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여주야. 나는 자주 생각을 하거든. 김재환이 나는 생각을 너무, 그것도 이상한 생각만, 많이 해서 생각을 다 읽어낼 수가 없다고 했을 정도로. 나는 네가 멋대로 구는 점이 진짜 마음에 들어. 왜, 사람들이 앙칼진 고양이들 좋아하잖아. 주인도 몰라 보고 제멋대로 사는 애들인데도 존나 귀엽다고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런데 걔네들은 지가 주인인 줄 알거든.
" 네 자리 가서 앉아. "
" 내 자리는 네 옆자린데 공주야. "
" 시발 그 공주 소리 좀 집어 치워. "
성우가 짜증 가득한 여주의 얼굴에 작게 키득였다. 존나, 앙칼진, 고양이 같아……. 여주는 온갖 것들에 날을 세웠다. 건드리면 할퀴어 버리겠다는 듯이. 그나마 유하게 구는 건 황민현이었는데 그런 민현도 여주를 편하게 대하지는 못 했다. 제 영역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벽을 치고 날을 세우고 꼬리를 세우고 털을 세우고 경계했다. 성우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한테 좀만 유하게 굴 수는 없나. 먼저 다가가기는 황민현보다 내가 먼저 다가갔는데.
" 공주야. "
" ……. "
" 공주야 대답. "
짜증이 가득 담긴 여주의 얼굴, 그 중에서도 가장 성우의 눈길을 붙잡는 것은 애정이 결핍된 생기 없는 눈이었다. 또렷한 흑색의 눈동자는 어딘가 결핍되어 있었다. 애정이 결핍되어 사랑받고 싶어 죽겠다는 눈빛을 하고서 날을 세우는 게 진짜…… 웃기잖아. 성우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물론 여주에게 닿지는 않았다. 그 전에 여주가 성우의 손길을 쳐냈으니까.
" 공주라고 부르는 게 싫어? "
" 너 같으면 좋겠니? "
" 왜. 공주가 뭐 어때서. "
예뻐서 예쁘다고 하는 건데 공주야. 성우의 담담한 음성에 여주는 짧게 숨을 멈추었다. …말을 말자. 성우를 보던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았다. 진심이야. 공주야. 성우의 말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못 들은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귀엽게 구네 진짜.
" 공주야 너 사랑이 뭔지는 알아? "
" ……. "
" 알 리가 없으려나 넌……, "
사랑받지 못 했잖아. 성우의 말에 다시 여주의 고개가 성우에게로 돌아갔다. 네가 뭔데…, 잘도 그런 소리를 지껄여. 여주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다듬지 못한 감정은 그대로 표출되어 복도 끝에 있는 재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분노와 모멸감, 외로움 그런 것들이 섞여 뒤엉킨 감정들에 재환이 숨을 한 번 몰아 쉬었다. 18년치의 외로움, 괴로움…….
" 네가 뭘 안다고 그딴 말을 해. "
" ……. "
" 너 나 알아? "
성우는 여전히 담담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건 오직 여주 하나였고 제 치부를 들킨 것 마냥 예민하게 굴었다. 책상 서랍 아래 들어 있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들키고 싶지 않아, 내 불운한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재환에게 들려온 여주의 생각은 그랬다. 성우는 대답이 없었다. 담담한 눈빛에 여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바닥의 감정이 건드려졌음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우는 법도 잊은 지 오래였다. 달래줄 사람이 없으면 눈물도 무쓸모한 감정 소비라는 건 오래 전에 깨우쳤다.
" 저기, "
" 꺼져. 나 좀 내버려 둬. "
재환이 조심스레 여주를 불렀다. 꺼져, 라고 말했지만 깊은 속마음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얼핏 내뱉는 목소리는 강했지만 깊은 속마음에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는 여리게 떨리고 있었다. 누가 나 좀, 달래줬으면 좋겠다……하고. 재환은 연민을 느꼈고 성우는 동질감을 느꼈다. 애정을 갈구하는 이는 가련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주고 싶은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자는 사랑받지 못한 자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연민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Catharsis
03
핏덩이에서 붉은 선혈이 낭자했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겉과 달리 속은 선명한 붉은 빛을 띤 스테이크가 점잖은 손길에 정갈하게 잘려 나갔다. 보기만 해도 속이 올라오는 모습에 여주는 저절로 식욕이 떨어져 포크를 내려 놓았다. 남자는 여주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여전히 느린 손길로 스테이크를 입에 담았다. 혀로 고기를 입안에서 굴리는 모습을 보기 싫었던 여주는 작게 한숨을 뱉으며 거대한 테이블 중앙에 놓인 꽃병에 눈길을 돌렸다. 외로이 병 속에 담긴 꽃 한 송이가 가련했다.
" 눈치가 빠른 아이였지 너는. "
" ……. "
" 나를 증오하면서도 버려질까 전전긍긍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어. "
" ……. "
테이블보를 잡은 여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과 함께 말려 들어간 테이블보가 멋대로 구겨졌다. 테이블 위에 놓인 행커치프로 입술을 닦아낸 남자가 그제서야 여주를 쳐다보았다.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얼굴에 자비란 없었다. 애정도 사랑도 없는 오직 이익만을 따지는 시린 얼굴에 여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자, 이번에는 어떨 것 같으냐. "
" ……. "
" 네가 그 곳에서 무얼 해야 할지. "
예상할 수 있겠어? 남자의 말에 여주의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별다른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지 남자는 손을 닦아낸 후 먼저 일어섰다. 차 대기 시켜 두었습니다 회장님, 비서의 말에 남자는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여주는 밭은 숨을 몰아 쉬었다. 정말…… 거지같은 하루였다.
자비 없이 비틀려진 인생은 신의 미움이라도 산 듯 기구했다. 날 때부터 달갑지 않은 존재였던 여주에게 사랑이란 환상 속의 어떤 것으로 느껴졌다. 18년 인생에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랑은 오지 않아. 죽어가던 어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catharsis
03
사람은 다 제 감정을 숨기고 산다. 누군가를 싫어하더라도 대놓고 티내지 않았고 싫은 일을 시켜도 내색하지 않고 그 일을 하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재환이 어릴 때는 그것을 알지 못 해 곤혹스러워 했다. 어떤 아이가, 재환이 좋아 죽겠다고 속으로 외치고 외쳐서 재환은 하루 종일 너무나도 피곤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아이에게 말했다. 너 너무 시끄러워. ……뭐? 난 너같이 시끄러운 애, 싫단 말이야. 속으로 자꾸 외치지 마. 나 좋다고. 재환의 말에 아이는 소리를 빽 질렀다. 미, 미친 소리 하지 마! 내가, 널… 왜 좋아한다고! 벌건 얼굴로 말했다. 웃기게도 그 순간 마저도 재환이 좋다고 외치고 있었다. 물기 어린 목소리로, 김재환이 너무 좋다고. 좋아 죽겠는데 지금은 많이 밉다고. 또 슬프다고.
재환의 하루는 소음으로 시작해 소음으로 끝났다.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의 걱정소리에 눈을 떴고 내 아이가 헤테로였다면……, 하는 부모님의 작은 바람도 모두 재환의 아침 일상이었다. 헤테로에게서 헤테로가 나는 건 언제부터인가 당연했다. 헤테로의 등장은 갑작스러웠고 그 시발점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대체 어디서 나고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헤테로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아무도 몰랐다. 재환 또한 자신이 헤테로인 줄 몰랐다. 다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줄 알았다. 남들의 생각을 읽고 누군가의 적의를 그대로 느끼고 애정을 그대로 느끼고. 그런 줄 알고 살았다.
" 제가 헤테로가 아닌데 뭘 어떻게 해요. "
" ……? "
" 이렇게 태어났는데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하세요? "
티비에서는 헤테로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 고등학교에 헤테로 전용 S반이 생겼다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시에, 재환이 헤테로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재환은 당연히 그 말을 들었고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두며 담담하게도 말했다. 부모는 당황해서 어버버 하다가 심지어는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재환아? 네. 너 지금… 내 생각을, 들은 거니. 재환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늘 그랬는데.
재환이 헤테로인 것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었고 부모님의 걱정은 점점 들리지 않았고 재환은 남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과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재환 또한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밝고 개구진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사람들은 제 속을 꿰뚫는 걸 소름 끼쳐 했다. 소름 끼치는 생각을 한 건 자기네들이면서 제 치부를 들킨 것에 대해 재환을 경멸했다. 그래서 재환은 깊은 속마음의 음울함까지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살기로 했다.
" 나 좀 내버려 두라고 했잖아! 따라오지 마. "
" 거짓말 하지 마. "
" ……. "
" 속으로는 울고 있잖아. "
여주는 언제나 울고 있었다. 재환이 여주를 처음 보았던 날부터 마음 속에 장마라도 온 듯 온갖 우울함과 음울함을 쏟아내고 있었다. 언제나. 그리고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좀, 달래줬으면 좋겠다. 너 사랑이 뭔지는 알아? 성우의 말에 여주의 속은 멋대로 뒤엉켰다. 알 리가 없었다. 여주의 삶에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외쳤다. 사랑은 바라지도 않으니 애정이라도 받고 싶다고.
연민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재환이 속으로 생각했다. ……,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연민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 울지 마 제발. "
" ……. "
" 내 속이 더 아파. "
연민은 사랑이 될 수 없다, 고 생각했다. 동정은. 연민은. 사랑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멋대로 터져 버린 감정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연민인지 동정인지 애정인지 관심인지 모르는 주제에 연민이라 치부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재환의 말 한 마디에 여주의 눈에서는 준비하지 못했던 감정이 툭 떨어졌다. 눈물은 아래로 추락해 그대로 바닥을 향했다. 울지 못 했던 이유는 달래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썩어 들어가 악취를 풍기는 속은 건드릴수록 덧날 뿐이었고 제 속을 달랠 줄 몰랐던 여주는 그대로 방치했다. 슬프지 않으면 된다.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모든 것은 더욱 나빠지지 않는다. 실망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제 속이 썩어가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했다.
" 울고 싶으면 울어. "
" ……. "
" 기꺼이 달래줄게. "
재환은 그 날 알았다. 연민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연민은 애정을 바탕으로 생겨난다는 사소한 사실들을. 여주로 인해 자신으로 인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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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한 편마다 애들이 등장해서,, 먼가 모아 놓고 볼 수가 없는ㄴ글입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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