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난 헤테로는 당연하게도 우위를 차지했다. 호모(homo-), 헤테로와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그러니까 현생인류를 지칭하는 단어로 평범한 인간을 말한다. 호모와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등장한 헤테로는 어떻게 해서 헤테로가 되는지 밝혀진 바가 전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피라미드의 윗 부분을 차지했다. 헤테로가 탄생한 집안에서 또 다시 헤테로가 탄생하고 그들은 빠르게 재산을 모았다. 부와 능력이 합쳐져 완벽하기 그지없는 그런, 어쩌면 이상적인 삶일지도 모를 그런 것들이. 소수의 헤테로들이 사회를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헤테로에 대한 선망은 더해졌고 그만큼 열등감도 생겼으며 헤테로들은 제 삶에 취해 성격이 괴팍하기 그지없었다.
" 눈깔 치워. "
" 입이 너무 험하다 여주야. "
" 너희가 뭐가 예쁘다고 내가 말을 곱게 해야 되는데. "
" 너희 아니고. 정세운한테만. "
" ……. "
" 나한테만 그러면 돼. "
여주의 가운데 손가락이 빳빳하게 세워진 채 세운을 향했다. 하하. 세운이 낮게 웃었다. 여주야. ……. 나는 말 안 듣는 사람 좋아해. 세운은 낮게 웃으며 물방울을 공중에 띄웠다. 다섯 개의 물방울이 공중에 정갈하게 띄워져 있었고 책상에 기대 앉았던 세운이 일어나 물방울을 하나씩 터트렸다.
" 여주야. "
" ……. "
" 나는 말 안 듣는 사람 좋아하거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 "
" ……. "
" 고분고분하면 재미없잖아. "
" 그러니까 네 말 잘 들으라고? "
" 말이 그렇게 되나? 음… 그렇다고 해도 너한테 흥미 잃을 것 같진 않은데. "
세번째 물방울이 톡 터졌다. 한 곳에 뭉쳐 있던 물방울이 터지면서 바닥에 흘러 내렸다. 물 입자는 제멋대로 퍼졌고 네번째 물방울은 여주의 근처에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주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짜증스러운 얼굴로 세운을 올려다 보았다. 어쩌라는 거야 그럼.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
" 나더러 어쩌라고. 관심 끄라니까 그냥? "
" 싫은데… 재밌잖아. "
" 진짜 또라이 새끼. "
하하…. 세운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에는 웃음기 없이 목소리로만 웃었다. 하하……, 세운은 마지막 물방울이 있는 여주의 앞에 섰다. 세운이 손가락을 가져대자 물방울이 여주에게로 주르륵 흘렀다. 미쳤어? 여주의 짜증에 세운의 얼굴에 웃음이 살짝 피어났다.
" 그러니까 나는… 네가 입이 험한 것도 좋다는 말이야. "
Catharsis
02
헤테로인 이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금 여주를 품에 안아 순간이동한 옹성우도 학교 복도 한복판에서 불길을 던져버린 박지훈도. 물론 그 중심에 있는 여주도. 헤테로 중에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은 황민현이려나. 불길은 복도 끝까지 날아갔고 결계의 끝에 부딪히는 것으로 사그라 들었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불길이 지나간 곳에 그을음이 남아 하얗던 벽지를 까맣게 만들었다. 지훈이 쏘아댄 불은 어느새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다. 따가운 눈빛으로 지훈이 성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 치우라고 했어요.
" 학교에서 불 좀 쏘지 말라니까? 내가 다 수습해야 되잖아. "
" 불이면 세운이가 끄면 되는 거 아닌가? "
" 내 물 그딴식으로 쓰기 싫어. "
복도에 달려나온 민현이 벽지를 보며 좌절했다. 진짜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를 쳐대는 애들이지만 항상 성질이 반대인 세운과 지훈이 맞붙었기 때문에 둘이 충돌하긴 해도 서로의 힘을 억눌렀기 때문에 뒷처리가 덜 힘들었다. 그런데 지훈과 성우는 순간이동에 불이었다. 피하는 대로 불을 쏘아댔다가는 이 학교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그을음들도 다 지워야 하잖아. 민현이 한숨을 쉬었다. 내 이것들을 그냥……
" 안녕 친구들. "
" 순간이동 하기만 해요 진짜. "
" 옹성우 뒷처리는, "
민현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채 성우는 사라졌다. 품 안에 밀어넣었던 여주도 같이. 씨발 진짜……. 지훈이 낮게 욕설을 뱉았다. 세게 입술을 씹은 지훈이 문의 잔해만 남은 뼈대를 걷어 차고선 교실을 지나쳐 가버렸다. 민현은 황당함에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니 둘 다 어디 가는데 안 치우고?
" 민현이 형이 또 치우겠네. "
" 너도 같이 해 재환아. "
" 왜요. 난 이 상태로도 잘 지낼 수 있는데. "
" 진짜 하나같이……. "
" 형 속으로 욕 하지 말라니까요. 다 들린다니까? "
" ……하. 전학 가야지 진짜. "
민현이 복도에 남은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검게 그을린 벽지를 몇 번 손으로 훑자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지훈의 발길질이 남은 벽도. 재환은 몇 번째 봐도 신기한 건지 호들갑을 떨며 민현을 쳐다보고 있었고 세운은 의자에 기대어 공중에 물방울을 흩날리며 장난치고 있었다. 물방울을 한 데 뭉쳐 재환을 향해 튕겨 대기도 했다. 야 야. 차가워 차가워. 재환의 말에 세운은 흥미를 잃었는지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재미없다. 세운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성우와 여주였다. 운동장 구석에 단 둘이 서 있는 여주와 성우.
" 재밌을까? "
" 뭐가? "
" ……. "
" 뭐가 재밌어? "
세운의 말에 재환이 되물었지만 세운은 대답이 없었다. 익숙한지 재환은 곧 민현에게 다가갔다. 형. 내가 도와줄까? …그냥 가만히 있어. 사고나 치지 마. 민현의 말에 재환은 입술을 삐쭉이며 민현 근처에 서성였다. 재밌을까? 세운은 자신에게 물어봤다. …아마. 그리고 멋대로 대답했다. 응. 아마 그럴 거야. 세운은 창문 열린 틈새로 물방울을 날렸다. 성우와 여주가 있는 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 물방울은 여주에게 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뚝 떨어졌다. 뭉쳐 있던 물방울이 형편없이 쏟아져 내려 운동장의 모래를 적셨다.
" 뭐하는 짓이야. "
" 도와줬지 너를. "
" 누가 도와달래? "
" 그럼 그냥 내 능력 과시한 걸로 해 둘게. "
여주의 눈빛이 성우를 향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뭐야 이 미친놈은. 성우는 입꼬리를 살살 올려 웃었다. 헤테로. S반. 옹성우. 3학년. 성우의 말을 듣고 있던 여주가 말했다. …뭐하냐? 주머니에 손을 꽂고 여주가 있는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인 성우가 말했다. 자기 소개.
" 여긴 정신병자들밖에 없대? "
" 뭐. 걔네들 중에 정상이 없긴 하지. "
" 너도 포함이야. "
" 내가 제일 정상인데. "
어디서 들었던 말이다 싶더니 그때 그 애, 박지훈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원래 정신에 문제 있는 애들이 자기 문제를 모르긴 하지. 여주는 혀를 한 번 차고서 제 팔목에 있던 성우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어디 가. 나랑 놀자. 성우가 따라 붙으며 말을 붙였지만 여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꺼져. 여주의 말에 성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너 뭐야? 진짜 웃기네.
" 너도 뇌가 없어? 아니면 귀가 없어? 꺼지라니까. "
" 뇌 있고 귀 있어. 눈도 있고 코도 있는데. "
" …하 진짜 병신인가. "
" 이름 말해 봐. "
" 꺼져. "
" 말 안 하면 공주라고 할 거야. "
" 진짜 미친……. 김여주. "
됐지. 이제 좀 꺼져. 여주의 말에 성우가 계속해서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응. 공주야. 키득이는 성우를 무시하고 여주는 다시 학교 안으로 향했다. S반이라더니 병신 집합소가 따로 없었다. 그렇더라도 여주는 일단 이 학교에서 졸업해야 했으니까 다시 교실로 향했다. 지훈에 의해서 그을렸던 흔적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문은 없었지만. 재환과 민현도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세운만이 조용한 교실에서 눈을 감은 채 주변에는 물방울을 둥둥 띄워둔 상태로 앉아 있었다. 여주는 제일 멀쩡해 보이는 책상과 의자를 찾아 앉았다. 뭐하는 학교인데 선생님도 오지 않는 건지. 이따위 학교가 왜 그렇게 입시가 치열한지 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 왜 왔어? "
" 뭐? "
" 여기 왜 왔냐고. "
" 네가 알아서 뭐 하게. "
" 까칠하네…. 여기 오려면 일단 헤테로여야 하고… 뒤늦게 입학했으니까 돈도 좀 쓰고 왔겠네. "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세운이 느릿하게 말했다. 넌 아직 순진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 너네 아버지가 너를 왜 여기에 보냈을지 잘 생각해 봐. 그 말에 여주는 괜히 생각에 잠겼다. 이 학교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세운의 말대로 여주의 아버지는 여주를 S반에 입학 시키기 위해 기를 썼고 엄청난 뒷거래를 했다. 여주의 아버지는 이유 없이 돈을 쓰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생각했던, 투자였다.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였다. 이 학교에서 얻을 게 뭐 있다고…….
" 왜 꼭 S반에 들어와야 했을까. "
" ……. "
" 잘 생각해 봐. 머리 굴려서. "
" ……. "
" 아마 대답은 나일걸. "
정세운. 어느새 여주 가까이로 다가온 세운이 제 명찰을 톡톡 두드리며 얕게 웃었다. 따스한 웃음 사이로 차가움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세운의 주변에 맺힌 물방울들이 멋대로 터졌다.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향해 손을 뻗은 여주가 생각보다 차가워서 손을 다시 치우자 세운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 잘 생각해 봐 대답. 잘 찾았으면 좋겠네. "
ㅡ
이것은
정말로
그냥 생각나는대로 쓰는 이야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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