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브 인 스 쿨L o v e I n S c h o o l- 0 1 - 일단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은 그냥 추억 회상일 뿐이지 절대로 걔가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거나해서 생각하는 게 아닐 거다. 아마도? 그러니까 나는 박지민과 오래된 소꿉친구다. 걔랑 안지가 1년, 2년, 3년, 4년... 13년...? 아니지. 중학생 되자마자 끊긴 거니까 8년? 그래도 이렇게나 오래됐네. 나 솔직히 너에 대한 모든 게 다 궁금해. 나보다 작았던 키는 컸는지, 초등 학생 때부터 춤을 배우겠다며 자랑하던 너가 그때보다 더 마르진 않았는지. 어릴 땐 그렇게 내가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더니 이제 와서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 걸까. 그렇다고 또 연락 끊긴지도 몇 년인데 이제 와서 연락하기도 그렇잖아. 어차피 번호도 없는 번호라고 뜨니까 연락도 못하지만. 내가 걔를 6살 때 알았는데,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초등학교도 같이 다니다가 중학생 되자마자 연락이 끊겨버렸거든. 진짜 보고 싶다. 맞아, 사실 그립고 보고싶어. 너 맨날 내가 덜렁거리다가 뭐라도 잃어버리면 찾아주고, 학교도 같이 가고 그랬잖아. 너랑 항상 모든 일들을 다 함께 해서 더 정이 가나 봐. 나 이제 말할 수 있는 건데, 그땐 몰랐는데 나 너 좋아했었던 것 같아. 이제 말해봤자 소용없는 거 아는데 지금이라도 말해야 널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마음 편하라고 얘기하는 거야. 이러면 언젠가 잊을 것 같아서. 매일 이렇게 너 생각하면서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하다가 잠드는 거 알아?"엄마. 나 꿈꿨다? 박지민 꿈?" 꿈에서라도 널 보는 날이면 항상 하루의 시작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박지민 꿈을 꿨으니 오늘 하루도 잘 풀린다는 소리다.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새 교복을 입고, 오랜만에 화장도 했지만 아침은 걸렀다. 항상 아침을 먹으면 속이 영 별로란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김태형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날이라 기분이 더 좋았다. 김태형이랑 같은 고등학교로 가고 싶었는데 고1 때부터 아빠 일 때문에 이사를 하면서 여고로 갔었다. 그런데 아빠 일도 끝나고, 이제 그 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어져 이사를 하면서 학교도 같이 옮기기로 했다. 김태형한테 학교 같이 가자고 할까? 김태형은 박지민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오래된 친구다. 중학생 때부터 같이 다녔으니까 5년이네 이제. 들뜬 상태로 전화를 걸자 어디냐며 빨리 나오라는 김태형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그렇게 학교로 걷기 시작했다. 얘도 참 말이 많다. 옆에서 학교는 어떻고, 급식은 어떻고. 그러다 김태형이 잠시 입을 닫았다가 나를 툭툭 치며 뜬금없이 말을 건네왔다."야, 근데 갑자기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넌 첫사랑 이런 거 없냐?""......""됐다. 넌 첫사랑의 '첫'자도 모를 것 같이 생겼어.""아니, 야. 나도 첫사랑 있거든?""오. 중학생 때 너 철벽 엄청 쳤잖아. 그 첫사랑 친구 대단하네.""걔 되게 잘생기고, 멋지고, 춤도 잘 추고, 나 엄청 잘 챙겨줬,""어, 박지민!""...?" 얘 방금 뭐라고 했어?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박지민이라고 한 거 맞는 거지. 김태형의 입에서 나온 낯설지 않은 이름에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에는 박지민이 서있었다. 김태형을 보고 지금 막 횡단보도를 건너온 걸 김태형이 발견한 듯 했다. 처음엔 박지민 아닌 줄 알았어, 너 너무 달라져서. 그런데 계속 보니까 맞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심정에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박지민과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 꾼 꿈만으로도 기분이 붕붕 떠다녔었는데 꿈속의 주인공을 보니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박지민을 봐서 좋다는 소리다. 좋긴 한데,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건지 아주 살짝 미워서."......" 오랜만에 본 너를 조금이나마 오래 보고 싶어 너를 계속 쳐다봤고 박지민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날 계속 쳐다봤다. 기쁜 마음 반 미운 마음 반이다. 그런데 미운 마음이 더 커질 것 같다. 항상 나한테 밥 좀 잘 챙겨 먹으라며 그렇게 잔소리를 해대더니, 자기가 안 챙겨 먹는구만. 안 먹는 것치고 키도 나보다 훨씬 큰 건 다행이긴 한데...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왜 이리 정적인데. 작게 웅얼거리던 김태형이 우리를 번갈아 보다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한 번 튕기더니 입을 열었다."야, 그래. 이제 얘랑 셋이서 다니면 되겠네. 얘는 나 중학교 다닐 때부터 친했는데 김탄소라고. 오늘 전학 왔으니까 좀 잘 챙겨주라.""아아, 어. 안녕.""어, 어... 안녕.""근데 어쩌지. 나 무용쌤이 불러서 빨리 가봐야 돼. 일단 갈게?" 급한지 뛰어가며 뒤로 손을 흔들어주는 박지민이다. 김태형이 옆에서 조잘거려도 대충 받아주며 걸으니 학교가 보였다. 진짜 크긴 크네. 김태형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큰 학교 덕에 길도 헤맬뻔했지만 김태형이 교무실까지 데려다줘서 다행이었다. 교무실로 들어가니 예쁜 선생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난 2학년 7반이라는데, 그러면 김태형이랑 같은 반이었다. 일단 학교생활은 걱정 없겠네. 예쁜 선생님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출석부와 커피잔을 챙기시더니 교실로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복도를 거닐며 다시 한 번 깨닫는 건데, 전에 다니던 학교랑은 비교도 안될 만큼 진짜 넓은 것 같다."다들 조용. 오늘 새로 전학 온 친구에요. 탄소야, 자기소개부터 할까?""오늘 전학 온 김탄소라고 해. 어... 친하게 지내자.""풉." 반 아이들의 박수소리에 묻혀 잘 들리진 않았지만 누가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반 아이들의 얼굴을 어느 정도는 봐둬야 할 것 같아 눈을 굴리다 박수를 치는 김태형이 보였고, 그 뒷자리에는 턱을 괸 채 김태형과 얘기를 하며 웃는 박지민이 보였다. 그러다 어디서 느껴지는 시선에 다시 눈을 굴렸고 박지민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리고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나에게 대하던 것처럼 다정한 눈빛으로 배시시 웃어주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톡톡 치고는,"잘""부""탁""해." 뭐라고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입모양으로 벙긋거리다 보니 통 뭐라고 하는질 모르겠다. 처음에 한번 이어서 말하더니 내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자 내가 못 알아들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작게 엑스 자를 치는 박지민이다. 그에 내가 눈짓을 하자 이제는 한 글자씩 오물거리는 박지민이었다. 박지민이 한 글자씩 오물거릴 때마다 심장이 열 번씩은 뛰는 것 같았다. 대충 알아들은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박지민은 만족한다는 듯 혼자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얘는 내가 김탄소인 걸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일단 김태형 옆자리로 가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김태형 옆자리로 가 앉았고, 역시나 옆에서 조잘거리기 시작하는 김태형이었다. 호응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박수를 많이 쳐 손이 아프다는 둥, 그래서 힘드니까 1교시는 자야겠다는 둥... 알았으니까 지금부터 자라며 김태형의 뒷머리를 책상으로 눌러주었다. 김태형 재우고 나니까 좀 심심하긴 하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냥 할게 없어 보였던 건지 박지민이 뒤쪽에서 내 등을 콕콕 눌렀다. 뭔가 싶어 박지민을 보니 매점을 가잰다. 김태형이랑 가면, 아... 내가 재웠지. 그래서 결국 박지민과 단둘이 오게 된 매점이다. 으, 어색해... 아침 시간인데도 매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매점 안을 둘러보며 뭘 살지 고민하던 박지민이 나를 흘긋 보더니 저만치서 캐릭터가 그려진 초코우유와 핫팩 하나씩을 들고 왔다. 취향 많이 변했다 너... 혼잣말을 삼키고는 눈을 깜빡거리며 캐릭터가 그려진 초코우유를 보고 있는 사이,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계산을 하고는 빨대까지 야무지게 챙겨 나오는 박지민이다. 그렇게 사람이 빠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매점을 나와 후드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옆에서 박지민이 말을 걸어왔다."김탄소.""응?""내가 뭐 하나 맞춰볼까?""어? 뭐를?" 박지민이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대답대신 아까 샀던 초코우유와 핫팩을 건넸고, 나는 눈만 깜빡이며 박지민을 쳐다봤다. 아니 그, 이걸 나한테 왜 주는 거야? 첫날부터 민폐 끼치기 싫은데. 박지민이 내민 손이 민망해질 정도로 뜸을 들이자 박지민은 마음 바뀌기 전에 받으라며 초코우유에 빨대까지 꽂고는 주머니에 있던 내 손을 빼 놓아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고맙다고 한 뒤 손 시린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왼손에는 초코우유를 들고 오른손에는 핫팩을 뜯어 흔들었다. 그때 조금 떨어져 걷던 박지민이 내 앞으로 왔고, 내 키에 맞게 다리를 살짝 굽혀 내 눈을 마주하는 바람에 다시 한 번 심장이 쿵쿵댔다."딱 맞췄지.""그냥, 너 아침 안 먹고 왔을까봐. 여자애들은 거의 아침 안 먹고 오길래.""핫팩은 그냥 뭐 손이라도 시렵거나 할 때 쓰라고 주는 거야. 추우니까." 갑자기 훅 들어오지 말라고, 야... 박지민에게 쿵쿵대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종 치겠다며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몸이 찼었다. 수족냉증인가, 그거라서 찬 거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겨울에는 항상 한 손에 하나씩 핫팩을 쥐고 다녔기에 나라는 거 알고 사주는줄 알았는데. 잠시 기대했지만 그래도 얘가 챙겨주니까 옛날 생각나고 좋은 것 같았다. 하긴 핫팩 있으면 별로 안 추웠으니까 말 안 했을 수도 있겠다. 그냥 전학생이니까 잘해주는 거겠지. 아무래도 말 안 하는 편이 나으려나. 뭐 나중에 눈치 봐서 말해도 되는거니까. 먼저 말 안 하는 거 보니까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따뜻해진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는 초코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나 초코우유 제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아 몰라, 진짜로. 초코우유에 꽂힌 빨대를 빨고 있을 때 옆에서 박지민이 배시시 웃으면서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든 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사담안녕하세요! 글잡은 너무 오랜만이라 아예 새로 와봤어요독방에 한 번 올렸었는데 반응이 괜찮은 것 같아서 글잡으로 데려오게 되었답니다심장 콩콩거리는 분위기 내고 싶었는데 잘 된건지 모르겠어요 ㅠ_ㅠ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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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은 그냥 추억 회상일 뿐이지 절대로 걔가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거나해서 생각하는 게 아닐 거다. 아마도? 그러니까 나는 박지민과 오래된 소꿉친구다. 걔랑 안지가 1년, 2년, 3년, 4년... 13년...? 아니지. 중학생 되자마자 끊긴 거니까 8년? 그래도 이렇게나 오래됐네.
나 솔직히 너에 대한 모든 게 다 궁금해. 나보다 작았던 키는 컸는지, 초등 학생 때부터 춤을 배우겠다며 자랑하던 너가 그때보다 더 마르진 않았는지. 어릴 땐 그렇게 내가 좋다고 졸졸 따라다니더니 이제 와서는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 걸까. 그렇다고 또 연락 끊긴지도 몇 년인데 이제 와서 연락하기도 그렇잖아. 어차피 번호도 없는 번호라고 뜨니까 연락도 못하지만. 내가 걔를 6살 때 알았는데, 유치원도 같이 다니고 초등학교도 같이 다니다가 중학생 되자마자 연락이 끊겨버렸거든. 진짜 보고 싶다. 맞아, 사실 그립고 보고싶어. 너 맨날 내가 덜렁거리다가 뭐라도 잃어버리면 찾아주고, 학교도 같이 가고 그랬잖아. 너랑 항상 모든 일들을 다 함께 해서 더 정이 가나 봐.
나 이제 말할 수 있는 건데, 그땐 몰랐는데 나 너 좋아했었던 것 같아. 이제 말해봤자 소용없는 거 아는데 지금이라도 말해야 널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마음 편하라고 얘기하는 거야. 이러면 언젠가 잊을 것 같아서. 매일 이렇게 너 생각하면서 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하다가 잠드는 거 알아?
"엄마. 나 꿈꿨다? 박지민 꿈?"
꿈에서라도 널 보는 날이면 항상 하루의 시작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박지민 꿈을 꿨으니 오늘 하루도 잘 풀린다는 소리다.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새 교복을 입고, 오랜만에 화장도 했지만 아침은 걸렀다. 항상 아침을 먹으면 속이 영 별로란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김태형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날이라 기분이 더 좋았다. 김태형이랑 같은 고등학교로 가고 싶었는데 고1 때부터 아빠 일 때문에 이사를 하면서 여고로 갔었다. 그런데 아빠 일도 끝나고, 이제 그 학교에 있을 필요가 없어져 이사를 하면서 학교도 같이 옮기기로 했다. 김태형한테 학교 같이 가자고 할까? 김태형은 박지민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오래된 친구다. 중학생 때부터 같이 다녔으니까 5년이네 이제.
들뜬 상태로 전화를 걸자 어디냐며 빨리 나오라는 김태형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그렇게 학교로 걷기 시작했다. 얘도 참 말이 많다. 옆에서 학교는 어떻고, 급식은 어떻고. 그러다 김태형이 잠시 입을 닫았다가 나를 툭툭 치며 뜬금없이 말을 건네왔다.
"야, 근데 갑자기 궁금해서 묻는 건데. 넌 첫사랑 이런 거 없냐?"
"......"
"됐다. 넌 첫사랑의 '첫'자도 모를 것 같이 생겼어."
"아니, 야. 나도 첫사랑 있거든?"
"오. 중학생 때 너 철벽 엄청 쳤잖아. 그 첫사랑 친구 대단하네."
"걔 되게 잘생기고, 멋지고, 춤도 잘 추고, 나 엄청 잘 챙겨줬,"
"어, 박지민!"
"...?"
얘 방금 뭐라고 했어?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박지민이라고 한 거 맞는 거지. 김태형의 입에서 나온 낯설지 않은 이름에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 자리에는 박지민이 서있었다. 김태형을 보고 지금 막 횡단보도를 건너온 걸 김태형이 발견한 듯 했다. 처음엔 박지민 아닌 줄 알았어, 너 너무 달라져서. 그런데 계속 보니까 맞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심정에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박지민과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 꾼 꿈만으로도 기분이 붕붕 떠다녔었는데 꿈속의 주인공을 보니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박지민을 봐서 좋다는 소리다. 좋긴 한데,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건지 아주 살짝 미워서.
오랜만에 본 너를 조금이나마 오래 보고 싶어 너를 계속 쳐다봤고 박지민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날 계속 쳐다봤다. 기쁜 마음 반 미운 마음 반이다. 그런데 미운 마음이 더 커질 것 같다. 항상 나한테 밥 좀 잘 챙겨 먹으라며 그렇게 잔소리를 해대더니, 자기가 안 챙겨 먹는구만. 안 먹는 것치고 키도 나보다 훨씬 큰 건 다행이긴 한데...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왜 이리 정적인데. 작게 웅얼거리던 김태형이 우리를 번갈아 보다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손가락을 한 번 튕기더니 입을 열었다.
"야, 그래. 이제 얘랑 셋이서 다니면 되겠네. 얘는 나 중학교 다닐 때부터 친했는데 김탄소라고. 오늘 전학 왔으니까 좀 잘 챙겨주라."
"아아, 어. 안녕."
"어, 어... 안녕."
"근데 어쩌지. 나 무용쌤이 불러서 빨리 가봐야 돼. 일단 갈게?"
급한지 뛰어가며 뒤로 손을 흔들어주는 박지민이다. 김태형이 옆에서 조잘거려도 대충 받아주며 걸으니 학교가 보였다. 진짜 크긴 크네. 김태형 말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큰 학교 덕에 길도 헤맬뻔했지만 김태형이 교무실까지 데려다줘서 다행이었다. 교무실로 들어가니 예쁜 선생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난 2학년 7반이라는데, 그러면 김태형이랑 같은 반이었다. 일단 학교생활은 걱정 없겠네. 예쁜 선생님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출석부와 커피잔을 챙기시더니 교실로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복도를 거닐며 다시 한 번 깨닫는 건데, 전에 다니던 학교랑은 비교도 안될 만큼 진짜 넓은 것 같다.
"다들 조용. 오늘 새로 전학 온 친구에요. 탄소야, 자기소개부터 할까?"
"오늘 전학 온 김탄소라고 해. 어... 친하게 지내자."
"풉."
반 아이들의 박수소리에 묻혀 잘 들리진 않았지만 누가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렸다. 반 아이들의 얼굴을 어느 정도는 봐둬야 할 것 같아 눈을 굴리다 박수를 치는 김태형이 보였고, 그 뒷자리에는 턱을 괸 채 김태형과 얘기를 하며 웃는 박지민이 보였다. 그러다 어디서 느껴지는 시선에 다시 눈을 굴렸고 박지민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리고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처음 만난 나에게 대하던 것처럼 다정한 눈빛으로 배시시 웃어주며 손가락으로 자기 입을 톡톡 치고는,
"잘"
"부"
"탁"
"해."
뭐라고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들리지 않게 입모양으로 벙긋거리다 보니 통 뭐라고 하는질 모르겠다. 처음에 한번 이어서 말하더니 내가 미간을 살짝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자 내가 못 알아들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작게 엑스 자를 치는 박지민이다. 그에 내가 눈짓을 하자 이제는 한 글자씩 오물거리는 박지민이었다. 박지민이 한 글자씩 오물거릴 때마다 심장이 열 번씩은 뛰는 것 같았다. 대충 알아들은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박지민은 만족한다는 듯 혼자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얘는 내가 김탄소인 걸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일단 김태형 옆자리로 가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김태형 옆자리로 가 앉았고, 역시나 옆에서 조잘거리기 시작하는 김태형이었다. 호응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박수를 많이 쳐 손이 아프다는 둥, 그래서 힘드니까 1교시는 자야겠다는 둥... 알았으니까 지금부터 자라며 김태형의 뒷머리를 책상으로 눌러주었다. 김태형 재우고 나니까 좀 심심하긴 하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냥 할게 없어 보였던 건지 박지민이 뒤쪽에서 내 등을 콕콕 눌렀다. 뭔가 싶어 박지민을 보니 매점을 가잰다. 김태형이랑 가면, 아... 내가 재웠지.
그래서 결국 박지민과 단둘이 오게 된 매점이다. 으, 어색해... 아침 시간인데도 매점에는 사람이 많았다. 매점 안을 둘러보며 뭘 살지 고민하던 박지민이 나를 흘긋 보더니 저만치서 캐릭터가 그려진 초코우유와 핫팩 하나씩을 들고 왔다. 취향 많이 변했다 너... 혼잣말을 삼키고는 눈을 깜빡거리며 캐릭터가 그려진 초코우유를 보고 있는 사이,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계산을 하고는 빨대까지 야무지게 챙겨 나오는 박지민이다. 그렇게 사람이 빠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매점을 나와 후드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옆에서 박지민이 말을 걸어왔다.
"김탄소."
"응?"
"내가 뭐 하나 맞춰볼까?"
"어? 뭐를?"
박지민이 웃으며 고개를 저은 뒤 대답대신 아까 샀던 초코우유와 핫팩을 건넸고, 나는 눈만 깜빡이며 박지민을 쳐다봤다. 아니 그, 이걸 나한테 왜 주는 거야? 첫날부터 민폐 끼치기 싫은데. 박지민이 내민 손이 민망해질 정도로 뜸을 들이자 박지민은 마음 바뀌기 전에 받으라며 초코우유에 빨대까지 꽂고는 주머니에 있던 내 손을 빼 놓아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고맙다고 한 뒤 손 시린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왼손에는 초코우유를 들고 오른손에는 핫팩을 뜯어 흔들었다. 그때 조금 떨어져 걷던 박지민이 내 앞으로 왔고, 내 키에 맞게 다리를 살짝 굽혀 내 눈을 마주하는 바람에 다시 한 번 심장이 쿵쿵댔다.
"딱 맞췄지."
"그냥, 너 아침 안 먹고 왔을까봐. 여자애들은 거의 아침 안 먹고 오길래."
"핫팩은 그냥 뭐 손이라도 시렵거나 할 때 쓰라고 주는 거야. 추우니까."
갑자기 훅 들어오지 말라고, 야... 박지민에게 쿵쿵대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종 치겠다며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몸이 찼었다. 수족냉증인가, 그거라서 찬 거라고 하던데 그것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겨울에는 항상 한 손에 하나씩 핫팩을 쥐고 다녔기에 나라는 거 알고 사주는줄 알았는데.
잠시 기대했지만 그래도 얘가 챙겨주니까 옛날 생각나고 좋은 것 같았다. 하긴 핫팩 있으면 별로 안 추웠으니까 말 안 했을 수도 있겠다. 그냥 전학생이니까 잘해주는 거겠지. 아무래도 말 안 하는 편이 나으려나. 뭐 나중에 눈치 봐서 말해도 되는거니까. 먼저 말 안 하는 거 보니까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따뜻해진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는 초코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나 초코우유 제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아 몰라, 진짜로. 초코우유에 꽂힌 빨대를 빨고 있을 때 옆에서 박지민이 배시시 웃으면서 날 쳐다보는 느낌이 든 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 사담
안녕하세요! 글잡은 너무 오랜만이라 아예 새로 와봤어요
독방에 한 번 올렸었는데 반응이 괜찮은 것 같아서 글잡으로 데려오게 되었답니다
심장 콩콩거리는 분위기 내고 싶었는데 잘 된건지 모르겠어요 ㅠ_ㅠ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