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망스 - 질투가 좋아
옹팀장이 사내연애 하는 법 上
"어? 옹팀장님 오늘은 일찍 출근하셨네요?"
"네, 아침부터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좋은 아침이에요, 감기조심해요!"
"네, 팀장님두요-!"
오늘 아침도 옹팀장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우며 하루가 시작됐다. 어쩜 팀장님은 매일 아침이 저렇게 즐거울까.
자본주의와 시기, 질투가 가득한 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동료들에게 좋은 소문만 쏙쏙 골라들리는 옹팀장님은, 입사 초기부터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여주씨, 안녕!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요-"
"매번 말씀드리지만 회사에선 김비서라고 불러주,"
"아 알았어요, 알았어. 거 참 한결같네, 우리 여주씨는."
"..하..."
그게 문제였다. 사람이 너무 좋아도 문제야 문제.
팀장님의 다정한 성격에 한번도 설레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비서와 상사로써, 나와 팀장님이 하루종일 붙어있다시피 하다보니 사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주씨, 팀장님이랑 사귀어?"
"네?! 아뇨! 누가그래요?"
"아니, 어제 둘이 밥먹고 나오는거 누가 봤다구 소문이돌길래- 암튼, 알았어!"
"....하,"
나와 팀장님이 비밀연애를 하고있다는둥, 알고보니 내가 팀장님 낙하산이라는 둥, 이런 말도안되는 소문들.
옹팀장님이 인기가 많은 탓에 난 이렇게 소문 하나하나에 스트레스 받고있는데. 팀장님은 개의치 않고 이 여자, 저 여자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쏘다니는 모습이 괜히 얄미웠다.
"이대리 오늘 입술 색 바꼈다, 맞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딱보면 알지-"
..저 능글맞은것도 맘에 안들어 진짜.
남녀 할 것 없이 본인팀의 팀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한 팀장님이었고. 팀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여주씨."
"..."
"여주씨-"
"..."
"치.. 고집부리는거에요, 지금?"
"..."
"..김비서!"
"네."
"이제 대답하네. 오늘 퇴근하구 영화보러갈래요? 나 보고싶은 영화가 있는데, 친구가 없어서. 내 비서 아니면 누가 같이 가주나-"
"팀원들이 오해할만한 사적인 만남은 갖지않는다고 말씀드렸,"
"왜? 뭐가 오해에요? 이건 내 부탁이아니라 명령인데?"
..항상 이렇게 맞는 말만 해서 난감하게 만든다니까.
"팀장님. 아시잖아요, 저희 회사 소문 빠른거. 괜히 팀장님이랑 밖에서 따로 만났다가 누가 보기라도 하면요?"
"그럼 우리 사귄다구 말하면 되지."
"네?!"
"사귀면 되잖아."
"..."
"흐흐, 장난에요 장난-"
"...아."
"김비서 표정 또 굳은거봐, 장난 두번 치다가 울겠어 아주."
제일 마음에 안드는건, 이런 팀장님의 태도였다. 시도때도 없이 이런 장난을 치는 팀장님 때문에 내 심장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했다.
장난인걸 알고도 매번 흠칫 하는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너무 창피했다.
이렇게 애교도 적당히 부릴 줄 알고, 여사원들에겐 섬세하게 대할줄도 알고, 또 남사원들에겐 편하게. 덕분에 옹팀장님은 점점 모든 여사원들의 로망이 되고있었다.
" 있잖아, 옹팀장님 좋아하는 음식은 뭐래? 여자친구는 언제 마지막으로 사귀었대? 아, 매일 옆에서 옹팀장님 보고. 너무 부럽다."
"..그런거 몰라요."
내가 옹팀장님의 직속 비서인걸 알고, 하루에도 몇번씩은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난 옹팀장이 나를 김비서가 아닌 여주씨, 라고 다정하게 부르는걸 싫어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다정해졌으면 다정해졌지, 팀장님이 먼저 거리를 둘 일은 없었다.
그래, 차라리 내가 먼저 완벽한 비즈니스로 거리를 둬야지.
이렇게 결심을 한 뒤, 난 언젠가 한번 옹팀장님에게 부탁아닌 부탁. 그래, 나름의 통보를 한적이 있다.
-
"여주씨, 오늘 점심 같이 먹어요."
"그럴까요?"
"어? 웬일이에요? 한번에 알았다고 하구!"
"대신, 저 할말이 있는데."
"음? 뭔데요?"
"식사하면서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마련된 식사 자리에서 옹팀장님은 또 사람좋은얼굴로 웃으며 나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우리 여주씨가 무슨말을 하려구 이렇게 밥도 안먹을까?"
"..."
"응? 왜그래요, 무슨일있어요?"
저렇게 해맑게 날 보고 웃고있는모습을 보니, 앞으로 제 이름 부르지 말아주세요. 하고 딱 잘라 말하려던 내 계획이 무색하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 이걸 어떻게 말하지.
"..저, 팀장님.."
"어, 잠깐. 말하지 말아봐요."
"네?"
"혹시.. 여주씨..."
해맑게 웃던 얼굴은 어디갔는지, 금세 심각한 표정을 하고 먹던 포크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묻는다.
"사표.. 쓴다던가, 그런 말 할건 아니죠?"
"...네?"
"응? 그럴거에요? 그만둘거에요, 내 비서?"
"아, 아뇨. 그런건 아닌데."
"그런거 아니면 됐어. 자! 말해봐요, 나 준비 됐으니까."
그만두기라도 하는 거냐며 걱정스런 얼굴로 묻다가 아니라는걸 알고 또 금방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러니까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얼른 말해보라는듯 기대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에 아이,몰라. 하고 주먹을 꽉쥐었다.
"아,앞으로.. 김비서라고 불러주세요."
..이게 무슨 앞뒤 설명 없이 바보 같은..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두서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 그게.. 제가 사실 공과 사는 확실히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팀장님이 저한테 자꾸 여주씨,여주씨, 하면서 과하게 친절을 베푸시면 회사에 이상한 소문도 돌고.. 아, 그리고 저 원래 상사와 이렇게 사적인 만남 갖지 않는 성격이라, 그리고 또,"
"김비서."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더니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김비서. 하고 부르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슬며시 눈을 피했다.
"...네.."
"..이렇게 불러달라는거죠?!"
"네? 아..."
"에이, 난 또 뭐라고. 알았어요! 앞으로 그렇게 부를게. 그럼 우리 일어날까요? 점심시간 끝나겠다."
..또 장난이었어?
'저는 팀장님 그 다정한 성격때문에 오해받는것도 싫구요, 또 앞으로 따로 만나서 밥먹는것도 삼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변명거리 하나하나 다 생각해놨는데. 너무 쉽게 승낙해버리는 팀장님의 태도에 어버버 해버리고 말았다.
-
하지만 그 날의 기억은 다 잊었는지, 다음날이 되자 또 '여주씨-' 하며 불러오는 팀장님에 이제는 아예 무시를 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무시할수록 오히려 장난만 늘어가고, 점점 쓸데없는 일로 날 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여주씨, 팀장님이 얼른 와보라고 하시네?"
"아, 네! 지금 가볼게요."
급하게 날 부른다기에 하던 일도 멈추고 허겁지겁 달려가면,
"네, 팀장님. 무슨일이세요?"
"어, 왔어요?"
"네. 급하게 찾으신다고.."
"오늘 출근하면서 보는데 오늘따라 이뻐보이길래. 한번 더 보려고 불렀어요. 이제 봤으니까 됐다. 나가봐요!"
또, 또. 이런 장난을 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장난을 하루종일 안치는 날에는 오늘 웬일로 조용하다 싶다가도,
"팀장님, 저 퇴근해보겠습니다."
"응, 수고했어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응 가요- 아, 김비서!!"
퇴근하려는 나를 불러세우더니,
"네?"
"시간도 늦었는데, 데려다줄까요?"
"아뇨, 괜찮아요. 혼자갈 수 있어요."
"음.. 그럼,"
"우리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네?!"
"귀엽게 놀라기는. 푸흐, 장난이에요! 잘가요-"
...진짜 얄미워.
옹팀장이 사내연애 하는 법 上
"안녕하세요- 오늘 입사한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잘부탁드려요."
우리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와.. 예쁘다. 모두들 혀를 내두를만큼 누가봐도 청순한 외모를 가진 여자였고 남사원들은 벌써부터 잘보이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때, 팀장실에서 결제서류를 들고 나오던 옹팀장님과 신입사원의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입사한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아, 맞아. 오늘 온다고 했었지! 반가워요, 지원씨- 옹성우라고 해요! 옹팀장, 이라고 불러주면 돼요."
팀장님은 환하게 웃으며 지원씨에게 손을 내밀었고, 지원씨는 얼굴을 붉히며 팀장님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을 맞잡았다. ..뭐지 이 기분은.
"강대리, 이거 결제서류에서.."
지원씨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결제서류를 들고 강대리님에게 가는 팀장님. 뭔가에 홀린 듯 팀장님을 따라 눈을 옮기던 지원씨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박지원이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가워요."
"그.. 선배님이 옹팀장님 직속 비서시라구.. 하던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이쁘다. 살살 눈웃음을 치며 해맑게 인사하는 지원씨의 미모에 또 한번 감탄했다.
"아.. 맞아요. 그런데요?"
"저희, 친하게 지내요!"
"..네?"
느닷없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지원씨의 손을 무시할 수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때, 강대리님과 대화를 나누던 옹팀장님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오, 여주씨- 벌써 친해진거야?"
"네? 아니 뭐.. 그냥,"
"우리 여주씨 낯 많이 가리는데. 지원씨 친해지려면 고생좀 해야겠어요."
개구지게 웃으며 나와 지원씨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옹팀장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지원씨가 아까처럼 또 다시 얼굵을 붉히며 팀장님에게 묻는다.
"저.. 팀장님. 제가 처음이라 많이 서툰데. 모르는거 있으면 여쭤봐도될까요?"
지원씨의 대담한 질문에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굴리던 팀장님이 곧 다시 웃으며 지원씨를 쳐다봤다.
"당연하죠! 언제든 물어봐요."
..뭐야.
더 붉게 물들어가는 지원씨의 볼도, 그런 지원씨를 보고 여전히 해맑게 웃고있는 옹팀장님도. 그런 둘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때, 지원씨를 보고있던 팀장님의 눈이 다시 나를 향하며, 팀장님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보다는 여기. 우리 여주씨가 더 잘 가르쳐줄거에요."
"네, 네?"
뜬금없이 나오는 내 이름에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여주씨가 내 비서니까, 나한테 할말있으면 되도록 여주씨 통해서 해줘요- 알았죠? 저는 조금 바쁠수도 있어서."
"아.. 네. 그럴게요."
"그럼 나는 들어가볼게요! 여주씨, 내 방으로 와서 오늘 일정 브리핑 좀 부탁해요."
팀장님의 말에 지원씨는 잠시 당황한 듯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 곧 다시 팀장님을 보고 대답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요리조리 눈치만 보고있었다.
팀장님의 여주씨, 라는 말이 왠지 오늘은.. 싫지 않았다.
옹팀장이 사내연애 하는 법 上
오늘 일정을 브리핑 해달라는 팀장님의 말에 지원씨에게 간단히 목인사를 한뒤 스케줄러를 들고 팀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팀장님은 나를 보고 씩 웃더니 곧 다시 눈이 모니터로 향한다.
"왔어요?"
"네. 오늘 일정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오전 11시 상무실에,"
"나 잘했죠."
내가 말을 시작하자 모니터를 보던 눈이 곧 다시 나에게로 향하더니 뜬금없이 '나 잘했죠- '하며 날 올려다본다.
"...네?"
"우리 신입이, 여주씨 자리 넘보는것 같아서 내가 살짝 방어 좀 해봤는데. 나 잘했어요?"
"..네? 제 자리요?"
"내 애인 자리."
하마터면 들고있던 스케줄러를 놓칠 뻔 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게 느껴져, 황급히 고개를 숙여 애꿎은 스케줄러만 계속 바라봤다.
이 말 또한 장난인걸 아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심장도 갑자기 빠르게 뛰는 것 같고 식은땀까지 나는 것 같았다.
"히히, 놀랐어요? 장난인,"
"그런 장난."
"..."
"..치지 마세요."
금새 또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며 장난이에요, 하려는 팀장님에 나도 모르게 까칠한 말이 튀어나왔다.
"..여주씨,"
"앞으로, 그런장난 ..하지 말아주세요."
팀장님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팀장님의 장난에 매번 흠칫 놀라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내 반응이 재미있어서. 본인의 비서인 내가 제일 만만해서, 나에게 장난을 치는거다.
그런데도 계속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고 오늘도 얼굴을 붉힌걸 들켜버린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굳히고 딱딱하게 말해버렸다.
"아.. 미안해요. 난 그냥.. 여주씨가 편해서,"
"공과 사는 구분해주세요. 제가 늘 말씀드렸잖아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
처음보는 팀장님의 표정이었다. 아.. 바보같이 너무 딱딱하게 말했어. 무거워진 공기에 팀장님과의 사이가 어색해진 것 같아 내 자신이 미워졌다.
"나가봐요. 일정은.. 메일로 보내줘요."
"..죄송합니다."
그대로 스케줄러를 덮어 버리고 애써 다리에 힘을주어 팀장실을 걸어나와 문을 닫았다.
그러지 않았어도 됐는데. 좀 더 부드럽게 말했어도 됐는데.
옹팀장이 사내연애 하는 법 上
에필로그
"나가봐요. 일정은.. 메일로 보내줘요."
"..죄송합니다."
쾅- 평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팀장실문이 닫히자 성우가 한숨을 푹- 쉬며 의자에 기대었다.
"내가 심했나.."
이런 자신의 모습이 어린애들 장난처럼 유치해보였던걸까. 펜을 잡고 서류를 펼쳐 집중하려 해봐도 지금까지 본인이 여주에게 했던 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성우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굳은 목소리로 말하던 여주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마냥 장난은 아닌데.
본인의 마음을 몰라주는 여주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왜 난 그렇게밖에 표현을 하지 못했을까, 하고 입술을 깨물며 책상에 힘없이 엎드리는 성우였다.
옹팀장이 사내연애 하는 법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