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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의 답이 나지 않은 채로 독서실 앞에 서 있기를 10분째였다. 서 있는 동안 혹시나 그 대학생 오빠를 마주치치는 않을까 인기척이 들릴 때 마다 한껏 예민하게 기척의 주인을 눈으로 쫓았다. 독서실에 10분간 두 명이 들어갈 동안 다행히도 그 오빠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튼, 고민의 결론은 '일단 휴게실'이었다. 바로 어제 더워서 밖에서 공부한다고 말해놓았던 마당에 오늘 당장 내 자리로 돌아간다면 그 오빠나 나나 누구 하나 편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독서실에 들어와 곧장 휴게실로 향했고 문 앞에서 고민했던 시간들을 잊자는 마음으로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집중. 집중하자고 온 휴게실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소용없었다. 스터디플래너에 계획을 정리하고 단어장을 피자마자 휴게실로 들어온 독서실 사장님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장님은 내게 가볍게 손인사를 한 후 내 앞 의자에 바로 앉았다. 무슨 일이냐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사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의건학생도 더워서 여기로 온 거야?"
 "예?"
 "아니, 의건학생 옆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친구가, 난방 조금만 줄여달라고 그러길래. 혹시 의건학생도 더워서 그런거면 오늘부터는 괜찮을 거야."
















김과외


















 독서실 방이 너무 덥다는 민원이 적극 반영된 후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더 이상 핑곗거리도 없어졌기에 나는 매일 내 자리에 가서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 때 마다 커튼에 수놓여진듯한 그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고 그럴 때 마다 묘한 설렘이 느껴져서 그게 또 나름의 활력소가 되었다. 일주일 전, 내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 사람이 잠시 밖에 나간 틈을 타 - 분명히, 텀블러에 물을 담으러 갔을 것이었다. - 옆 자리의 커튼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 초콜릿과 함께 신경써줘서 고맙다는 쪽지를 두었다. 그리고 다음 날 스탠드의 불을 켰을 때 하늘 색 포스트잇에 적힌 '초콜릿 고마워요' 라는 말이 나를 반겼다. 글씨체마저 반듯하니 이 사람 도대체 무얼 공부하는 사람일까 궁금한 것들이 자꾸만 늘었다. 하지만, 그 후로 어제까지는 다시 그 사람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거의 마주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독서실 내에는 컴퓨터가 딱 두 대밖에 없었는데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아 필요할 때면 사용하기가 편했다. 나 역시도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문제가 잘 풀리지 않거나 해설이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인터넷강의의 도움을 얻곤 했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9월 모의평가 29번만 따로 해설하는 강의를 5번 돌려볼 동안 아무도 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6번째 듣기를 시작하려는데 문이 열렸다. 누가 들어왔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인상을 잔뜩 쓰며 모니터를 쏘아보는데 복사기의 소리가 들렸다. 꽤 많은 양을 카피하는지 한동안 복사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 들렸다. 그 소리에 무뎌져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소리가 멈췄고, 소리가 멈췄지만 복사를 하던 사람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번째 해설 듣기를 시작하기 전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서 있던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이런 타이밍에 마주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던, 옆 자리 그 사람이었다. 

 멍하니 제 얼굴을 쳐다보던 내게 그 사람은 살짝 고갯인사를 했다. 나도 그제서야 따라 인사했고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제대로 못하고 갈 길 잃은 내게 이번에도 먼저 말을 건넸다.






[워너원/김재환/강다니엘] 김과외 02 | 인스티즈


"……도와 드릴까요?"






 무얼 말하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문제 푸는거 말하는 거구나. 뭐라 대답해야할지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아 괜히 그 사람의 손에 들린 종이와 내 손에 들린 샤프만 번갈아 보았다. 짧은 정적이 길게도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 이거요……?"

"예, 제가 할 수 있는 문제 같아서요."






 내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자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샤프와 모의평가 문제지를 가져다가 자신의 앞에 내려놓는다. 문제를 푸는 것 같지는 않고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괜히 자기가 가져온 종이에 풀이를 하는 손만 보고 있는데 낮게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워너원/김재환/강다니엘] 김과외 02 | 인스티즈

 "이게 전공이라."

 "아……."

 "혹시 이해 안 되면 말해줘요. 어느 정도 개념을 알고 있는지 내가 몰라서, 일단은 제 선에서 설명해볼게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에 집중해서 나오는 나른하고 낮게 깔린 목소리에 취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예쁘게 뻗은 손으로 써내려가는 글씨는 그 때, 포스트잇에서 봤던 반듯한 글씨가 맞았다. 한 손으로 제 입꼬리 끝을 살짝 누르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글씨를 써내려가며 풀이를 정리하는 모습이 매일 커튼 뒤 그림자로 봤던 것과 겹쳤다. 이렇게 있었겠구나.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마음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방적인 강의와 내게 시선을 두고 하는 설명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와닿았다. 이 사람이 설명을 잘했던 걸까. 7번을 돌려들어도 이해되지 않았던 풀이를 단번에, 차근차근 이해시키고 자기는 마저 복사할 것이 더 있다며 나를 먼저 방으로 보냈다. 10분 남짓하는 시간동안 엄청난 울림을 안겨주었다. 그 사람, 수학이 전공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제 전공인 수학 문제를 풀 때는 한 손으로는 입꼬리의 끝을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정갈히 풀이를 정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중하면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나긋하고 매력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이 내게 주는 떨림은 처음 마주쳤을 때 보다 두번 째 마주쳤을 때, 그리고 그 때보다 오늘 이렇게 마주쳤을 때 곱절이 되어 커져갔다.








*

*

*








 독서실에서 있었던 내내 눈이 잔뜩 왔었는지 두껍게 쌓여 길이 온통 하얬다. 걸을 때 마다 푹푹 파이는 발이 시려운 것은 둘째치고, 걷는 게 어려워 평소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니엘은 그런 내게 보폭을 맞춰주며 천천히 옆에서 걸었다. 나는 오늘 평소보다 말이 확연히 없었다. 독서실에서 있었던 일을 무의식적으로 되새기길 반복하다보니 자꾸만 멍한 얼굴이 되었다. 말 없이 걷던 중 목 뒤로 따뜻한 무언가가 푹 달라붙어 깜짝 놀라 다니엘을 바라보니 제 주머니에 있던 핫팩을 내 뒷목에 얹은 것이었다. 아 뭐야. 놀랬잖아! 민망한 마음에 괜히 소리치며 웃자 다니엘도 따라서 웃었다.







[워너원/김재환/강다니엘] 김과외 02 | 인스티즈

 "왜 그러는거냐 진짜."

 "뭐가?"

 "독서실에 비상금이라도 숨겨둔 얼굴인데. 자꾸 심각해보이고 말이야."

 "그랬어? 내가?"






 어. 완전! 들떠서 묻는 나를 우스꽝스레 따라하듯 대답하는 다니엘의 팔을 툭 쳤다. 놀리지마! -라고 하면서도 다니엘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야하나 하고 갈등이 일었다. 독서실에 가서 공부도 안하고 이렇게 가슴떨려하는 모습을 다니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옛날부터 내게 아버지, 혹은 친오빠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다니엘에게는 번듯하고 똑부러지는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만약 다니엘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파고들어 묻는다면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 해야 하나, 예정에 없던 생각이 자꾸만 일었다. 

 또 심각해져가는 내 얼굴이 신경쓰였는지, 다니엘은 손가락으로 살짝 내 이마를 툭, 쳤다.







[워너원/김재환/강다니엘] 김과외 02 | 인스티즈

 "왜 그러는지는 안물어볼게. 나중에 꼭 알려줘야 돼, 알겠지?"

 "응."

 "아, 그것만 알려줘. 지금 그러는 게 생각하기 싫은 것들이 자꾸 떠올라서 그런거야? 아님 좋았던 걸 곱씹는거야?"

 "후자야. 자꾸 생각나네 이게!"





[워너원/김재환/강다니엘] 김과외 02 | 인스티즈

 "그렇다면 다행이고."





 살짝 미소지으며 평소보다 긴 시간동안, 내 보폭을 맞추며 나의 들뜸을 방해하지 않았던 다니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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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재밌게 읽고갑니다!!!!!!! 지적인 김재환 좋아죽어요ㅠ
6년 전
밤톨
감사합니다!!!!! 지적인 재환이가 보고싶어서 쓴거예요 하하하하
6년 전
비회원96.124
재밌네요 ㅠㅠ 재환이도 좋고 다니엘도 좋네요
6년 전
밤톨
감사합니다ㅜㅜ
6년 전
비회원71.49
작가님 재미써여!!! 설정이 너무 설레여ㅠㅠ
6년 전
밤톨
감사해요!!!!! 읽어줘서 고마워요ㅠㅠ
6년 전
비회원155.68
아 작가님 제가 이거때문에 독서실 오늘 등록했어요 진짜루ㅠㅠㅠㅠㅠㅠㅠ사랑합니다 ㅠㅠㅠㅠㅠㅠ물론 제 옆자리는 모두 여자지만요 ㅎㅎ
6년 전
밤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아니 ㅎㅎㅎㅎㅎ공부 열심히해요!! 감사합니다!
6년 전
비회원43.35
으악ㅠㅠㅜㅜㅜ글 너무 설레요❤️잘읽고갑니당
6년 전
밤톨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잘읽어줘서 고마워요ㅜㅜ!!
6년 전
비회원29.20
작가님 좋은 글 잘 읽구 갑니다ㅠㅠㅠㅠ 수학과 재환과 동갑 다니엘이라니 넘 설레네요ㅠㅠㅠ 다음화도 기다릴게요!!
6년 전
비회원131.211
저... 수학과 가면 재환이 있는건가요...? 오늘부터 목표는 수학과.
6년 전
독자2
재환이가 수학 설명해주는 생각 하니까 문제집 몇권이고 풀 수 있을꺼 같아요 ㅠㅠㅠㅠ 이런 내용으로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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