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빛 - 프롤로그.
머리위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따갑다.눈가를 찡그리자 맺혀있던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준수는 부채를 쥔 작은 손을 더 바삐 움직였다. 몇 달 전, 문방구에서 산 싸구려 부채는 거뭇거뭇한 손때가 물들어있었다.
"덥다..."
8월 말.
여름이라 하기에는 늦고 가을이라 하기에는 이른 늦여름이다.
입추가 지났음에도 모래사장을 뜨겁게 덥히는 햇빛은 여전히 뜨거웠다.
짠내를 풍기며 일렁이는 푸른 바다가 눈 앞에 있는데 모래 위에만 있어야 하다니.
"이 다리만 아니었어도..."
푸른 깁스로 감겨있는 자신의 다리를 툭툭 친 준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숨에서 열기가 묻어나왔다.
입고 있는 셔츠의 카라를 잡아올려 이마의 땀을 훔쳤다.
동작 하나하나에 노곤함이 가득하다.
이 더위에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부채를 쥔 손에서 땀이 베어나와 미끌거렸다.
"더워어...더워더워더워더워어어!!"
온 몸으로 스며드는듯한 열기에 몸부림을 치며 팔을 바둥거리자 들고있던 부채가 손을 떠나 날아간다.
순간 비어버린 자신의 손이 허전하다. 의미없이 손을 쥐락펴락 거렸다.
빛이 반사된 바다가 반짝거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넘실거리는 파도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부채는 반쯤 모래에 파묻혀있었다.
멍하니 나가떨어진 부채를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다리 위에 쌓여있던 모래 알갱이가 우수수 떨어진다.
손으로 두어번 툭툭 털어낸 후 부채가 떨어진 곳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었다.
부채를 주워들었다.
"...어?"
내가 아니다.
부채를 잡으려 내민 손은 멍청히 멈춰있었다. 눈 앞에서 모래가 흘러내린다.
허리를 숙인채 고개를 들었다.
남자다. 그의 어깨 너머로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눈 부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부채를 쥔 커다란 손. 덮쳐오는 눈부심에 찡그린 나의 두 눈.
태양을 등지고 서있는 그는, 빛으로 뒤덮혀 있었다.
뜨겁도록 내리쬐는 늦여름의 햇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