 알길 바랐다. 그러니까 제발 상처받지 말라고. 모두가 이제노를 피해 제 침실로 올라가버려 이젠 거실에 나와 이제노만이 남아있었다. 시민, 얼른 올라와! 페롤리나가 계단을 오르며 그렇게 말했다. 제노야, 아니지? 이제노의 소매 끝을 약하게 쥐었다. 벽난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이제노가 날 가만히 바라봤다. 아니라고 말해. 넌 드레이코와 다르다고 말해. 이제노의 눈을 마주한채로 끝없이 기도했다. 이제노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착한 척 하지마. 역겨워. 그 애에겐 내 기도가 닿지 않은 듯 했다.
거봐, 맞다니까? 샌디가 내 등을 토닥였다. 너가 너무 착해서 그래. 시민, 신경쓰지마. 아이들의 위로가 날 것 그대로 날아들었다. 이제노 그 애가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 인지, 그건 이미 우리 사이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애가 말포이 가의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두려움이었고, 그래서 그 애를 배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너무 착한 아이었고, 이제노는 그와 상반된 악 그 자체였다. 야, 헨리랑 레오 어떡해? 왜? 걔네 이제노랑 룸메이트잖아.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지만 이제노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그 애는 정말 죽음을 먹는 자일까, 자꾸만 슬픈 그 애의 눈이 떠올랐다.
어둠의 마왕이 돌아왔대! 레오가 예언자 일보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왔다. 테이블 끝에 앉아있던 이제노가 고개를 숙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 애를 향했다. 차라리, 그 애가 여기서 손목이라도 까, 우리들에게 제가 죽먹자라고 욕이라도 하고 뛰쳐나가길 바랐다. 그럼 그 애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만 나는 그럴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모든 정황이, 그 애가 죽음을 먹는자라고 말하고 있었음에도,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자꾸만, 그 애가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정말 이제노가 죽음을 먹는 자라고 생각해? 쉬는시간, 페롤리나에게 물었다. 페롤리나는 뭘 그런걸 묻냐는 표정으로 날 봤다. 김시민, 이젠 그만 좀 해. 그 애가 그런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거야. 샌디가 내 등을 토닥였다. 예전에 친했어도, 이젠 그만해 시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늦은 밤,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가에 앉아있던 시즌이가 낸 소리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지팡이를 쥐고 침실 밖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꾸만 계단에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달빛이 거실을 밝혔다. 달빛에 비쳐, 소파 위에 누워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뭐야 거기? 지팡이를 겨누자, 이상한 소리의 근원이 몸을 일으켰다. 그건, 아마도 침실에서 쫒겨난 이제노인 것 같았다. 이제노야? 내가 묻자 '그 애' 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여기서 자는거야, 어? 다 알면서도 괜히 물었다.
내 물음에 이제노가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김시민. 이제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분명히 또 나쁜 말을 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 애는 차마 그러지 못 했다.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줘. 그 애의 손을 잡고 애원하듯 물었다.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고 말해. 내가 묻자 이제노가 고개를 들었다. 맞아. 그 애의 떨리는 목소리에, 난 그 애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아닌 걸 알면서, 믿어줘서 고마워. 이제노가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제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았다. 난 너와 함께 죽을게. 볼드모트가 공격해오면, 난 너와 함께할거야. 이제노가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