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혁 - 꿈을 꾸었다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황민현 下
원래 그렇다. 더 좋아하는 쪽이 더 힘들고, 더 신경쓰는 쪽이 지는거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무엇을 바라고 민현이를 좋아한게 아닌데. 지금 내가 원망하는건 민현이 일까, 민현이를 좋아한 내 모습일까.
카톡-
「김짼 : 야야 오늘도 안와?」
「ㅇㅇ」
그 일이 있은 후, 요 며칠 사이에 힘이 없어 집에 누워만 있었다. 집 마저도 나에게 완벽한 안식처가 되지는 못했다.
고개를 돌리면 민현이에게 쓰려고 산 편지지, 민현이가 좋아한다고 했던 노래를 재생시켜놓은 노트북, 민현이에게 주려고 뜨다 만 목도리. 좁은 원룸 이곳 저곳에서 민현이의 흔적이 날 반겼다.
"그래도 너 커피 받을때마다 그대로 나한테 오는거 알면 쟤,"
"..야 조용히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아."
멍하니 누워있다가 문득 그때가 생각나면 울고, 그러다 진정되면 다시 멍하니 누워있다가 배고프면 김재환이 두고 간 오렌지 주스 한모금. 그리고 다시 멍.
이렇게 바보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며칠전 밥은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와봤다며 병문안 오듯 주스 한박스를 들고 온 재환이는 웬일로 나를 걱정하는 투로 얘기를 꺼대더니 결국 또 잔소리만 잔득 하고 갔다.
"그니까 내가 뭐랬어. 백날 갖다 바쳐봤자 소용없다했지."
"..."
"..야, 야! 남자 때문에 이렇게 앓아 눕는게 어딨어! 쫌 일어나봐 쫌쫌!"
"조용히해, 머리아파."
"하루종일 누워만 있으니까 머리가 아프지. 하여튼 김여주.. 말안듣고 직진하더니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지."
"...나 마음정리 다 했어."
"니 표정 보니까 퍽이나 정리 다 했겠다."
"..."
"야, 너 이러고 있는거 황민현은 아냐?"
...모르겠지.
그게 가장 힘들었다.
내가 이러고 있어봤자 민현이는 그대로 일것이라는 거. 그 생각이 나를 점점 힘없이 만들었다.
민현이는, 민현이의 생활은, 민현이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데,
나만 변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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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시점
"야, 황."
"..."
"야."
"..."
"야!"
"어...어?"
"책에 뭐 있냐? 왜 그렇게 정신이 팔렸어."
"그냥."
"오늘은 커피 안가져갈테니까 그거 보면서 생각좀해-"
그 날.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커피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온기를 보며, 결심했다.
내일은.. 내일은 꼭 고맙다고 해야지.
"근데 니 껌딱지는 요즘 왜 안보이냐."
"몰라."
"신경 안쓰는척 하지마."
"뭐?"
"너 지금 같은 페이지 10분째 읽고있거든."
하지만, 타이밍을 재기라도 한듯.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째 이상하리만치 김여주는 내 눈에 띄지 않았다.
김여주 지갑.. 아직 나한테 있는데. 다음 날 만나면 주려고 내 코트 주머니에 넣어놓은 김여주의 지갑을 꺼내보았다. 잘 접어 지갑에 넣어놓았던 영수증이 눈에 띄었다.
[민현♡여주]
입가에 살짝 번지는 미소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아씨, 나 왜이래.
"너가 너무 모질게 군거 아니야?"
"..내가 뭘."
"하긴. 맨날 그렇게 지극정성인 애한테 고맙다는 말 한번 안할때부터 알아봤어."
...이제부터 하려고 했거든.
옹성우의 잔소리에 마음속으로만 궁시렁댔다.
"나같아도 포기하겠다."
"뭐?!"
"뭘 그렇게 놀래. 솔직히 안그래? 대놓고 좋다고 하는데 연락한통없지, 말한마디 없지. 너같으면 안짜증나겠냐."
너에게 연락이 없던이유가,
"난 김여주가 황민현 포기했다에 한표-"
정말 나에게 이제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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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주가 눈에 보이지 않기 시작한 후로 부터 나도 모르게 학교 앞 카페를 지나갈때마다 카페 안을 흘끔거렸다. 카페를 지나갈때면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들어있는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카페도 그 자리에. 지갑도, 영수증도. 변하지않고 여기있는데.
너만없었다.
.
"어..?"
나도 모르게 카페 앞에 멍하니 서있었나보다. 내 볼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눈이다"
"민현아, 오늘 날씨는 어때?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추운 것 같지 않아?"
"옷 따뜻하게 입으라니까, 또 얇게 입고 왔어! 그러다 감기 들면 어쩌려구."
하루도 빠짐없이 날 걱정하던 너였다. 매일같이 나를 올려다보며 오늘 날씨는 어떻고, 오늘 옷은 어떻고..
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 내리는 이 눈을 너도 보고있을까.
"아, 왜 자꾸 생각하는거야."
그냥.. 고마워서 그런걸거야, 고마워서.
"..첫눈인데."
카톡-
「성우 : 야야 황미년! 첫눈온다! 보고있냐?」
「성우 : 아 황민현 올해 첫눈은 김여주랑 보나했는데~ㅋㅋㅋ」
"..."
.. 김여주 집이 어디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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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짼 : 야야 김여주~ 첫눈온당!」
김재환의 카톡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벌써 저녁이네.
"아, 상쾌해."
오랜만에 바깥공기 맡는 것 같다.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아서 시원했다. 올해 가을에는 이번 첫눈 민현이랑 꼭 맞을 거라구 김재환한테 큰소리 떵떵쳤었는데.
"아, 또 이래 또."
한송이, 두송이, 이쁘게 내리는 눈을 보니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재빨리 소매로 눈물을 닦고 무심코 창밖을 내다 보는데,
"..어?"
내가 잘못 본걸까.
"... 민현이?"
자취방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민현이가 보였다.
-
민현시점
오랜만에 들어가는 것 같은 김여주의 카톡방을 들어가 스크롤을 올렸다.
한참을 올리자 오래 전 김여주가 본인은 자취를하는데, 어디살고, 근처에는 뭐가있고, 하며 혼자 쫑알대던 톡을 발견했다.
"하.. 뭐하는짓이냐 이게."
황민현 진짜, 찌질하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구차하고 찌질했다. 좋다고 할때는 신경도 안쓰다가 관심을 안주니 그제서야 애가 타다니.
한두송이씩 내리던 눈은 어느새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이 내리기 시작했고, 하늘도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김여주네 집 앞에 도착하긴... 했는데..
"후.."
여기가 맞는건지도 모르겠고. 카톡을 하자니, 뭐라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고. 전화를 하자니 목구멍에 말이 걸려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늘은 계속 어두워지고, 건물 앞 가로등까지 서서히 켜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가는데, 나는 어찌 할 줄 몰라 핸드폰만 꼭 붙잡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
-
놀람과 설렘. 당황과 떨림. 온갖 감정이 교차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본게 민현이가 맞는지 머리가 판단하기도 전에 나는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고, 현관에 있던 우산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잡을 새도 없이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민현아..?"
"..아. 안녕."
아, 옷 따뜻하게 입으라니까. 코트만 입고 다니는 것도 여전하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몰라, 감기가 걸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갖고 내려온 우산을 얼른 펴 민현이에게 씌워주고 민현이 머리에 뭍은 눈을 털어주려다, 민현이가 부담스러워 할 거라는 생각에 그만 손을 내렸다.
"이 우산."
"어? 아.."
현관에서 급하게 가지고 나온 우산은. 민현이를 처음 만났던 그날, 민현이가 나에게 주었던 우산이었다.
"우산.. 지금까지 못 돌려줘서 미안."
"..응."
오랜만에 본 민현이의 얼굴을 여전히.. 잘생겼다. 날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조금 차가웠지만 내가 반했던 그 모습은 여전했고, 내 심장은 계속해서 쿵쾅거렸다.
-
"민현아..?"
"..아. 안녕."
...김여주다.
오랜만에 김여주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뻔한걸 간신히 참았다. 왜이렇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드는걸까.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김여주는 갖고 나온 우산을 펴 나에게 씌워주었다. 정작 본인은 가디건만 걸치고 나왔으면서.
"이 우산."
"어? 아.."
익숙한 디자인의 우산에 잠시 생각해보니 내가 그 날, 김여주에게 넘겨주고 받지 못한 우산이었다.
"우산.. 지금까지 못 돌려줘서 미안."
"..응."
아.. 어색하다. 먼저 말을 꺼낼까 말까,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엉켜 풀리질 않는다.
"추운데 여기까지는 웬일이야?"
김여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갑자기 긴장이 되어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단둘이 이렇게 서서 대화하는건 처음이라 어딜 봐야할지,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조차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김여주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갔다.
"오늘은."
"..어?"
"그.."
"..."
"...커피."
하,
"안줘?"
...황민현 병신새끼.
-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을까. 이제와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기다렸던걸까, 아니면 연락이 왜 없었냐는 걱정스러운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걸까. 넌 항상 날 이렇게 허탈하게 만든다.
"...왜?"
"어?"
"옹성우 갖다주게?"
"..어?"
당황한 네 표정이 마치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았냐고 말하는 것 같아 더 힘이 빠졌다.
"내가 맘에 안들면 그렇다고 말을하지."
"..그게 아니라,"
"내 성의를 무시하는거,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어?"
"김여주,"
네 입에서 처음 내 이름이 나왔다. 이런식으로 처음 듣고싶지는 않았는데.
그 와중에도 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내가 바보같아, 더 서러워졌다.
"...울..어?"
"나 이제 너 안좋아해."
심장이 쿵 떨어졌다. 더 비참해지기 싫어서. 눈 딱감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렸다.
"..."
"나 싫다는 사람, 나도 싫어."
"..김여주.."
"그동안 귀찮게 해서 미안해. 이제 그럴일 없을거야."
나 너 진짜 많이 좋아했어.
속에서 맴도는 말을 애써 숨기고, 주먹을 꽉 쥐고 돌아섰다. 그런데,
"신경쓰여."
"..."
"신경..쓰였어. 너 없어서."
머리가 새하얘졌다. 돌아선 내 손목을 붙잡은 황민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느껴졌다.
손목이 잡힌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넋을 놓고 있자, 잡고 있던 손목을 그대로 돌려 날 마주보게 한 민현이는,
"좋아해."
서툴게 나를 감싸안았다. 민현이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심장박동마저 들리는 것 같이 고요했다.
펑펑 내리던 눈은 점점그쳐 다시 한송이,두송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로등아래에서 민현이의 품에 안긴 이 순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나 너 좋아하나봐."
"..."
"..나 사실 커피 못마셔. 그런데 그냥.. 너가 주는 커피 받고싶어서 말안했어."
"...민현,"
"나 지금 내가 무슨말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들어줘. 두서없는 말인거 알아."
민현이는 나를 품안에 조금 더 꼬옥 끌어 안았고. 숨소리 마저 떨리고 있었다.
민현이도 내 떨림을 느끼고 있을까. 민현이의 품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나에겐 너무 따뜻했다.
"이젠 카페 지나갈때마다 너 생각이 나. 나 진짜 이상하지. 알아 이상한거. 근데,"
"..."
"그냥.. 너가 너무 신경쓰여. 내가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밥을 먹었는지 신경써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너가없으니까. 허전해."
"민현아."
"..응"
"..보고싶었어."
올해 겨울은,
"사귀자, 우리."
너무나 행복했다.
-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황민현 下
능력부족으로 굉장히 뜨듯미지근하게 끝난거 같아서 저 스스로도 조금 아쉽네요ㅠㅅㅠ
많이 서투르고, 어색한게 많았던 글이지만 상편부터 좋아해주시고, 읽어주셨던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
능력이 된다면 다음에는 더 발전된 글로 찾아올수 있도록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