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또라이
글 ; 노랑의자
나는 주말동안 황민현과 몇 번 마주쳤다. 학교 밖에서도, 주말에도 황민현의 예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다만, 잠깐 동네 마실을 나갈 때에도 머리를 꼭 감고 신경써서 나가야 한다는 단점도 생겼다. 하지만 그 정도야 뭐, 대수롭지 않았다.
몇 번 마주쳐봐야 두 번이 다지만, 김재환이 왜 황민현이 똘끼가 있다고 했는지 그리고 별명이 왜 예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주말동안 본 황민현은, 뭔가 특이했다. 뭐랄까, 평범하지 않은? 쨌든 학교에서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한번은 이사기념 떡이라며 우리집에 왔었다. 나는 5초동안 재빠르게 얼굴을 셋팅하고 문을 열었다. 황민현은 편한 츄리닝 차림이었고 손에 시루떡을 들고 있었다. 세상에. 떡을 들고 있는데 왜 간지가 나지? 아마 똥을 들고 있어도 냄새가 향기롭다고 느껴질 것이다. 순간적으로 또 멍해질뻔 한 정신을 붙잡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접시는 내가 나중에 가져다줄게!"
"그냥 가져."
?
이 접시를요?
플라스틱도 아니고, 일회용도 아니고, 정말 집에서 쓰는 그릇인데 진짜 가지라는 건가..? 어머님이 접시까지 주라고 하셨나..? 의아한 내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지 갈게, 하고서 앞집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내 손에 들린 접시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 듯 한 느낌이었다.
사건은 또 있었다.
일요일에 동네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 즈음에 집으로 들어오는데, 황민현이 일층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뭔가를 빤히 보고있다. 어쩜 옆태도 작살난다. 멀리서부터 외모에 감탄하다 뭐하는건지 궁금해져서 조심히 다가가 뭐해? 하고 물었다. 이것도 나에겐 꽤 큰 용기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참 간결했다.
"눈싸움."
"...벌레랑?"
황민현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풍뎅이었다.
이때 느꼈다. 보통 애는 아니라는 걸. 황민현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 좋아지는 나도 정상은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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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재환김재환!"
"왔냐?"
"야 대박사건이야."
"왜. 주말에 열공함?"
"아 닥쳐."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가방도 놓기 전에 김재환부터 불렀다. 체육복 차림의 김재환은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아침부터 시비를 털어준다. 다소 거친 말로 김재환의 입을 다물게 하고, 앞에있는 황민현이 들을까 소곤소곤 말을 이어갔다.
"앞집에 황민현 이사왔어."
"뭐??"
"야! 조용히 좀!"
"아 오케오케.."
놀랄 줄은 알았건만 그렇게까지 시끄럽게 놀라다니. 목청 하나는 진짜 인정이다 인정. 괜히 황민현의 눈치를 한번 쓱 보고 김재환에게 이번엔 크게 놀라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다.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고 고개를 끄덕이는 김재환이 딱히 믿음이 가진 않았지만.
"그리고, 내 이름도 알아."
"헐."
"대박 맞지."
"야 민현ㅇ..!"
"야 미친!"
황민현이 내 이름을 안다는 말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김재환이 황민현을 불러버린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이래! 급하게 김재환의 입을 틀어막아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황민현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으니. 이대로 김재환의 입을 막고있는 손을 떼면 어떤 소리를 할 지 몰라 내가 대충 둘러댔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아..아무것도 아니야. 하하.."
"..."
특유의 그 냉한 얼굴로 쳐다보던 황민현은 이내 다시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 심장 떨어질 뻔 했네. 그제서야 김재환의 입을 막고있던 손을 뗐다. 대체 황민현을 불러서 뭐를 할 생각이었던거야? 괘씸한 마음에 김재환을 째려보니 장난스런 웃음을 짓고있다.
"쏘리 맨."
"...됐다. 됐어. 말을 말자."
"근데 너 그거 아냐?"
"그게 뭐든 딱히 알고싶지 않은데."
"다음시간 체육. 얼른 옷 갈아입어라."
아.. 무슨 체육. 귀찮음의 연속이다. 귀찮아 귀찮아 중얼거리며 체육복을 꺼내들어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왔다. 완전 후리해 보이게 회색이 뭐냐 회색이. 그나마 다행인 건 상의가 집업이라는 것이다. 아직 삼월 초, 체육복만 입기엔 쌀쌀한 날씨라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렸다. 게다가 강당은 난방이 뭐죠? 하는 공간이라 더 춥게 느껴졌다.
"뭐냐. 추위타냐?"
"시비 그만 털어라."
"야."
또 건들건들 장난을 시작한 김재환을 째려보는데, 두꺼운 집업 하나가 툭 던져진다. 올, 왠일로 착한짓?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주섬주섬 집업을 입었다. 김재환이 덩치가 큰 편은 아닌데, 그래도 나름 남자라고 옷이 꽤 크다. 체육복만 딸랑 입고 있을 때보다 훨씬 따뜻했다. 지퍼까지 야무지게 올리고 고개를 드는데, 순간 숨이 멎을 뻔 했다.
체육복도 무슨 모델마냥 소화해낸 황민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벙쪄서 멍하게 황민현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황민현은, 다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 같은 반이라는 건 정말 행복한 거구나..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여자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남자애들은 활기차기도 하다. 저렇게 뛰어다니다니.
"고삼이라고 체육 설렁설렁할 생각 치워라! 짝피구 한다. 남자여자 둘씩!"
우렁찬 선생님의 말씀에 느릿느릿 강당 중앙으로 가서 섰더니, 그냥 피구도 아니고 짝피구를 한단다. 짝을 맞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옆에 있던 김재환이 나를 툭툭 치며 주먹을 내민다. 뭐, 짝 하자는 의미인가? 김재환 말고는 딱히 할 사람도 없었고, 옷까지 빌려입은 마당에 대충 주먹을 쥐고 툭 부딪혔다. 귀찮아서 쉬려고 했는데, 김재환도 여사친이라곤 우리반에 나 밖에 없는 듯 했으니.
황민현은 누구랑 하지? 하는 생각에 눈으로 쫓으니, 우리반 여자애 한 명이 황민현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같이 하기로 했나보다. 아, 나도 같이 하자고 할걸 그랬나.. 아니야. 그랬으면 옷도 못 잡고 심장마비로 쓰러졌을거야. 질투심에 이글거리는 속을 애써 눌러담던 와중에,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김재환의 옷을 입고 김재환과 나란히 서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지. 이 뜨끔하는 기분은. 나 바람핀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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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피구를 하는 내내, 황민현과 짝이 된 여자애는 정말이지 가증스러웠다. 미안하지만 이런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황민현을 좋아하고 있을 뿐더러, 별로 빠르지 않은 공에도, 가까이 날아오지 않는 공에도 꺄악거리며 황민현에게 찰싹 붙어 있었으니. 상대편이었다면 공을 던져서 아웃이라도 시키는데, 같은 편이라 아웃시키지도 못하고, 가까이서 그 짓을 봐야했다. 그냥, 게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헐."
체육시간이 끝나고, 목이 말라서 정수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황민현이 물을 받고 있는 게 보였다. 의도치 못한 심쿵이라 벽에 기대 후하후하 쉼호흡을 했다. 황민현은 내 '이름'까지 아니까 말이라도 걸어보자 싶어 걸음을 빨리해 다가갔다. 옆에서 바라본 황민현은 오늘도 예쁘고 잘생겼다. 으으, 심장아파.. 무슨 말을 걸지 고민하다, 아까 체육시간이 떠올랐다. 내가 다시는 그 꼴 안 본다.
"황민현!"
"..."
"있잖아,"
용기내어 이름을 부르니 나를 쳐다본다. 햇빛을 받아 더 하얗게 빛나는 얼굴에 잠시 호흡곤란이 올 뻔 했지만 힘겹게 진정을 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그 여자애랑도 짝 했으니까 나랑도 하겠지? 나는 황민현이 '이름'까지 아는 사람이니까!
"다음에 짝피구 또 하면, 나랑 짝할래?"
"싫어."
뎅-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거절이라니. 거절이라니! 물론 내가 황민현과 친하다거나, 여자친구라거나 그런건 절대 아니지만, 아까는 잘 모르는 여자애한테 날아오는 공 잘도 막아줬으면서. 시무룩한 내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 황민현은 미련없이 교실로 향했다.
갑자기 손가락이 따끔거리는 게, 작은 생채기가 난 듯 하다. 마치 내 기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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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랑의자입니다 ♡
생각보다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감격)
그리고 추천도..! 신알신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글 열심히 써볼게요!!
암호닉도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태풍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