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부부, 아기 부부 上
W. 강고기
-: 우린 아직 신혼이니까.
침대에 누워 옆자리를 팡팡- 쳐대는 다니엘 때문에 솜에 스킨은 제대로 묻혀졌는지, 얼굴 곳곳에 찍어바른 크림은 수분 크림이 맞긴 한 건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 잠깐 동안 뭐가 그리 급한지, 여주야, 강여주. 내 이름을 쉴새 없이 부르질 않나, 침대 스프링이 나갈 정도로 매트리스를 쳐대질 않나. 아주 정신을 쏙 빼놓는 그였다.
"여주야, 아니 여보야."
"잠깐만, 잠깐만- 다 했어."
"빨리 좀 온나."
"왜 자꾸 보채, 진짜 정신 없어."
"신혼이잖아."
"응?"
"신혼이니까."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던 탓에 거울에선 보이지 않던 그가 내 어깨 너머로 쑥, 올라와 웃고 있다. 신혼이니까, 다니엘의 얼굴에는 끈적한 목소리와 함께 점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괜히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느낌에 바르던 크림을 벅벅, 문지르며 그의 눈길을 피했다.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들을 내뱉는지. 아직 다니엘에게 여보 소리도 못하는 나였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서운하다, 속상하단 티를 팍팍 내며 해달라고 난리인데, 어째 여보라는 단어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 단어를 내뱉는게 부끄럽다. 생각만으로도 다시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한 공간에 이렇게 오래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 그와 함께 한다는 건 꽤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주말은 특히 더 그랬다. 아침부터 늦은 밤, 아니 새벽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다니엘과 마주하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서로의 집 앞에 데려다주겠다며 갈 일도 없어졌고, 팔 떨어지도록 손을 흔들어가며 헤어질 일도 없다. 이것들을 위해 결혼했는데, 분명 좋은 일인데. 하루종일 나를 찾고, 내 옆에 있는 다니엘을 슬금, 슬금 피하게 된다. 나는 왜 하루 종일 이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는게 부끄러울까.
"야, 다니엘. 너… 너 먼저자라."
"뭐?"
"잠이 안 와서 그래, 잠이."
침을 한번 꼴딱 삼키고, 뒤를 돌아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힘겹게 내뱉은 말이었다. 먼저 자는게 어떻겠냐는 말. 아까까진 눈꼬리 휘어지게 웃던 그가 있는대로 인상을 구겨왔다. 얼굴에 조금씩 열이 오르는게 느껴진다. 부끄러워도, 거짓말을 쳐도, 아니 다니엘의 앞에선 시도때도 없이 달아오르는 내 얼굴을 어쩌면 좋을까. 재빨리 잠이 안 온다는 핑계를 찾았지만-
"니 내가 싫나."
"어? 아니? 아니지, 그건!"
"그럼 왜 그라는데."
"……."
"내랑 벌써 같이 자기도 싫은 거가,"
"아, 아니이…."
싫냐는 말에 서둘러 절대 아니란 말을 내뱉었지만, 그럼 왜 그러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네 앞에 있는게 부끄러워. 다니엘, 네 얼굴을 마주하는게 부끄럽고, 간지러워. 너는 어떤 느낌인지 모를거야. 그러니까 자꾸 나를 찾는 거잖아. 내 옆에 붙어 있는 거잖아. 사랑해서 결혼 한 것이었고, 분명 이 그림들을 상상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난, 지금 도대체 왜, 나는 너를 달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내는 졸린다."
"…다니엘,"
"거실에서 혼자 놀다가 자던지,"
"……."
"나가는 길에 불 좀 꺼도,"
삐졌다, 아니 화가 났을 거다. 이불 속에 파고 들어 눈을 감는 그의 옆으로 쏙 파고 들고 싶었다. 그리고 "여보야, 장난이지. 나랑 같이 자야지." 라고 애교를 부릴 수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서 입술만 꾹 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참 숫기도 없고 애교도 없는 사람이었다. 실망했을까, 나와 같이 입술을 꾹 깨물고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겠지. 우리 아직 신혼인데, 벌써 이렇게 싸우면 안 되는데.
"잘자,"
어딘가 복잡하고, 속상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미세한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다가, 이내 불을 끄고 방문을 살짝 닫고 거실로 향했다. 시끄러울까 조심스레 소파에 앉았고, 두 다리를 끌어 안아 고개를 묻었다. 깊고 깊은 곳에서 부터 한 숨이 내뱉어졌다. 다니엘 말대로 그가 싫은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둘 밖에 없는 공간에서, 다니엘 앞에만 서면 학생 시절, 자기소개 하러 앞에 나서야 했던 때에 느꼈던 그 엄청난 떨림이 느껴지니까, 심장이 진짜 미친 듯이 뛰니까. 어쩔 수 없잖아.
"어…,"
"뭐하는데."
깊은 한 숨을 한 번 더 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드니, 안방 문 앞에서 나를 보고 서있는 다니엘이 보였다. 뭐하냐는 말에 다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라 말할 것도 없었다.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그로인해 잠깐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것을 또 발견한 건지, 곧 얼굴을 찌푸리는 다니엘이었다. 빨라진 걸음에 금방 내 옆을 차지해 앉은 그가 내가 도망갈까 양 어깨를 잡아왔다.
"…뭐, 뭔데. 강여주, 니 왜 우는데."
그가 양 어깨를 잡고, 나와 시선을 맞추자마자 내 시야는 뿌옇게 가려졌다. 두 눈에서 무거운 눈물들이 뚝, 뚝 떨어졌다. 결국 울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속상하고 서운할, 그리고 화가 났을 다니엘에게 미안했다.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내자 언뜻 보이는 다니엘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어깨를 잡았던 손을 떼고 안절부절, 나를 살피느라 바쁜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하지만 곧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겨 안는 다니엘이었다.
"아이고, 괜찮다, 우리 여주 괜찮다."
"흐윽…미안해, 미안해 니엘아."
"뭐가, 뭐가 미안한데. 응?"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한참을 울었다.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내 고개 언저리에 입술을 묻는 그의 행동에도 진정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다 울음소리와 함께 고백해버렸다. 떨려, 떨려 죽겠어. 너랑 한 집에 같이 있는데, 막 부끄러워. 얼굴이 엄청 빨갛게 될 것 같구… 부끄럽고. 창피해, 다니엘.
"뭐?"
"…힝, 으엉. 나 너 안 싫어해. 내가 왜 결혼했는데,"
나를 떼어난 그를 보니, 아까보다 더 당황스럽고- 아니 어딘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다니엘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서러웠다. 얘는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린다. 맞다. 진짜 이해 못 한다. 창피하다, 미치도록 창피하고 부끄럽다. 앞으로 나 어떻게 얘랑 살지.
"잠, 잠깐만. 그만 울어라. 나랑 얘기 좀 하고, 뚝. 뚝-"
"흐읍, 무슨 얘기."
"아니. 그러니까."
내 안 싫다는 거잖아. 그래서 내랑 단 둘이 있는게 부끄럽다는 얘기, 아니 떨린다는 얘기 맞제. 그러니까. 엄청 설렌다는 말 아니냐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하는 걸까. 그가 이해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진정이 된다. 점점 마르고 있는 눈가를 마지막으로 닦고 그를 마주했다. 아무 말 없이 두 눈을 깜빡이는 나를 한참이나 보던 다니엘, 그의 입술이 조금씩 움찔 거리는 것이 보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 웃어."
"니 귀엽다, 진짜."
"……."
"니 지금, 내랑 처음 만난 날 생각나게 하는 거 아나."
"응?"
"생각 안 나나, 니 그랬잖아. 그때도 심장 터질 것 같다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했잖아."
"……"
"진짜 기억 안 나나, 진짜로?"
기억이… 안 날리가 없다. 처음 그를 소개 받아 만난 날, 단번에 반해버린 나는 영화관에서 바로 옆자리로 자리를 사놓고선, 그에게 멀리 떨어지라고 했었다. 모든 좌석들이 꽉 채워진 주말 저녁 영화관이었다. 한 칸 건너서 그가 앉을 자리는 당연히 없었다. 시끄러운 광고 소리 덕분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받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는 나를 힐끔, 힐끔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바빴고- 내 얼굴은 완전한 홍당무가 되어 버렸었다. 맞다. 그 감정이다, 다니엘과 연애의 시작을 알리던 때.
"니 내를 너무 좋아하는데? 어떡할라고, 응?"
"윽, 야. 다니엘…!"
"이리 와봐라."
"뭐야… 너."
"아이고, 이거 엄청 뛰네. 니 심장 곧 터지겠다."
다니엘은 나를 갑자기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그러다 양 팔 사이로 나를 살짝 들더니, 뒤로 훅 넘어간 자신의 몸 위로 겹쳐 안아 버리는 그였다. 탄탄한 가슴팍을 짚으며 일어나려는데, 내 등을 더 꽉 끌어 안아 버린다. 꼼짝없이 미치도록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그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이번 생은 망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쪽팔림의 끝을 경험하다니 말이다. 여전히 내 등을 천천히 토닥이고는 있었지만, 심장에 무리 오는 거 아니냐며 장난을 치는 다니엘이었다. 점점 몸이 굳어 간다. 그의 어깨에 별 수 없이 고개를 묻으니, 훅 들어오는 그의 냄새 때문이다. 이러다 진짜 심장마비 걸려 죽겠다, 죽겠어.
"내랑 사는 내내 그럴기가, 응? 혹시 니 지금 불편하나."
"어?"
"각방 쓸까, 내가 니 옆에도 가지 말고? 그래야 되겠나."
"……."
"내는 니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래야 되도 상관없는데."
"니엘아,"
"근데 이렇게 안고 싶을 땐 어떡하지."
다니엘은 안고 있는 손길 그대로, 나를 마주하며 조심스레 몸을 옆으로 돌렸다. 고개 밑으로 그의 팔이 들어왔고, 그는 다시금 나를 자신의 품에 끌어 안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와 몸이 조금 떼어진 덕에 진정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빠르게 뛰긴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걸까. 서로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거실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말했제."
"……."
"내 앞에서 얼굴 홍당무 되도 괜찮다고, 응?"
"어,"
"부끄러운게 창피한 일도 아니니까, 그냥 니가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다 보여 달라 했나, 안 했나."
다니엘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는 그런 내 손을 잡아선 허리를 두르게 했다. 그렇게 다시 그와 딱 붙어버렸다. 그때도 이렇게 나를 안아 오며 들려주었다. 자신의 심장소리도 나 만치 크고, 빠르다고.
"애기네, 애기. 맞제."
"아니야, 내가 무슨 애기야."
"애기지, 뭐가 그렇게 창피하고, 무서워서 우는데. 내 니 납치 했나."
"미안."
"뭘 또 미안이고, 못살겠다- 아, 아니. 진짜 못살겠다는게 아니라…."
풉, 웃음이 터졌다. 내 웃음소리에 날 보겠다고 확 몸을 떼려는 다니엘이었다. 그로인해 좁은 소파에 끼어 누워 있던 나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를 따라 다니엘 역시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팔로 내 등을 감싸 안는 다고 안았는데, 나도 다니엘도 아픔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굴러야 했다. 우린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아까보단 훨씬 편하게 다니엘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주야, 내도 부끄럽다. 니가 아침에 옆에서 나 쳐다보고 있는 것도 그렇고,"
"……."
"밥 해준다고 뒤돌아서 음식하는 모습 보면, 언제 니랑 또 결혼했나 싶고. 괜히 이상하다니까."
"……."
"똑같다, 근데 내가 니 피하나,"
"…아니,"
"내 싫은거 아니제."
"어? 어, 그렇지. 내가 왜 널 싫어해."
"그럼 그냥 이렇게 안아주고, 이렇게 뽀뽀도 해주고-."
다니엘이 금세 다가와 짧게 입을 맞추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며, 씩 웃어오는 것에 나도 어느새 얼굴 한 가득 미소가 번졌겠지. 볼을 살살 쓰다듬던 그가 다시 한 번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나도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다니엘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다시 미안하고 스물스물, 올라오는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다.
"왜, 고개 들어봐라."
"…나 이상하지."
"니가 내 억수로 사랑해서 그런건데, 뭘."
"……."
"어쩔 수 없지, 이해해야지, 내가."
"치,"
"니 진짜 날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니까."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라 딱히 부정할 수도, 부정할 생각도 없다. 안도가 섞인 한 숨을 길게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한 이 남자와 단 둘이, 그것도 신혼집에서 부끄러워서 피하다니, 정말 누구한테도 듣지 못했고, 나 역시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연신 귀엽고, 예쁘단 말과 함께 내 볼을 쓰다듬는 다니엘의 손길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부끄럽다고 다시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렇게 다니엘을 꽉 안아버려야지.
"오, 강여주. 니 지금 나 안았네."
"이제 할 수 있어, 이제 말할 수도 있어."
"뭘?"
"여보, 우리 다니엘. 여보야."
다니엘과 내가 아무리 연애의 기간을 가졌다고 해도, 결혼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다니엘은 여보라는 단어에 놀란 듯 하다. 그런 그를 꽉 끌어안으니, 아까 내 심장소리만큼 크고 빠른 그의 심장이 느껴진다. 푸흐흐-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따라서 그제야 내 머리를 감싸 안는 다니엘이었다.
말도 안 되는 사랑 싸움으로 울고, 불고 해보는 것. 신혼의 특권이지 싶다, 신혼이니까, 우린 아직 신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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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고기 왔습니당 !_!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랜 연애 기간을 가졌음에도- 연애와 결혼 생활은 명백히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웃기겠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아내를 어떻게 보살펴 주는지, 어떻게 토닥이는지, 그런 다니엘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써보게 되었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공감 대신 의아함을 표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몰입해버려서는 열심히도 쓰고 있는 저였답니다.........하핳.
'신혼 부부, 아기 부부'는 짧은 단편 시리즈로, 달달한 신혼 초기부터 결혼 2년차,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는 결혼생활까지! '상-중-하'로 나뉘어 글이 올라갈 것 같아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더 생각나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멤버들의 글도 너무, 너무 쓰고 싶기 때문에! 그럼 또 곧 만나요, 뿅!
* [암호닉]은 최신화에 신청 가능합니다.
신알신도 감사하고, 추천도 감사해요!
암호닉 명단은 이 시리즈가 끝난 후에 올릴게요.
암호닉 신청자 분들에겐 어떤 특별한 선물이 갈까요?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